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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장하는 그리스도인 (골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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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는 그리스도인 (골 2:6-7)


「성장」이라는 말은 본래 생물학적인 용어입니다. 우리말 사전을 보면 생물이 자라서 점점 커지는 것을 성장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성숙도 성장이라고 덧붙치고 있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성장과 성숙이 있기 마련입니다. 봄에 돋아나는 들풀을 보면 싹이 나고 줄기가 뻗고 잎이 자랍니다. 그러나 계속 크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분량만큼 크고 나면 더 자라지 않습니다. 들풀이 돌연변이로 남산의 소나무처럼 크는 법은 없습니다. 적당하게 크고 나면 꽃이 핍니다. 꽃은 성숙의 증거인 셈입니다.

신생아가 태어나 자라는 것도 비슷합니다. 개인차가 있긴 합니다만 갓 태어난 아기들은 몸무게 3.3kg에키는 50cm 정도가 평균치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계속 성장합니다. 그러나 몸무게나 키는 어느 정도 성장하고 나면 더 무거워지거나 크지 않습니다. 성장이 멈추고 맙니다.

그러나 성장은 멈추어도 멈추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인격과 지식과 삶의 경륜은 한없이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성숙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꽃나무가 어느정도 크고 나면 거기에서 꽃이 피듯이 사람도 그렇습니다. 성장하면서 성숙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4:13에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까지 이르리니"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분량에까지 성장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그리스도인이 성장해야 된다는 것은 키를 키우거나 몸무게를 늘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인격과 삶을 닮는 것을 뜻하며 그리스도처럼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식물이 자라는데 필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종자, 토양, 재배라는 것입니다. 종자가 썩었거나 나쁘면 자랄 수 없고 토양이 나쁘면 자라지 못합니다. 그리고 영농 기술을 집약해 과학적으로 재배해야 잘 자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성장하는 조건도 있습니다. 
첫째는 유전인자가 중요합니다. 같은 구라파 사람이라도 스웨덴이나 덴막 사람들은 키가 큰데 반해 불란서나 스페인 사람들은 키가 작습니다. 그 이유는 조상들이 물려준 유전자 때문입니다. 즉 부모가 크면 자식도 크기 마련입니다
둘째는 영양조건입니다. 성장발육기에 먹지 못해 영양실조에 걸린다든지 발육조건을 충족시켜 주지 못하면 성장이 어렵게 됩니다. 우리 나라 청소년의 체형이 60년대에 비해 거의 서구화해 가고 있는 이유는 고단백 칼로리의 섭취량이 많기 때문입니다. 잘 먹어야 키도 크고 살도 찌기 마련입니다.

신앙 성장에도 조건이 있습니다.

1. 영적인 유전인자를 가져야 합니다. 

요한복음 15:4을 보면 주님께서 "내 안에 거하라"고 하셨고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과실을 맺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15:5절에서는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수 없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15:6절에서는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라고 했고, 7절에서도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예수에게 붙어 있어야 살고 예수 안에 있어야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그 안에서 행하라" "그 안에 뿌리를 박으라" "그 안에서 세움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그 안에서 행한다는 것은 예수 안에서 살고 일하고 오고 간다는 것입니다. 들판에 뿌리 내리면 잡초가 되고 정원에 뿌리 내리면 정원수가 됩니다. 
모래 위에 세우면 무너지고 반석위에 세우면 무너지지 않습니다.
예수 아닌 다른 곳에 뿌리 박으면 잡초 인생이 되지만 예수 안에 뿌리 내리고 그 위에 집 짓고 살면 존귀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잡초처럼 살다가 시들어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만드신 정원에 피어나는 꽃처럼 살아야 하겠습니까? 어느 인생이 행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예수님 서 계신 쪽에서야 합니다. 외곽을 맴도는 외곽인생 (Outsider)이 돼서는 안 됩니다. 예수 안에 있어야 성공하고 행복합니다. 그리고 그 성공과 행복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영적 유전인자는 예수 안에 붙어있는 것 그것입니다. 예수 안에 붙어있으면 성장하게 됩니다. 예수 안에 붙어있다는 것은 성령충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영적인 성장을 위한 유전인자는 바로 성령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성령 충만한 신자가 있고 성령은 받았지만 충만하지 못한 신자가 있습니다. 성령님은 인격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내 인격안에서 나를 다스려주시기를 구할 때 기꺼이 나의 영혼에 은혜를 주십니다. 

2. 영양분이 공급되어야 합니다. 

신앙 성장의 영양분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은 영의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양식은 많은데 입맛을 잃어 버려서 먹지 못하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해서 성장하지 못합니다.
맛이 없어서 못먹었다면 두가지입니다. 음식이 정말 맛이 없거나, 아니면 음식은 괜찮은데 입맛을 잃었거나입니다. 그런데 현대 신자들의 영적인 상태를 보면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입맛을 잃어서 영의 양식을 먹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말 맛있는 양식은 얼마나 많습니까?
지금처럼 말씀이 풍년인 때가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도 영의 양식에 굶주린 성도들이 많습니다. 문제는 입맛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에 탤런트 김혜자씨가 선명회 친선대사 자격으로 북한을 다녀온 기사가 언론에 일제히 보도된 기사가 있었습니다. 
양은 그릇에 담긴 국수를 수저로 박박 긁어먹는 모습, 퉁퉁 불은 국수를 반찬하나 없이 먹어 치우는 모습이 그토록 안쓰러웠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북한뿐입니까. 아프리카의 아이들 역시먹지 못해 나무 젓 가락처럼 말라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에겐 국수 맛이 어떻고 반찬이 글렀고 따위의 사치스런 투정이 없습니다. 목구멍으로 음식물이 넘어간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감지덕지합니다.

저는 이 정황을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도입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에겐 투정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의 양식 혹은 영혼의 양식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설교는 그것을 해석하여 선포하는 것입니다. 
설교가 재미없는 사람은 입맛 없는 사람입니다. 밥 먹기 전에 이것저것 군것질을 많이 하면 밥맛이 없습니다. 식보가 최고의 보약이란 말이 있습니다. 값비싼 보약을 철따라 먹는 것보다는 제 때에 일정량의 식사를 맛있게 즐겁게 하는 것이 최고의 보약이라는 뜻입니다.

설교가 맛이 없으면 영적 영양실조에 걸립니다. 영적 영양실조에 걸리면 영혼이 쇠약해지고 힘을 잃게 됩니다. 영혼이 힘을 잃으면 교회가 재미없고 기도가 싫증나고 찬송이 귀찮아 집니다.
영혼의 영양공급이 잘되고 굶어 죽지 않으려면 자기 교회를 인정하고 만족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군것질 심리나 버릇을 버리고 그날 주시는 말씀을 맛있게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영적인 영양분이 공급되어지고 성장하는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3. 영적인 건강을 유지해 합니다.

나무도 짐승도 사람도 병들면 성장하지 못합니다. 오래 전에 일이 있어서 속리산 정이품 소나무 곁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군데군데 닝겔 병을 매단 채 나무가 주사를 맞고 있었습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나무가 병들어 치료하는 중이라는 대답이었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병들면 그 성장이 중단됩니다. 신앙의 경우도 예외가 아닙니다. 신앙이 병들면 영혼도 죽고 육체도 죽고 생활도 죽게 됩니다. 돈보다, 명예보다, 사업보다, 권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건강입니다.

건강에는 육체의 건강이 있고 마음과 영혼의 건강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과 영혼의 건강입니다. 
마음이란 영혼과 육체의 결합에서 나타나는 생명 작용입니다. 한 사람의 품성과 인격을 담는 그릇입니다.
영혼의 소망과 육체의 욕구에 대하여 동시에 반응하기 때문에 영적 열망에 따라 경건해지기도 하고 육체의 정욕과 욕심에 따라 어두워지기도 하기 때문에 육체보다 마음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모든 질병은 70% 정도는 마음으로부터 야기된다고 합니다. 
밀가루로 만든 가짜 약을 특효약인 것처럼 속여 투약했는데 진짜 효과가 나타날 때 의학용어로 위약효과(僞藥效果,placebo effect) 라고 합니다. 위약 효과는 육체의 건강 보다 마음의 건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옛 의서(醫書)에 의하면 네 종류의 의사가 있다고 합니다. 
환자의 얼굴 표정만 보고도 신통하게 병을 알아내는 신의(神醫)가 있고 환자의 목소리나 풍기는 체취를 살펴서 병을 알아내는 성의(聖醫)가 있으며 환자에게 어디가 아프냐고 상세히 물어서 병을 진찰하는 공의(工醫), 그리고 환자의 몸을 이리저리 살핀 후에 가슴을 두드려 보거나 배를 만져보아야 비로소 진단을 내릴 수 있는 교의(巧醫) 가 있다고 합니다. 
의술이 뛰어나 병을 잘 고치는 의사를 신의(神醫)라고 하였는데 신의는 육체의 기능적 이상만 살피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마음과 속사정 즉 영혼을 살피는 의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의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 신의가 있을 까요? 
우리에게 마음과 영혼의 속사정을 살펴서 건강을 주시는 분이 누구일까요? 
마음을 잘 알아주는 의사가 신의(神醫)라면 신의 중에 신의는 바로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왜냐면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요10:14).” 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선한 목자가 되셔서 양의 마음과 사정을 살피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에서 “주는 마음의 비밀을 아시나이다” (시44:21) 라고 했고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계2:23) 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8:26)

그렇습니다. 
나 보다 도 나를 더 잘 아시고 이해하시는 분, 그분은 바로 나를 위해 십자가 지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적인 건강을 주시고 우리가 성장하는 믿음이 되기를 원하시고 계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영적인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 까요?
바울은 본문에서 영혼이 건강하게 되는 비결 두 가지를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믿음에 굳게 서는 것입니다. 
7절 끝을 보면 "믿음에 굳게 서서"라고 했습니다. 원문 성경을 보면「굳게 서서」라는 낱말이 현재 분사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그 동작이 계속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다가 말다가 하는 것은 굳게 서는 것이 아닙니다. 하다가 말다가 하는 것도 굳게 서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 흔들리지 않고 믿음을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느 책에 보니까 교회 안에는 세 종류의 교인이 있다고 합니다.

① 아래턱뼈(jawbones)교인입니다.
이들은 언제나 쉬지 않고 아래턱을 놀려 교회 안에 소란 을 피우는 교인
② 마른 뼈다귀 교인(drybones)입니다. 화석처럼 메말라 생명이 없는 교인
③ 등뼈교인(Backbone)입니다. 
이들은 몸이 서 있도록 등뼈가 서 있는 것처럼 교회의 지주 역할을 하는 교인 입니다. 즉 굳게 서 있는 든든한 교인을 말합니다. 믿음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건강하게 성장하는 성도입니다. 

둘째는 감사해야 합니다. 
7절 끝을 보면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는 것은 한 두 번으로 끝나는 감사가 아니라 계속해서 넘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5:16에서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감사의 몇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① 감사는 할수록 풍성해 집니다.
② 감사는 할수록 감사할 일이 많아집니다.
③ 감사는 자신과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줍니다.

반대로 원망과 불평에도 원리가 있습니다.
① 불평은 할수록 많아집니다.
② 불평은 할수록 가슴이 답답합니다.
③ 불평은 할수록 남을 기분 나쁘게 만듭니다.
④ 불평은 할수록 일이 꼬입니다.

어느 시인이 밝힌 병상 7 계명이 있습니다. 
① 치료시간을 스스로 정하지 말라
② 집안일이나 자신에 대한 염려를 버리라
③ 세상일이나 학문에 관심을 두지 말라
④ 실망을 버리고 최후까지 희망을 가리라
⑤ 자랑하는 마음이나 자부심을 버리라
⑥ 믿는 마음을 가지라
⑦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라.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교회 안에는 성장하는 그리스도인과 성장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성장이나 발전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이 있습니다. 하루 하루를 감사와 감격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원망과 불평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장하는 그리스도인,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그리스도인, 하루하루를 감사와 감격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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