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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 (창 21:8-21)

- 이스마엘의 방성대곡 -

옛날 아주 먼 옛날에 저 이집트 땅에 부모와 단란하게 살아가던 한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군병들이 어머니 아버지를 끌고 가고 아이는 노예로 팔려가게 됩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이 소녀의 아버지가 나라에 큰 죄를 저지른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집 저집 종살이로 팔려 다니다가 급기야 아라비아 상인의 손에 넘어가고 멀리까지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이 '하란'지방이었고 이 아이는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예쁘장하고 착해서 안주인 '사라'의 몸종이 되었습니다. '사라'를 수발들던 이 소녀의 이름은 '하갈'이었습니다. 하갈은 이곳 아브라함의 집에서 오랫동안 종살이를 하였는데 줄곧 '사라'의 시녀 노릇을 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 두 여인은 서로에게 깊은 정이 들었고 서로의 마음을 다 알아낼 정도로 가까워졌습니다. 이때 사라에게는 큰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기가 없다'는 문제였습니다. 이 문제는 모종인 하갈에게도 가슴 아픈 일이었고 늘 주인마님이 아기를 갖게 되기만을 바라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기 소식이 없자 사라는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됩니다. 어느 날 하갈을 불러 앉히고는 '자기의 남편인 아브라함에게서 자기대신 아기를 낳아달라'고 부탁하게 되었습니다. 사라가 그만큼 하갈을 마음으로부터 신뢰하고 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갈은 순수한 마음에서 사라의 말을 따르게 됩니다. 그리하여 아기를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벌어졌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본능인지 하갈은 아기를 갖고 난 다음부터 주인 사라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깨를 펴고 으쓱대기 시작하고 어느덧 자기가 종의 신분을 잊고 여주인 행세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하갈의 이러한 태도 변화를 누구보다 먼저 감지한 사람이 이 사건의 주모자인 사라였습니다. 사라는 내심 '하갈이 이럴 줄은 미처 몰랐다'는 배신감까지 느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하갈은 건장한 사내아이를 낳았습니다. 그 아이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지었고 아이는 잘 자랐습니다. 이렇게 되니 집안 분위기가 묘하게 바뀌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신분상으로는 안주인과 여종사이인데 내용상으로는 '아이를 못 낳은 여자'와 '아들을 낳은 여자'로 우열관계가 역전되는 분위기였습니다. 하갈은 시간이 갈수록 콧대가 높아졌고 사라는 아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기가 죽어지냈습니다. 더구나 이때 사라는 이미 경수가 끊긴 상태였다고 합니다. 즉 이젠 아기를 갖게 될 가능성마저 완전히 없어져버린 것입니다. 

하갈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는지도 모릅니다. '이젠 됐다. 가만히만 있어도 이집의 안주인 자리는 내게로 굴러들어오게 되어 있구나'하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유일한 아들은 자기가 낳은 '이스마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사람의 일은 알 수 없구나. 이제 하갈이라는 이 기구한 여인도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았구나'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생각을 달리하고 계셨습니다. 기적을 통해서라도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아들을 주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이스마엘이 14살 되던 해 그 기적은 일어났습니다. 이미 너무 늙어버린 줄로만 알았던 사라가 아기를 잉태한 것입니다. 하갈로서는 벼락을 맞는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하갈이 은근히 사라를 약올리고 무시하는 분위기였는데 이제 다시 분위기가 역전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하갈의 마음이 주인을 축하하거나 자기 일로 알고 기뻐할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아브라함의 아기를 낳지 않고 여전히 사라의 몸종이었다면 뛸 듯이 기뻐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습니다. 

사라가 아기를 가진 이 사건은 하갈 자신과 그 아들 이스마엘의 운명을 180도로 뒤 바꿀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하갈과 사라의 불꽃튀는 신경전은 우리가 안봐도 능히 상상하고도 남을만한 일이었습니다. 사라는 열 달이 지나 아들을 순산하였고 그 이름을 '이삭'이라고 지었습니다. 이 아기 이삭이 젖을 뗄 무렵 집안에 잔치가 벌어졌는데 14살 먹은 이스마엘이 이제 갓난아기인 이삭을 괴롭히다가 사라에게 발각되었습니다. 

이 일로 집안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몸종 주제에 아들 낳았다고 목에 힘주고 주인 알기를 우습게 알기에 '괴씸하다'했는데 그 아들 녀석이 천금같은 우리 아기 이삭을 괴롭히는걸 보았으니 가만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하갈과 이스마엘은 하루아침에 떡과 물 한 가죽부대만 가지고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성경에서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를 중심으로 이삭이 탄생하게 되기까지 전개되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니까 실제 주인공은 '사라'와 그가 늦게 얻은 아들 '이삭'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하갈'과 '이스마엘'의 입장에서 이 장면들을 다시 보았습니다. 사라로써는 괴씸해서 쫓아내었겠지만 하갈로서는 억울하고 분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쫓겨나서 브엘세바 들녘을 헤메이다가 먹을 것도 마실 것도 다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이젠 꼼짝없이 이 들판에서 굶어죽게 생겼습니다. 

하갈의 마음이 어떻겠는가 상상해 보십시오. 서러움이 북받쳐 오르고 억울한 마음도 들었을 겁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자기가 잘못한 일이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죄가 있다면 애굽여자로 태어나 어찌하다가 노예가 된 일과 여기까지 팔려와서 여주인 사라를 만나고 사라가 먼저 제안을 해서 주인의 아기를 갖게 된 것. 그것이 죄라면 죄요, 자신이 이렇게 비참하게 죽어가게 되는 것, 그리고 자기 아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하갈은 이때 방성대곡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 오기까지의 배경입니다. 하갈이 지금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아무리 서자라도 '이삭'이 나기 전까지만 해도 대를 이을 아들이라고 금이야 옥이야 하더니 하루아침에 이토록 매몰차게 쫓아낼 수가 있는 건가 싶었을 겁니다. 

여러분, 사람이 살아가는 일이 자기 생각대로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으로 인하여 큰 꿈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기도 하고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되기도 하고, "내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나" 싶을 정도로 비참한 자리까지 굴러 떨어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아직 성숙하지 못하고 건강하지 못하다는 증거가 이런데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관심 밖의 사람인 하갈과 이스마엘의 방성대곡을 들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말씀입니다. 성경은 언제나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대상이 중심인물로 기록되기 때문에 그 중심 밖의 사람에 대하여는 너무나 불공평하리 만큼 하나님의 관심과 거리가 먼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말씀은 관심 밖의 인물이라도 죽음의 문턱에서 신음하는 어린아이의 신음소리나, 자식의 죽음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방성대곡을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외면하지 않습니다(17절)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관심이 중심이 되기 때문에 하갈이나 이스마엘에 대하여는 너무나 불공평하게도 보입니다. 주인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오직 순종하여 자식을 낳아주었고, 어린아이의 실수 때문에 내린 벌 치고는 너무나 가혹하기에, 억울하여 방성대곡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관심 밖의 사람이라도 그 신음소리와 방성대곡을 어찌 하나님께서 외면하시겠습니까? 하물며 하나님 자녀라면 어떨까요. 

2. 눈물은 하나님의 은혜를 보게 합니다(19절) 

하갈이 방성대곡하고 나서야 하나님께서 그의 눈을 열어 밝히시매 샘물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의 눈물은 하나님의 은혜를 보게하는 방편이 됩니다. 영안이 어두워지게 되면 하나님께서 아무리 복을 내려 주실지라도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 수가 없습니다. 눈을 밝히시니 물을 보고 살게 된 것입니다. 눈물로 악의를 씻어야 은혜가 보입니다. 

3. 눈물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20절) 

본문에서 특이한 것은 하나님의 관심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마엘에게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눈물은 하갈이 흘렸어서도 하나님이 이스마엘과 함께 하셨던 것입니다. 비록 주인공은 아니었으나 아브라함의 자손인 까닭에 하갈의 눈물을 보시고 이스마엘의 신음에 응답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은 남자들이 지배하고, 그 남자들은 여자들이 지배하고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위대한 인간의 배후에는 위대한 어머니, 위대한 여인이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입니다. 저도 남자인지라 내 자식이 예뻐서 귀여워해주고 예쁘다고 하다가도 조금 시간만 지나면 쉬고싶고 아이들이 달려드는 것이 힘들 때가 있습니다. 밖에서 일하고 들어와 쉬는데 아이가 밤새 칭얼대고 잠 안자면 남자들은 거의 대부분이 짜증을 내게 되어있습니다. 그것이 정상입니다. 

하지만 엄마는 다릅니다. 너무 피곤해서 곤하게 잠들었다가도 아이가 조금 뒤척이고 칭얼대도 즉각 반응이 나타납니다. 젖병을 물리고 꾸벅꾸벅 졸고 앉아있을 찌언정 남자들처럼 이불 뒤집어쓰며 '애 운다. 좀 어떻게 해봐'하진 않습니다. 그래서 엄마는 위대한 것이라 하는가 봅니다. 건너 방에서 애가 잠꼬대하느라고 앵하고 한번 울어도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가 토닥거려주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엄마의 위대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의 사랑은 '아가페'사랑이라 말합니다. 그 사랑은 '무조건적 사랑' '희생적 사랑' '아낌없이 다 내어주는 사랑'입니다. 엄마는 아기를 위해 무조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숭고한 '모성애'라고 합니다. 하지만 모든 엄마가 다 자기 자식을 위해 자기 생명을 바치진 못합니다. '그럴수도 있겠다'는 마음과 본능적 모성애가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일찍이 2000년전에 이 땅에 태어난, 그리고 이 땅에 태어날 모든 생명 하나하나를 위하여 친히 당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내어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사랑은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다 기록할 수 없을만큼 크다.'고 하지 않습니까 잠깐 칭얼대는 아기의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서 아기 곁으로 달려가 토닥거려주는 엄마의 사랑, 본능적 희생적인 그 엄마의 사랑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생명 바쳐 사랑하신 하나님 사랑이 있습니다. 과연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조금만 힘들어 한숨지어도 즉각 반응하시고도 남을 사랑의 하나님이심에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찬양 중 하나는 여러분도 이미 눈치 채셨겠지만 "주만 바라볼찌라"입니다. 이 찬양의 기사가 얼마나 가슴 뭉클하게 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 하나님의 평안을 바라보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하는 자, 하나님의 선하심을 닮아가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자녀 삼으셨네.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찌라' 

이 찬양을 부를 때마다 가슴이 뭉클하고 코끝이 찡해지는 가사가 있습니다.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라는 부분입니다. 나같은 죄인의 작은 신음소리에도 어김없이 응답하시는 하나님! 지금은 성장해서 어머니가 늘 곁에 계시며 간호해 주시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도 생각해 주지 않는 나만의 아픔. 그것 때문에 혼자 끙끙 앓고 있을 때 엄마는 멀리 계셔도 내 아버지 주님만큼은 그 소리에 귀기울이셨다가 즉시 다가오셔서 '내가 네 곁에 있다. 

지금 많이 힘들고 외롭고 현실에 힘겨워하고 있구나' 라고 조용히 말씀하시는 그분의 사랑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이럴 때는 너무 많은 말로 기도하지 않는 편이 차라리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말 잘하는 기도보다는 내 현실 앞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오는 깊은 탄식만으로도 하나님은 위로와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마엘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이스마엘 모자의 사막에서의 괴로움은 죽음 직전이어서 모자가 방성대곡했습니다. 물론 이스마엘이 무엇이라고 부르짖었는지에 대해서 성경은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모르지만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들으셨다고 한 것을 보면 억울함을 호소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들어주십니다.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을 구원해 주신 것처럼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습니다. 우리는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해도 부르짖으면 됩니다. 매달리면 됩니다. 기도하면 응답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파견하시어 그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느니라"(17절)고 하셨습니다. 이스마엘이 브엘세바 사막에서 부르짖는데도 들으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곳에 있든지 그 어디라고 해도 하늘로 향한 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부르짖는 곳에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있는 이 자리에 하늘 문이 열리기를 바랍니다. 이 장소가 부르짖는 자리라고 하면 열릴 것입니다. 

그들은 돌이킬 수 없는 죄를 범했는데도 부르짖을 때 응답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막의 무더위와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것을 모르는 체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마엘 모자의 닫힌 영안을 열어 광야의 지열 가운데 힘차게 솟아오르는 샘물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탐욕으로 인하여 쫓겨나 슬픔과 비탄에 빠져서 사막을 헤맬 때 샘물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슬픔과 비탄, 그리고 절망 속에서는 살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언제나 살길이 있는 법입니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은총의 샘물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서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살던 생활 때문에 민족적으로 가정적으로 개인적으로 갈 길을 잃고 방황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 나와 회개하고 부르짖어 영안이 열려 샘물을 발견합시다. 살길을 찾읍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축복의 길에 들어서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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