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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의 날을 잊지 말자 (욜 3: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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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날을 잊지 말자 (욜 3:14-21)


 [인간의 두 얼굴 -내면의 진실]이라는 책은 2009년에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EBS 다큐 프로그램을 엮어낸 책입니다. 이 책 속에 매우 놀라운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바로 “모든 인간은 착각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누구도 예외 없이 모든 인간은 착각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착각하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자기 중심성"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할 때, 자기가 이해했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도 이해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필요한 충분한 정보를 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사람의 뇌구조에는 착각을 일으킬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하는데, 또 한편으로는 이게 착각이라는 걸 알려주는 부분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번 착각하면 착각 속에 빠져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공주병이나 왕자병에 걸린 사람은 평생을 공주나 왕자인 것처럼 착각 속에 살 가능성이 큰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착각하는 존재입니다. 이 착각이 인생을 힘들게 만들고, 더 나아가 인생을 파멸로 몰라갑니다. 

성경 메시지는 대부분 이런 인간의 착각을 지적해 주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하시는 사역 가운데 많은 부분은 우리의 잘못된 착각을 바로 잡아 주시는 일입니다. 오늘 본문 역시 인간의 착각을 지적하며 이 착각을 바로잡아 주기 위해 주신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날

본문 요엘서는 요엘 선지자가 자기가 본 환상을 기초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한 예언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그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해 보면 “여호와의 날”에 대한 계시입니다. 즉 여호와의 날이 임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요엘서는 3장 밖에 안 되는 그 내용이 짧은 말씀입니다. 이 짧은 말씀 중에 “여호와의 날”이라는 표현이 네 차례 반복해서 나옵니다.(1:15, 2:1, 2:11, 3:14) 그 중에 오늘 본문 3:14를 보면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요엘 선지자는 여호와의 날이 머지않아 임할 것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요엘 선지자는 왜 이렇게 반복해서 여호와의 날이 임할 것을 강조해야 했을까요? 간단합니다.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여호와의 날이라는 것이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날이 임하더라도 먼 훗날에 임할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죄 짓고, 악을 행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키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런 착각 속에 빠져 살고 있는 인간들의 교만한 본성을 지적하신 일이 있습니다. 마 21:33 이하를 보면 소위 ‘포도원 농부의 비유’에 관한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농부들에게 포도원을 세를 주고 타국으로 갔습니다. 포도 열매를 거둘 때가 돼서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냈습니다. 그런데 농부들이 세를 낼 생각은 하지 않고 종 하나를 때리고, 하나를 죽이고, 또 하나를 돌로 쳤습니다. 주인이 이번에는 더 많은 종들을 보냈습니다. 이번에도 농부들이 그렇게 못된 짓을 했습니다. 주인이 이번에는 자기 아들을 보냈습니다. 농부들이 이 아들만 죽이면 이 포도원을 자기들이 차지할 수 있을 것을 생각하고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의 비유입니다. 인간은 이 농부들처럼 주인이 아니고 청지기일 뿐입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주인인 줄 착각하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포도원 주인이 주권을 행사하려고 하자 거부합니다. 그리고 아예 자기들이 그 주권을 차지하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서 인간의 교만을 지적하고 계신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간섭하시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세상의 주인인 것처럼 살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들 뜻대로 살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은 영원히 ‘인간의 날’만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날”을 인정하지 않고, 그 날이 없다고 주장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작가 “존 스타인벡”은 노벨 문학상을 받으며 한 연설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한 일이 있습니다. “태초에 인간이 있었다.”(In the beginning, there was man.) 당시 인간중심의 세상풍조를 꼬집는 말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현대문명 속에 인간이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현대 문명 속의 중심이 아닙니다. 다만 주변인일 뿐입니다.

심지어 교만한 인간은 하나님마저도 인간이 만들었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원시 시대에 설명할 수 없었던 자연 현상을 보고 두려워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천둥과 번개를 보면서, 저 일식과 월식현상을 보면서 두려워서 만들어낸 상상의 결과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존재함으로 인간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존재함으로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억지 주장을 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날”은 결코 있을 수 없는 허구일 뿐입니다. 오직 ‘인간의 날’만 있고, 또 이 인간의 날은 영원하다고 주장할 뿐입니다.

독일의 신학자 루돌프 오토(Rudolf Otto)가 쓴 [거룩](Das Heilige)라는 책을 보면 종교의 본질은 “거룩한 두려움”이라고 파악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라는 낯선 존재 앞에서 거룩한 두려움을 깊이 느끼는 것이야 말로 신앙의 출발점이라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오늘의 현대인들은 그 잘난 현대 문명 때문에 거룩한 두려움을 경험하지 못한 채 교만의 늪에 빠져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최근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위대한 설계]( Grand Design)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에서 호킹 박사는 “지금까지 과학적 연구 결과 우주는 중력의 법칙과 양자이론에 따라 무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고, 이 자연 발생이 바로 인간과 우주가 존재하게 된 이치이며, 여기에는 우주가 창조되고 작동하는데 신을 개입시킬 필요가 없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 우주 안에 하나님이 간섭할 공간이 없다”라고 썼습니다.

하나님의 우주창조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주장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호킹 박사는 신학자 오토가 말하는 거룩한 두려움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토록 교만한 말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날”은 결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됩니다. 오직 “인간의 날”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 요엘 선지자는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날”이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날이 지금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와께서 통치하시고 또 심판하실 “여호와의 날”이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날이 이미 가까이 와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결코 우리는 우리 인생의 주인이 아닙니다. 이 역사의 주인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는 청지기일 뿐입니다.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심판의 날

본문 16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내시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하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날에 여호와의 심판이 시작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시온과 예루살렘은 여호와의 날이 없다고 착각하며 오직 인간의 날만을 주장하던 자들이 조롱하고 저주하고 공격하던 목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날을 기다리던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모하던 곳입니다. 그리고 이곳은 사도 요한이 계시록에서 말씀하던 “새 예루살렘”이고, 에스겔 선지자가 말했던 “여호와 삼마”라고 부르던 그 새로운 성읍을 말합니다.

여호와의 날에 바로 이 새 예루살렘, 여호와 삼마로부터 심판의 소리가 들려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심판의 소리는 온 우주가 두려워 떨며 듣게 될 것이고, 그 소리와 함께 하늘과 땅이 진동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의 날은 바로 심판의 날입니다. 인간의 날만을 주장하던 교만한 인간들을 심판하는 날입니다. 여호와의 날을 조롱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던 자들을 심판하는 날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저주하고 박해하고 공격하던 자들을 심판하는 날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심판은 크게 두 종류입니다. 하나는 예고편과 같은 심판이 있고, 다른 하나는 본 영화와 같은 심판이 있습니다. 예고편은 맛보기이고, 본 영화는 진짜입니다.

실제로 예고편과 같은 심판은 이미 성경에 수도 없이 임했습니다. 이미 창 3장에 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우선 하와를 미혹했던 뱀에게 심판이 임했습니다. 3:14를 보면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있는 동안 흙을 먹을 지니라”고 심판하셨습니다. 다음으로 인간을 심판하셨습니다. 하와에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셨고, 아담에게는 평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도록 심판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으로 하여금 흙으로 돌아가는 죽음의 심판을 하셨습니다.

예고편과 같은 심판의 하이라이트는 창 6장 이하에 나오는 노아 홍수 심판입니다. 당시 인간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고 그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여서 하나님께서 홍수로 저들을 심판하셨습니다. 이 때 사람은 물론이고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모든 생명체들이 홍수 심판을 받아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본 영화와 같은 진짜 심판은 따로 있습니다. “여호와의 날”에 임할 심판입니다. 계 20:12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 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져지더라”

그리고 히9:27에서 이렇게 못 박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그렇습니다. 성경에 셀 수 없이 많은 곳에서 심판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것이고, 결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로뎅의 대표작 하면 누가 뭐래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 작품은 원래 로뎅이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을 주제로 해서 [지옥의 문]이라는 조각 작품들을 제작했는데, 그 여러 작품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나중에 그 작품들 하나하나에 저마다의 이름을 붙였는데, 이 작품에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입니다.

로댕 전기를 쓴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이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말없이 생각에 잠긴 채 앉아 있다. 그는 행위하는 인간의 모든 힘을 기울여 사유하고 있다. 그의 온몸이 머리가 되었고, 그의 혈관에 흐르는 피가 뇌가 되었다” 

이 사람이 지옥 문 앞에서 무슨 생각을 저토록 처절하게 하고 있을까요? “나는 과연 어떻게 살아왔던가?”, “하나님께서는 과연 내게 어떤 판결을 내리실까?”, “나는 과연 무사히 심판대 앞을 통과할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을 생각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이 사람은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이런 생각은 지옥문 앞에서 할 생각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지금 우리가 이런 생각을 치열하게 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심판을 미리 대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날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 소망스러운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16절을 보면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시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록 여호와의 날이 임해서 심판이 시작된다고 해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심판에서 오히려 구원을 받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8절을 보면 “그 날에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며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며 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 여호와의 성전에서 샘이 흘러나와서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 여호와의 날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특별히 돌보시고 오히려 복을 내리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과 등을 지고 살던 사람들, 하나님과 원수로 살았던 사람들 그들에게는 심판의 날이요 저주의 날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오히려 그 날이 축복의 날이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어느 교인이 꿈속에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 있었습니다. 의로우신 재판장인 하나님께서 신문하십니다. "너는 항상 진실했는가?" "그렇지 못했습니다." "너는 항상 깨끗하게 생활했는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럼, 정직하게는 살았는가?" "그렇지도 못했습니다." 신문이 끝나자, 이 교인은 그만 머리를 깊이 떨구고 지옥 갈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줄기 광채가 비치면서 예수님이 그의 곁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버지여, 이 사람이 세상에 있을 때 깨끗하게도, 정직하게도 살지 못한 것을 잘 압니다. 그렇지만 이 교인은 평생을 저를 잘 믿고 살았습니다. 제가 이 교인을 변호하겠나이다.“

그렇습니다. 심판대 앞에 설 때 우리의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의롭게 살려고 아무리 힘쓴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심판대 앞을 통과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변호해 주셔야만 통과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믿음이 있는 성도들을 위해 특별히 대변해 주실 때만 심판을 면할 수 있습니다.

출 1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애굽을 심판하실 때 집집마다 장자를 다 죽이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은 그 심판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 때 이스라엘 백성이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발랐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그 피를 보고 그 집을 통과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의 날 우리가 구원을 받으려면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간직하는 길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면 여호와의 날은 우리에게 축복의 날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결코 인간의 날이 영원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여호와의 날이 임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날 심판이 임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 심판을 면할 길은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 예수를 잘 믿는 것입니다. 예수 믿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면 우리에게 여호와의 날은 구원의 날이요 축복의 날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잘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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