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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음이 청결한 자 (마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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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청결한 자 (마 5:8)


알베르 까뮈가 1943년에 쓴 희곡, 『오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의 내용은 체코 지방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쓰여졌으며, 당시의 시대적 정서와 암울함을 반영하는 이야기입니다. - 보헤미아 내륙에 외따로 떨어진 곳에서 두 여인, 즉 어머니와 그의 딸 마르타는 여인숙을 운영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딸 마르타는 자기가 살 곳이 그곳이 아니라고 확신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출렁대는 바닷물과 작열하는 태양이 있는 곳으로 떠나고자 합니다. 

이와 같은 억누를 수 없는 동경 때문에 마르타는 그곳을 떠나기 위해 범죄를 계획하게 됩니다. 즉, 투숙객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죽인 뒤에 시체를 강물에 던지고 돈을 빼앗는 것이었습니다. 그 딸의 어머니는 이런 죄를 짓지 않기를 바라지만 딸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범죄에 가담을 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여인숙에 돈 많은 귀족의 풍모를 지닌 한 젊은 남자가 찾아와 투숙했습니다. 두 모녀는 그 남자를 범행대상으로 정하고 밤이 되자 마취제를 먹이고 시체를 강물에다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 그 남자의 가방을 기대에 찬 마음으로 열었습니다. 가방 속에서 발견된 신분증과 빛바랜 사진들을 본 두 모녀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아주 어렸을 적에 가난한 집안 형편을 비관하고 집을 나간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20년이 지나 그 아들이 크게 성공해서 어머니와 여동생을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그 아들은 이런 허허벌판에서 꿋꿋하게 살아온 어머니와 여동생이 너무나 고맙게 느껴지는 마음에 그들을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하루저녁을 투숙객으로 가장해서 지내고 다음날 아침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고 멋진 해후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런 아들과 오빠를 죽이고 말았던 것임. 얼마나 기막힌 노릇입니까? 이 일로 인해 절망한 어머니는 아들을 던져 버렸던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을 하게 되고, 그 모습을 본 딸도 결국 어머니 뒤를 따르게 된다는 것이 줄거리입니다. 

여러분, 인간의 무모한 욕심이 얼마나 무서운 파멸을 가져오는지... 욕심의 끝이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현실을 보게 되지 않습니까? 알베르 까뮈는 말합니다. “인간의 육체와 영혼은 죽은 후에만 썩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남아있는 동안에도 절망과 욕심 때문에 썩어간다” 

세상에 욕심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욕심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게 하는지 경고하고 있습니다. 

(약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오늘 본문 말씀. (8절)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음의 청결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어느 정도 청결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마음이 청결한 수준만큼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문제는 마음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마음의 종교입니다. 이 말은 속사람이 변화하는 종교라는 의미입니다. - 우리의 모든 외적 행위는 내적 마음의 동기로 이루어집니다. 속마음은 불편한데 좋은 언어와 행위가 나올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행위와 옥구슬같은 말을 한다 할지라도 속 사람, 즉 근본 마음이 청결하지 못하면 그것은 하나의 자기 위선에 불과한 것입니다. 

아들, 딸 시집, 장가 다 보낸 60대 어느 여자 분이 어릴 때 친구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야기를 합니다. “애들아, 우리 집에 며느리가 잘못 들어온 것 같애! 어떻게 된 애가 오전에는 운동한다고 수영장에 가지, 오후에는 미장원에 가고, 동창들 만나서 수다나 떨지, 쇼핑하지, 집구석에 붙어 있는 적이 있어야지, 살림을 하는 것인지 마는 것인지 모르겠어”, ... 

한참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다시 그 여자가 입을 열어 말합니다. “애들아, 우리 딸은 정말 시집 잘 갔어. 신랑 잘 만나서 오전에는 수영장에다 에어로빅에다, 오후에는 미장원에도 가고 친구들도 만나고 .... 너무 너무 재미있게 살고 있단다.” ... 

며느리나 딸이나 같은 생활을 하고 있지만 며느리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살림을 팽개치고 싸돌아다니는 것으로 보이고, 딸에게는 지극한 사랑의 마음이 있기 때문에 재미있게 사는 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은 세상을 보는 눈입니다. 빨강색 안경을 쓰고 보면 세상이 빨갛게 보이고, 파란색 안경을 쓰고 보면 세상이 파랗게 보이는 것처럼,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보면 세상이 사랑스럽게 보이고, 미움과 증오의 마음을 가지고 보면 세상이 저주스럽고 추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사람의 삶은 대개 두 가지 스타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마음에 내켜야 하는 사람입니다. 무슨일이든지 내 마음에 내켜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따라가지 않는 행위는 절대로 용납하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이런 사람은 먼저 마음으로 결정을 내려야 행위가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그런가하면 다른 하나는 먼저 행동을 하고 마음으로 정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해놓고 보자는 식입니다. 저질러 놓고 마음으로 수습하는 형태입니다. 일단 일을 시작하고 마음으로 하나씩 정리하며 합리화시켜 가는 삶의 방식입니다. 어느 방식이 옳으냐가 아닙니다. 둘 다 결국은 마음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마음에서부터 시작하고 마음으로 돌아오는 것이 삶의 과정입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 살아가는데 마음의 상태가 얼마나 큰 동기를 제공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의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누가 청결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 되니까 문제입니다. 가끔씩 돌아서서 후회하는 순간이 얼마나 많습니까? “내가 왜 그랬을까?”, “내가 왜 그때 그 자리에서 그런 말을 했을까?”, 모르긴해도 생각해보면 대부분이 그때 그 자리 그 상황에서 내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말이 나간 것입니다.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잠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마음을 깨끗이 지켜 나가는 것, 이것이 청결입니다. 

‘청결’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카타로스(kataros)’라는 말인데, 이 말에는 몇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 1) 더러운 옷을 빨아서 잘 세탁된 깨끗한 옷,  2) 겨나 쭉정이를 다 제거한, 순전한 알곡의 상태,  3) 물이나 다른 불순물이 전혀 섞이지 아니한 순수한 포도주, 혹은 순수한 우유, 등을 말합니다. 

이렇게 청결은 깨끗함, 순전함, 투명함, 또 단순함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깨끗하다는 것은 잡스러운 생각이나 세속적 욕망, 등이 없는 바른 자세를 말하는데, 성경에서의 ‘마음의 청결(kataros)'은 가난한 마음을 넘어서서 이제는 죄 사함 받고 순전하고 정결함으로 담대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마음인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그 중심을 보시는데 그 중심이 바로 마음인 것입니다. 우리가 봉사하는 것도, 구제하는 것도, 기도하는 것도, 헌금하는 것도 그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해야 깨끗해질 수 있습니까? 

1. 그리스도 예수의 보혈로 죄 사함 받음으로 깨끗해질 수 있습니다. 

(요일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다. 

‘카타로스(청결)’라는 말에서 영어의 ‘카타르시스(Catharsis)’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이 말은 정화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어떤 어려움을 겪을 때, 실컷 울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지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바로 정화 작용 때문입니다. 이때 실컷 울어서 후련해지는 것을 ‘카타르시스’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마음의 모든 죄악을 깨끗이 씻어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 스가랴 선지자는 놀라운 예언을 했습니다. (슥13:1)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이 샘은 로마 군병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르는 순간에 터졌습니다. 마음의 죄와 더러움을 씻는 보혈의 샘이 열렸습니다. 이 보혈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죄로 악해지고, 더러워진 사람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2. 날마다의 말씀과 기도로 깨끗해집니다. 

(딤전4: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거룩한 사람이고,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복이 있어서 하나님을 본다고 했는데, 그 마음속에 더러움이 끼이면 거룩할 수 없습니다. 미움, 증오, 원망, 음란, 탐욕, 정욕, 등 이런 더러운 것이 가리우면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남을 미워해 보십시오. 그 마음의 눈은 어두워짐. 음욕을 품어보십시오. 벌써 마음이 더러워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깨끗해야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고, 사랑의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청결한 마음을 유지해야 합니다. 


3. 성령의 능력으로 거룩한 삶이 이어지게 됩니다. 

(갈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여러분, 성령을 따라 행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을 함부로 아무한테 주면 안 됩니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방치할 때, 사탄은 우리의 마음을 가져갑니다. 우리 마음의 주인은 성령님이십니다.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양심의 소리를 들으면 죄가 역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매일 같이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님께 나를 드리면 드릴수록 내게서 능력이 나타납니다. 성령님께서 내 마음을 청결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의로 채우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우리의 더러워진 마음을 깨끗이 씻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놀라운 하나님의 평화가 우리를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마음이 청결해지면 어떤 복을 받는 다고 하십니까?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우리의 마음이 청결해지면 범사에 하나님을 뵈온 듯 살게 됩니다. 

(창33:10)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고향을 떠난 지,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형 에서의 진노가 풀리지 않았을 것을 염려하여 얍복강을 건너기 전 괴로워합니다. 그때 그곳에서 천사를 만나 씨름을 하게 됩니다. 그 얍복강가에서 축복을 받은 야곱은 그곳의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짓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다는 것이죠? 그리고 평안한 마음으로 형 에서를 만납니다. 그랬더니 형 에서가 반갑게 맞는 것입니다. 그때 야곱이 고백한 말입니다. “내가 형님을 뵈오니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너무나 복되고 평안하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사실 복중의 복은 하나님을 보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뵙게 되면 우리의 삶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보는 사람은 절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소망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보는 사람은 두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보는 사람은 대충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결산의 날이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보는 사람은 불의를 행치 않음. 하나님이 지켜보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어느 목사님을 태우고 운전을 하며 길을 갈 때였습니다. 작은 사거리가 있었고, 신호등이 있었습니다. 정지 신호등이었는데, 사거리에는 아무 차도 오지 않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그냥 사거리를 건너갔습니다. 그랬더니, 옆에 앉은 목사님이 ‘저기 경찰이 있네’ 하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경찰이 없는 것입니다. 그 목사님이, ‘안 목사님, 뻥이야’, 그러는 것입니다. 왜 놀리느냐고 막 웃다가 생각을 했습니다. 경찰이 없다고 신호를 위반하고, 경찰이 있으면 신호를 지키고... 

우리가 사는 삶이 그럴 때가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경찰 앞에서 신호를 위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리 제 마음대로 죄를 지으면서 함부로 사는 사람도 하나님이 보이는 그 앞에서는 죄를 지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삶의 해답을 볼 수 있다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복 중의 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보는 사람은 욕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부요하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시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보는 사람은 무지하지 않습니다. 범사에 지혜로우신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보는 사람은 모든 것을 이깁니다. 하나님이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중에 충남 공주 탄천면 견동리의 작은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했습니다. 사실, 여러 가지로 바쁜 가운데서 나가게 된 부흥회라 허락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고, 나가기 전날까지 마음이 조금 힘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나가서 그 교회의 성도님들을 보고, 그분들에게 그래도 격려와 위로가 된 것 같아 보람있는 시간을 보내고 왔습니다. 교회가 개척된 지 30년 되었는데, 그 작은 시골 마을의 성도들이 아름다운 신앙공동체를 이루고 신앙생활 하는 것을 보며 제가 은혜를 받고 많은 것을 깨닫고 왔습니다. 교회 성도님들이 순수한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3일 째 되는 날 낮 시간, 그 교회의 연세드신 권사님 가운데 천 권사님이라고 계신데, 그 권사님이 그래요. “목사님, 목사님이 증말 이뻐 보이네유~ ”, 그래서 제가 그랬시유. “저한테는 권사님이 이뻐 보이네유~ ”, 그 권사님이 둘째 날 점심식사를 대접해 주셨습니다. 그 권사님은 그 마을에서 약간 있는 논과 밭에서 혼자 논 농사, 밭 농사를 짓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은 6남매를 두셨는데, 다 서울이나 다른 곳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한지 꽤 되었어도, 자녀들이 다 자란 후에 신앙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자녀들이 예수를 믿지 않아서 그것이 기도제목이었습니다. 최근에 6남매 중에 둘이 예수를 믿기 시작했다고 좋아하시면서, 시간 시간 아직 예수 믿지 않는 자녀들 이름으로 감사헌금을 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권사님이 워낙 믿음이 좋고 마음이 깨끗하셔서 자녀들이 믿음생활을 다 할 것이구먼유~ ” 

(찬송288장)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도다”, - 이 주간의 기도 제목입니다. “주여, 십자가의 보혈로 저의 모든 죄를 씻으시사 마음 깨끗한 사람,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땅에서 늘 하나님을 보며 사는 지혜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여러분, 요즘 시대가 흙탕물처럼 흐려져서 무엇인가를 분간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시대 속에서, 청결한 마음으로 진정 하나님을 만나서 행복한 삶을 사는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마음을 청결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놀라운 복을 다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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