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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어지면 시험은 끝난다 (시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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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어지면 시험은 끝난다 (시 11:1-7)


오늘 말씀 중에 유난히 눈에 뜨이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3절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터가 무너진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삶의 기반이 무너진다는 말입니다. “이젠 끝이구나,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하는 상황을 만났다는 말입니다. 중병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을 때, 평생 사업이 망했을 때, 공의가 무너지면서 나라의 터가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도 됩니다.
  
2절에 보면 시편 저자인 다윗은 바르게 살려는데도 중상모략을 당하고 게다가 어두운 데 숨어서 그를 해하려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윗은 여호와께로 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4절에서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다 살펴 보고 계신다.”고 했고 5절에서는 “하나님은 의인을 지켜보시고 악한 자를 미워하신다.”고 했고 6절에서는 “하나님은 악인에게 그물을 던져 사로잡으시고 불과 유황 바람으로 그들을 징계하신다.”고 했고 7절에서 “하나님은 의로우시기에 의로운 일을 좋아하신다." 고 했습니다.

저는 시편 11편을 읽으면서 사람들이 왜 시편 읽기를 힘들어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성경을 통독하다가 시편이 나오면 한숨이 나옵니다. 그것은 너무 옳은 말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하나님을 바라라, 하나님을 찬양하라!” “다 아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그렇게 쉬우냐.” 말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간단하게 믿을 수 있느냐”, “어떻게 그렇게 간단히 찬양과 감사로 넘어갈 수 있느냐” 말입니다.

오히려 시편 11편에 나오는 세상 사람들의 말이 더 귀에 솔깃하게 들어옵니다.

1절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 
터가 무너지는 위기를 당하니 사람들이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빨리 도망가! 지금 어떤 길이 의로운 길인가 어떤 길이 선한 길인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은 어딘가 그런 한가한 소리를 할 때가 아니야, 일단 살고 봐야 되잖아.”

여기서 "너희"는 다윗의 주변 사람들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다윗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일 수도 있습니다. 누구든지 터가 무너질 때 도망치고 싶은 생각부터 나게 마련입니다. 거짓말을 하든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 씌우든 악한 자와 타협을 하든, 우선 살고보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예 죽고 싶은 충동을 받게도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편 말씀이 귀에 들어오겠는가 말입니다.

저는 시편 11편을 묵상하면서 시편을 지식을 얻기 위하여 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그동안 설교하면서 새로운 지식을 전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뭔가 새로운 것이 있어야 교인들이 들어줄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놀라운 것, 극적인 것, 강력한 것, 감동적인 것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시편을 보면서 그것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깨달았습니다.

무엇인가 새로운 지식을 얻으려면 시편은 너무나 답답합니다. 새로운 것이 없습니다. 너무나 뻔한 내용입니다. 10편의 시편을 읽어 보기만 해도 누구나 공감할 것입니다. 어쩌다 한번 시편을 설교할 때는 해 볼만 합니다. 그러나 연속 설교할 때는 난감합니다. 조금씩 내용은 다르지만 결국 같은 결론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믿으라. 하나님을 바라라. 하나님께 감사 찬양하라.”

그러나 말씀을 묵상하다가 깊이 깨달았습니다.
새로운 지식을 아는 것 보다 이미 알고 있는 진리를 누리는 것이 중요하구나!
시편 11편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다윗은 어떻게 터가 무너지는 위기에 처하고도 어떻게 하나님을 그렇게 믿을 수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본래 믿어지는 사람 안 믿어지는 사람이 구별되어 태어나는 것입니까? 어떤 아이는 말을 시작하자마자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믿습니다 할렐루야.” 합니까? 
그런데 어떻게 다윗은 터가 무너지는 순간에도 하나님을 믿고 고백하고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까? 그것도 한 두 번도 아니고 우리가 보기에 지겹다고 여길 정도로 그렇게 모든 상황에서 믿고 고백하고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까?

죠지 뮬러 목사님의 일기 책, 지겨워서 혼났습니다. 계속 “기도했더니, 응답받았다. 이것도 응답받았다. 오늘도 응답받았다.” 그러다가 이것이 무엇인가? 한번도 제대로 응답받은 간증이 없는 이도 얼마나 많은데, 그래서 다시 읽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임마누엘 예수님, 성령의 역사, 하나님의 나라와 영생, 기도의 축복, 엄청난 진리이고 복음입니다.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믿어지고 누려지지 않으니  예수 믿고도 거짓말하고 죄와 타협하고 미워하고 싸우고 두려워하고 염려하며 사는 것입니다. 
진짜 위기는 터가 무너지는 것 같은 어려움이 아닙니다. 조금만 어려운 일이 닥쳐도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 것이 위기입니다.

지난 주일 예배 후 유학을 가면서 기도 부탁을 한 청년이 죄사함에 대한 확신을 갖기를 원하였다. 이미 모든 성경의 약속을 다 알면서도 그는 확신을 갖지 못하여 괴로워 하고 있었다. 그에게 성령이 내주하심이 죄사함받은 증거임을 가르쳤다. 그는 너무나 놀라와 하며 즉시 무거운 마음의 짐에서 벗어났습니다. 

믿어지면 누가 무엇이라 해도 그 길을 담대하게 찬송하면서 노래 부르면서 가는 것입니다. 아는 길을 가는 마음! 아시지요? 산이 가로 막히고 큰 건물이 가로 막히고 길이 험하고 바람이 불어도 마음은 얼마나 담대합니까? 
하나님을 믿고 사는 자도 이렇게 사는 것입니다.
약 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일제 시대, 나라가 무너졌습니다. 살려면 신사참배를 하라 했지만 손양원 목사님 같은 분들은 감옥에 들어가 엄청난 고초를 당했습니다. 

1948년 10월 19일 여수 순천 반란 사건이 일어났을 때 손양원 목사님의 두 아들인 동인군과 동신군도 반란을 피하라는 권면을 받았지만 자기들이 피할 곳은 예수님의 품이라고 말하면서 피하지 않았다가 1948년 10월 21일 총살 순교를 당했습니다.

6.25 전쟁이 일어났을 때, 선교사들이 손 목사님과 가족이 피난을 갈 수 있도록 애양원 앞 신풍리 앞 바다에 배 한 척을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손 목사님은 “내가 피할 곳은 예수님의 품입니다.”고 말하면서 나환자들과 함께 있다가 1950년 9월 28일 순교의 죽음을 당해 주님의 품에 영원히 안겼습니다.  
그의 죽음은 무모한 죽음이었을까요? 아닙니다. 한국을 살린 죽음입니다. 저는 손양원목사님 같은 분들 때문에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를 포기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

만약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같은 분들이 산으로 도망을 갔다면 그들은 얼마를 더 사셨겠지만 우리나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얼마 전 손양원 목사 기념사업회를 만든다면서 이사로 참여해 달라는 요청이 왔을 때, 저는 두 말도 하지 않고 하겠다고 했습니다. 지난 주 기획위원회에서 사단법인 기금 출연을 하기로 결정하여 1000만원을 보냈습니다. 참여하게 된 것만도 영광입니다. 

어떻게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다윗의 시편을 읽기만 하지 말고 다윗의 삶을 따라 살아보라는 말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얻기 위하여 할 일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윗처럼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시 16: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이것이 다윗이 터가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믿을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우리가 요즘 힘쓰는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다윗은 4절에서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라고 말한 것을 보면 다윗이 터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너무나 두려웠다가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다시 회복했던 모양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아십니까?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11편의 기자가 위기의 때에 성전을 찾아 하나님의 얼굴을 뵈었다면 우리는 이미 우리 안에 성령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작년에 우리 교회에서 고난주간에 특별한 부흥회를 했었습니다. 감사헌금 모두를 계룡시에 있는 [은혜와 진리 교회] 예배당 건축을 위해 다 보냈습니다. 그 교회가 예배당을 완공한 것입니다. 이번에 대전 부흥회 때 가서 보고 너무나 감격했습니다. 세든 건물이 부도로 넘어갔을 때, 담임목사님의 다급한 전화가 생각났습니다. 개척 교회에 전세금 2억원이 날아간다는 것은 터가 무너지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황스런 중에 기도하면서 깨달아지는 것이 건물과 돈은 사라졌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계시고, 교인이 있더랍니다. 그래서 다시 일어나 앞 길이 보이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묵묵히 앞 길을 걸어갔답니다. 그런데 바로 옆 공터를 싸게 구입하는 길이 열리고 여기저기서 헌금이 되고, 예배당이 건축된 것입니다. 터가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았더니 예배당이 건축되는 일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번 대전 부흥회 때, 마지막 날 새벽 집회에 감사헌금 함에 부고가 올라왔다. 깜짝 놀랐다, 교회 장례식 광고를 해달라는 줄 알았다.“2011년 2월 10일 밤 9:00 000 사망하다.”자세히 보니 감사헌금이었다. 어제 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이라는 설교 후 진리를 결론 삼고 자신의 죽음을 선포한 것이었다. 깜짝 놀랐지만 모두 웃음으로 받아주었다.

오늘 건축비 상환 특별 기도회가 열립니다만 우리 교회는 8천3백여 평 큰 예배당을 건축하였지만 건축 빚이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건축비가 능히 상환될 것을 분병히 믿습니다. 예배당을 완공한 해, 부도 위기에 몰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마침 그 때 미국에 부흥회 약속을 한 것이 있어 갔다가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에 탑승했을 때, 갑자기 가슴이 오그라지는 고통이 왔습니다, 그 동안 매 주 가슴 졸이며 지냈습니다. 예배당은 큰 데 반도 채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예배드리는 것도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었습니다. 담임목사의 자리가 너무나 힘에 겨웠습니다, 

그런데‘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면 건축 부도 위기를 어떻게 해결하나,’하는 스트레스가 갑자기 겹친 것입니다. 순간 고백을 했습니다,“예수님, 저는 예수님과 함께 죽었습니다, 담임목사는 예수님입니다!” 몇 번 고백을 하는데, 가슴의 통증이 사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평안해졌습니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가슴 통증이 사라지면서 교회 건축 빚 문제가 해결되겠구나. 믿어지는 것입니다. 믿어지니 문제될 것이 없어졌습니다. 

그 때, 그러면 담임목사는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물었습니다, 죽시 응답해 주셨습니다,“사랑하는 것이지!”그렇습니다, 제가 할 일은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하셨듯이 교역자를 사랑하고 장로님들을 사랑하고 교인들을 사랑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하던 그 순간 눈에서 눈물이 한없이 흘렀습니다. 

다윗에게만 이런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는 모두 터가 무너져도 담대한 믿음이 생깁니다.

어제 아내가 인도네시아 늘푸른 교회 사모님의 영성일기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참 감동을 받았기에 여러분에게도 소개합니다.

이번 주간에 부흥회가 있었답니다. 강사님이 너무나 훌륭하여 모든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간증이 넘쳤답니다. 그런데 강사님을 마지막 식사 대접을 하고 공항에 모시고 가야 할 순간 문제가 생겼습니다. 강사님의 가방을 실은 기사가 사라진 것입니다. 아무리 전화를 해도 2시간째 연락이 안되는 것입니다. 그 때 사모님께“마음을 지키라.”는 주님의 마음이 들었답니다. 사모님은 식당으로 가면서 주님을 부르며 소리내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좋은 생각만 하기로 했습니다. 

요즘 한국인들의 차를 훔치는 기사들이 여럿 있었지만, 자신을 돕는 기사는 나쁜 일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믿었습니다. 기사를 판단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기사는 나타나지 않았고 강사 목사님은 여권만 들고 공항으로 가야 했습니다. 그런 중에도 강사님도 목사님 내외도 맘이 흔들리지 않았답니다. 아무도 뭘 잘못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말하지 않았답니다. 그냥 다 주님께 맡기고 집회 때 받은 은혜를 나누었답니다. 놀라운 일이었답니다.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지 않는 삶, 용서하는 삶 그 삶은 안식이 있는 삶, 그리고 믿음으로 주님께 확정하는 삶, 그리고 그것에 순종하는 삶 놀라운 역사가 있는 삶’이것이 부흥회 때 주신 말씀이었는데, 그 말씀에 문제를 맡기고 계속 주님을 불렀답니다. 강사목사님께서도 시종 웃는 얼굴로 대하시다가 결국 짐없이 비행기에 타고 떠나셨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까지도 은혜가 넘쳤답니다. 

그런데 기사가 밤 10시에 돌아왔습니다 기사는 잔뜩 긴장을 하고 풀이 죽어있었습니다.  뭐라 하지 않았답니다. 기사가 조금 부족하고 생각이 없어서 간혹 힘들지만 주님의 말씀을 맘에 담고 주님의 마음을 갖자고 했답니다. 알고 보니 기사가 .다른 주차장에서 그때까지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전화 연결이 좋지 않아서 벨이 울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모님의 몸이 갑자기 너무 떨려서 한참을 그 떨림이 풀어지는 기도를 드렸답니다. 참 이상하다고 생각하는데, 꼭 기사의 맘 같았답니다. 하나님께서 기사의 맘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한국 갈 가방을 가지고 들어오는 발걸음이 처참했을 것입니다. 그 순간 그렇게 한없이 기다려 주었던 기사가 오히려 고맙게 느껴지며 눈물이 났답니다. 좀 생각이 모자라는 처신이었지만 그 기사에게는 그것이 최선의 행동이었기 때문에 내게 주신 맘 같았다. 그러니 맘이 넘 좋아졌습니다.. 화낼 일도 아니었고 화가 나지 않았답니다.

“우리는 정말 말씀대로의 테스트를 강하게 받았다. 넘어지지 않고 그 시간까지 평안함 가운데 기다리게 하신 주님이 너무 감사하다. 그리고 목사님과 나 그리고 집사님, 전도사님 모두 은혜를 쏟지 않아 감사했다. 모든 성도의 짐을 짊어지고 승리한 느낌이 확 들었다. 그래서 더 감사했다. 난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겠다 다시 결단하고 잠자리에 든다. 주님 너무 감사합니다. 그리고 주님 찬양합니다. 주님이 하셨습니다. 아멘.” 

성도 여러분, 터가 무너지는 것 같은 일이 일어나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터가 무너져도 살 길은 있습니다. 그것도 큰 길입니다. “시온의 대로”라 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오직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항상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믿음을 주십니다. 그러면 문제는 끝난 것입니다. 

다윗처럼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며 고백하며 찬송하며 살기를 축원합니다.
(유기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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