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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룩 : 죄를 이기는 삶 (롬 6: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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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 : 죄를 이기는 삶 (롬 6:6-23)
  

리빙스턴은 어린 시절, 헌금바구니를 올려놓는 강대상 위에 올라가 앉았다.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얘야, 왜 헌금바구니 위에 올라가서 앉았니?”라고 물었을 때 리빙스턴은 대답하였다. “저는 드릴 헌금이 없어서 대신 이 헌금바구니에 내 몸을 드립니다.”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제단 위에 자신의 몸을 드리기로 한 리빙스턴은 아프리카 오지에 가서 금세기 최고의 선교사로서 헌신하였다. 

‘몸을 드린다.’ 이것은 우리가 부러워 할 것이 아니라 성도가 마땅히 해야 될 나의 삶의 길이다.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그러면 몸이란 무엇인가?

하나님께 드릴 몸은 ‘사룩스’와 ‘소마’라는 두 단어가 있다. 이 단어는 인간의 외형적인, 육체적 형체를 나타낼 때 사용되지만 바울에게 있어서 몸은 ‘Body’라기 보다 하나님께 불순종하려는 타락한 성향을 언급할 때 사용되었다. 혈과 가죽은 그리고 고기 덩어리는 어떤 면에서 몸의 옷이지 몸 자체는 아니다. 

롬6:12을 보라. 죽을 몸에 관하여 나온다.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라고 하였다. 이는 인간이 몸을 가지고 있어서 죄에 대하여 영향을 받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또 롬7:24을 보면 사망의 몸에 관하여 나온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는 죽을 몸이 아니라 죽은 몸이다. 왜 죽은 몸인가? 그것은 바로 죄 때문이다. 죄가 지배하면 몸은 산 것이 아니다. 밥을 먹고 노래하고 옷을 입고 있어도 몸은 죽은 몸이다. 죄 짓는 죄의 몸은 산 것이 아니다. 

롬8: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정말 깨닫는 것은 내 몸(Body)이, 소마가 죄의 지배 아래 있는 몸이 되어서는 안되며 산 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의 표현을 보라. 신령한 몸이 있다. 이 몸은 변화된 몸이다. 그리스도인이 받게 될 몸이다. 

고전15:44을 보라.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라고 하였다. 이 다시 사는 신령한 몸이 다른 말로 부활의 몸이다. 신자들은 마지막 날에 순식간에 변화되어 진다. 

고전15: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우리는 몸을 입고 살고 있다. 죽을 몸인가? 죽은 몸인가? 그러나 장차 여러분과 나는 신령한 몸이 된다. 예수로 사는 자, 살리는 영으로 사는 자는 장차 신령한 몸이 되고 부활의 몸이 된다. 이제 우리 성도들은 예수의 사람이 되었다. 

(롬1:6) 죄의 지배를 받으며 죄에 거하는 몸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셔 그리스도의 영으로 살아야 한다. 

(롬8:9~11) 우리 안에 거하시는 영으로 인해 죄에 대하여 상관 없이 은혜 아래 사는 몸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세 가지를 기억하자.

1. 알라. (롬6:6)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을 알아야 한다. 성도는 죄로 인해 죽은 자다. 그러나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그 의롭다 하심은 롬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라고 설명해 준다. 

따져 보면 순전히 은혜다. 내가 나의 죄에 대한 값을 지불하지도 않고 얻게 된 것이 하나님이 주신 칭의의 은혜다. 다만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 하나님과 나 사이의 죄를 해결하시는 화목 제물로 인해 나의 죄 값이 지불되었다. 내 죄를 해결해 주는 값이 피 흘리신 속량이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와 여러분은 그것을 믿고 의롭게 되었다. 

믿게 된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옳다 여김을 받은 의로워진 자요, 의의 종이다. 죄에게 종노릇 할 필요 없고 죄에서 벗어난 하나님의 종이다. 

롬6: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이것을 알아야 한다.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을 알라. 더 이상 죄인이 아니다. 죄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죄에 용서를 받지 못한 사람은 죄에 잡혀서 산다. 그러나 죄인이 아니고 용서 받았다. 죄로 인해 죽은 자가 아니고 용서 받아 산 자가 되었다. 따라서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을 아는 자는 새로워진다. 새 마음과 새 태도를 가진다. 깨끗해진 사람은 죄에 다시 발을 들여 넣으려 하지 않는다. 의로워진 사람은 죄가 지배하기 어려운 것이다. 

  
2. 여기라. (롬6:11)

무엇을 여기는가? 죄에 대하여 죽은 자로 여기고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로 여겨야 한다. 예수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예수가 살아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계심이다.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성도는 자기 자신을 철저히 이 두 가지로 여겨야 한다. 

즉, 롬6:11의 말씀처럼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나는 하나님께 대하여는 예수 안에서 살아있는 자로 여겨야 한다. 여긴다는 것은 자꾸만 되뇌이고 헤아리고 카운트 한다는 것이다. ‘나는 죽었다. 대신에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있는 자다.’ 하나님의 종,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종이다. 더 이상 죄를 위해 살지 않는다. 거룩함의 열매를 맺기 위해 살아있는 자로 자신을 여기는 것, 돌리는 것이 중요하다. 

몹쓸 몸이라고 여기면 무용한 삶을 산다. ‘쓸모 있는 녀석이야!’라고 자신을 여기면 유용한 삶을 산다. 어떻게 여기느냐에 따라 행동과 태도의 선택이 달라진다. 죄의 유혹이 올 때마다 여겨라. 즉 돌려 생각하라.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로 돌려 생각하라. 죄가 어떻게 영향력을 행사하겠는가? 그리고 부활의 주님을 믿는 나는 살아났다. 죄로부터 해방되고 의의 종이 되었다. 살아난 내가 이 생명을 가지고 영생을 바라본다. 어찌 죄의 지배를 받아 죄의 종노릇 하겠는가? ‘나는 살아있는 자다.’ 그렇게 여겨라. 정신이, 태도가, 자세가 새로워진다. 여기기만 하면 죄에서 승리하는 삶이 시작된다. 

  
3. 드리라. (롬6:13)

무엇을 드리는가? 성도의 몸의 지체를 드리라. 롬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려면 드리는 일을 힘써야 한다. 드리는 일을 기쁨으로 하며 드리느라고 분주해야 한다. 몸의 지체인 손과 발, 가슴과 머리를 모두 다 하나님께 드리면 죄가 간섭해 오지 못한다. 아무 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기 때문에 죄의 유혹이 밀고 들어온다. 시간이 많고 할 일이 없으면 죄가 몸의 사욕을 건드린다. ‘지루함을 어떻게 보낼까?’ 라며 공상하다 보면 무익한 일에 손과 발이 움직이게 된다. 

“오늘 드리라.”고 하였다. “저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였다. 드리는 것은 사랑의 절정이다. 드리는 것은 섬김의 절정이다. 드리는 것은 아름다움과 선의 절정이다. 나를 사랑하사 죄에서 구원하시고 의롭다 해주신 하나님! 그 분이 세워주신 교회의 지체로서 나를 드리는 것은 주님을 향한 마땅한 사랑의 방법이다. 예수님이 자신을 화목 제물로 내어주시고 생명의 떡이 되시고 생명의 음료로 주셨는데 우리가 이 떡과 잔을 받아 먹고 예수의 사랑이 되었다. 우리는 예수님의 것이다. 포도나무에 매어달린 가지들이다. 목자에 딸려 있는 양들이다. 세마포 옷을 입고 계신 주님의 신부들이다. 그 예수님으로 인해 살게 된 우리가 신령한 몸, 부활의 몸을 사모하며 영생을 향해 사는 것은 마땅한 것이다. 드리면 드릴수록 신앙이 자라난다. 의의 무기로 드릴수록 거룩의 열매가 맺는다. 

이처럼 교회의 사역에 자기 자신을 드려보라. 기쁨과 감사가 솟아나고 더 드리고 싶은 마음과 함께 정결하게 되어진다. 죄의 몸, 죽을 몸, 육신의 몸은 자꾸만 사망으로 내리달린다. 몸을 드려도 허무한 것에 드린다. 몸을 드려도 죄를 피하지 못하고 멸망을 가져올 사탄의 종노릇하는데 드린다. 그러나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을 알라.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있는 자로 여기라.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철저히 알고 철저히 여기고 철저히 드리는 사람에게 죄가 주장하지 못한다. 죄가 내 죄성을 건드리지만 아무 영향을 주지 못한다. 나는 죄의 종이 아니다. 나는 하나님의 종, 순종의 종, 의의 종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보람과 만족이 넘치게 된다. 

롬6:19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기회가 있는대로 드려야 한다. 거룩의 지름길이 드리는데 있다. 결국 죄 아래 있는 자가 의롭게 됨을 알고 죄에 대하여 죽은 줄로 여기고 산 자로 여기게 된 것은 주님 때문이다. 주님 때문에 내 주님, 내 신랑, 내 목자, 내 포도나무되신 주님 때문이다. 나를 아낌 없이 드린다. 나의 지체를 드린다. 드리는 것이 마땅하고 드리는 것을 위해 이제 사는 것이다. 

알고 여기고 드리는 것!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어 결국 드리는 것이다. 내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삶, 그것은 은혜 아래 열려 있다. 칭의의 은혜, 속량의 십자가 은혜, 삶의 주인되신 하나님의 은혜, 그 은혜 아래 성령은 내 몸을 거룩한 삶으로 이끄신다. 죄를 능히 이기는 거룩한 삶은 나를 영생으로 이끌어 신령한 몸으로 변화된다. 이렇게 살면 교회가 영광을 받는다. 사람들이 힘이 있게 된다. 거룩의 힘, 죄를 이기는 힘. 세상 음부가 흔들린다. 행복보다, 축복보다 우리가 갈망해야 할 것은 거룩에 대한 목마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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