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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의 하나님이 되기를 원한다 (출 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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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하나님이 되기를 원한다 (출 3:1-12)


이집트에서 30년 동안 통치했던 무바라크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무바라크는 1974년 제 4차 중동전쟁 때에 공군 참모총장으로 참전해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국민들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당시의 사다트 대통령에 의해 부통령이 되었고 사다트 대통령이 극단적인 이슬람주의자에의해 암살된 후에 군부의 힘을 입고 대통령이 되어 이집트를 30년간 통치했습니다. 

그는 오는 9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 자신의 아들을 후보자로 내세워 권력을 세습하려고 했는데 그것을 거부하는 국민들의 저항을 거세게 받고 있고, 이제는 그가 스스로 권력에서 내려와야 하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지난주에 말씀 드린 것처럼 초심을 지키지 못해 시작의 아름다움을 간직하지 못하고 끝이 추하게 끝나는 또 한 사람의 지도자를 보게 됩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를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잘 정리해 끝까지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지는 지혜와 은혜가 충만하기를 소망합니다. 

지금 혼란을 겪고 있는 이집트가 고대 사회에서는 나일강을 중심으로 이집트 문명을 이루어 세계를 지배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 나라를 애굽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애굽 제국의 왕은 ‘바로’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한 가뭄으로 인해 애굽에 피신하게 되었고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노릇을 하며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고통스러움을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도우심을 간구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모세’를 지도자로 세워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 있을 때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려다가 실패했습니다. 그는 바로 왕의 후한을 두려워하며 미디안 광야로 도망 갔습니다. 그 때 모세의 나이가 가장 왕성하게 일을 할 수 있는 40세였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려는 꿈이 좌절되자 광야로 도망해서 그곳의 족장 중의 하나인 이드로의 사위가 되어 장인의 양을 치며 광야에서 생활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의 나이가 80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어떤 꿈도 가질 수 없었고, 힘도, 능력도 없었습니다. 광야에서 양을 치다가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모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기에 11절에서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겸손의 말이 아닙니다.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표현한 것입니다. 모세는 자신이 이제 어떤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능력도, 용기도, 지혜도 없이 광야에서 양을 치며 살다가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듭된 부르심 앞에 모세는 계속적으로 강하게 거부합니다. 그는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내가 누구관대’라는 말 속에는 나는 이 일을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이일을 하기에 적격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모세를 향해 하나님께 하시는 말씀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9절과 10절에 나오는 ‘이제’라는 단어를 통해서입니다. 히브리어로 ‘아타’라는 단어입니다. ‘이제부터’ ‘지금부터’라는 말입니다. 네가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지금 이 순간부터 내가 너를 통해 바로에게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애굽의 왕자로 있을 때 그는 궁정에서 최고의 교육과 군사 훈련을 받았습니다. 최고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그럴 때 자신의 힘과 능력을 믿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겠다고 일어섰을 때 하나님은 침묵하고 계셨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로의 손으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하는 시도가 실패했을 때 그는 광야로 도망을 해서 40년간 양을 치며 살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인생의 실패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 일에도 쓸모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광야 생활을 통해 모세를 훈련시키시고 다듬으시는 과정이었습니다. 

모세는 궁정학교에서의 40년을 성공의 시간으로 보았고 광야학교에서의 40년을 실패의 시간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궁정학교에서의 40년도, 광야학교에서의 40년도 성고의 시간으로 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로 나와야 하는데 광야 40년을 통해 광야 구석구석을 알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하나님의 방법대로 훈련을 시키시며 호렙산에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호렙산으로 부르신 후에 ‘이제부터’ 너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겠다고 선포하십니다. 모세가 자신의 힘으로 안 된다고 포기하는 그 때에 하나님은 ‘이제부터 시작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헨리 나우엔이 쓴 ‘춤추시는 하나님’ 이라는 책을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애통은 우리를 초라하게 한다. 우리가 얼마나 작은 사람인지 냉정하게 일깨워 준다. 그러나 바로 그곳이 춤추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일어나 첫 스텝을 내딛게 하시는 곳이다. 고통과 가난과 불편함 속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고통을 떠나서가 아니라 바로 그 고통 속에서 우리의 슬픔으로 들어와 우리 손을 부드럽게 잡아 일으켜 세우며 춤을 청하신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한 복판에 찾아오셔서 손을 내미시는 분이십니다. 고통과 가난과 불편함 속에서 애통해 하는 우리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시고 춤을 청하시는 분이십니다. 

실의에 빠져 있는 모세에게 손을 내밀며 ‘이제부터 우리 함께 구원의 춤을 추자’라고 말씀하시며 역사의 복판으로 모세를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에 의해 억지로 끌려 역사의 무대로 나왔지만 출애굽의 역사의 복판에서 하나님과 함께 놀라운 일들을 행하였습니다. 모세를 구원의 역사 무대로 초대하신 하나님께서 삶의 자리에 힘들어 하고, 지쳐 있는 우리들을 향해 함께 구원을 이루며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가는 기쁨의 춤을 추자고 손을 내미십니다. 그 하나님의 손을 잡고 힘차게 자리를 차고 일어나 하나님께서 이루시기 원하시는 놀라운 사역의 무대에서 기쁨과 희망의 춤을 출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제부터 시작하자’라고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 12절에서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없어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는 모세에게 ‘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낼 것이라’고 확신을 주십니다. 그러시면서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십니다. ‘반드시 너와 함께 한다’고 약속하십니다. 

신앙의 가장 중요한 시간과 장소는 ‘거기 그리고 그때’가 아닙니다. ‘여기 그리고 지금’입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현장입니다. 우리는 잘못하면 ‘거기 그리고 그때’를 자꾸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현재는 엉망인데 과거의 것만을 말하며 위로를 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 There and Then’이 아닌 ‘Here and Now’입니다. 이 일이 잘 해결되면, 내가 원하는 일이 되고 나면, 내가 퇴직하고 나면 그때부터 내가 섬기고, 마음을 풀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부터입니다. 

호렙산 중턱에서 발에서 신을 벗고 서 있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을 소개하면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열 댓가지가 나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이름 가운데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시는 그 이름에서 매우 신비함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소개하시는 하나님의 이름 안에서 매우 경이로움은 느낍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성경을 읽는 가운데 귀한 교훈은 발견한 것이 있습니다. 창세기 26장 4절에 보면 이삭이 주변 족장들에게 자신이 판 우물을 빼앗기고 브엘세바에 머물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삭에서 나타나셔서 당신을 소개하시면서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창세기 28장 13절에 보면 야곱이 형 에서의 칼을 피해 하란으로 도망을 가다가 벧엘에 머물며 돌베개를 베고 잠을 잘 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임하셔서 당신을 소개하면서 ‘나는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3장 6절에 보면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르시면서 가시떨기나무 앞에 서 있는 모세에게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고 소개하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은 완전한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허점과 실수가 많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죽는 것이 두려워 아내를 두 번씩이나 누이라고 속이고 아내를 버리고 자신의 생명을 살리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이삭은 자신의 권리조차도 제대로 찾아 먹지 못하는 다른 족속들에게 밀려 쫓겨나는 유약한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처럼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일이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취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냥 거칠게 말하면 그는 사기꾼의 기질이 다분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와 형, 그리고 삼촌을 속이는 일에 아주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약한 영역들이 있고 부족한 부분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새로운 결단들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자신들의 삶의 내용을 다듬어 갔습니다.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되었던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아들인 이삭을 제물로 드리면서까지 결단을 합니다. 이삭은 어디를 가든지 장막을 치기 전에 먼저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야곱은 험하고 거친 삶을 살았지만 그는 장자에게 약속하신 장자의 축복권을 믿었고, 죽음이 임박했을 때 그가 보여준 마지막의 순간은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성숙한 믿음의 모습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와 약함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믿음을 가지고 응답하며 사는 가운데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누렸던 산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 앞에 약하지만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룬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시면서 당신을 소개하실 때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소개를 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모세야, 내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된 것처럼 너, 모세의 하나님이 되기를 원한다’는 말씀으로 느껴집니다. 산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하나님이 거룩한 역사를 이룬 믿음의 조상들처럼 너도 나의 부름에 응답해 거룩한 사역의 일꾼이 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저는 호렙산에서 모세를 향해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당신을 소개하심을 통해 저와 여러분을 향해 ‘나는 너 000의 하나님이 되기를 원하노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리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오늘의 우리의 가정과 교회, 그리고 사회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지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시며 나의 하나님이 되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 순전한 믿음으로 응답하며 세워지는 은혜가 우리 성도들 가운데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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