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롬 8:12-17)

첨부 1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롬 8:12-17)


오늘 본문이 “그러므로”라는 말로 시작된다는 것은 뒤따르는 문장이 앞선 문장과 긴밀히 연관됨을 뜻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제일 가까이 앞서 있는 11절에서 뭐라고 합니까?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했습니다. 줄여서 말하면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하나님께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도 살리시리라.”는 것입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8:2에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육과 죄와 사망의 노예상태에 있다가 성령의 역사로 생명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로운 상태로 옮겨진 것입니다. 자유인이 되긴 했으나 주인이 없는 자유인이 아니라 새 주를 모신 자유인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 뜻에서 우리는 빚진 자들입니다. 옛날에는 빚진 자들은 그 빚을 다 갚기 전까지는 채주의 종으로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채주가 하란 대로 해야 했습니다. 육에 사로잡힌 바 되고 죄의 노예상태에 있는 사람은 육신대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 12절에서 사도 바울은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성령의 역사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다 빚진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 빚이 육신에게 진 빚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니 육신대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생명을 얻은 사람들인데 죽을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복된 삶을 살아야 할 존재들인데 육신대로 살다가 죽을 수는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13-14절에서 바울의 말을 들어봅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했지만 정확히 말해서 하나님의 유일하신 참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의 참 아들들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양자로 인정받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양자도 아들입니다. 양자는 종과 다릅니다. 종은 주인을 무서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주인은 종에게 언제나 무서운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를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공경은 하지만 무서워하지는 않습니다.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 15절을 봅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아빠 아버지라고 그냥 부르는 것이 아니고 “부르짖는다”고 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 되신 것을 생각할 때마다 감격과 기쁨이 넘치기 때문입니다. 

양자가 된다는 것은 본래 속했던 가족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져서 새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 새 성을 갖게 됩니다. 새 가정의 전통과 규범에 따라 예의범절, 교육, 인간관계, 언어생활, 행동방식이 다 달라져야 합니다. 새 가정의 명예와 품위를 지켜야 합니다. 왕이 있는데 그 왕에게 왕위를 물려줄 자녀가 없다고 합시다. 그러면 촌수를 따져서 왕위계승순위가 가장 빠른 사람에게 왕위를 물려줍니다. 그런데 그 왕가에 아들이 귀해서 촌수가 아주 먼 왕족 가운데 한 사람이 왕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정은 왕손은 왕손이지만 가세가 기울고 아주 가난해서 평민 중에서도 평민 같이 살아왔다고 합시다. 왕궁으로 불려온 그는 그때부터 왕위를 계승하기 위한 수업을 받아야 합니다. 그 수업의 내용과 과정이 간단하지 않습니다. 너무 어렵고 고됩니다. 거북하고 불편하기도 합니다. 귀찮고 거추장스러운 일들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옛 삶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언어나 식사예절이나 걸음걸이까지 왕의 체통과 품위에 걸맞게 다 바꾸어야 합니다. 

왕가에서는 부모와도 경칭을 써야 합니다. “아빠! 엄마!” 할 수 없습니다. “아바마마! 어마마마!” 해야 합니다. 프랑스 유학시절에 보니까 왕족이 아니더라도 상류계층의 사람들은 부부간이나 부모자식간에도 꼭 경칭을 쓰는 집안이 많았습니다. 아내를 부를 때도 “여보!” 하지 않고 “부인!” 합니다. 만나는 사람이나 상대하는 사람들도 다 바뀌어야 합니다. 옛 습관을 하루 아침에 벗어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궁중예절이 보통 까다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특별히 개인교사가 붙여집니다. 신변경호도 이십사 시간 따라 붙습니다.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법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면 원하는 것을 다 할 수 있습니다.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일이면 왕궁이나 국가가 나서서 다 해결합니다. 말만 하면 알아서 다 해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왕위계승자로서 왕의 아들이나 마찬가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보다 더 지체가 높아진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왕 중의 왕이시고 천하만물의 창조자이시고 주재이신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다 해결해주시는 신분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전과는 다른 모습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 합니다. 멋대로 살면서 사실은 육신에 사로잡히고 죄의 노예로 살던 삶을 청산해야 합니다. 이제는 성령을 좇아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본문 14절에서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자각해야 하나님의 자녀다운 언어와 행실이 우리에게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자각하게 됩니까?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자각하게 해주십니다. 본문 16절과 17절 상반절에서 사도 바울은 쓰기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증언하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자각하게 되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은 곧 하나님나라를 차지할 상속자라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나라의 상속자임을 알게 된다면 우리의 언어와 행실은 하나님나라의 상속자답게 달라져야 하는 것입니다. 왕위계승자가 철저하게 왕위계승수업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어떻게 달라져야 하며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까? 어떻게 우리가 세상에 속한 사람의 모습을, 육신적 삶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하나님나라 상속자의 모습을 지니게 되며 그 모습은 또 어떤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 답을 우리는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 교인들에게 써 보낸 편지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갈5:16-26을 봅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성령을 따라 행하여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을 버리고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으면 하나님나라 상속자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의 삶을 살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삶을 사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상속자인 우리를 위하여 붙여주신 교사이신 성령께서 우리를 가르쳐주시고 지도하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악하고 험한 세상에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삶을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것이며 그 삶의 과정에서 닥치는 모든 어려움은 하나님께서 친히 다 해결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아브라함을 어떻게 지켜주셨는지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가 살고 있던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해지자 굶어죽지 않기 위하여 이집트로 내려간 적이 있습니다(창12:10).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곳 사람들이 자기의 아내 사라가 너무 예뻐서 그녀를 빼앗기 위해 자기를 죽일 것이라는 불안 때문에 그녀가 자기의 누이동생인 것으로 알려지게 하여 자기를 죽일 필요가 없게 만들었습니다(창12:11-13). 그러나 그런 꾀는 자기 아내를 다른 사람이 데려가기도 쉽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이집트 왕이 그녀를 자기의 후궁으로 삼았습니다(창12:14-15).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를 잃고, 사라는 한 남자의 아내로서의 순결을 잃게 된 위기상황에서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아브라함과 사라를 다 살리신 일이 있습니다(창12:17). 그 사건을 통해 아브라함은 한 남자로서 나약하고 겁 많고 졸렬함을 드러냈으며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지켜주심에 대한 믿음이 없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와 같은 일을 반복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랄에 가서 거류할 때였습니다(창20: 1).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랄 사람들이 자기의 아내 사라를 빼앗으려고 자기를 죽일지 모른다고 생각하고는(창20:11) 자기와 사라가 부부임을 감추고 오누이 사이라고 했는데 그랄 왕 아비멜렉이 그런 줄 알고 사라를 데려간 것입니다(창20: 2).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아비멜렉이 사라를 가까이 하기도 전에 그날 밤으로 그에게 꿈에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하셔서 아비멜렉이 곧바로 사라를 아브라함에게 돌려주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사라를 보호하기 위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까지 모두 아이를 낳을 수 없도록 병을 주시기도 하셨습니다(창20:17-18). 

이삭이 잉태되어야 할 태 속에 다른 씨가 잉태되지 못하게 근본적으로 막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목숨도 지키셨고, 사라의 순결도 지키셨으며, 나중 태어날 이삭의 출생의 정결함도 지키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이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지켜주심을 확신하고 이 세상에서 의연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참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17절을 다시 한 번 봅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나라의 상속자라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뿐 아니라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어느 집에 양자로 들어간 사람이 집안이 융성할 때만 온갖 혜택을 다 누리고 가세가 기울면 다시 양자를 취소하고 그 집안에서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닐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었으면 그와 영광만을 같이 누릴 것이 아니라 그의 고난에도 동참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나라의 백성입니다. 따라서 하나님나라의 복된 삶과 영광은 이미 우리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지도 섬기지도 않는 이 세상과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대적인 사람들로부터 오는 온갖 비난과 조롱과 박해와 손해라면 심지어는 생명의 위협까지도 우리는 피하지 않고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도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수영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