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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벨탑 (창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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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 (창 11:1-9)


외딴 섬 바닷가 오막살이에 늙은 노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물에 번쩍번쩍 빛나는 금고기 한 마리가 걸렸습니다. 금고기는 인간의 목소리로 “할아버지, 저를 살려주시는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살려주었습니다. 금고기가 할아버지에게 “ 할아버지, 소원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제가 들어주겠습니다.” 라고 말하지만 할아버지는 “소원은 무슨 소원….” 이렇게 말하며 그냥 놓아주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할머니가 늘 하는 것처럼 온 얼굴을 잔뜩 찌푸리면서 오늘 고기를 많이 잡았는지 물었습니다. 할아버지가 금고기 이야기를 할머니에게 해주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버럭 화를 내면서 먹을 것도 없는데 빵이라도 달라고 하지 왜 그냥 놓아주었냐고 야단이었습니다. 어서 가서 빵이라도 얻어오라는 할머니 말에 할아버지는 바닷가로 나가서 금고기를 불렀습니다. 금고기가 나타났습니다. “할아버지, 왜 그러세요?” “할머니가 빵을 얻어오라고 하는구나.” “집으로 가보세요.” 할아버지가 집에 오니 빵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이번에는 빨래통이 다 망가졌으니 새로 하나 얻어 달라 하라고 하였습니다. 할아버지는 또 바닷가로 나가서 금고기를 불렀습니다. 빨래통도 하나 새것으로 얻게 되었습니다. 

얼마 있지 않아 할머니의 욕심은 점점 더 커졌습니다. “이번에는 집 한 채 지어달라고 하세요.” 할아버지의 발걸음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또 금고기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멋진 참나무 집 한 채가 지어져 있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할머니가 또 할아버지를 들볶기 시작합니다. “나도 이제는 떵떵거리며 살고 싶어요. 나를 장군의 마나님이 되게 해주세요. 어서 바닷가로 나가세요.” 바닷가로 나간 할아버지는 금고기를 불러서 하소연했습니다. “얘야, 나 마누라 때문에 죽을 지경이란다. 이번에는 장군의 마님이 되고 싶다고 하는데 어쩌지?” 이 말을 들은 금고기가 할아버지를 위로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집에 가보세요.” 집에 오니 집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3층짜리 큰 돌 집에 할머니는 비단옷을 입고 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장군의 마나님이 된 할머니가 그만 할아버지를 하인들을 시켜서 마구간으로 쫓아 보내고 말았습니다. 할아버지는 마구간에 살았습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역시나 만족하지 못한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불러냈습니다. 여왕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할아버지는 싫다는 말도 못하고 바닷가에 나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여왕이 되었습니다. 여기쯤에서 그쳤으면 참 좋았는데 할머니는 갈 곳까지 가고 말았습니다. 할아버지를 불러서 “이제는 내가 용왕이 되어서 바다의 모든 물고기들을 호령하고 싶으니 빨리 가세요.”라고 말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바닷가에 가서 금고기를 불러냈습니다. “할머니가 미쳤구나, 이제는 용왕이 되고 싶어 하는구나.” 그러자 금고기는 아무 말 없이 물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할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와 보니 대궐, 그 많던 하인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살이에는 넝마 옷을 입은 한 늙은 할머니가 초라하게 쪼그리고 앉아 있습니다. 러시아 민화입니다. 

인간이 에덴동산에 만족하지 못해서 죄를 짓고 쫓겨나게 되었고, 살만하니 또 죄를 지어 하나님께서 홍수로 심판하셨습니다. 노아 가족들만 살아남았습니다. 그 후손들이 번성했는데, 어느 날 후손들이 다 모여서 회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결론을 어떻게 내렸는지 이들은 높은 탑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자꾸 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보시고 난 후 화가 제법 많이 나셨든지 다 흩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 탑을 흩으셨을까요?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일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하는 일을 보니 미웠습니다. 그래서 화가 나셨습니다. 

여러분,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비결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복을 얻을 수 있는 비결이 있습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일을 하면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행복하게 됩니다. 세상의 이런 저런 복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진짜 완전한 행복을 받는 비결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을 부정적인 표현으로 말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 싫어하시는 일을 하지 않으면 됩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이렇게만 하면 누구든지 복을 받고 누구든지 행복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상영되었던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라는 영화 제목처럼 이보다 더 쉬울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좋아하시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웃으시고 하나님께서 행복해하시는가?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하나님께서 나를 싫어하시고 나를 미워하시고 하나님의 얼굴이 찌푸려지시는가? 무거워지시는가? 이것만 알면 됩니다. 이렇게만 살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것을 좋아하시고 어떤 것을 싫어하시는가, 성경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경 전체를 보고 알면 좋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어렵게 만들지 않습니다. 간단하게 성경 몇 군데만 유심히 보면 됩니다. 성경을 조금만 볼지라도 정말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만 해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창세기 첫머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오늘 11장을 보고 있는데, 여기까지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제대로 보기만 하면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싫어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여기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하나 예를 들어서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다 창조하시고 난 후 창설하신 것이 있습니다. 공동체가 있었는데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후, 아담 혼자 쓸쓸히 있는 것이 안쓰러워 갈비뼈를 떼 내서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이것이 가정입니다. 하나님께서 맨 처음 창설하신 것이 바로 이 가정입니다. 

여러분 아시겠지만 누구든 맨 처음은 너무나 귀합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첫사랑, 아주 좋지 않습니까? 그리고 사람들은 첫 직장을 잊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처음으로 창설하신 공동체인 가정을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좋아하시는 가정을 만약 함부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좋아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참 아끼는 것이 있는데 다른 사람이 거기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면 그 사람이 좋겠습니까? 하나님도 똑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귀하게 여기는 가정을 함부로 하는 사람, 귀하게 여기지 아니하는 사람,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아니하는 사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아내를 귀하게 여기지 아니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미워하십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기 때문에 좋지 않은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는 맨 처음 창설하시고 그렇게 좋아하시는 가정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너무나 좋아하십니다. 마치 그 사람이 가정을 귀하게 여기듯이, 가정을 사랑하듯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사랑하시고 귀하게 여기십니다. 이것이 행복의 비결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에게 좋은 것을 다 주십니다. 복도 주시고 행복도 주시고 다 주십니다. 

이어지는 창세기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시고 하와를 만드시고 가정을 만드시고 난 뒤, 그 가정을 참 좋아하셨는데, 그렇게 좋아하는 아담과 하와 그리고 첫 가정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내고 말았습니다. 에덴동산은 아담과 하와가 살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좋은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살라고 하신 후 쫓아내고 말았는데,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여러분은 그 이유를 너무도 잘 아실 것입니다. 선악과 때문입니다. 선악과라는 죄를 지었기 때문인데 선악과라는 죄가 무엇인지 간단하게 보겠습니다.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그 하나는 순종하지 아니한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것도 하지 말라, 저것도 하지 말라 그렇게 금한 것이 많았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 해도 좋고 다 먹어도 좋은데 단 이것 하나 이것만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나름대로는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가 모든 것을 다 허락하고 이것만 허락하지 않은 데는 여러분들이 무슨 이유를 대든지 무슨 까닭이 있든지 또 어떤 생각을 하던 간에 여러분들이 알지 못하는 더 중요한 비밀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알든 모르든 간에 이것은 순종해야한다고 그 명령을 주셨는데 이것을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바로 순종하지 아니한 죄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겠습니다. 그들이 왜 선악과를 먹었습니까? 이것을 먹으면 우리 눈이 하나님처럼 밝아질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했던 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굉장히 싫어하십니다. 거꾸로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셨는데, 그것이 곧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시는 비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하나님께서 주신 지식,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에는 순종하는 것이 복 받는 비결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 더는 하나님이 주신 내 자리를 귀하게 생각하고 그 자리를 잘 가꾸어 가는 사람, 만족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좋아 하십니다. 이것이 행복의 비결입니다. 지금 있는 자리에 만족하고 이를 잘 가꾸어 가면 하나님께서 더 큰 자리 더 높은 자리를 또 주신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내게 맡기리니’(마25:23) 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이것이 비결입니다. 참 쉽습니다. 내 자리에 만족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에 순종하는 것이 비결입니다. 

하나님은 가정을 사랑하는 사람을 너무 좋아하십니다. 가정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을 너무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불순종하는 사람, 자기 자리에 서 있지 아니하고, 자기 자리에 만족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역할을 대신 하려고 하는 사람 자기 자리를 벗어나려는 사람을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내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물론 어느 정도 내 주장을 개진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강하게 주장할 것은 아닙니다. 강하게 주장한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것에 대해서는 적어도 내가 전부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마찬가지입니다. 즉 내 위에 아무도 없고 내가 맨 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자기 의견을 강하게 주장합니다. 

또 예를 든다면, 자기가 최고인양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고 함부로 비판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우리도 비판할 수 있습니다. 생각이 있고, 입이 있기 때문에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살짝 하고 말아야합니다.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야하고, 저 분이 어련히 생각하였겠는가? 저분이 얼마나 많이 생각하고 고민했을 것인가를 생각하고 빨리 물러서는 겸손함이 있어야합니다. 이런 겸손함이 없다는 것은 내 위에는 더 높은 분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너무 너무 싫어하십니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싫어하시는지, 무엇을 미워하시는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벨탑입니다. 하나님께서 탑 자체를 싫어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탑을 지은 목적과 동기가 문제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참 많이 생각하여야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결과를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마음입니다. 동기입니다. 의도가 무엇이고, 목적이 무엇인지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 사람들이 왜 바벨탑을 쌓았습니까? 본문 4절에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4절) 라고 말하고, 또 하나는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4절).. 흩어지지 말자는 이 두 가지인데 하나님께서 이것을 싫어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엇인지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먼저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자는 말을 하였는데, 이 말이 무슨 말인 것 같습니까?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 자리까지, 하나님 위치까지 높아지겠다는 것입니다. 선악과 때와 똑같습니다. 뱀이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던 때와 똑같습니다. 아담, 하와가 걸려서 넘어졌던 그 유혹과 똑같습니다. 뱀이 무엇이라고 유혹했습니까?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하나님의 눈과 같이 밝아지겠다고 유혹했습니다. 이처럼 똑같습니다. 하나님같이 높아지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 존재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첫 번째 말씀하시는 것은 모든 인간은 계속적으로 유혹 앞에 노출된 존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항상 유혹 앞에서 서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유혹이 항상 인간들 앞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인간이 이 유혹을 불러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떤 유혹입니까? 우리는 자기 자리를 벗어나려고 하고, 자기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자기 자리에 감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다른 자리에 가려고하고, 남의 자리에 가려고합니다. 그러므로 더 높아지려고 하는 유혹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조금만 더 높아지면 참 좋은데 한없이 높아지려고 합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자리까지 높아지려고 하는 끝이 없는 유혹이 있습니다. 

조금 전에 보았던 금고기 할머니 이야기는 인간의 이런 속성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인간이란 만족하지 않습니다. 중간쯤 끊어 만족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기어이 홀라당 다 잃어버릴 정도가 되었습니다. 애초에 얻지 못했다면 그렇게 속상하지 않을 텐데 이 할머니 얼마나 서글펐겠습니까? 아마 그때 멈추었으면 하는 후회가 많았을 것입니다. 인간이란 이런 존재라는 것입니다. 

또 인간이란 너무도 약한 존재이고,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이 유혹에 넘어가는 존재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창세기 11장은 하나님의 슬픈 탄식을 노래합니다. 참 슬픈 노래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그 유혹에 힘없이 넘어지더니 대홍수의 재앙 가운데서도 구사일생 살아남은 노아의 후손들 또한 그 유혹에 여지없이 넘어갔다는 한탄입니다. 참 슬픈 노래입니다. 하나님의 애가입니다. 바라기는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여러분 때문에 이런 애가를 부르시지 않도록 하십시오. 이기십시오. 유혹은 항상 여러분 앞에 있습니다. 지금도 있습니다. 이겨내십시오. 

이스라엘 초대왕을 볼까요? 왕으로 세우니 사울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왕이 되기 전 사울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왕이라는 제도가 아예 없던 이스라엘에 왕이 된 사울에 대해서 성경은 아버지의 잃어버린 나귀나 찾아다니던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존재였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과 똑같이 특별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런 사람을 이스라엘의 초대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왕으로 세우고 난 뒤에도 그 위상을 제대로 못 찾자 하나님께서는 사울로 하여금 왕의 위상을 세울 수 있도록 모든 애를 다 쓰셨습니다. 그렇게 사울로 하여금 왕이 되도록 하고 그 위상을 세워주셨는데, 사울은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겸손하여 하나님이 왕으로 세우시려고 부르시자 부끄러워 여기 숨고 저기 숨던 사람이 바로 사울이었는데, 왕이 되자 이 말을 해도 듣지 않고 저 말을 해도 듣지 아니하였습니다. 왕자리에 만족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왕 자리에 만족하지 아니하고 제사장 노릇까지 하려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한 번 더 기회를 주시겠다고 생각하시고 우리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어느 날, 사울을 불러 아말렉과 전쟁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전쟁을 하게 되면 당연하게 이길 것인데, 이기고 난 후 적에게 있는 모든 것에서 움직이는 것이 하나도 없도록 다 진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울도 할 말이 있었을 것입니다. 나름대로 이유도 있었을 테지만 결국 그는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이 모습을 본 하나님께서는 인간 존재란 한 번 기회를 주고, 두 번, 세 번 기회를 주어도 안 되는 존재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것도 없었을 때에는 왕이 되었다고 하니 부끄러워 여기 숨고 저기 숨던 사람이 왕이 되고 세월이 지나고 나니 심지어는 자기를 왕으로 세운 스승 사무엘까지 사울이 무서워서 피할 정도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비극입니다. 인간의 존재란 바로 이런 존재라는 것입니다. 너무 악하다는 것입니다. 가지면 또 가지려고 하고, 한없이 높아지려고 하고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하는데도 그 명령까지도 순종하지 않더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하나 보겠습니다. 이들은 흩어짐을 면하자고 말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것도 싫어하셨습니다. 흩어지지 않고 모여 있는 것은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참 좋은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미워하시고 싫어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본문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좋은 일, 선한 일을 도모하면 참 좋을 텐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사람의 모임에 비극이 있습니다. 모여서 악한 일을 하고, 하나님께서 미워하시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못난 모습이 있습니까?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고발하십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인간들의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모임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모여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대신에 인간의 뜻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다 우리가 생각하고 계획하고 작정하여 우리 생각, 우리 뜻, 우리 의도를 이루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픔이 바로 인간들이 모여서 딴 짓을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 자기 이름을 내려고 하고, 자기 주장을 관철하려고 하고, 자기 생각대로 해나가려고 하는 일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생각하면 참 좋을 텐데 말입니다. 이런 불행이 있습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먼저, 인간이란 존재는 항상 유혹 앞에 노출되어 있는데 그러나 너희들은, 그리스도인들은, 내 자녀들은, 여러분들은 이기라는 것입니다. 나도 여러분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리스도 예수도 내 오른쪽에서 여러분들을 위해서 중보기도하고, 성령 하나님도 여러분 옆에서 항상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으니 힘을 내어서 여러분도 우리와 함께 기도해서 이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유혹을 이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 사람들이 멍청해서 넘어진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없어서 넘어진 것이 아닙니다.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도와주시므로 이제는 하나님 말씀을 잘 들으십시오. 이기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은 이기라고 당부하십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모이게 되면 항상 선한 일을 도모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도모하라고 당부하십니다. 또 만약 그런 것을 도모하지 않으려고 하면 모이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잘 들으십시오. 우리가 모여서 이야기할 때 우리가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인가?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인가? 선한 것인가? 항상 생각해야합니다. 항상 하나님을 생각하십시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를 경영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의 주인, 사업의 주인, 경제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다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들이 오너가 되셨든지, 경영자가 되셨든지, 간부가 되셨든지 혹은 평직원이 되셨든지 간에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고 선한 것인지 항상 생각하십시오. 여러분들이 회의를 주도하시든지 아니면 따라가는 한 일원에 불과하든 간에 항상 생각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얼마나 강력하게 하시는가는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흩어버리겠다는 말씀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흩어버리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단순히 이제는 모임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다 흩어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사업을 흩어버리겠다는 것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건강도 흩어버리고, 가정도 흩어버리고, 인생도 흩어버리시겠다는 것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사유로 모이든지 간에 또 어디서 모이든지 간에 다 보고 계십니다. 일일이 다 보고 계십니다. 

이 시간에 예수님 이름으로 여러분들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이 누구와 어떤 목적으로 모였든지 간에 항상 하나님을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높이십시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높일 수 있는가를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모일 때마다 항상 물으십시오. ‘하나님, 이것이 선입니까? 우리가 지금 의논하는 것, 내가 생각하는 것이 바른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일입니까?’ 이것이 여러분에게 주시는 또 하나의 행복의 비결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묻고 살 때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행복하십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기뻐하도록, 행복하도록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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