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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 아이 같이 되라 (마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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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 같이 되라 (마 18:1-6)


1.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2.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3.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5.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6.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고 따르던 제자들은 다른 유대인들처럼 우리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왕이 되셔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고, 영원하고 견고한 나라를 세우게 되시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두 아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찾아와서 조용하게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다시 말하면 예수님 좌우편에 좌의정, 우의정으로 앉게 해 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마 20:21) 이 사실을 뒤늦게 들은 제자들은 분을 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을 보면 제자들 모두가 ‘이제 예수님께서 왕이 되시면 한 자리 차지해야지!’ 라는 마음이 굉장히 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9장 33~34절의 「33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34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는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의 한 집에서 머무실 때 제자들에게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길에서 제자들이 ‘누가 크냐?’라는 문제로 다투는 것을 들으셨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가 되었다는 것은 생각도 않고 예수님께서 왕이 되실 것만 생각하고 서로 한자리할 것만 생각하다 보니 이렇게 서로 논쟁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세우실 나라는 이 세상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만 되시는 것이 아니고 만왕의 왕이 되십니다.

요한계시록 17장 14절에서는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라고 우리 예수님은 만주의 주가 되시고, 만왕의 왕이시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이 비밀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러한 제자들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천국에서 큰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질문을 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워놓고 「3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5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6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마태복음 18장 3~6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사람이 돌이켜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그 사람은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에서는 어떤 사람이 큰 사람인가 하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는 큰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또,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는 것이 예수님 영접하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어린 아이를 낙심시키고, 실족시키면 당나귀가 돌리는 큰 연자 맷돌을 목에 달고 바다에 빠뜨려져서 죽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살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것은 저와 여러분은 천국 시민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지금 비록 이 세상에서 고생하며 살지만 천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천국 시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어 구원 받은 성도들은 천국 시민으로서 마땅히 천국 법을 따라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라고 하는 곳은 예수 믿어 구원 받은 사람, 천국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여서 천국 법을 지키며, 천국생활을 훈련하는 곳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다 천국에 갈 사람입니다. 그런데 천국에 가는 그날까지 교회에 모여 천국 법을 지키면서, 천국 생활 훈련하는 곳이 교회인 것입니다. 이 천국 법은 하나님의 계명을 가리킵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 전체를 다 요약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더 요약하면 ‘사랑하라!’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했습니다. 천국 법은 ‘사랑하라!’라는 그런 계명입니다. 이 천국 법대로 살면 지상 교회가 천국과 같은 교회가 됩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인들 중에는 이 천국 법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천국과 같은 교회가 되어야 할 교회가 지옥과 같은 교회가 되어 서로 미워하고, 싸우고, 비방하고, 이간질하고, 추태를 부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교회가 된 곳이 많습니다.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여러분, 교회에 나온 지 오래된 사람들까지도 마치 믿음이 없는 세상 사람들처럼 제멋대로 살고, 천국 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살게 되는 것은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거듭난다고 하는 것, 중생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어머니에게서 한 번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어 구원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그 순간은 하나님의 자녀로 두 번째 태어난 순간이어서 ‘거듭난다.’, ‘중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거듭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거듭난 자라야 하나님의 자녀고, 거듭난 자라야 천국 시민이기 때문에 거듭난 자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3장 3절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는 말씀과 5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라는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거듭난 자라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고, 거듭난 자라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거듭난 사람은 반드시 회개가 있습니다. 그러나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회개가 없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 앞에 죄를 눈물로 회개하며, 모든 죄를 자복하고 용서를 받게 되어 회개하다가 불을 받고, 회개하다가 은혜를 받기 때문에 회개하는 사람을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거듭난 사람에게는 감사가 있으나 거듭나지 않은 사람에게는 감사가 없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구원받은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내 모든 죄를 다 씻어주신 그 은혜 생각하며 감사합니다. 죗값으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데 믿음으로 구원받게 해주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 믿어지는 것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께서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감사할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감사할 줄 모릅니다. 거듭난 사람은 구원의 즐거움과 기쁨이 있습니다. 구원 받은 것,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천국백성이 된 것이 생각만 해도 너무 즐겁고 기쁜데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그런 기쁨도 즐거움도 없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변화가 있습니다. 생각과 성품과 가치관이 달라지며, 점점 변화가 됩니다. 그러나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변화가 없습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왜 변화가 되지 않는 것일까요? 

그 사람 속에 성령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처럼 예수 믿는 사람들은 모두가 그 속에 하나님의 성령이 계십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보면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으로 살게 되고, 회개하게 되고, 변화가 점점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성령이 없기 때문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유다서 1장 19절을 보면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라고 합니다. 교회 안에서 분열을 일으키고,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은 그 속에 성령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고,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에 변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은 믿음이 없는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은 반드시 변화가 있습니다. 어른 행세하며, 목에 힘을 주고 교회에서 항상 자신만이 훌륭하고 어른인 줄 알던 사람이 거듭난 후에 은혜를 받고, 변화가 되면 마치 어린 아이와 같이 변합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어린 아이와 같이 변화가 됩니다. 교만하고, 잘난 척하고, 큰소리치며, 남을 비판하기 좋아하고, 말이 많던 사람도 거듭나게 되면 온유하고 겸손하고 사람이 아주 순수해지며, 단순해집니다. 

마태복음 8장 5절에 보면 백부장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5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6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7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8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9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10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당시는 로마가 전 세계를 정복해서 이스라엘도 식민지 상태였습니다. 이 로마의 백부장은 대단한 권세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면 예수님 앞에서도 뻣뻣하고, 큰소리칠 수도 있지만, 이 백부장은 거듭난 사람이기에 겸손한 모습을 보입니다. 주님께서 집에 가셔서 병을 고쳐주겠다고 하셨는데도 자신과 같은 죄인이 어떻게 주님을 오라 가라 하겠냐고 말씀 한마디만 하시면 낫겠다고, 인간도 권세가 있으면 시키는 대로 하는데 하물며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오고 가고 할 필요 없이 말씀 한마디면 낫겠다는 대단한 믿음을 보인 것입니다. 어떻게 백부장이 이처럼 온유하고, 겸손하며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거듭났기 때문에 이런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모든 것이 다 변합니다. 과거에는 남보다 높아지려하고, 남과 싸워서라도 이기려하고, 남을 짓밟고 깎아내리는 것을 좋아하던 사람이 다른 사람을 세워주고, 높여주며, 자신이 낮은 자리에서 다른 사람을 섬기려고 하는 사람으로 변화가 됩니다. 성품이 악하고, 불의하고, 거짓된 진실치 못한 사람도 거듭나면 착하고, 의롭고, 진실한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남을 미워하고, 시기 질투하던 사람도 거듭나면 남을 사랑하고, 그들이 잘되면 기뻐하는 사람으로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름답게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은 이렇게 변화가 된 사람들입니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와 조지 휫필드 목사는 목회의 방법과 구령의 열정이 똑같았습니다. 그런데 다만 신학에 대한 견해는 달라 논쟁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루는 이 사실을 알던 한 사람이 휫필드 목사에게 “목사님은 웨슬리 목사님과 신학과 진리에 대한 견해가 다른데, 목사님께서 천국에 가시면 웨슬리 목사님을 만나실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휫필드 목사는 “아마도 천국에서 웨슬리 목사님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님 보좌 옆에 앉아 있을 것이고 나는 저 구석 멀리 떨어져 앉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처럼 상대방을 높이고, 상대방을 존귀하게 대접하는 아름다운 성품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거듭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거듭난 사람들은 이렇게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유명한 흑인 교육가 부커 워싱턴 박사가 앨라배마의 터스키기 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한 후 그 지역의 백인 부자들이 살고 있는 동네에 산책을 나갔을 때입니다. 그때 어느 백인 부인이 나와 그에게 몇 달러를 줄 테니 자신의 집의 장작을 패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웃으며 소매를 걷어붙이고 장작을 패서 벽난로 옆에 차곡차곡 쌓아준 후 몇 달러를 받고 떠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집의 흑인 하녀가 그를 알아보고 주인에게 그가 바로 터스키기 대학교의 총장임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 부인은 너무 부끄럽고 당황해 다음 날 아침 일찍 총장실로 찾아가 백배사죄했습니다. 그러자 부커 워싱턴 총장은 “부인, 괜찮습니다. 저는 가끔 육체의 노동을 즐거워합니다. 그뿐입니까. 이웃을 위해 돕는 것은 언제나 기쁜 일이지요.”라며 오히려 부인을 위로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인격과 성품을 가질 수 있었겠습니까? 거듭난 사람은 이렇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거듭나셨습니까? 거듭난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두 번 죽지 않고 한 번만 죽습니다. 세상에서 죽는 것이 첫 번째 죽음이고, 심판받아서 지옥에 들어가는 것이 두 번째 죽음입니다. 두 번 태어난 거듭난 사람은 한 번만 죽지 두 번 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부활하여 예수님과 함께 영생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0장 6절에 보면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12절에 보면 「12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라고 하나님 앞에 심판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곳에는 책들이 펼쳐져 있고 또 다른 책이 펼쳐져 있는데 그 책은 생명책입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사람은 천국에 가고,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사람들만 펼쳐진 책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는데, 그곳에는 자신의 행위와 자신이 지은 죄가 새까맣게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행한 대로 심판을 받아서 영원한 불못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계 20장 12~15절) 그러나 거듭난 사람은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고 이 심판을 받지 않고 첫 번째 부활 후엔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함께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한가족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가 된 사람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영원히 함께 살게 될 사람들입니다. 육신의 형제자매는 갈라질 수 있지만, 거듭난 형제자매는 갈라지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우리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도 서로 사랑하며, 한가족처럼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 5절을 보면 「5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6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어떻게 행하여야 합니까? 어린 아이 한 명을 대할 때도 예수님을 대하듯이 하라고 하십니다. 그 어린 아이 한 명을 영접하는 것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든지 어른 행세를 하면 안됩니다.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항상 섬기는 자리에 어린 아이를 섬겨도 예수님 섬기듯이 서로 섬기며, 서로 대접할 때, 땅 위에서도 천국을 맛보며 살다가 천국에 가서 영생복락을 누리고 살게 될 줄 믿습니다. (정필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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