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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 기브온 (수 9: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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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기브온

(수9:11-21) 그러므로 우리 장로들과 우리나라의 모든 거민이 우리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여행할 양식을 손에 가지고 가서 그들을 맞아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는 당신들의 종이니 청컨대 이제 우리와 약조하사이다 하라 하였나이다. 우리의 이 떡은 우리가 당신들에게로 오려고 떠나던 날에 우리들의 집에서 오히려 뜨거운 것을 양식으로 취하였더니 보소서 이제 말랐고 곰팡이 났으며 또 우리가 포도주를 담은 이 가죽 부대도 새 것이더니 찢어지게 되었으며 우리의 이 옷과 신도 여행이 심히 길므로 인하여 낡아졌나이다 한지라. 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 어떻게 할 것을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리라는 언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더라. 그들과 언약을 맺은 후 삼일이 지나서야 그들은 근린에 있어 자기들 중에 거주하는 자라 함을 들으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진행하여 제 삼일에 그들의 여러 성읍에 이르렀으니 그 성읍은 기브온과 그비라와 브에롯과 기럇여아림이라. 그러나 회중 족장들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한 고로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치지 못한지라. 그러므로 회중이 다 족장들을 원망하니 모든 족장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하였은즉 이제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리라. 우리가 그들에게 맹세한 맹약을 인하여 진노가 우리에게 임할까 하노니 이렇게 행하여 그들을 살리리라 하고 무리에게 이르되 그들을 살리라 하니 족장들이 그들에게 이른 대로 그들이 온 회중을 위하여 나무패며 물 긷는 자가 되었더라.

1. 이스라엘은 여리고 성을 점령하므로 가나안 땅 정복에 가장 중요한 교두보를 확보했습니다. 여리고 성은 요단강 서부의 중요한 방어 거점으로 이중 성벽을 두른 아주 견고한 요새였습니다. 이 성을 점령하므로 가나안 땅 남북을 차례로 점령해갈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이 여리고 성을 점령한 후, 아이 성을 공격했지만 36명의 전사자를 내고 패배했습니다. 그러나 내부의 적, 아간을 제거한 후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매복과 유인 작전대로 수행하여 아이 성도 정복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에발산에 올라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수8:30~35) 

이 일 후에 가나안 족속들이(헷, 아모리, 가나안, 브리스, 히위, 여브스 등) 철옹성 여리성과 아이 성이 정복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위기를 느껴 이스라엘을 대적하기 위해 군사동맹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기브온에 거주하던 히위 족속이(7절) 동맹을 배신하고 사신들을 여호수아에게 보내 조약을 간청합니다. 아무래도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승산이 없다는 판단에서입니다. 더군다나 히위족이 거주하는 곳은 에발산이 있는 세겜땅으로 이스라엘 군대와 가장 근접한 지역입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공격을 당하면 아무리 가나안 7족속들이 동맹을 맺었다 해도 동맹군의 신속 대응이 힘들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기브온 거민 히위 족은 여리고 성이나 아이 성처럼 진멸당하는 것보다 차라리 굴욕적일지라도 살아남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에 위장(僞裝)하여 여호수아를 찾아갔습니다. 이들은 먼 여행을 한 것처럼 해어져서 너덜너덜한 마대를 안장에 달고, 낡고 터져서 기운 포도주 부대를 나귀에 싣고, 닳아서 기운 신발을 신고, 남루한 옷을 입고, 마르고 곰팡이 냄새가 나는 빵을 마련하여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를 찾아가 ‘우리는 당신들과 평화 조약을 맺기 위해 먼 땅에서 왔습니다. 이제 우리와 조약을 맺읍시다.’ 며 조약을 간청합니다. 기브온 거민들이 이처럼 위장한 이유가 있습니다. 

신명기 20:15-18을 보겠습니다.

(신20:15-18) 네가 네게서 멀리 떠난 성읍들 곧 이 민족들에게 속하지 아니한 성읍들에게는 이같이 행하려니와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하신 대로 하라 이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케 할까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일찍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한 전쟁에 대한 규칙을 말씀하셨습니다.(신 20장) 가나안 땅에 거주하고 있는 7족속들(신20:16-17)은 당시 하나님께서 가장 진노하시는 우상숭배의 죄악으로 만연하여 심판 1순위 대상이었습니다. 장차 이스라엘이 우상숭배 죄악에 전염되는데 가장 영향력있는 족속들이었습니다. 사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4대째, 400년이 되어서야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된 이유는, 가나안 족속들의 죄악이 아직 절정에 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창15:16) 네 자손은 사 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 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이제 가나안 족속의 죄악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더 이상 심판이 불가피하게 되었을 때, 그 약속의 땅을 정복하되, 가나안 족속의 죄악이 전염되지 않도록 진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가나안 족속을 제외한 다른 족속들에 대해서는 

(1)선전 포고를 하기 전 반드시 먼저 화친(和親)을 제의한 다음, 평화적으로 항복을 받도록 하라는 것입니다.(신20:10). 

(2)만약 화친 제의가 수락된다면, 그들이 행하던 우상 숭배를 포기하고 이스라엘에게 조공을 바치는 조건으로 평화조약을 맺어야 합니다(신20:11). 

(3)만일 화친 제의가 거절된다면 전쟁을 수행하되 그 성읍의 성인 남자는 다 죽여야 합니다. 그러나 여자들과 유아 그리고 재물 등은 노예나 전리품으로 취득할 수 있습니다.(신20:12-14). 

그런데 중요한 조건 하나가 있습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 회친 제의를 거부한 족속을 ‘이스라엘에게 붙이셨을 때에 한’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허락이 있을 때만 공격해야 합니다.

(신20:1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네 손에 붙이시거든 너는 칼날로 그 속의 남자를 다 쳐 죽이고

이러한 전쟁 규약을 두신 것은 장차 이스라엘이 수행하여야 할 전투는 영토 확장이나 지배욕망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을 대적하거나 패역한 족속들을 징계하시며 치리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대신 수행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 없이 독자적인 전쟁 수행권한이 없었습니다. 오직 이스라엘의 군대 장관이신 하나님의 명령에 따를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가나안 족속들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신 이유는, 그 땅의 더러운 각종 우상숭배와 죄악의 문명과 문화, 그리고 전통 등을 일소(一掃)하여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죄에 오염되지 않는 거룩한 나라를 세우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마치 요즈음 구제역 발생 지역은 그 지역을 중심으로 반경 1km 이내의 모든 가축들은 살(殺) 처분하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상숭배의 문화와 문명 등이 아무리 뛰어날지라도 결코 인류에게 축복이 될 수 없는, 일고(一考)의 가치도 없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에는 그 어떠한 죄악의 요소도 절대 그리고 조금이라도 남겨져서는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연고 때문에 가나안 족속들에 대해서는 결코 화친하지 말고 모조리 멸절시키라고 명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기브온 거민이 가나안 족속이 아닌 아주 먼 곳에서 온 것처럼 위장한 것입니다. 기브온 거민은 가나안 족속이 이스라엘의 화친 조약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익히 알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가나안 땅에 사는 족속과는 결코 화친의 계약을 맺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신 7:1-5) 

그래서 위장하고 찾아온 기브온 사신들에게 ‘당신들은 이 부근에 사는 사람들 같은데,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어떻게 당신들과 조약을 맺겠소?’ 라고 반문한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당신들은 누구며 어디에서 왔소?’라고 다시 묻자 이렇게 거짓말로 속입니다. ‘우리는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듣고 아주 먼 지방에서 왔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행하신 모든 일과 또 이스라엘 백성의 가는 길을 막았던 왕들을 멸하신 일도 전부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우리를 사신으로 보내면서 아주 먼 여행에 필요한 식량을 준비해서 당신들을 찾아가 당신들의 종이 되겠다고 알리고 평화 조약을 맺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이 빵을 보십시오. 우리가 이 곳으로 떠나올 때 이 빵은 찜통에서 막 끄집어 내어 따끈따끈했었는데 지금 보다시피 이것은 바싹 마르고 곰팡이까지 피었습니다. 또 포도주를 담았던 이 가죽 부대도 처음에는 새 것이었으나 지금은 낡아 찢어졌습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이 옷과 신발도 긴 여행을 하는 동안 낡고 닳아서 못 쓰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와 백성의 지도자들은 그들이 가져온 음식을 조사해 보고 이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께 물어 보지도 않은 채 곧 기브온 사람들과 평화 조약을 맺고 그들을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백성의 지도자들은 그들과 맺은 조약을 엄숙히 지킬 것을 맹세했습니다. 

그런데 조약을 맺은 지 3일 후에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이 가까운 이웃에 살고 있는 가나안 히위 족속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속아 넘어간 것이 분해서 조약을 파기하고 진멸해버리고 싶었지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바여서 어떻게 손댈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히위 족속에게 속아 넘어갔고 결국 히위 족속은 이스라엘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브온 족속이 이스라엘 백성을 섬기는 종이 된 것은 가나안 땅 점령 과정에 발생한 우연한 사건이 결코 아닙니다. 노아 시대에 노아를 통해 예언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노아에게는 셈과 함과 야벳, 이렇게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홍수 심판 이후 이 세 아들을 통해서 온 세상에 사람들이 퍼지게 되었습니다. 셈은 아브라함의 조상,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이 되었고, 함은 가나안 족속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하루는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해 자기 천막 안에서 벌거벗은 채 누워 있었습니다. 막내인 함이 자기 아버지의 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 그 사실을 두 형제에게 말했습니다. 단순히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말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즐기며, 악의적으로 형제들까지도 아비의 수치를 보고 즐기도록 충동질한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야벳과 셈은 아비의 수치를 보지 아니하고 덮어주고자 뒷걸음으로 들어가 얼굴을 돌린 채 겉옷으로 덮어드렸습니다. 노아는 술이 깬 후에 함이 취한 행동과 그에 따른 셈과 야벳의 행동 일체를 알고 이렇게 예언합니다.
 
(창9:25-26) 가나안(함)은 저주를 받아 자기 형제들에게 가장 비천한 종이 되리라.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기를 바라며 하나님이 야벳을 번창하게 하셔서 셈의 축복을 함께 누리게 하시고 가나안은 야벳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기브온 족속이 바로 가나안, 함의 후손이고, 이스라엘 백성이 셈의 후손입니다. 이 노아의 예언대로 기브온은 ‘나무 패며 물을 긷는 일’, 즉 가장 비천한 종들이 하는 일을 맡은 이스라엘의 종이 된 것입니다. 노아를 통해 예언하신 하나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반면, 이스라엘이 히위 족에게 속은 것은 행한 대로 되갚음당한 것입니다. 야곱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약 500년 전이 됩니다. 기브온 족의 조상들이 세겜에 살고 있을 때 히위족 하몰의 아들 세겜(추장)이 야곱의 딸 디나를 강간하고 들통나자 야곱에게 혼인을 요청합니다. 디나의 친오라비 시므온과 레위가 반대하며 만약 혼인을 원한다면 세겜 족 모든 남자들은 할례를 받으라는 조건을 제시합니다. 세겜 추장이 기꺼이 받아들여 세겜 족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실시하고 3일째 되는 날, 가장 고통스러워 꼼짝 못하고 있을 때를 이용해 시므온과 레위라 기습공격해서 세겜 남자들을 모조리 죽여버렸습니다.(창 34:1~31) 

그런데 약 500년만에 그 반대로 보복을 당해 속아 넘어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실수와 허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생들의 행한 바를 반드시 기억하시고 정의와 공의로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남을 속였는데도 아무 일이 없다며 살아계신 하나님마저 잊어버리고 산다는 것은 자신과 더불어 그 후손들에게도 결코 축복이 될 수 없습니다. 


2. 이 사건에서 가장 결정적인 실수는 사신들이 가져온 음식을 조사해보고 그 문제에 대해 어떻게 처리해야할 지를 하나님께 묻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수9:14) 먼저,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하여 하나님 말씀을 살피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후계자로 세워질 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민수기 27:21입니다. “여호수아는 무슨 일이 있으면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가서 하나님의 뜻을 물을 것이며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모든 일에 엘르아살의 지시를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문제가 크든 작든 대제사장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물어 일을 처리해야만 했습니다.(민27:18-21) 

바로 이 말씀을 살펴 하나님께 묻고 히위 족속의 화친 제의를 결정했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외모에 치중한 나머지 하나님께 묻지 아니하는 죄를 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묻지 않았기 때문에 기만당한 것입니다. 상대방의 속임수에 넘어가 하나님 말씀을 지키지 못했다고 해서 면죄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런 면에서 모름지기 성도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깨어 있어 기도하기를 항상 힘써야 합니다.”(엡6:17-18) 

다윗이 왕에 등극한 후 가장 중요시 여긴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언약궤’를 옮겨오는 것이었습니다. 사울 왕은 자신의 통치기간 중 단 한 번도 이 언약궤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았었습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서 자기의 생각대로 행동했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왕에 등극하여 언약궤를 옮기고자 할 때, 사울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대상13:3)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궤를 옮겨오자.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렇게 사울 왕의 실패를 거울삼아 다윗은 무슨 일에서든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묻고 움직였습니다.(대상14:10, 14). 

그런데 그 언약궤를 옮기는 도중 수레를 몰던 웃사가 즉사하는 변을 당했습니다.(대상13:10)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었는데 어찌하여 이런 변을 당했을까? 다윗 왕은 두려운 마음으로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궤를 내 집으로 가져갈 수 있겠는가!’ 하고 외쳤습니다. 그리고서 그는 그 궤를 다윗 성으로 메어 오지 않고 가드 사람인 오벧 에돔의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그래서 그 궤는 거기서 오벧 에돔의 가족과 함께 석 달을 머물러 있었고 하나님께서는 오벧 에돔과 그의 모든 가족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이를 보고 다윗 왕이 깨달았습니다. 언약궤를 옮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레위 자손, 즉 제사장 지파 사람이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다윗 왕이 언약궤를 옮기는 데만 치중하다보니 바로 이 말씀을 놓쳤던 것입니다. 언약궤는 오직 하나님께서 정하신 레위 지파 자손들만 옮길 수 있다는 말씀을 놓친 것입니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이 사실을 깨닫고 레위 자손으로 하여금 옮기도록 재차 시행하여 성공하게 됩니다.(대상15:12-15) 

아무리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이라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말씀을 주의 깊게 살펴 그 말씀대로 시행하여 약속된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사울 왕이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게 된 것을 이렇게 분명히 전하고 있습니다.

(대상10:13-14) 사울의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저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저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돌리셨더라.

사울이 공격 진영을 갖춘 어마어마한 블레셋군을 보고 두려워서 떨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하나님께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어떠한 응답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당대 대선지자 사무엘은 이미 죽었고, 또 그 밖의 선지자들도 이미 하나님께서 버린 사울을 피해 다윗에게로 망명해버렸습니다. 그리고 제사장들 역시 사울의 놉 제사장 대학살 사건으로 거의 다 몰살당하고 살아남은 몇 제사장마저 다윗에게 도피해버린 상태였습니다. 때문에 사울은 그 어떤 선지자나 제사장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스스로 하나님을 버렸고 그 또한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기 때문에(15:1-23) 

그 어떠한 응답도 받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은 궁여지책으로 여자 무당을 찾아 묻기로 한 것입니다. 수소문 끝에 무당이 있는 곳을 찾아 부탁하자 무당이 굿판을 벌이더니 사울에게 말합니다. ‘한 유령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이 보입니다.’ ‘그가 어떻게 생겼느냐?’ ‘노인처럼 생겼는데 겉옷을 입었습니다.’ 사울은 그가 사무엘인 줄 알고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묻습니다. ‘내가 아주 다급하게 되었습니다. 블레셋 사람과 전쟁이 붙었는데 하나님은 나를 떠나서 선지자를 통해서나 꿈으로도 나에게 대답해 주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당신에게 물어 보려고 당신을 불러 올렸습니다.’ 

그러자 그 유령이 ‘여호와께서 너와 이스라엘군을 블레셋 사람에게 넘겨 줄 것이며 너와 네 아들들은 내일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이는 사무엘을 가장(假裝)한 귀신의 말이었습니다. 결국 사무엘을 가장한 귀신에게 속은 사울은 전쟁에 나가 비참한 죽임을 당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물을 길이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십니다. 

“(요 14:13-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예수 믿는 성도, 하나님의 자녀된 여러분은 언제든지, 무엇이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시면 반드시 하나님께 응답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항상 무엇에든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대로 행하여 형통하시기 바랍니다. B.C.853년경, 이스라엘 아합 왕이 죽자 아하시야가 즉위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국력이 약해지는 틈을 타 모압이 반기를 들어 그간 바쳐오던 조공을 중단했습니다. 이에 충격을 받아서인지 아하시야가 창밖을 내려다 보다 그만 체중을 이기지 못하고 창밖으로 떨어져 심각한 타박상과 골절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그로 인한 합병증까지 발생했습니다. 그러자 아하시야 왕이 사절단을 블레셋에 보내 블레셋의 ‘바알’ 우상에게 자기가 회복될 것인지 물어 오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천사를 엘리야에게 보내 아하시야가 보낸 사절단을 만나 이렇게 말하라고 지시하십니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블레셋 바알 우상에게 물으러 가느냐? 너희는 왕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일러라. 너는 네가 누운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반드시 죽고 말 것이니라!” 

사절단이 즉시 왕에게 돌아가 보고하자 그 선지자가 엘리야인 것을 알고 소대장 한 사람과 부하 50명을 보내며 엘리야를 체포해서 연행해오도록 명령합니다. 그래서 그 소대장과 부하들이 엘리야를 체포하러갔다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불에 모두 타 죽어 버렸습니다. 아하시야가 이에 다른 소대장과 그의 부하 50명을 보냈습니다. 이번에도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모조리 태워 버렸습니다. 아하시야 왕은 세 번째 소대장과 그의 부하 50명을 보냈습니다. 그러자 그 소대장은 올라가서 엘리야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이렇게 간청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여, 나와 내 부하들의 목숨을 구해 주십시오. 앞서 온 두 소대장과 그 부하들을 하늘의 불로 죽이셨으나 제발 저희들만은 불쌍히 여기셔서 살려 주십시오.’ 그러자 천사가 엘리야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그와 함께 내려가거라.” 고 하자 엘리야가 그 소대장과 함께 왕에게 가서 “어째서 너는 블레셋 바알 우상에게 사람을 보내 물어 보려고 하였느냐? 이스라엘에 그것을 물어 볼 하나님이 없었기 때문이냐? 너는 이 일로 네가 누운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반드시 죽을 것이니라!”며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해 말씀하신 대로 아하시야는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말씀하신 것은 그만큼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와 하나님의 치유를 간구하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같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저버리고 하나님의 선지자를 죽이려 했던 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어째서 너는 블레셋 바알 우상에게 사람을 보내 물어 보려고 하였느냐? 이스라엘에 그것을 물어 볼 하나님이 없었기 때문이냐? 너는 이 일로 네가 누운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반드시 죽을 것이니라!”는 말씀으로 하나님보다 세상 다른 그 무엇들을 더 의지하려는 사람들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왕상8:41-43) 또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아니한 자 곧 주의 이름을 위하여 먼 지방에서 온 이방인이라도 저희가 주의 광대한 이름과 주의 능한 손과 주의 펴신 팔의 소문을 듣고 와서 이 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무릇 이방인이 주께 부르짖는 대로 이루사 땅의 만민으로 주의 이름을 알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 처럼 경외하게 하옵시며 또 내가 건축한 이 전을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줄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 믿는 성도이든 아니든 이 땅에 세워진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향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면 반드시 응답해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들인 성도 여러분의 간구를 어찌 외면하시겠습니까? 항상 성전을 향하여 들어 올려진 기도의 손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응답가운데 평탄하고 형통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이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아니하고 오히려 세상을 의지하는 죄악을 번번히 범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 시대에 이스라엘의 죄악을 이렇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사30:1-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화 있을진저. 패역한 자식들이여. 그들이 계교를 베푸나 나로 말미암아 하지 아니하며 맹약을 맺으나 나의 신으로 말미암아 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그들이 바로의 세력 안에서 스스로 강하려 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하여 애굽으로 내려 갔으되 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으니 죄에 죄를 더하도다. 그러므로 바로의 세력이 너희의 수치가 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함이 너희의 수욕이 될 것이라

하나님의 선택받은 거룩한 나라 백성으로 이웃 나라의 침략을 받게 되면 반드시 하나님 앞에 나가 그 뜻을 물었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아니하고 애굽에 원조를 구하고, 애굽의 힘을 의지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애굽과의 어떠한 종류의 동맹이나 결속도 체결하지 말 것을 엄중히 명하셨습니다.(출 13:17;신 17:16) 

그 이유는 첫째,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 나라와 교섭함으로 인해서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의 죄악된 문화와 문명에 물들지 않기를 바라셨기 때문이고, 둘째, 전능하신 하나님의 백성으로 오직 그만을 섬기고 의지하는 것은 마땅한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이전에는 앗수르와 연합하여 앗수르를 의지하더니 이제 다시 애굽과 결탁해서 앗수르를 몰아내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이스라엘의 죄악을 두고 “죄에 죄를 더하도다.”는 말로 경고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묻지 아니하고 애굽을 의지했다는 것은 하나님을 버린 죄악입니다. 또한 하나님께 그와 같은 사실을 숨기는 죄악을 더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이 결국은 의지했던 애굽이 그들의 ‘힘’과 ‘그늘’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수치와 수욕’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실제 당시 애굽은, 앗수르의 사령관 랍사게가 ‘상한 갈대 지팡이’(사36:6)라고 비웃을 정도로 무력하기 그지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 묻지 아니하고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지하다 이스라엘은 수치와 수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큰 일에도 기도하시고 작은 일에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중대사를 두고 기도하시고 쉽고 가벼운 일이라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눈에 보이는 겉모습을 놓고 기도하시고 속내가 드러났을지라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바쁠지라도 여유를 가지고 기도하시고 여유가 있을 때에도 충분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위기에도 기도를 먼저 하시고 편안해도 마귀가 틈타지 않도록 기도생활하시기 바랍니다. 범사에 쉬지 아니하고 항상 기도에 힘쓰는 생활로(골 4:2) 사탄에게 속지 아니하고 범사에 승리하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블레셋이 공격해오자 먼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대상14:10) 내가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울까요? 주께서 저들을 내 손에 넘겨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좋다. 나가서 싸워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넘겨주겠다.” 고 말씀하시자 나가 그들을 격퇴하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물을 쳐서 흩어 버리듯이 하나님이 내 손으로 내 대적을 쳐서 흩어 버리셨구나!” 다윗은 그렇게 해서 그 곳 이름을 ‘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뜻으로 ‘바알-브라심’이라고 불렀습니다. 

얼마 후에 블레셋 사람들이 그 골짜기를 다시 침략해 왔습니다. 이때에도 다윗은 하나님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묻자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정면 공격을 피하고 그들 뒤로 돌아가 뽕나무 숲 근처에서 공격 태세를 취하고 있다가 뽕나무 꼭대기에서 행군하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거든 너는 즉시 공격을 개시하라. 이것은 나 하나님이 너보다 앞서 가서 블레셋군을 치겠다는 신호이니라.”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 블레셋군을 쳐서 완벽하게 격퇴시켰습니다. 그러자 다윗의 명성은 온 세계에 널리 퍼졌고 하나님께서는 모든 나라들이 그를 두려워하도록 하셨습니다.(대상14:10-17) 처음 기도했을 때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스스로 알아서 행한 것이 아니라, 범사에 하나님께 묻고 그때그때마다 주시는 말씀대로 행하여 어디로 가든지 항상 이기게 하시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범사에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55:8-9)고 말씀하셨습니다. 범사에 자신의 뜻이나 생각보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뜻대로 살고자 하시는 성도 여러분에게 항상 이기게 하시는 축복과 형통케 하시는 축복이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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