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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십자가 보혈]가상칠언(架上七言) (눅 23:3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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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칠언(架上七言) (눅 23:33-46)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백성은 서서 구경하며 관원들도 비웃어 가로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군병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가로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때가 제 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며/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고난주간이 시작되었습니다. 고난주간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마감하시던 마지막 일주일을 기념하여, 교회 모든 성도들이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각자에게 주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자세를 재점검하는 주간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대적들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을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대로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주님은 최후의 며칠을 제자들과 함께 하시면서 십자가 이후를 준비하셨습니다.

주님은 유월절 의식을 제자들과 함께 지키시면서 ‘주의 만찬’(=성찬)을 제정해 주셨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자신의 대적들이 기다리고 있는 기드론 시내 저편으로 자원하여 나가셨고, 자발적으로 저들에게 잡히셨습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심문을 받으셨고,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았습니다. 죄 없으신 몸으로 가시 면류관을 써야 했고 로마 군병들에 의해 채찍에 맞으셨고, 마침내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아침 9시 제사시간에 못 박히신 예수님은 오후 3시 제사시간에 운명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던 여섯 시간 동안 십자가 위에서 직접 하셨던 일곱 마디 말씀(=가상칠언)에 대한 것입니다.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우리 모두 이 말씀들을 묵상하며 십자가의 은혜 가운데 이 주간을 지나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일생은 최후 유언이 중요한 법입니다. 그 사람이 남긴 말을 보면 그분의 성품이나 생활, 그리고 특히 그분의 사명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들은 사복음서에 고루 기록되어 있는데, 짧은 말씀들이지만 이 말씀들 속에 예수님의 성품과 신분과 사명의 힌트들이 분명합니다.

한 마디씩 읽어 나가면서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해보는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1. 원수를 위한 간구의 말씀
  
34절=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이것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저주를 퍼붓고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위대한 간구의 말씀입니다. 참으로 높고 거룩한 말씀입니다. 
  
이것은 가장 높은 사랑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때 십자가에 달려 고통 가운데 신음하면서도 원수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하나님 아버지께 진심으로 간구하신 것입니다. 과거 어떤 죄수들의 모습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말씀입니다. 이것은 원수의 사죄를 위한 간구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구약의 강직한 율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모세의 법은 “이는 이로 갚고 눈은 눈으로 갚으라” 고 말합니다. 
  
공자의 가르침도 이와 유사합니다. “원수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라고 묻는 질문에 공자가 답하는 말씀이 “원수에게 은혜를 베푼다면 친구에게는 어떻게 하리요. 원수에게는 마땅히 정당하게 공의로 갚아주고 친구에게는 은혜로 갚아주는 것이 마땅하다”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원수사랑은 확실히 구약의 단계보다 높고, 유교의 가르침을 초월해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인간의 모든 상식과 생활에도 높이 초월해 있는 절대적인 사랑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산상보훈을 통하여 원수에 대한 자세를 가르치신 바 있습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 5:44). 주님은 자신이 가르치신 말씀을 몸소 그대로 실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기도는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원수를 위한 간구의 말씀은 집사 스데반의 순교의 현장에서도 울려 퍼졌던 말씀입니다. 
  
행 7:59=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행 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스데반 집사님은 확실히 예수님을 따라갔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의 기도는 결국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바울이 후일 회개하여 하나님의 큰 일꾼이 된 것으로 응답을 받았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원수를 위한 간구의 말씀입니다. 최고의 사랑의 기도요 자신이 하신 교훈을 실천하신 기도이고 열매를 맺은 기도입니다. 이 주님을 더욱 사랑하며, 이 주님을 닮아가기 위해 힘쓰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구원 약속의 말씀
  
43절=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이 말씀은 갈보리 언덕 위 예수님의 옆에 달려 있던 한 강도에게 사죄를 선언하시고 그를 낙원으로 환영해 주시겠다는 보증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회개한 죄인에게 주신 구원 약속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말씀이 주어진 상황을 더듬어 보며 주님의 용서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이 때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이 무섭게 엄습해 오고 있을 때입니다. 사람이 고통이 너무 심하면 남을 생각할 여유가 없는 법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그 무서운 고통의 순간에도 회개하는 강도를 생각하셔서 구원의 손길을 뻗어 그를 낙원으로 이끌어 주실 약속을 주셨습니다.  

주님의 구원 약속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습니다. 주님의 옆에 달렸던  또 다른 강도는 구원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이 사람은 십자가의 참뜻을 알지 못했고, 십자가를 조롱거리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조롱하는 분위기에 편승해서 주님을 조롱했습니다. “네가 소위 그리스도란 자인데, 왜 이렇게 십자가에 달려 있나?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주님은 비방하는 자에게는 침묵으로 일관하셨습니다. 그러나 회개하며 자신을 낮추던 한편 강도에게는 입을 열어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이것은 용서의 말씀이고 대속의 말씀이며 천국을 보장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주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는 사람은 누구나 용서받은 이 강도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첫째로 자기의 죄를 깨닫게 되고, 둘째로 예수님을 높이게 되고, 셋째로 자신을 전적으로 예수님의 손에 맡기게 됩니다.
  
이런 사람이 십자가를 믿는 사람이고, 십자가의 의미를 터득한 사람이며, 이런 사람만이 십자가를 만난 사람입니다.

주님의 사명은 믿고 나오는 자들을 구원시키시는 데 있습니다. 주님은 겸손히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자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십니다. 이 주님을 더욱 의지하고 사랑하며 증거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육적 사명 완수의 말씀
  
요 19:26=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요 19: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보라 네 어머니라’하신대”

당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곁에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몇몇 여인들과 제자 요한이 안타까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모친 마리아에게 옆에 선 요한을 가리키면서 ‘저가 아들입니다’,  그리고 요한에게는 ‘네 어머니라’ 고 말씀하시면서 노모를 제자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적인 윤리를 완성하신 말씀이고, 육적인 사명을 완수하신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십자가에 달린 강도에게 구원의 약속을 주신 것이 하나님 아들로서 신령한 사명을 완수하신 것이라면, 여기 모친 마리아에 대한 배려는 아들로서 노모를 위한 인간적인 사명을 다하는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모친의 노후를 요한에게 맡기셨습니다.

예수님에게 네 사람의 동생이 있었는데, 왜 예수님은 노모를 요한에게 부탁하셨을까요? 
로마 카톨릭은 그 동생들이 예수님의 친동생들이 아니고 요셉의 전처의 소생들이고, 마리아는 요셉의 후처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들은 본문의 기사가 이를 증명하는 것으로 봅니다.
  
요셉의 기록이 예수님 열 두 살 이후에 전혀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아 요셉이 나이 많은 사람이었고, 상처해 있다가 젊은 마리아와 재혼했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외경에 그것을 뒷받침하는 기록이 있습니다만, 우리 개신교에서는 받아들이지 않는 학설입니다.

자연스런 해석은, 이때까지 예수님의 동생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으니까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이 신앙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마리아를 더 따뜻이 모실 수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 요한에게 맡기셨다고 보는 것입니다. 주님은 최후의 순간, 고통스런 순간에도 육신적인 사명을 등한히 하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종종 신앙을 빙자해서 인간적인 사명을 등한히 한 적이 없는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께 바칠 것은 하나님께, 가이사에게 바칠 것은 가이사에게, 그리고 부모님께 바칠 것은 부모님께 바쳐야 합니다. 인륜과 신륜, 신앙과 율법의 의무를 혼돈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생활의 핑계 하에서 육신적인 의무를 등한히 하지 않도록 주님은 몸소 십자가 위에서 모범을 보이고 계십니다.

      
4. 대속 사명 완수의 말씀
  
마 27:46=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이것은 십자가 위에서 하신 일곱 마디 말씀 중 네 번째 말씀입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 이 말씀은 유대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던 일상어인 아람 말입니다.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는 뜻입니다.

어떤 분은 이 말씀이 예수님께서 너무 고통스러워서 부르짖은 말이라 생각합니다만, 우리 주님의 다른 말씀들을 살펴볼 때, 주님께서 정신없이 비명을 지른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것은 주님의 의도적인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하실 때의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당하신 순간이었습니다. 왜 버림을 당하셨습니까? 그것은 예수께서 인류의 모든 죄를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거룩한 속죄의 말씀이고, 대속 사명 완수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인류의 죄짐을 대신 지시고 자신을 희생하셔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데 있습니다. 이제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그 위대한 목적을 이루시면서, 주님은 큰 소리로 대속 사명 완수의 말씀을 외치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사명을 완성하는 공적인 기도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일생을 통하여 언제나 하나님을 “아버지여” 라고 부르셨는데, 오직 여기서만 “하나님이여” 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 때는 그가 거룩한 공적인 사명을 완수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인류의 모든 죄를 친히 담당하시고 죄인의 대표된 신분으로 하나님을 차마 “아버지” 라 부르지 못하시고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죄인의 어두움에 함께 하신 주님, 세상의 빛으로 오셨으면서도 우리를 어두움으로부터 건지시기 위하여 어두움 속에서 죽으신 주님 -- 죄인을 구하시기 위하여 죄인의 자리로 내려 오셨고, 죄인처럼 하나님과 분리되는 아픔을 경험하신 주님이십니다.

우리 모두 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내게 주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결심을 다지는 시간이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 성경을 응하게 하신 말씀
  
요 19:28= “이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사 가라사대‘내가 목마르다’하시니”

이때는 온 세상이 신비한 어두움으로 짙어진 때입니다. 주님께서는 영혼이 떠나기 마지막 순간에 세 마디 말씀을 주셨습니다. 
  
먼저 본절에 “내가 목마르다” 라고 하셨는데, 요한복음의 기자는 이것을 예수께서 성경을 응하게 하려고 이 말씀을 하셨다고 기록했습니다. 

시편 69:21절에 “저희가 쓸개를 나의 식물로 주며 갈할 때에 초로 마시웠사오니” 라고 했는데, 주님은 그 말씀을 이루기 위해 “내가 목마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님께 드리니까 받으시고 운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다섯 번째 말씀은 성경을 응하게 하신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내가 목마르다” 라고 하신 예수님은 본래 목마른 자에게 생수를 공급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라고 자신있게 초청하시던 분이십니다.
  
그렇다고 그가 목마르지도 않은데 목마르다고 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는 진실로 목말라하셨습니다. 그는 우리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시기 위하여 먼저 자신이 목말라야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지극한 육적인 고통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고통 가운데 가장 큰 고통은 목마름의 고통이라 합니다. 몸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진액이 빠져 나갈 때 극한 갈증을 느끼게 되는데,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몇 시간 동안 당하신 고통을 총괄한 것이 “내가 목마르다” 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장면입니다. 감당키 어려운 고통 가운데서 주님은 성경을 이루기 위해서 고통의 말씀을 토해 내셨습니다. 나를 위해 주님께서 당하신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더 실감하며, 더 감사해 하며, 주께 더 충성하고자 하는 결심을 다지는 한주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6. 사명 완수 선언의 말씀
  
요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다 이루었다’하시고...”

‘목마르다’ 고 하시던 주님은 이제 “다 이루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사명 완수를 선언하신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구약의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의 말씀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과 예수님의 구속의 사역이 모두 완성되었습니다. 이것은 외적인 성취입니다.
예언의 말씀은 내적으로도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구속의 대업을 예수님은 모두 이루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을 외적으로 완수하셨고, 내적으로도 완전히 이루셨습니다.

주님은 율법의 모든 요구를 이루셨습니다. 주님은 구약의 모든 제사와 희생들을 자신의 십자가 희생을 통하여 완성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우리의 죄값으로 받아야 할 모든 고난을 스스로 감당하셨습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치루셨습니다. 

여러분, 주님은 마지막 숨을 거두기 직전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승리의 개가를 부르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테텔레스타이) -- 이것은 승리의 말씀입니다.

우리의 사도 바울도 마지막 가는 길에 주님의 이 말씀을 사용했습니다. 
  
딤후 4: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여기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의 ‘마치고’ 라는 단어가 주님이 외치신 ‘테텔레스타이’ 입니다. 본래 죄인의 괴수였던 바울이었지만 은혜 받고 변화하여 푯대를 향한 삶을 살아 이처럼 승리의 개가를 부를 수 있었습니다.

우리 또한 자신의 최후의 순간에 침상에 둘러선 자녀들 앞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내가 다 이루었노라” 라고 외칠 수 있는 성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7. 최후까지 순종의 본이 되신 말씀
  
눅 23: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우리 모두는 7, 80년 세상에 살다가 마지막에 하나님 앞에 불려 갑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임종의 순간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처참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  이 말씀은 사람에 대한 위대한 모범의 말씀이고, 최후까지 순종의 본을 보이신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 기도는 우리의 최후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보이신 순종의 모범은 최후의 이 말씀에서 더욱 돋보이고 있습니다.  주님은 숨을 거두면서도 하나님 아버지와의 재회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성도들이 하나님 아버지와 인격적 교제를 가져야 할 것을 몸소 모범으로 보이셨습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집사 스데반도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영혼을 주님께 맡겼습니다.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행 7:59).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 이것이 여러분의 최후의 기도가 되도록 평소에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께서 골고다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마지막 일곱 마디의 말씀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들 말씀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죽음은 지극히 고통스런 죽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육적으로 최대의 고통을 맛보셨고, 정신적으로도 말할 수 없는 통증을 느끼셨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버림받는 영적인 고통은 우리가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가상칠언의 말씀이 보여주는 것은 또한 십자가의 죽음은 그리스도의 사명을 완수하는 순간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메시야의 사명으로 회개한 강도를 용서하시며 구원시켜 주셨고, 육적인 사명으로 모친에 대한 효성을 보이셨고, 인류의 죄짐을 지시고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담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인류를 위한 영원한 죽음이 되십니다. 
히 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주님의 죽음은 단 한번으로 모든 인류의 구원을 완성하신 십자가 죽음입니다.

그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십자가의 은혜 -- 십자가의 참된 은혜를 받아 누리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대구서현교회.박순오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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