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의 사람 : 맹세의 우물 (창 21:22-34)

첨부 1


하나님의 사람 : 맹세의 우물 (창 21:22-34)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 우리 사람들에게 큰 복이 되심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축복을 기원할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6장23절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라고 축원하였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편지를 보내면서도 역시 고린도후서 13장13절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축복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배 끝에 목사의 축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볼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이 그 사람에게 얼마나 큰 복이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그랄왕 아비멜렉이 그 군대 장관 비골과 함께 아브라함에게 찾아와서 말하기를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증언을 하였습니다. 그랄왕 아비멜렉이 아브라함과 함께 하시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두려워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은 정말로 우리에게 큰 복입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많은 복을 받았습니다. 

22절에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그랄왕 아비멜렉이 증언한 것과 같이 아브라함이 본 터 아비의 집을 떠날 때부터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함께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가정을 지켜 주시고 보호하여 주셨습니다. 창세기 12장10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에도 애굽왕 바로에게서 지켜 주셨으며,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와 같이 그랄왕 아비멜렉에게서도 지켜 주셨으며 보호하여 주셨습니다. 

창세기 20장3절에서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이르시되 네가 취한 이 여인으로 인하여 네가 죽으리니"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아비멜렉이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란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창세기 14장에 소돔과 고모라를 공격한 다섯왕의 동맹군과의 싸움에서도 승리를 거두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셨습니다. 

창세기 15장1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지켜 주시고 보호하여 주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하신 것은 크게 복을 주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아브라함에게 크게 복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13장2절에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서 크게 복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26장12절에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심으로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다"라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26장24절에서는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복을 받게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도 하나님이 함께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도록 생활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아브라함과 같이 그리고 이삭과 같은 복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9절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1. 인정 받아야 합니다(22-23). 

아비멜렉은 하나님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창20:1-18).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찾아와서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는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에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보다 더 영광스러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우리 어머니는, 우리 아버지는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라는 말을 듣는다면 이보다 더 큰 영광은 없을 것입니다. 자녀에게 뿐만 아니라 배우자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고 부모님들께도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롬14:18 롬16:10 고후10:18 딤후2:15 약1:12).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려고 애를 썼습니다(시1:6).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2. 겸손해야 합니다(24-32).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서로 도우며 살기로 조약을 맺자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동안 아비멜렉의 종들에게 억울하게 당했던 일을 말했습니다. 아비멜렉이 자신은 몰랐다고 하면서 사과를 했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양과 소를 취하여 아비멜렉에게 주고 서로 조약을 세웠습니다. 당시 조약을 맺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짐승의 반을 쪼개 놓고 그 가운데를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창15:17 렘34:18). 두 번째는 서로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이었습니다(창31:46, 54). 세 번째는 선물을 주고 받음으로써 이루어지는 조약이었습니다. 이것은 낮은 자와 높은 자 사이의 조약 형식입니다. 아브라함은 세 번째 방법을 택했습니다. 아비멜렉이 자기의 힘을 인정했지만 여전히 자기는 아직 작은 자라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교만하지 않았고 아비멜렉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평소에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달리 생소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이는 아브라함 자체가 보통 사람하고 다르게 때문입니다. 창세기 12:3에 보면,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점이 바로 아브라함과 여타의 사람들을 구분짓는 차이점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이러한 위치는 확정된 겁니다. 수정이 아니됩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예상치도 못한 일을 당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가진 이러한 위상으로 인해 세상은 새로운 전쟁에 돌입하게 됩니다. 

이것은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손 대대로 이어지는 하늘의 숙명입니다. 사람의 운명이란 이제, 아브라함을 어떻게 보느냐로 결정날 판입니다. 지난 20장에서 아브라함과 그 아내되는 사라를 만났던 아비멜렉 추장에게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그날 이후 아비멜렉 추장은 과연 아브라함의 존재를 계속 무시할 것입니까 아니면 미리 아브라함에게 고개 숙이고 들어갈 것입니까? 

오늘 본문에 보니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고개 숙이고 들어가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난데없는 자기 동네에 살게 된 낯선 인물 아브라함에 대해서 아비멜렉 추장은, 축복과 저주의 기준이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겸손입니다. 


3. 감사해야 합니다(33-34). 

아비멜렉이 자기의 곳으로 돌아간 후 아브라함은 에셀나무를 심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에셀나무는 우리나라의 소나무와 비슷하게 생긴 나무인데 모래 땅에서도 잘 자라고 염분이 많은 늪지대에서도 잘 자라는 나무로 특별히 수명이 긴 나무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감사하며 그 은혜를 오래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 기념식수(植樹)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공식적인 예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창12:8, 13:4). 아브라함은 그 동안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면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 크게 세워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이때가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은 사람 앞에서는 계속 겸손했고, 하나님께는 감사를 오래 오래 기억하려고 했습니다(시116:12 골4:2). 

아브라함은 맹세를 체결하면서 아비멜렉에 일곱 암양 새끼를 주면서 그것을 받으라고 합니다. 일종의 맹세의 혜택을 미리 맛보라는 것과 같습니다. 즉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은 동등한 위치에 있는 자도 아니요 그런 위치에서 맹세를 한 것도 아닌 것입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은혜를 주는 입장이요 아비멜렉은 은혜를 받는 입장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내세운 맹세의 우물은, 이 지역에서의 아브라함의 우월과 은혜의 주도권자임을 분명히 증거케 하는 우물이 됩니다. 

인간의 것을 받고 주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를 일방적으로 주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방식이라는 겁니다. 실제로 이 브엘세바의 우물은 나중에 이삭의 우물이 되고 야곱의 우물이 됩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 이 야곱의 우물에서 어떤 사마리아 여인이 목마르신 예수님에게 물을 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여인으로부터 물을 받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신이 구원의 샘터가 되어 그 생수를 여인에게 주어 여인을 구원하고자 하십니다. 


여러분, 구원의 맹세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어지는 맹세가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 간의 체결된 맹세입니다. 우리는 그 혜택을 입고 있을 뿐입니다. 

모두 인정받고, 겸손하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