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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능력을 회복하려면 (삿 16: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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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동부의 명문대학교를 3년 만에 졸업하고 곧바로 경영학 석사 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메리라는 여성이 있었다. 몇 년 동안 그는 유명한 회사들을 옮겨 다니면서 승진했고 30세가 되기도 전에 뉴욕 시에 있는 큰 출판회사의 부사장이 되었다. 몇 년 후에 메리는 그 회사의 이사회로부터 새로운 출판사를 시작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사회가 그를 선택한 것은 그의 인상적인 지도력 때문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출판사를 시작한 지 5년이 되자 그 회사에 잘못된 점이 드러났다. 메리가 아무리 격려를 하고 동기부여를 해도 뛰어난 직원들이 몇 달 만에 떠나갔고, 어렵게 구한 저자들은 계약기간이 끝나자마자 다른 출판사로 떠나버렸다. 실망한 이사회는 메리를 해고했는데 이사회를 움직인 것은 그의 동료와 계약자들의 말이었다. 그들은 그녀가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거짓말, 도둑질, 구걸, 상해, 사기 등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메리는 분명히 능력 있고 실력 있는 여성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그의 능력은 한계에 부딪쳤고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무엇이 문제였는가? 왜 그의 뛰어난 능력이 갑자기 한계에 부딪혔는가? 그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정상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직과 양심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식도 있고 경험도 있고 실력도 있었지만 정직하지 않았고 양심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능력은 더 이상 사람들을 움직일 수 없었다.

여러분은 인생을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없는가? 지금까지는 잘해 왔는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일이 안 되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내 능력과 실력으로 모든 일을 잘 감당해 왔는데 언제부터인지 내 능력과 실력이 한계에 부딪힌다. 사람들이 항상 나를 믿어주고 도와주고 따라주었는데 언제부터인지 사람들이 나를 믿지 않고 도와주지 않고 따라주지 않는다. 그래서 더 이상 내 능력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다. 왜 뛰어난 능력과 실력을 가지고도 실패하게 되는 것인가?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삼손도 그런 상황에 빠진 사람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사사 중 가장 힘 있는 사람이었다. 사사란 이스라엘 나라에 아직 왕이 없을 때 다른 부족의 침입에 맞서 싸워서 민족을 지키던 지도자였다. 삼손 당시는 블레셋 족속이 이스라엘을 오래 괴롭혔는데 삼손은 하나님이 주신 강력한 힘으로 블레셋 족속에게서 민족을 지켜냈던 위대한 사사였다. 그는 블레셋 족속과 싸울 때마다 그는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어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 맨 손으로 사자를 죽이기도 했고 혼자서 나귀턱뼈 하나로 블레셋 사람 천 명을 죽이기도 했던 용사였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힘을 잃어버렸다. 어느 순간 하나님의 신이 더 이상 그에게 임하지 않게 되었고 그래서 전혀 힘을 쓸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블레셋 족속에게 잡혀서 눈이 뽑히고 머리가 깎였다. 그리고 감옥에서 소나 말이 끄는 연자맷돌을 돌리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어떻게 그렇게 큰 힘을 가진 사람이 하루 아침에 갑자기 그 힘과 능력을 잃어버렸는가?

그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블레셋 족속에게서 구원하게 하시려고 보내셨다. 그가 태어나기 전에 그의 어머니에게 나타나서 그가 태어날 것을 미리 알려 주었던 하나님의 사자는 그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13:5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나실인’이라는 사실이다. ‘나실인’이란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 또는 ‘성별된 사람, 헌신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나실인 중에는 아예 태어나면서부터 나실인으로 태어난 사람이 있고 중간에 일정기간 하나님께 서원을 한 나실인도 있었다. 나면서부터 나실인인 사람은 평생을 구별된 사람으로 살아야 했고, 중간에 일정기간을 서원한 사람은 그 기간만큼 구별되게 살아야 했다. 

이 나실인이 지켜야 할 특별한 규례가 있었다. 사사기 13:4 “그러므로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 5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래서 삼손은 나면서부터 머리를 깎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머리에 칼을 대게 되었고 그때부터 하나님의 신이 그를 떠나갔다. 더 이상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지 않으셨고 하나님의 능력이 그에게서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리 애를 써도 힘을 쓸 수가 없었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그를 두려워하던 블레셋 족속에게 힘없이 잡히고 말았다. 그리고 두 눈이 뽑히고 짐승취급을 받았다. 그리고 놀림감이 되었다. 블레셋 족속은 자기들을 괴롭히던 그가 잡히자 자기들의 신전 앞에 모여서 삼손을 끌어내서 재주를 부리라고 하고 놀려댔다. 하나님의 택함 받은 나실인이, 이스라엘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였던 그가 이방인의 손에 잡혀서 놀림감이 되고 말았다.

이 머리 깎인 삼손의 모습이 누구의 모습 같은가? 머리 깎이고 눈 뽑히고 사람들의 놀림감이 된 삼손의 모습에서 누구의 모습을 보는가? 전에는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존경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존경하지 않고 오히려 무시하고 놀려대는 이 삼손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 같지 않은가? 이 삼손의 모습이 오늘의 한국 교회, 오늘의 한국 교회 성도들의 모습 같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지난 몇 달 간 한국교회는 개정된 사립학교법의 재개정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왔다. 특히 우리 교단 총회장이신 이광선목사님을 비롯한 수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머리를 깎으며 순교자의 각오로 애를 써왔다. 그리고 24개 교단장들과 전국 교회의 성도들이 한 마음이 되어 눈물로 기도해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난 주간 임시국회에서 사학법 재개정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달 중에 다시 임시국회를 열고 다룬다고 하니 계속 기도해야 한다. 총회장 이광선 목사님은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인들이 한국교회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정부와 여당이 한국교회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여야 정치인들이 교회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마치 머리 깎인 삼손처럼 사람들이 교회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조롱한다. 뿐만 아니라 사회가, 국민들이 전처럼 교회를 존경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이 교회를 무시하고 성도들을 조롱하고 있다.
 
삼손의 실패의 원인
삼손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기 때문이다. 머리에 칼을 대지 말라고 하신 명령을 어겼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다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을 버렸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하나님을 떠나면 하나님도 그들을 떠나신다. 삼손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기 때문에 머리를 밀리고 능력을 잃어버렸다. 사울 왕이 아말렉 족속과의 전쟁에서 숨 쉬는 것들을 다 죽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살진 소와 양을 가지고 왔을 때 사무엘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무엘상 15:23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 한국 교회가, 한국 교회 성도들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떠났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믿지 않는 사람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어떤 때는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못할 때도 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본받고 따라갈 것이 별로 없다. 

바꾸어 말하면 즉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하는 성도들이 양심을 따라 정직하게 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삶에서 도덕과 윤리를 잘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에서 법과 질서를 제대로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데 양심과 윤리와 질서를 제대로 지키겠는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면 하나님도 우리를 버리신다. 그라고 하나님의 은총과 능력도 우리를 떠난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이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우리의 잘못 때문에 사람들이 당연히 두려워해야 할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는 결과를 가져온다.

삼손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게 된 것은 욕심과 정욕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그는 소렉에 있는 들릴라라는 여인을 좋아하게 된다. “4 이 후에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 이름하는 여인을 사랑하매.” 들릴라는 블레셋 여인이었다. 블레셋 족속은 자기 동족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민족의 원수였다. 그는 그 블레셋 족속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런데 그런 그가 블레셋 족속의 여인을 사랑한 것이다. 욕심과 정욕에 빠져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대신, 민족을 사랑하는 대신 하나님께서 멸하라고 하신 족속의 여인을 사랑한 것이다. 그 여인이 그의 힘의 비밀을 알려달라고 조를 때에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 여인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가 이때에 정신이 들어서 들릴라를 떠났더라면 이런 비참한 일은 당하지 않았었을 것이다. 

삼손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머리를 깎이게 된 것은 그가 사명을 떠났기 때문이다. “19 들릴라가 삼손에게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의 힘이 없어졌더라.” 그는 자신을 잡아 죽이려는 여인의 무릎을 베고 잠들어 있었다. 자기를 잡아 죽이려는 사람들이 가까이 오고 있는 것도 모르고 깊이 잠들어 있었다. 그곳은 그가 누워 있을 자리가 아니었다. 그렇게 여인의 품에서 잠들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가 있을 곳은 블레셋 땅이 아니라 자기 민족의 땅이었고 그가 할 일은 블레셋 족속을 물리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욕심과 정욕에 빠져서 사명의 자리를 떠나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게 되었고 그 때문에 머리를 깎이고 능력을 잃었다.

실패한 삼손의 상태
욕심과 정욕에 빠져서 사명을 떠나고 말씀을 떠난 결과가 무엇인가? 그의 상태는 어떤가? 믿음의 능력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못하고 사람의 말을 따르게 되었다.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들릴라의 말을 따라갔다. 이미 욕심과 정욕에 빠졌기 때문이다. 육체적 욕망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들릴라에게 돈을 주겠다고 하면서 삼손의 힘의 비밀을 알아내라고 한다. 들릴라는 삼손에게 그의 힘의 비밀이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그를 결박할 수 있는가를 물었다. 삼손은 세 번 거짓말로 자신의 힘의 비밀을 가르쳐 주었고 들릴라는 그 말을 믿고 삼손을 결박하고 블레셋 사람들을 불러왔으나 삼손은 그때마다 힘을 발휘해서 블레셋 사람들을 물리치고 빠져나왔다. 이에 실망한 들릴라는 자기를 사랑한다면 진실을 말하라고 삼손을 계속 졸라댔다.

그는 이때마다 심각한 고민과 갈등에 빠졌었다. “16 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 이것은 그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것은 영적인 싸움이다. 그의 안에서 영과 육의 싸움이 일어난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자니 사랑하는 여인이 울고, 사랑하는 여인의 요구를 들어주자니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게 되기 때문이었다. 

믿음의 사람이라면 당연히 여인의 요구를 뿌리쳐야 했다. 그러나 삼손은 이미 그럴 힘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들릴라가 자신의 힘의 비밀을 물어볼 때부터 수상하게 여기고 돌아섰어야 했지만 욕심과 정욕에 빠졌기 때문에 그것을 분별할 수도 없었고 그리고 그 유혹을 이기고 뿌리치고 일어날 믿음의 능력도 없었다. 

또한 그는 영적인 무지에 빠졌다. 삼손은 들릴라의 성화에 못 이겨서 드디어 자신의 머리털을 밀면 힘이 빠진다고 비밀을 고백했다. 삼손의 말이 진심인 것을 알아챈 들릴라는 삼손을 잠들게 한 후에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었다. 그리고 그가 힘이 없어진 것을 알고 삼손을 깨우며 블레셋 사람들이 왔다고 했다. 삼손은 깜짝 놀라서 잠에서 깨어서 벌떡 일어나서 전처럼 힘을 쓰려고 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그를 떠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20 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이처럼 사람이 욕심과 정욕에 빠지면 영적 무지에 빠지게 된다. 욕심과 정욕에 빠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면 하나님도 그를 떠나시고 하나님의 능력도 떠난다. 그러나 미련하게도 정작 자신은 그것을 모른다. 들릴라는 머리를 깎인 삼손에게서 능력이 떠난 것을 알았지만 삼손 자신은 모르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능력이 떠난 것을 알아채지만 정작 본인은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의 믿음이 회복되고 믿음의 능력이 회복될 수 있는가? 
첫째, 하나님께 기도하라.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을 끌어내고 재주를 부리라고 했다. 이때 삼손은 비통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기도한다. “28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셔서 다시 그에게 힘을 주셨다.

삼손은 여인의 유혹에 빠졌을 때에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다. 들릴라의 유혹을 받을 때에 하나님과 의논하지 않았다. 만약에 그가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하나님께 기도했더라면 지혜와 능력을 얻어서 유혹을 이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기도한다. 부르짖어 간절히 기도한다. 이처럼 우리가 비록 실패하고 범죄했더라도 하나님께로 돌아와 간절히 기도하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신다. 그러므로 실패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라.

둘째, 죽기를 각오하라. “30 삼손이 이르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들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은 다곤 신전을 지탱하는 두 기둥 사이에 서서  하나님께 마지막으로 한 번만 힘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두 기둥을 잡고 온 힘을 다해 몸을 굽혔다. 그랬더니 신전이 무너져서 그 안에 있는 블레셋 사람들이 죽었다. 그리고 삼손 자신도 함께 죽었다. 그는 처음부터 죽기로 각오했다.

우리가 욕심과 정욕을 이기려면, 세상의 유혹에서 빠져나오려면, 잃어버린 영광과 능력을 회복하려면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얻으려 하면 잃게 되고 나와 복음을 위해서 목숨을 잃으려 하면 얻는다”고 하셨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영적 능력을 회복하려면 죽기를 각오해야 한다. “30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우리가 죽기를 각오하면 못할 것이 없다. 영적 능력이 회복되면 전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 마지막 힘을 다해 죽기를 각오하고 헌신하라. 

셋째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삼손이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은 그가 하나님 대신 사람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욕심과 정욕에 빠져서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말에 따른 것이다. 들릴라란 이름은 ‘약한 자’란 뜻이다. 그 약한 여인이 강한 삼손을 넘어뜨렸다. 들릴라는 이방족속인 블레셋 사람이었고 방탕한 생활을 한 여인이었다. 그가 삼손을 유혹한 것이 아니라 삼손이 그 여인을 찾아가고 그를 보고 사랑에 빠졌다. 삼손이 세상을 사랑했기에 유혹에 빠졌다. 그리고 약한 자에게 걸려서 넘어졌다. 세상을 사랑하면 반드시 유혹에 빠져 넘어진다.

그러므로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을 사랑하던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요한일서 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을 따라가던 삶에서 돌이키라. 그래서 나실인의 자리로 돌아오라.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로 돌아오라.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받은 일군의 자리로 돌아오라. 그래서 거룩한 나실인의 삶을 회복하라.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않고 더러운 것을 만지지 말아야 한다. 머리에 칼을 대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라.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한다.

자동차 부품창고에서 일하는 어떤 사람이 창고 옆에 오리를 기를 수 있는 작은 수영장을 만들었다. 수영장이래야 꼬마들이 물장구나 치며 놀만한 크기의 널찍한 물통이었다. 그리고 나서 퇴근하기 전에 오리 농장에 가서 청둥오리 한 마리를 사서 물에 넣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밤새 안녕할 것을 기대하며 출근해보니 오리가 물통에서 죽어있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 오리를 이리저리 뒤척여 보아도 짐승에게 물린 흔적 같은 것은 없었다. 그렇다고 수영이 전문이 오리가 물통 턱을 기어올라 오지도 못하고 30cm정도 밖에 안 되는 얕은 물에 빠져 죽었을 리는 없지 않은가. 결국 오리농장 주인에게 가서 따져 물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농장 주인은 그것도 몰랐느냐는 듯이 말했다. “이 오리는 오리 농장에서 부화하고 키운 오리입니다. 그래서 수영을 할 줄 모르지요. 게다가 이 오리는 어릴 때부터 물속에 집어넣지 않았기 때문에 깃털에 기름이 분비되지 않아서 물에 잘 뜨지도 못합니다.” 겉모양이 오리라고 해서 다 수영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회에 다니는 모든 사람이 다 그리스도인으로 바르게 사는 것이 아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다 영적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날마다 승리하는 것도 아니다. 수영 전문인 오리이면서도 얕은 물에 빠져 죽은 것처럼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세상을 이길 능력이 없는 사람들도 있다. 생활 속에서 거룩하고 깨끗하게 살지 않기 때문이다.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기를 힘쓰지 않기 때문이다. 나실인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욕심과 정욕에 빠져 넘어지기 때문이다. 

“22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머리를 깎으면 다시 자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 말씀에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것은 그의 능력이 회복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가 비록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능력의 비밀을 누설해서 머리를 깎였지만 하나님은 그의 머리털이 다시 자라게 해주셨다. 그래서 그의 잃어버린 능력이 다시 회복되게 해주셨다.

이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한 번 실수하고 실패했다고 해서 아주 버리시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우리가 실패하고 범죄했더라도 우리가 우리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결단하면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다시 힘을 주신다.

그러므로 실패와 범죄의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라. 절망과 좌절의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라. 일어나서 죽기를 각오하고 다시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의 자리로 돌아오라. 다시는 욕심과 정욕에 빠지지 않고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로 결심하라. 다시 일어나 나실인의 자리로 돌아가라.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깨끗하게 살아가는 백성의 거룩한 삶을 회복하라. 

예수님은 “너희 의가 바리새인들보다 낫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자녀인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과 달라야 한다. 교회가, 성도가 영적인 권위와 윤리적 권위를 회복해야 한다. 사람의 말을 따라가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한다. 양심을 지키고 윤리를 지키고 질서를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영적 능력이 회복되어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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