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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타이밍 (요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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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타이밍 (요 11:1-8)
  

현대인들에게 장점이자 약점인 습성이 있는데, 그것은 서두르는 것입니다. 뭐든지 빨리빨리 해치우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우리 한국 사람들이 대표적이죠. 한국인을 접촉해 본 외국인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 ‘빨리빨리’라고 하지 않습니까? 빨리빨리 습성이 나름대로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순발력이 필요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그 이면에 부작용도 적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건물을 지을 때 너무 서두르다 부실 공사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한 가지 예를 들면, 최근 피자 배달하던 청년이 교통사고로 숨졌습니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 피자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변을 당한 겁니다. 주문한 후 30분 내에 배달하지 못하면 피자 값 안 받는다는 경쟁적 영업방식이 이런 비극을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조건 빨리 하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장 신속하게 일을 처리해 주시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서두르지 않으십니다. 중요한 것은 타이밍입니다. 타이밍이 무엇입니까? 가장 좋은 시기를 맞추는 것입니다. 설사 늦더라도 타이밍을 잘 맞추면 오히려 축복입니다. 전9:11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 이는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임함이니라” 빠른 게 능사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시기와 기회입니다. 이게 바로 타이밍입니다. 

신약성경 원어인 헬라어로 시간을 표현하는 단어가 두 가지입니다. 크로노스(χρονος)와 카이로스(καιρος)입니다. ‘크로노스’는 단순히 흘러가는 시간을 의미합니다.(cf. 영어의 chronology) 그러나 ‘카이로스’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나타난 의미있는 시간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어떤 중요한 일이 일어나는 결정적 시간이요 섭리적 시간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매일매일 기계적으로 흘러가는 날이 있습니다. 별 의미가 없습니다. 이게 크로노스입니다. 그런데 똑같은 날이라도 대학입시를 치르는 날은 전혀 다릅니다. 결혼식 날도 마찬가지이죠. 인생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하고 결정적인 날입니다. 이게 바로 카이로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 가운데 섭리하시며 시기를 맞추십니다. 가장 좋은 때를 결정하십니다. 그게 바로 ‘타이밍’입니다. 그래서 자주 강조해서 말씀드리죠.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가장 좋은 방법으로, 가장 좋은 때에(Best Thing, Best Way, Best Time) 허락해 주십니다.” ‘가장 좋은 때’는 ‘당장’ ‘빨리’일 수도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 않습니다. 때로는 ‘나중’ ‘늦게’일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빠르고 늦은 것을 갖고 섣불리 일희일비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는 지혜를 갖는 게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런 지혜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본문은 잘 아시는 대로 죽은 나사로를 살려낸 놀라운 이적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나사로의 시신이 냄새를 풍기고 있었는데, 이를 살려낸 겁니다. 예수님이 생명이요 부활의 주님이심을 증거한 놀라운 사건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 사건을 시간의 관점에서 관찰해 보고자 합니다. 나사로가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데, 예수님은 전혀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지체하셨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하루는 베다니 마을에서 멀리 계신 예수님께 전갈이 왔습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 동남쪽 3km 지점에 있는 작은 마을인데, 그곳에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 3남매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평소 예수님과 친분이 두터웠습니다. 3절.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사랑하시는 자’는 나사로를 가리키는데, 평소 얼마나 가까운 사이였는지 암시해 줍니다. 

여러분, 이런 경우에는 상식적으로 어떻게 해야 될까요? 깜짝 놀라서 황급하게 달려가야 합니다. 가장 빠른 방법으로! 요즘 식으로 말하면 비행기를 타든, KTX를 타든 최대한 빨리 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 때 예수님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입니다. 5절~6절. “5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사랑하는 나사로가 병들어 곧 죽을지도 모르는데, 있던 곳에서 이틀을 더 유하셨습니다. 전후 문맥을 보면, 급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이런 생각도 해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굳이 나사로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지 않아도 마음만 먹으면 먼 데서 말씀으로 그 병을 고쳐주실 수 있습니다. 요4:43~54 보면, 그런 사례가 있었습니다. 왕의 신하가 예수님께 나아와 자기 아들이 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으나 함께 가셔서 고쳐줄 것을 간청합니다. 그때 예수님이 그 아들이 살았으니 그냥 돌아가라고 명령하십니다. 인간적으로 섭섭할 수 있었는데,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돌아갑니다. 

중간쯤 가는데, 그의 집 하인이 헐레벌떡 달려옵니다. 그 아들이 살았다고 소식을 전합니다. 낫기 시작한 시각을 따져보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때였습니다. 예수님이 가까이 가지 않았어도, 손을 대고 안수하지 않았어도 그냥 치유된 겁니다. 무선(wireless)으로! 나사로의 예수님이 마음만 먹으면 그렇게 하실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틀 후에 출발하셨는데, 그 후에도 여전히 서두르지 않습니다. 베다니 마을에 겨우 당도한 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가 차례로 맞이하러 갔는데, 예수님은 마을로 들어오지 않고 그 밖에 계속 머물러 계셨습니다. 요11:29절~30절을 보십시오! “29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30 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가 맞이했던 곳에 그대로 계시더라”

그러면 예수님은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다분히 의도적이었습니다. 일부러 시간을 지연하셨다는 겁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타이밍을 맞추시기 위함이었습니다. 

[1] 예수님이 지체하신 이유 : 하나님의 타이밍 맞추기

본문 외에도 이런 예가 자주 등장합니다. 요한복음 2장을 보면, 가나 혼인잔치 집에서 포도주가 떨어져서 급한 상황입니다. 모친 마리아가 친척집인지라 급한 마음에 나서서 예수님에게 어떻게 해 보라고 요청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뭐라고 대답하죠? 요2:4 “ ...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여자여! 이 말은 헬라어로 귀부인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어머니에게도 사용하는 말입니다. 정중하지만 분명히 거절합니다. 예수님의 때가 아니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타이밍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에야 하인들을 시켜서 물을 채우게 하고 떠다 주게 함으로 물이 포도주 되는 이적을 행하십니다. 

또 하나 예를 들어보죠. 요한복음 7장을 보면, 동생들이 예수님께 메시아라면 유대로 올라가 대중에게 나타내 보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뭐라고 대꾸하시죠? 요7:6 “ ...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타이밍이 안 맞으니까 안 간다고 말씀하신 겁니다. 그런데 동생들이 간 후에 나중에 따로 가십니다. 예수님은 아무 때나 아무렇게나 행동하지 않고 철저히 하나님의 시간표에 의해 움직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은 아무 때나 빨리만 하면 좋은 줄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타이밍을 맞추십니다. 전3: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오히려 늦어진 게 다행일 때가 너무너무 많습니다. 성경의 예를 하나 들어 보죠. 요셉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다가 나중에는 감옥에까지 갑니다. 모든 게 꼬여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섭리 가운데 세밀하게 역사하고 계셨습니다. 그가 감옥에 갇혀있을 때 술맡은 관원장을 만납니다. 그가 출옥하면서 요셉의 애매한 사정을 듣고 석방시켜 줄 것을 약속합니다. 그런데 감감 무소식입니다.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그러나 어떤 일이 벌어지죠? 창41:1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 ” 만 2년 후에 바로 왕이 꿈을 꾸고 뜻을 몰라 고민할 때 그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게 됩니다. 요셉이 바로 왕에게 호출되어 꿈을 해석해 준 것이 계기가 되어 일약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만일 그 권원장이 출옥 즉시 석방시켜 주었다면, 요셉이 어떻게 됐을까요? 어디 가서 종살이를 하거나, 기껏해야 평민으로 살다 인생을 마쳤을 겁니다. 2년 늦어졌지만 오히려 잘 된 겁니다. 

오늘 본문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타이밍을 보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지체하신 겁니다. 어떤 의도로 그렇게 하셨을까요? 

① 하나님의 영광 :

첫째는,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드려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병이 죽을 병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기회로 생각하셨습니다. 4절. “ ...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 ” 기왕에 그렇게 된 것 가장 크게 영광을 드러낼 수 있으려면 오히려 지체하는 게 좋다고 판단하신 겁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최고조로 드러낼 수 있도록, 드라마틱하게 역사하실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가신 겁니다. 나사로가 병들어 있을 때 고쳐주시는 것이나, 죽은 후에 살려 주는 것이나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입장에서는 그게 그겁니다. 

② 믿음의 연단 :

둘째로, 나사로 본인은 물론이고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 심지어 제자들에게 믿음의 연단 기회로 사용하셨습니다. 요11: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 ” 그곳에 있었으면 그냥 병을 고쳐주셨겠죠. 그런 케이스는 여러 번 봤습니다, 지금 제자들은 병을 고치는 예수님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죽은 자도 살리는 생명과 부활의 주님이심을 보여줄 수 있게 됐다는 뜻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지만 아직 신앙이 온전치 못합니다. 그들의 신앙은 제한적입니다. 요12:21 보면 마르다의 고백이 나옵니다.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예수님이 병은 고치지만 죽음의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신앙이 좋았던 마리아조차 예수님을 만나 고백한 말을 봐도 비슷비슷합니다. 요11: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나사로의 무덤에 다가가신 예수님은 돌문을 치우도록 지시합니다. 당시 유대인의 매장법은 자연 동굴에 시신 안치하고 돌문으로 닫아놓거나, 혹은 바위를 파서 인조 동굴을 만든 후 시신을 안치하고 돌문을 닫아 둡니다. 그때 마르다의 반응이 어땠나요? 요11: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시신이 부패했다며 만류했지만, 예수님은 뜻을 굽히지 않고 계속 요구하셨고, 결국 돌문이 치워집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 죽은 나사로를 향해 외칩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나사로가 살아난 것입니다. 수의를 입은 채로 뚜벅뚜벅 걸어 나왔습니다. 모두 놀랐을 것이고, 그로 인해 그들에게 믿음의 시야가 환히 열렸을 겁니다. 

예수님은 이제 곧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됩니다. 그러면 따르던 자들이 울고불고 난리가 날 겁니다. 배신자가 속출할 겁니다. 그 때를 대비해서 가장 친한 3남매와 제자들에게 부활의 주님을 믿는 믿음을 심어주시려고 의도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약1:3~4 보면 믿음의 연단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합니다.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세상이 험악합니까? 우리가 천국 가기 전까지는 어차피 이런 세상에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가운데 우리가 승리하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냥 도와주는 게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심으로 우리를 강하게 하십니다. 거친 파도는 사공을 강하게 합니다. 파도 가운데 노련해진 사공은 어떤 파도도 헤치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③ 불신자 전도 : 

셋째로, 예수님은 불신자를 전도하기 위해 지체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초상이 나면 온 동네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예수님은 그런 기회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더 나아가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이심을 깨우쳐 주고 싶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나사로가 죽고 난 후에 당도하자 빈정거리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요11:37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불신자들의 완악한 모습입니다. 그들을 불신앙을 안타까워하신 예수님이 어떻게 하십니까? 요11: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그들이 보는 앞에서 기도하고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나사로가 살아나자 난리가 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몰려옵니다. 요12:9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보기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

[2] 하나님의 타이밍을 믿는 성도의 자세 : 기다림, 기도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예수님이 지체하신 것은 이처럼 다목적 섭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타이밍을 중시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우리 성도들은 어떤 자세로 인생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기다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또 기도하면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분명 우리를 위하시고, 결국에 가서는 모든 것을 좋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런데도 우리는 늘 조급합니다. 도대체 주님은 우리의 다급한 사정을 알고 계신 것일까? 왜 우리의 사정을 몰라주시는 것일까? 과연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는 것일까? 이런 생각들을 하며 불평합니다. 그러나 그런 순간순간에도 주님은 역사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소홀히 여기시는 게 아닙니다. 버리신 게 아닙니다. 때로 기도의 응답이 지연된다 해도 다 듣고 계십니다. 타이밍을 보고 계실 뿐입니다. 그러므로 낙심도 절망도 하지 말고 믿음으로 기다리십시오. 갈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여러분, 기도의 응답을 받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응답받을 때까지 기도하는 겁니다. 기도 응답을 잘 받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포기하지 않고 응답받을 때까지 기도하느냐 아니냐의 차이입니다. 시126:5~6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눈물로 기도하면 설사 오랜 시간 기다린다 해도 반드시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중국의 대나무는 아주 특이합니다. 나무를 심고 나서 물과 거름을 주지만 4년 동안 작은 죽순만 올라오고 거의 성장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5년째 되는 해에 놀랍게도 5주일 동안에 무려 20~30미터나 자란다고 합니다. 좋은 것일수록 빨리 되지 않습니다.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이 대나무는 5주일 동안 자란 건가요? 아니면 5년 동안 자란 건가요? 5년 동안 자란 겁니다. 만일 2~3년, 3~4년 기다리고 뽑아버리면 얼마나 큰 손해입니까? 

요즘 졸업과 입학 시즌이라 자녀들 때문에 기분이 좋은 분들도 있지만, 마음이 답답하고 힘드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다른 집 아이들은 잘만 되는데, 왜 우리 잡 아이들은 이런가? 그런 생각이 들면 꽃들을 생각해 보세요. 봄, 여름, 가을, 겨울 각 계절마다 다양한 꽃들이 핍니다. 개나리, 벚꽃, 장미, 해바라기, 국화, 코스모스, 매화, 동백 등. 먼저 핀다고 좋고 나중 핀다고 나쁜 게 아닙니다. 각기 시기적절하게 피어나고, 그 나름대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니까 혹시 아이들이 늦되면, 우리 자식은 국화인가보다 그렇게 생각하십시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자녀들을 우해 눈물로 기도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꽃을 피우게 하는 날이 올 줄로 믿습니다. 

영혼을 위한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아의 아버지’, ‘기도의 성자’ 등의 별명을 가진 조지 뮬러는 생애 통산 5만 번 기도 응답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의 기도 수첩을 보면 대상자 이름과 기도제목이 빼곡히 적혀 있습니다. 1년, 2년, 10년, 심지어 50년 이상 기도한 후에 응답받은 것도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 친구 5명을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한 적이 있었는데, 조지 뮬러가 늙어 임종할 무렵까지 2명의 친구가 믿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 중 1명이 그가 병석에 누워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다행히 그 친구는 조지 뮬러의 마지막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그런데 마지막 1명은 인도하지 못한 채 천국에 갔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도 조지 뮬러가 자기를 위해 52년간 기도했다는 말을 듣고 감동받고 마침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그 친구는 변화되어 영군 전역을 돌며 간증했습니다. “여러분, 조지 뮬러의 기도는 다 응답되었습니다. 제가 바로 마지막 응답입니다. 기도는 반드시 모두 응답됩니다.” 다음 달 새생명축제를 앞두고 계속 광고하니까 부담이 되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동안에도 여러 번 기도하고 시도했는데 안 됐었는데, 이번이라고 별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습니다. 가족이라도 친구라도 이웃이라도 마치 벽처럼 느껴질 때가 있죠. 그래도 다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기다리며 기도하다 보면 그들이 분명 하나님께 돌아올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결코 서두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애를 써도 안 되고, 기도해도 안 되고, 울어도 안 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타이밍을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굳센 믿음으로 인내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십시오. 무엇보다 끝까지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가장 좋은 방법으로 가장 좋은 때에 이뤄주실 줄로 믿습니다. 부디 이 믿음으로 꼭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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