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예수님의 습관 (눅 4:16-20)

첨부 1


예수님의 습관 (눅 4:16-20)


음력 새해 첫 주를 맞이한 시간에는“예수님의 습관”에 대한 말씀을 드리므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의 삶의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개역성경 누가복음 4장 16절에“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 가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규례란“일정한 규칙”이라는 의미가 있고, 또 한편으로는“전에 행하던 대로, 정기적, 계속적으로 행하는 사례”라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개역개정 성경에는“늘 하시던 대로...”라고 했습니다. 달리 말씀드리면 습관을 말합니다. 이러한 의미로 볼 때 예수님께서 정기적으로, 계속적으로 행하신 습관화된 삶이 있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골프 천재 타이거 우즈가 1997년에 20세의 나이로 세계 골프대회에 우승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경기 모습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보면서 스윙하는 폼이 좋지 못함을 발견했습니다. 코치를 찾아가 스윙 폼을 바꿔야겠다고 얘기하자 코치는 말하기를 “그것은 매우 힘든 일이기 때문에 앞으로 2년 동안은 우승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우즈는 당장의 우승을 생각하지 않고 스윙 폼을 고치는 일에 전념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2년 동안의 교정 훈련을 잘 견뎌냈습니다. 드디어 2년이 지난 1999년에 14개 대회에서 무려 10번을 우승했다고 합니다. 타이거 우즈의 우승은 고쳐진 좋지 못한 스윙 습관을 고친 결과였습니다. 

습관은 단순히 습관으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게 됩니다. 어떤 습관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에베소서 4장 22절에 권면하시기를“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새 사람을 입으라.”하셨습니다. 좋지 못한 옛 습관을 고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떤 습관을 갖고 계셨을까요?

一. 예수님은 습관을 따라 회당에 가셨습니다. 본문 16절에 말씀하시기를“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 가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회당에 가시는 것이 습관화 되셨다는 것입니다. 조금 전 규례에 대해 말씀드렸듯이“규칙적으로, 정기적으로, 계속적으로”회당에 가셨다는 것입니다. 회당이란 예루살렘 성전과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구약에 나타난 성전은 예루살렘에 하나만 있었습니다. 

성전에서는 제사 즉 예배와 기도 외에는 달리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훗날 이스라엘 나라가 패망하고 먼 곳으로 흩어진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까지는 거리가 멀어 갈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성전은 적의 침략으로 인해 허물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기도도하고 하나님의 말씀도 가르치고 배우기 위해 마련된 처소가 회당입니다. 세계 어디든지 유대인 열 가정 이상만 되면 회당이 있었습니다. 이 회당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배우며, 모국어인 히브리어 공부와 그들의 역사를 배우기도 했습니다. 

그 외 회당에서 각종 문화행사도 하고 수시로 모여 의논하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예배드리는 교회당은 회당의 기능과 비슷합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 즉 주일마다 이 회당에 가셨습니다. 회당에 가시되 규칙적으로 정해진 시간에 빠짐없이 가셨다는 것입니다. 이곳에 가시는 것이 예수님의 습관이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이곳은 규칙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있습니다. 이곳에는 규칙적인 기도회가 있습니다. 이곳에는 규칙적인 하나님의 말씀의 교육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성도의 교재가 이루어집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집인 성전을 찾되 습관화 하는 것은 성도의 지혜입니다. 이곳에서 규칙적으로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성도의 교재를 통해 믿음이 무럭무럭 자라나게 되는 곳입니다. 이렇게 믿음이 잘 자란 것을 가리켜 성경은 영혼이 잘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영혼이 잘될 때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넘치는 은혜와 풍성한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요한삼서 1장 2절 말씀에“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하셨습니다. 교회에는 완전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부족한 사람들이 모여 완전하신 예수님을 본받고자 노력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과정에 이런 저런 문제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있어지는 문제들로 주위 사람들의 지탄을 받기도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점점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교회에서 나타나는 부정적인 일들로 인해 교회 무용론 즉 무교회주의를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학교교육의 문제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다고 하여 학교를 없앨 수는 없는 것 입니다. 문제가 많아도 학교 교육은 계속되어야 하는 것처럼 교회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시행착오가 있을지라도 교회는 더 없이 소중한 것이며, 이곳에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0장 25절에 말씀하시기를“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하셨습니다.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리며, 배우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게 됩니다.“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로마서 10:17)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며, 이 믿음이 세상을 이기게 됩니다. 이 믿음은 적의 공격을 막아주는 방패와 같습니다. 에베소서 6장 16절 말씀에“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하셨습니다. 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마가복음 9:23)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성전을 찾는 것을 습관화해야 하겠습니다. 

二. 예수님은 습관적으로 성경을 읽으셨습니다.당시 회당에서는 안식일마다 성경을 읽었는데 일곱 명의 낭독자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제사장이 읽었고, 둘째는 레위인이 읽었고, 다른 다섯은 그 회당에 소속된 일반 이스라엘인이 읽었습니다. 그 다섯 중 한 사람으로 예수님께서 읽으셨습니다. 그때는 활판 인쇄술이 개발되지 않은 때라 요즘처럼 휴대하기 간편한 성경이 아니었습니다. 양피지에 성경의 일부를 기록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휴대하기에 불편한 성경을 예수님을 규칙적으로 습관처럼 읽으셨습니다. 어려울 때마다 적절하게 성경을 인용하시며, 그 어려움들을 다 이기셨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안식일마다 예루살렘 성전의 한쪽벽인 통곡의 벽 아래에서 그룹별로 두루마리 성경을 읽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성경을 보는 네 가지 안목이 있습니다. 
첫째, 패샤트( Peshat): 이는 문자 그대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금도 가감하지 않고 말씀 그 대로 볼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레마즈(Remaz): 하나님의 말씀에는 암시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보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때에 특별한 사람에게만 영감을 주셔서 그 사람을 말씀으로 붙들어 그 사람을 쓰시려는 원대한 계획 속에 레마즈를 주십니다. 
예를 들면 미국의 로버트 슐러 목사가 당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수정교회 를 지을 때 너무 힘이 들어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자꾸 들었다고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고자“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녹 9:62)는 말씀을 주셨다고 합니다. 평범한 말씀 같지만 이 말씀이 그 아름다운 성전을 이루도록 하였습니다. 이런 경우를 로버트 슐러 목사에게 임한 암시의 말씀 즉 레마인 것입니다. 

셋째, 데레쉬(Derush): 신중히 검토한 후에 알아 낼 수 있는 신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 경공부가 필요합니다. 연구 없이는 깨달을 수 없는 은혜가 성경 가운데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넷째, 소드(Sod): 비유적인 내면의 의미가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비유로 심어 놓은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기도하므로 영감을 얻어야 숨겨진 하나님의 뜻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성경을 보는 안목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경을 읽는 것은 감을 따는 것과 같다. 흔들면 떨어지는 감이 많이 있다. 성경을 읽기만 해도 온혜 되는 말씀이 많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흔들어도 떨어지지 않는 감이 있다. 이런 감은 하나하나 정성을 들여서 따야 한다. 마찬 가지로 성경을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이는 심혈을 기울여 한 구절 한 구절 공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의미를 정확히 알 수가 없다.”이렇게 성경을 보는 안목을 정확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무분별한 신앙인 즉 성경을 중심하지 아니한 신앙인은“믿습니다.”라는 소리는 큰데 능력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하지 아니한 신앙은 분주하기만 할뿐, 나타나는 열매는 희귀합니다. 성경에 근거하지 아니한 믿음이나 열심은 뿌리 없는 나무와 같기 때문입니다. 시편 1편 1절~3절에“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일고 듣고 배우는 일을 습관화해야 하겠습니다. 

三. 예수님은 습관을 따라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본문 18절~19절은 예수님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인데 예수님이 오시면 복음을 전하신다는 내용입니다. 이 말씀처럼 예수님은 어디서든지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증거에 습관이 되셨습니다. 회당에서, 때로는 해변에서, 때로는 들판에서, 때로는 산속에서, 때로는 길가에서, 심지어 사형을 선고받는 빌라도의 법정에서, 숨을 거두시는 십자가 위에서까지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시되 사람을 구별하지 않으셨습니다. 불결한 사마리아 여인, 고기잡이 어부, 물욕에 눈이 어두운 부자, 세리 마태, 불의한 재판으로 억울하게 자기를 죽이도록 언도를 내린 빌라도에게까지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시되 지위고하, 빈부귀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으시고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면서 마지막 남기신 말씀이“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9-20)하셨습니다. 

패역한 불효자라도 부모님이 마지막 남기신 유언은 가슴에 깊이 새겨 지키고자 노력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부모님의 은혜에 비기겠습니까? 복음증거는 귀하신 예수님의 준엄한 명령입니다. 명령만 하신 것이 아니라 복음증거를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복음증거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유일한 목적입니다. 복음증거는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복음 증거는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된 영혼을 살리는 유일한 길입니다. 지옥의 형벌 아래 놓인 죄인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디모데후서 4장 2절에 말씀하시기를“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하셨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의 습관처럼 이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四. 예수님은 습관을 따라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 39절~42절 말씀에“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그곳에 이르러 저희에게 이르시되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 돌 던질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기도에 습관이 되신 예수님은 들판에서, 산속에서, 새벽마다 기도하셨습니다. 때로는 금식하시면서, 때로는 밤을 새우시면서 기도하셨습니다. 심지어 그 쓰라린 십자가위에서까지 기도하시면서 운명하셨습니다. 죽어가는 환자 앞에서, 때로는 죽은 시신 앞에서, 때로는 허기진 5천명의 무리 앞에서, 풍랑이 휘몰아치는 갈릴리 바다에서, 죽음 앞에서, 십자가에 못을 박는 원수 앞에서 기도하므로 응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기도와 응답에 대해 성경에 말씀하시기를“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브리서 5:7)하셨습니다. 이토록 기도가 소중하기에 당부하시기를“쉬지 말고 기도하라, 힘써 기도하라, 무시로 기도하라”하셨습니다. 

영국을 여행하던 여행객들이 해안을 지나는 중에 많은 갈매기 들이 모래사장 위에 죽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 것을 치우고 있는 사람들에게 “갈매기들이 왜 죽었습니까?”하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인부들이 대답하기를 “이곳에 오는 많은 여행객들이 갈매기들에게 먹이를 주지요. 갈매기들은 과자, 사탕 등 여러 가지 맛있는 것들을 받아먹습니다. 그런 먹이들은 갈매기들에게는 사실 해로운 것들이지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렇게 갈매기들이 과자나 캔디를 먹다보면 자연음식에 대해 식욕이 떨어집니다. 철이 지나고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어지고 나면 갈매기들은 자연적인 먹이들이 바다 속에 그렇게 많지만 이처럼 굶어 죽는다는 것입니다.”이것이 곧 습관입니다. 

사람도 예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의 것에만 너무 집착하다보면 이것이 습관이 되어 신령한 것에 대한 미각을 상실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을 별것 아닌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습관을 지녀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곧 예수님의 습관입니다. 

첫째, 규칙적으로 성전을 찾으시는 예수님의 습관,둘째,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으시는 예수님의 습관,셋째, 습관적으로 복음을 전하시는 예수님의 생활, 넷째, 기도하는 것이 습관이 되신 예수님의 모습,이 고귀한 예수님의 습관을 우리들이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이 습관은 하나님께 사랑받는 참된 성도의 아름다운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 습관은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힘입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이 습관은 험한 세파를 이기고 승리하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헌옷을 벗듯 벗어버리고, 예수님의 거룩한 습관을 지닌 복된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