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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공동체-6] 함께 예배하라 (롬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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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예배하라 (롬 12:1-2)


♣ 동영상 - 『밀양』, 

밀양이라는 영화에서 신애(전도연)라는 여자가 교회에 가서 예배에 참여하고, 그 예배 중 통곡하고 오열하며 자신의 상처를 쏟아내는 장면과 소그룹에서 자신의 아픔을 나누는 장면입니다. 이 영화는 당시 칸 국제영화제에서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국민적 화제를 모았던 영화이고, 이창동이라는 영화감독을 스타 감독으로 만든 영화인데, 당시 일부 기독교인들에게는 이 영화가 갖고 있는 기독교에 대한 시각 때문에 불편함을 갖기도 하였습니다. 

이 영화에 주인공 신애라는 여자가 등장합니다. 33살, 남편을 잃고 아들 준이를 데리고 사별한 남편의 고향인 밀양으로 내려가서 작은 피아노 학원을 연 후, 새로운 시작을 기약합니다. 이곳에서 자동차가 고장나서 만나게 된 카센터 사장 종찬(송강호), 특별할 것이 없는 그 만큼의 욕심과 그 만큼의 속물성과 또 그 만큼의 순진함이 배어 있는 남자, 마을잔치나 동네 상가집에 가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그 누구처럼 이 남자가 이 여자의 삶에 끼어듭니다. 

이 남자는 언제나 그녀의 곁에 서 있습니다. 한 번쯤은 그녀가 자신을 바라봐주길 기다리며... 이 여자는 이곳으로 올 때 이미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피아니스트로서의 꿈도, 남편에 대한 희망도, 다 잃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모습은 참으로 연약한 모습으로 나옵니다. 그래도 그녀를 버틸 수 있게 해 준 것이 아들이었는데.... 그 아들마저 살해당함으로 삶의 희망을 완전히 잃습니다. 

이 여자가 한 교회의 예배자리에 오게 됩니다. 역시 이 여자만 바라보고 따라오는 남자와 함께...  예배자리에서 찬양과 말씀 중에 그동안 참아왔던 그 모든 아픔이 터져 나옵니다. 통곡과 오열을 하면서... 그 동안 참아오며 차곡차곡 쌓여왔던 그 모든 것, 웅크린 그녀의 모습에서 간간이 새어나오던 그 울음소리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옵니다. 그 경험으로 소그룹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로 치유받았다고 고백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기독교 신앙인인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아닐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에 나오는 기독교와 기독교인, 그리고 신앙적 주제인 용서, 은혜, 등에 대한 묘사를 보면 약간의 불편함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 영화를 깊은 신앙적 체험을 가진 사람이 만들었다면, 오늘의 이 장면에서도 예배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깊은 영적 체험들을 좀 더 세심하게 표현했을 것입니다. 소그룹에서의 모습도 그 진정성에서 조금 부족합니다. 비록 그러하더라도 이 영화는 기독교라는 종교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긍정적인 면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우리는 그 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예배드릴 때, 우리는 그 속에서 치유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배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예배는 신앙생활의 핵심이면서 또한 신앙생활의 모든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배가 등한시 되면 당연히 신앙은 등한시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배가 형식적이면, 신앙 역시 형식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면 그 어느 곳에서도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예배를 바로 드리지 못하는 사람치고 좋은 신앙을 가진 분들이 계십니까?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아니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은 “공동체를 세우는 40일 캠페인”, 여섯 번째 주일인 예배 주일입니다. 이제 마지막 주간인 예배주간을 보내게 됩니다. 이 주간의 주제는 “우리는 함께 예배하도록 지음받았다”입니다. 공동체가 하는 일이 많이 있지만 예배야말로 함께 서로 협력해서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로마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11장까지는 믿음의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론편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 것인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하는 것을 기록했습니다. 

오늘 본문 12장 1절부터 마지막 16장까지는 실천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 땅에 사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보여줍니다. 오

늘 본문은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로 시작합니다. 접속사란 전반부와 후반부를 연결하는 고리입니다. 이론편과 실천편을 ‘그러므로’라는 한 단어로 연결해 주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그러므로’ 구원받은 사람은 제대로 살아야 한다”, 이렇게 연결됩니다. 그러면서 구원받은 성도는 가장 먼저 무엇을 하는가? 실천편 첫째 절에서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 앞에 예배하며 살아간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계획되고 설계되고 디자인 된 존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친구가 되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사람으로 지음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날 때 내 아버지 내 어머니 내 가족들이 웃고 계셨던 것보다 더 많이 기뻐하시며 웃고 계시던 분, 바로 나를 디자인하여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태어나 하나님 앞으로 다시 부름을 받는 그 순간까지 나를 통해 기뻐하길 원하시는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삶을 ‘예배’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쁨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오늘 ‘공동체 40일’ 중, 예배주일을 맞아 우리가 새길 교훈의 말씀은 무엇일까요? 

1. 진정한 예배는 몸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오늘 말씀은 예배하는 도구로 우리의 몸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너희 몸으로 예배하라”, 여기에서의 몸은 단순히 나의 육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영과 혼과 육을 포함한 전 인격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여우, 원숭이, 토끼가 하나님에게 찾아가서 서로 자기가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고 자랑했다고 합니다. 가만히 듣고 계시던 하나님께서 갑자기 배가 고프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자 여우는 재빨리 나가서 잉어와 새를 물어왔습니다. 원숭이는 도토리를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토끼는 빈손인 것입니다. 여우와 원숭이는 토끼의 빈손을 나무랍니다. “야, 너는 하나님이 배고프다고 하시는데 왜 모른척 하냐?” 하나님도 토끼에게 한 말씀하셨습니다. “모두들 나에게 좋은 것을 가져왔는데 너는 왜 빈손이냐?”, 그때에 토끼는 얼굴을 붉히면서 모닥불을 지폈습니다.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자 토끼는 갑자기 불 속으로 뛰어들면서 말합니다. “하나님, 내 고기가 익거든 잡수세요” 그러고는 제물이 되어 죽어갔다는 거에요. 토끼의 마음을 알게 된 하나님은 그의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을 높이 평가해서 여러 사람들이 우러러 보라고 달에다가 옮겨놓았다나 어쨌다나... 그래서 지금도 달 속에 토끼가 살고 있다나 어쨌다나... 

하나님은 우리의 몸, 우리의 전 존재를 원하십니다. 그것도 기쁨으로 흔쾌히 주님 앞에 우리의 전 존재를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어느 가정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남편은 주일만 되면 아내에게 말합니다. “당신이 대표로 예배당에 가구려”, 이렇게 남편은 아내만 대표로 보내고 자신은 집에서 늘 쉬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남편이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자기 아내와 함께 죽어서 하늘나라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천국문 앞에서 문지기가 말합니다. “당신들 둘 중에 대표로 부인만 들어오십시오” - 아무리 가까운 관계라 할지라도 예배만큼은 대신할 수 없습니다. 예배는 하나님 앞에서 내가 직접 나아가 몸으로, 나의 전 존재로 드리는 것입니다. 


2. 예배중심의 삶이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갑니까? 저들의 삶의 중심에 누가 있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그 삶의 중심축에 예배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은 예배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중심축이 예배가 될 때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고 40년간 광야에서 지내게 됩니다. 이 광야에서의 모습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광야 같은 인생길을 가는 삶의 모형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원칙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가 항상 이스라엘 중앙에 있게 하는 것입니다. 광야에 진을 치고 머물 때나, 진군할 때에 동서남북 네 방향에 세 지파씩 나누어놓고 그 중앙에는 법궤가 있습니다. 

이것은 언제 어디서나 그 법궤가 보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런 원칙을 주셨을까요? 그것은 예배가 삶의 중심임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궤가 움직이면 이스라엘 백성들도 움직입니다. 법궤가 멈추면 당연히 이스라엘 백성들도 멈춥니다. 

우리의 삶의 중심에, 믿음의 공동체 중심에, 예배가 있어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 사역이 많이 있지만 예배를 우선하지 않는 사역은 그 어떤 것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그 첫 번째 목적과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관계를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배하기 위하여 출애굽했습니다. 

우리는 예배하기 위하여 구원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이 땅에 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이 예배입니다. 신앙생활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기쁘게 예배하는 것입니다. 


3. 함께 드리는 예배가 더 큰 유익을 줍니다. 

우리가 함께 예배드리면 풍성해 집니다. 혼자 드리는 예배에서 누릴 수 없는 유익을 함께 예배드림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 먼저, 함께 드리는 예배는 더 많은 기쁨을 줍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드리면 혼자 예배드리는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기쁨과 즐거움이 얻게 됩니다. 

(시68:4) “하나님께 노래하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 하늘을 타고 광야에 행하시던 이를 위하여 대로를 수축하라 그의 이름은 여호와시니 그의 앞에서 뛰놀지어다”, 

하나님께서는 예배가 축제 이길 바라십니다. 예배는 축제이지 장례식이 아닙니다. 예배는 억지로 드리는 의무가 아니라, 우리의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맨 앞 한줄 만 박수(5회) - 좌측 한 줄만 박수 - 반 까지 - 아래층 - 여러분 모두 ... 다같이 함께 할 때 얼마나 좋아졌는지 느끼실 수 있습니까? 함께 하면 풍성해집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쁨을 더해 주는 것입니다. - 또한 함께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케 합니다. 

(마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어디든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예배하는 곳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 여러분, 우리가 예배드릴 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주일에 예배드리던, 속회에서 예배드리던, 우리 가운데 주님이 지금 이속에 계시다고 믿고 예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이 이곳에 계시다고 믿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임재하심을 정말로 체험하게 됩니다. 두 세 사람이 모일 수도 있고, 소그룹으로 모일 수도 있고,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배할 때에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저는 여러분이 주일마다 예배에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매 주마다 새로운 사람을 데리고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예배에서 더 기쁘게 찬양하고, 더 뜨겁게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의 신앙을 더욱 업그레이드 시키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가 목사이면서도 하나님께 찬양드릴 때, 손을 들고 찬양한다든지, 하나님 앞에 박수치며 영광을 돌린다든지, ‘주님, 찬양합니다~ 사랑합니다~ ’, 이런 표현을 잘 못했습니다. 쑥스러워서... 잘 안되더라고요. 그런데 2004년, 제가 심장에 문제가 생겨 큰 병을 앓게 되어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을 하고, 생사의 갈림길을 경험했을 때, 하나님 앞에 간절한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몇 번의 고비 때에, 제 심장이 세 번이나 멎는 순간에, 짧지만 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처음에는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여기까지라도 감사합니다”, 다음으로는 “하나님, 저를 살려주시면 정말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겠습니다”... 

그 이후로 기도 중에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고, 그 응답대로 성령의 역사를 사모하였으며, 여러 성령과 치유사역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가운데, 성령의 기름부으심과 우리 주님의 만져주심을 체험하고 병이 치료되는 기적을 맛보는, 정말 현실적이지 않고 무슨 영화나 소설에나 나올 것 같은 일들을 체험합니다. 저의 병은 불치의 병, 생존가능성이 정말 희박한 질병이었는데, 이렇게 건강하게 여러분 앞에 서 있게 된 것입니다. 당시에 제가 치유받을 때,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강력한 성령의 기름부으심, 그리고 나의 내적인 상처가 치유되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그때에 회복된 것은 무엇보다 예배였습니다. 

찬양, “지존하신 주님 이름 앞에 모두 무릎 꿇고 다 경배해 거룩하신 주님 보좌 앞에 엎드려 절하세~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주 하나님의 영으로 경배드리리”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예배는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문학가인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C. S. 루이스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늘을 겨냥하라 그러면 땅은 덤으로 얻게 될 것이다. 땅을 겨냥하라 그러면 어느 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얻는 사람은 세상도 얻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잃은 사람은 세상도 다 잃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최우선 순위에 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늘의 것을 먼저 구하면 땅의 것은 덤으로 주십니다. 

여러분,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 손에 붙들려 이 한 주간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되시기 바랍니다. 여기에서 만난 하나님을 자손만대에 물려주며 자식들을 축복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손 끝에 주님의 임재가 있을 때 자식의 머리에 손을 얹어 축복하면 자식들이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살아갈 때에 발바닥으로 밟는 모든 땅이 주님의 임재로 정복되어 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발바닥으로 밟는 모든 땅이 복을 받았듯이 주님의 임재를 경험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가는 곳곳마다 복이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성공적인 예배를 통해 내가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하나님이 나의 기쁨이 되며 그로 인하여 복의 근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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