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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장 큰 사랑의 실천 (마 14:2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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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사랑의 실천 (마 14:28-36) 
 
  
28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34 그들이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니 
35 그 곳 사람들이 예수이신 줄을 알고 그 근방에 두루 통지하여 모든 병든 자를 예수께 데리고 와서 
36 다만 예수의 옷자락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얻으니라 
 
오병이어 곧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5천 명을 먹이시고 열 두 광주를 거두게 하셨던 주님은, 제자들을 재촉하사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자신은 홀로 남아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셨는데, 그 이유는 주님께 서 성부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하셨기 때문에, 두 분만이 은밀한 시간을 갖기 위함에서였다고 했습니다. 

우리들도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 어떤 시간보다도 우리의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의 은밀한 교제 시간을 따로 떼어놓고 그 시간을 준수하며, 주님과의 은밀한 교제를 갈망하고 귀히 여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과 교제하는 가장 좋은 시간은 새벽기도임을 잊지 마십시오. 

제자들이 타고 가던 배가 육지에서 수 리나 떨어졌을 때에,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했다고 했습니다. 수많은 성지 방문객들은 입을 모아 갈릴리 바다의 변덕스러운 환경을 체험했던 놀라운 경험을 증언합니다. 맑은 하늘에 갑자기 돌풍이 몰아쳐 텐트가 날아가는 일을 당한 사람도 있고, 호수에서 200m 떨어진 곳까지 물보라가 몰아쳐서 긴급 대피한 경험을 했던 성도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갈릴리 호수를 사람들은 바다로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도 마치 갈릴리 바다와 같아서, 작은 파도, 큰 파도가 쉴 사이 없이 일어납니다. 파도 없는 바다가 없고, 바람이 불지 않는 무풍지대가 없는 것 같이, 근심걱정 번뇌와 고통 없는 사람이 없고, 시험과 환난이 없는 가정과 사회가 없다는 것입니다. 고요한 갈릴리 호수에 순식간에 돌풍이 들이닥치는 것처럼, 설령 오늘 순탄한 가정이라도 내일 어떠한 풍랑이 밀어닥칠지 전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고난이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필연성을 가지고 우리를 찾아오는 불청객과 같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명령대로 배를 타고 예수님보다 먼저 바다를 건너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거센 바람과 높은 파도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큽니다. 예수님의 명령대로 배를 타고 갔는데도 풍랑이 일어났다면, 자행자지하기를 잘하는 우리들의 인생항해에 고난과 시련의 물결이 밀려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 줍니까? 이 사건은 예수님의 제자라고 해서, 이 세상의 고난과 시련에서 결코 제외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아니 제자의 길은 반드시 인생의 거센 풍랑과 위협적인 파도를 견뎌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제자의 삶은 고난이 불가피한 것입니다.

바람과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당하는 제자들의 형편을 아신 주님께서는, 밤 사경에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찾아오셨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을 고난 속에 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친히 그 고난의 현장으로 찾아 달려오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죄악 된 세상에서 온갖 고통을 받다가, 마침내 멸망하게 될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늘의 영광스런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으시면서 까지 친히 고난이 가득한 세상으로 찾아오심으로 증명되었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들이 언제 어디서 어떠한 고난을 만날지라도,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시고, 반드시 찾아오셔서 우리를 건져주실 것을 믿고, 담대하게 고난과 맞서 싸워 승리를 쟁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물 위를 걸어오시는 주님을 보고, 처음에는 유령인 줄 알고 몹시 두려워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려워 떠는 제자들에게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요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오라’고 하시자, 베드로가 즉시 물 위로 걸어갔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세상 사람들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들을 믿고, 그 믿음을 따라 행동하는 모험적인 결단이 바로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물 위를 걷고 있던 베드로는 휘몰아치는 바람과 파도를 보고, 무서워하여 물속에 빠져들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무서워하여 물속에 빠져들게 된 원인은, 그가 바람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즉 베드로가 믿음을 잃고 결과적으로 물속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그가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바람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사실을 통하여 커다란 교훈을 얻게 되는데, 그것은 곧 우리의 시선이 예수님을 떠날 때, 우리는 믿음의 실패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시선이 주님을 떠나면, 우리의 믿음도 우리를 떠나기 마련인 것입니다. 아무리 큰 문제가 닥쳐와도 ,아무리 큰 환난이 우리를 흔들어도, 우리가 주님만 보고 있으면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담대하게 그 모든 환난을 이겨낼 수 있지만, 우리의 시선을 돌려 다른 것을 바라보게 되면, 우리는 곧 믿음을 잃고 실족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아야 하고, 그것이 이 험준한 세상의 거센 세파 속에서도 능력 있는 삶,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는 비결이라고 했습니다.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교훈이 있습니다. 곧 우리 인생의 배에 예수께서 오르실 때, 우리 인생의 항로는 순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32절에 보면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고 했습니다. 즉 휘몰아치는 거센 바람과 높은 물결을 인하여 요동치던 제자들의 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르시자, 그 배를 뒤흔들던 바람과 파도가 일시에 잔잔해지고 바다가 고요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로써 제자들의 배는 고요한 중에 순탄하게 목적지를 향하여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 같은 사실은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대한 것이 무엇이며, 무엇이 우리의 인생의 항로를 순탄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생의 배에 동승하시는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의 인생길을 인도해 주실 때, 우리의 인생은 모든 세파에서 벗어나 순탄하게 천국으로 나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할 때, 주께서 우리의 인생에 개입하셔서 우리의 인생을 이끌어 주실 때에만, 비로소 순탄한 삶, 성공적인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 우리의 고집대로만 살아간다면, 우리는 항상 이 세상에서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는 강한 세파에 부딪혀서 깨어지는 삶, 실패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배제한 채, 자신의 뜻과 고집대로 인생을 살아가려고 하지 마십시오. 오직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인생의 배의 선장으로 모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을 따라서만 살아갈 때 그 인생 항로가 순탄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고 김활란 박사는 이렇게 찬송했습니다. ♪1)캄캄한 밤 사나운 바람 불 때, 만경창파 망망한 바다에, 외로운 배 한 척이 떠나간다. 아 위태하구나. 위태하구나. 2)비바람이 무섭게 몰아치고 그 성난 물 큰 파도 일 때에, 저 뱃사공 어쩔 줄 몰라 하니 아 가련하구나, 가련하구나. 3)절망 중에 그 사공 떨면서도 한 줄기의 밝은 빛 보고서, 배안에도 하나님 계심 믿고 오, 기도 올린다. 기도 올린다. 4)아버지여, 이 죄인 굽어 보사 성난 풍랑 잔잔케 하시고, 이 불쌍한 인생을 살리소서. 오, 우리 하나님, 우리 하나님. 5)모진 바람 또 험한 큰 물결이 제아무리 성내어 덮쳐도, 권능의 손 그 노를 저으시니, 오 잔잔한 바다, 잔잔한 바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 예수님과 함께 하는 여주동행의 삶을 살아서, 남은 생애가 모쪼록 순탄한 인생항로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본문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더 깊은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예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전지하신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이 거센 바람과 물결로 고난당할 것을 너무도 잘 아셨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로 하여금 먼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도록 하신 데에는, 분명히 주님의 어떤 목적과 의도가 있으셨다는 것입니다. 시 89:8-9에 “주께서 바다의 흉용함을 다스리시며, 그 파도가 일어날 때에 평정케 하시나이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바다를 잔잔케 하는 일이 곧 창조주 하나님의 하시는 일임을 가르쳐 줍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나, 기적을 행하는 하나님의 사자나, 잘 가르치는 랍비 정도로만 알아서는 안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주 예수님이 천지만물의 창조주이시고 주관자이심을 알아야 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물 위를 걸으시고 또 배에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 것을 보고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물위를 걸으시는 주님, 거센 바람과 물결을 잔잔케 하시는 주님께 절을 하며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바람과 물결을 마음대로 다스리실 수 있는 분, 그 분은 바로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 곧 예수님이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것을 가르쳐 주시려고 물 위를 걸으시고 바람과 풍랑을 잔잔케 한 기적을 행하셨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본문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성도가 행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의 실천은 복음 전파라는 것입니다. 34-36절에 “그들이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니, 그 곳 사람들이 예수이신 줄을 알고, 그 근방에 두루 통지하여 모든 병든 자를 예수께 데리고 와서, 다만 예수의 옷자락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얻으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병’이란 ‘상하다’ 또는 ‘악하다’란 뜻을 갖고 있으므로, 모든 병든 자란 육체적으로 병든 자는 물론, 도덕적으로 악한 자와 정신적으로 이상을 가진 자도 포함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 나음을 얻었다는 말은 이 때의 병자들이 질병에서의 구원은 물론, 영혼까지도 구원받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웃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전한 게네사렛 사람들의 행위는, 그들이 행하였던 그 어떤 선한 일보다 더 큰 사랑의 실천이었다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오늘날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 다시 말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그 어떤 선한 일보다 더 큰 사랑의 실천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난하고 병든 사람에게 단순히 먹을 양식을 나눠주거나, 돈을 주는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큰 사랑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양식이나 돈을 나눠주는 것은 당장 그들의 현실적 문제만을 해결해 줄 뿐이요, 그들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지는 못하지만,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그들의 근본적 문제의 해결로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 전파야말로 영육간의 구원을 얻게 하는 진정한 사랑의 실천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항상 강조하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것을 지상 과제로 남기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진정으로 우리의 이웃을 사랑한다면, 그 무엇보다도 복음을 전해 주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모든 질병과 고통과 결핍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참된 기쁨과 만족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그들로 하여금 영생복락을 얻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인터넷에 올라 있는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① 쓸 수 있는 헌옷, 가방 등은 재활용품 수거함에 버리는 것을 생활화한다.
② 모든 일에 감사하고 그날 고마웠던 일을 기록하며, 선행을 하는 위인의 영화 나 책을 본다. 마음이 긍정적으로 바뀌면서 몸이 따라온다.
③ 아름다운 가게나 구청의 나눔 장터 등에 물건을 기증하거나 그곳에서 물건 을 산다.
④ 자선단체에 회원으로 가입해서 소액이라도 기부하기 시작한다.
⑤ 모교나 자녀의 학교에 필요한 물건을 기증한다.
⑥ 종교단체나 사회단체를 통해 기부 또는 봉사활동을 한다.
⑦ 가족이 함께 구청이나 각종 단체에서 주관하는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한다.

세상에는 선한 사람들도 많고, 큰 사랑을 실천한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사회자도 울고 통역도 울었다. 높으신 귀빈들도, 청바지 차림의 대학생들도 펑펑 눈물을 흘렸다. 취재 온 일본 기자들 눈에도 눈물이 가득했다.”(사진-이수현) 지난 1월 26일 도쿄에서 열린 고 이수현 10주기 추모 행사 대한 기사입니다. 

고려대 재학 중 일본에 어학연수를 간 이씨는 2001년 1월 26일 신오쿠보 전철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었습니다. 26세의 꽃다운 나이였습니다. 이 씨를 기리며 기부를 한 일본인 수는 이미 1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일본 정부는 곧 이 씨의 기념비와 흉상을 건립할 계획이라 합니다. 10년이란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 흘렀지만, 일본인들이 이 씨를 잊지 못하는 이유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정신을 발휘하다 일본인을 위해 하나 밖에 없는 자신의 생명을 바쳤기 때문입니다. 

세기적인 배우 오드리 헵번 하면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인형 같은 외모를 떠올릴 것입니다.(사진-젊은 오드리헵번)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깡마른 아이를 안고 있는 그녀의 사진을 떠올립니다. (사진-마른 아이를 안고 있는) 그녀는 두 번의 이혼으로 사랑의 배신을 경험했고, 말년에는 암으로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유니세프 친선대사를 자청해서 20여국을 방문하여, 도움이 필요한 굶주린 아이들의 실상을 알렸고,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그녀가 죽기 전 마지막 크리스마스이브에 아들에게 남긴 글은 우리에게 진한 감동을 줍니다. “매력적인 입술을 갖고 싶으냐? 그러면 친절하게 말하여라” “사랑스런 눈을 갖고 싶으냐? 그러면 사람들 속에서 좋은 것을 발견하여라”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냐? 그러면 너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누어라.” “아름다운 머릿결을 갖고 싶으냐? 그러면 하루에 한 번이라도 아이들이 그 머릿결을 어루만지게 하여라.” “균형 잡힌 걸음걸이를 유지하고 싶으냐? 그러면 네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걸어라” “존경받는 삶을 살고 싶으냐? 

그러면 생명 있는 모든 사람을 존중하여라.”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싶으냐? 그러면 너 역시 도울 수 있는 손을 갖고 있음을 기억하여라. 우리가 두 개의 손을 가진 이유는, 한 손은 자신을 위한 것이지만, 나머지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한 것임을!” 그녀의 아름다움은 외모만이 아니었습니다. 평생을 사랑의 마음으로 살았기에 그녀가 진정 아름다울 수 있었습니다. 

“어린이 한 명을 구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어린이 백만 명을 구하는 것은 신이 주신 기회입니다.” 오드리 헵번의 이 말은 전 세계 신문의 헤드라인이 되었고, 세계적인 기부 문화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유니세프 친선대사가 된 후 굶주린 어린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않고 달려간 오드리 헵번은, 배우로 살았던 때보다 더 많은 정열을 짧은 시간 동안 세계 구호 운동에 쏟아 부었습니다.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지가 발표한 2010년 미국 억만장자 순위에 따르면, 미국 최고의 갑부는 MS 창업주 빌 게이츠라고 합니다.(사진-빌 게이츠) 빌 게이츠는 금융 위기 속에서도 전년보다 40억 달러가 늘어난 540억 달러(62조 7천억)를 기록해, 지난 17년 동안 미국 최고의 갑부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고 합니다. 포브스지는 빌 게이츠의 재산은 기부해도 기부해도 재산은 늘어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2위는 투자의 귀재로 알려진 워렌 버핏으로(사진-워렌 버핏) 그의 재산은 450억 달러로 알려졌습니다. 세계 최고의 부자로 꼽히는 빌 게이츠는 23조원을 기부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 규모의 자선 재단까지 운영 중이라고 합니다. 한편 워렌 버핏은 2006년 32조원을 빌 게이츠의 자선 재단에 기부했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분들입니다. 충분히 존경받고 본받아야 할 사랑의 실천가들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제가 여러 번 말씀드린 대로 그리스도인 최고의 연민은 영혼에 대한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한 사람의 목숨은 온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게네사렛 땅에 이르니 그 곳 사람들이 예수이신 줄을 알고 그 근 방에 두루 통지하여 모든 병든 자를 데리고 와서 병 고침을 받게 하고,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전해주신 복음을 듣고 영원한 생명까지 얻을 기회를 갖도록 해준 것처럼, 여러분도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을 이웃에게 힘써 전해서, 영육 간의 병든 자들이 고침을 받고, 삶에 지친 영혼들이 쉼을 얻고, 더 나아가 영원한 생명과 하늘나라의 기업을 받게 하는, 가장 큰 이웃 사랑의 실천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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