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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율법을 존중하라 (호 8: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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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율법을 존중하라 (호 8:11-14)
 

북 이스라엘은 B.C. 721년에 앗수르가 쳐들어와서 망해버렸습니다. 북 이스라엘이 망한 핵심적인 원인은 호세아 8장 1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저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가지로 기록하였으나 저희가 관계없는 것으로 여기도다” (호 8:12) 하나님께서 율법을 만 가지나 기록해주셨는데도 관계없는 것으로 여기다 망해버렸다는 것입니다. “나팔을 네 입에 댈지어다 대적이 독수리처럼 여호와의 집에 덮치리니 이는 무리가 내 언약을 어기며 내 율법을 범함이로다” (호 8:1) 

나팔을 입에 댄다는 것은 전쟁이 일어난다는 의미입니다. 독수리 같이 대적이 오는 이유는 율법을 범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북 이스라엘은 왜 망했습니까? 율법을 범해서 망한 것입니다. 남 유다는 왜 망했습니까? 율법을 범해서 망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은혜로 애굽에서 건져낸 하나님 백성의 모형이며 교회의 모형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망해버렸습니다. 율법은 구원 받느냐, 아니냐 이런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율법은 구원의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 흥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기준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구원 받는 것은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하지만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망하느냐, 흥하느냐 하는 것과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느냐, 하나님의 징계를 경험하느냐 하는 기준은 율법에 있다는 것입니다. 

I. 율법의 의미와 기능 

 1. 율법의 범위상 구분 
  
율법이라고 하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정의를 내릴 필요가 있습니다. 율법을 먼저 범위상으로 광범위하게 정의하자면 “구약성경 전체”를 말합니다.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다른 방언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저희가 오히려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고전 14:21) 

여기서 바울이 인용한 말씀은 이사야 28장 11절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이사야서까지도 율법의 범위에 포함한 것입니다. 율법은 광범위하게 보면 구약성경 전체인데 중간적인 범위로 정의하면 “모세5경”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은 크게 네 가지 그룹으로 분류됩니다. 율법서, 역사서, 시가서, 선지서입니다. 그런데 율법서는 모세가 기록한 다섯 권의 책인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중간적인 의미는 모세5경입니다. 그런데 율법을 가장 좁은 의미로 이야기하면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도덕법”으로서의 10계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2. 율법의 내용상 구분 
  
모세5경에 기록된 율법을 내용상으로 분류를 하면 전통적으로 세 가지 그룹으로 나뉘게 됩니다. 
  
첫째, 이스라엘의 종교와 예배에 관련된 의식법(Ceremonial Law)입니다. 이 의식법은 ‘이스라엘 백성은 할례를 받아라.’, ‘제사를 지낼 때에는 어떤 식으로 제사를 지내라.’ 이런 법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으심과 부활을 예표하는 그림자입니다. 그러나 실체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 그림자를 모두 실현하시고 완성하셨기 때문에 신약시대인 지금 의식법은 더 이상 적용되지 않습니다. 
  
둘째, 시민법(Civil Law)이 있습니다. 시민법은 신정통치 국가로서의 독특한 이스라엘 법률입니다. 오늘날 그것이 대한민국 법률에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이스라엘 법을 가지고 안식일을 범하는 자는 사형에 처하거나 부모를 거역한 자는 돌로 쳐서 죽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시민법은 이스라엘의 국가법이고 신정통치 국가법이었기 때문에 오늘날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물론 그 가운데 좋은 원리들은 오늘날도 존중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셋째, 가장 중요한 도덕법(Moral Law)입니다. 도덕법은 10계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사십 주야를 금식하고 기도해서 받아온 거룩한 법입니다. 이 10계명은 모든 일류에게 항상 적용되는 거룩한 법입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은 도덕법 뿐만이 아니라 의식법도 지켜야 되고 시민법도 지켜야 됩니다. 

하지만 우리 성도들은 의식법이나 시민법은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도덕법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하나님의 법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제사법을 지키는 것보다도 도덕법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의식법을 지킨다 해도 도덕법을 무시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호 6:6) 제사를 지내라는 것은 의식법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의식법을 아무리 열심히 지켜도 도덕법의 핵심인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인애”(헤세드)를 버리게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3. “도덕법”의 세 가지 기능 
  
율법의 좁은 의미로 이 도덕법은 세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사람으로 하여금 죄인임을 깨닫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의 기능이 있습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갈 3:24) 여러분 내가 죄인인지 아닌지를 알고 싶으시면 10계명을 갖다 놓고 보면 됩니다. 율법은 그것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가 죄인인지 아닌지를 알려주는 하나의 거울입니다. 내 얼굴에 흙이나 먼지가 묻었나를 알기 위해서는 거울을 보듯이 10계명을 보고 있으면 내가 죄인인지 아닌지를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부모를 공경하지 못했구나’, ‘내가 간음을 하였구나’, ‘내가 살인을 하였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10계명을 보고 죄인이라는 것을 느끼면 어떻게 됩니까? 죄를 용서받아야 하는데 내 힘으로는 용서받을 수가 없어서 고민할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 나를 믿는 자는 모든 10계명을 어긴 죄를 용서 받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10계명은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입니다. 몽학선생은 선생이란 이름이 붙어 있지만 사실은 종입니다. 종 중에서 제일 똑똑한 종을 주인이 말 안 듣는 자기 자식에게 붙여줍니다. 그래서 이 몽학선생이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를 학교로 데려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학교 선생이 공부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율법의 첫째 기능입니다. 
  
둘째, 인간사회가 무법천지가 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기능이 있습니다. 여러분 인간사회가 하나님의 거룩한 법이 있기 때문에 무법천지가 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나라든지 법을 만드는데 살인하는 자는 백만 원 상금을 준다고 하면 그 나라에 백성이 살아남겠습니까? 다 죽어서 나중에는 백만 원 줄 사람도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또 도적질한 사람은 국가에서 표창한다고 하면 그게 법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거룩한 법이 있기 때문에 인간 사회가 무법천지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신자들에게 “삶의 원리”가 되는 기능이 있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우리 성도들은 도덕법인 10계명을 기준으로 삼아서 성화를 이루어가고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율법의 제3기능”이라고 부릅니다. 

성도들이 10계명을 무시하게 되면 성화의 기준이 없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도 경험할 수 없게 됩니다. 10계명을 지키고 살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10계명은 우리 성도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원리인 것입니다. 여러분 도적질하는 사람이 행복합니까? 도적질 안 하는 사람이 행복합니까? 

생각해보십시오. 공무원이 뇌물 받으면 뇌물 준 사람이 그냥 가만있습니까? 그것을 다음에 또 약점으로 잡아서 자기 말을 들어달라고 요구합니다. 계속 그러다 감옥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도적질한 적이 없는 사람은 항상 떳떳합니다. 행복하고 담대한 것입니다. 10계명을 어기고 죄를 지으면 행복하지도 않고 담대하지도 못합니다. 그리고 거짓말을 하고 나중에 들통이 날까 봐 계속해서 또 거짓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10계명을 무시하게 되면 성화의 기준도 없고 하나님의 축복도 경험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10계명의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에 대해서는 누구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10계명의 셋째 계명에 대해서는 21세기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이견이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제가 한번 여쭤보겠습니다. 여러분은 10계명이 삶의 기준이 되고 축복이 되십니까? 10계명을 지켜야 합니까? 물론 지켜야 합니다. 물론 10계명을 지켜서 구원 받느냐고 물어보면 아니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사람이니까 구원 받은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10계명을 지켜야 합니까? 

우리는 10계명을 지키고 살아야 축복받고 평안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해서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10계명이 오늘날에는 필요 없다고 말하는 사상을 가리켜서 “율법폐기론”(antinomianism)이라고 합니다. 20세기의 설교자들 가운데 참 위대한 설교자 한 분이 계시는데 바로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율법폐기론은 20세기 교회의 가장 큰 저주 가운데 하나라는 말을 했습니다. 


Ⅱ. 현대에 율법폐기론이 득세한 이유와 결과 

왜 20세기와 21세기에 10계명을 안 지켜도 된다고 하는 율법폐기론이 득세하게 되었느냐면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교회 외적인 원인이고 두 가지는 신학적인 원인입니다. 
  
첫째, 교회 외적인 원인으로 포스트모던주의의 유행 때문입니다. 포스트모던주의는 인류역사가 고대에서 중세, 근대, 현대 이렇게 흘러가는데 중세에는 로마 카톨릭의 신앙이 지배했습니다. 신앙이 절대 권리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로마 카톨릭의 신앙은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변질된 신앙입니다. 복음주의적인 신앙이 아닌 것입니다. 이런 신앙이 절대 권위를 갖고 있다가 근대가 되면서 계몽주의가 나와 인간의 이성이 최고 권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그런데 근대가 지나가고 소위 포스트모던시대가 되면서 신앙도 인간의 이성도 절대 기준이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윤리기준이 없다는 사상이 바로 포스트 모던 사상입니다. 내가 옳은 것이 너한테는 옳지 않을 수 있고 네게 옳은 것이 나한테는 옳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의의 기준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포스트 모던 사상이고 절대적으로 옳은 종교는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기독교도 불교도 유교도 다 천국 가는 다른 길이라고 말하는 소위 종교다원주의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것 외에는 천국 갈 수 있는 다른 길을 주신 적이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포스트모던주의는 옳지 않은 사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 불변의 기준을 주셨고 절대 불변의 구원 받는 원리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제 말이 아니라 성경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안 믿으면 지옥에 가서 영원히 손해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가서 후회하지 마시고 지금 믿으십시오. 
  
둘째, 신학적인 원인으로 20세기부터 득세한 세대주의 종말론 때문입니다. 세대주의 종말론은 율법과 은혜를 원수의 개념으로 이야기합니다. 세대주의자들은 성도는 은혜 가운데 있기 때문에 율법 아래 있지 않다고 하면서 10계명은 다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옳지 않은 사상입니다. 20세기 대한민국은 세대주의 종말론자들이 많았습니다. 부흥회를 해도 세대주의 종말론자들은 천년왕국, 7년 환난에 관한 설교만 했습니다. 

이들의 주장이 근거하고 있는 성경은 두 구절입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롬 6:14) 

여기서 법 아래 있지 않다는 말씀은 도덕법에 정죄나 형벌이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도덕법인 10계명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10계명을 보면 우리가 죄인이지만 그 정죄 아래 있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서 그 죄를 용서받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10계명은 아무 쓸데없는 법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제삼의 기능을 여전히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요 1:17) 또 이 말씀을 잘못 해석해서 모세와 예수 그리스도를 원수 취급합니다. 모세는 은혜와 진리를 몰랐고 예수님은 은혜와 진리를 아셨기 때문에 모세와 예수님은 원수라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런 해석은 아주 잘못되고 위험한 해석입니다. 

여러분 모세가 우리에게 준 율법이 몽학선생인데 몽학선생이 학생을 학교로 데려가서 담임선생과 싸우면 되겠습니까? 담임선생과 몽학선생이 원수입니까? 아닙니다. 모세가 사람들에게 죄를 깨닫게 하고 예수님께로 인도하기 위해서 하나님으로부터 거룩한 율법을 받아 선포한 것이지 모세와 그리스도가 원수가 아닌 것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이나 예수님께서는 10계명을 폐지한다고 말씀한 적이 없으시고 도리어 굳게 세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롬 3:31),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마 5:17) 사도 바울과 예수님 모두 “도덕법”을 굳게 세운다고 선포하고 계십니다. 성도들은 은혜 아래 있기 때문에 10계명 안 지켜도 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사악한 사람입니다. 
  
셋째, 최근에는 복음주의 진영 안에도 세대주의와 전통적인 개혁주의의 중도노선을 따르는 “새언약 신학”(New Covenant Theology)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이제 세대주의 종말론은 한국에서도 사람들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사상이 일어납니다. 세대주의의 잔재가 남아 성도들은 구약의 도덕법보다 더 차원이 높은 그리스도의 법의 지배를 받는 존재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도덕법을 따를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도덕법은 하나님의 법이라 말을 하고 신약의 법은 그리스도의 법이라고 부릅니다. 고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법에서는 해방되고 그리스도의 법을 따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법과 하나님의 법이 언제 나누어 졌습니까?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렘 31:33) 

새 언약을 따라서 구원 받은 백성은 마음에 하나님의 법이 기록된다는 것입니다. 돌 위에 있던 하나님의 법이 우리 마음에 기록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기록되는 하나님의 법이 10계명 말고 다른 법이 있습니까? 10계명은 우리 성도들 마음에 기록되는 거룩한 하나님의 법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넷째, 어떤 교묘한 신학과 성서 해석을 따르든지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10계명을 무시하거나 버리거나 폄하하는 사상은 악한 사상입니다. 물론 아주 기본적으로 확실히 해둘 것은 율법은 율법을 지켜서 구원 받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는 것입니다. 기본 구원은 하나님이 택한 자에게 은혜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주셔서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입니다.

율법은 그것을 지켜 구원 받으라고 주신 적이 없습니다. 율법주의라고 하는 것은 율법을 지켜야 구원 받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 갈라디아인주의라는 것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지만 율법을 지켜야 구원이 유지된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안 지키면 구원을 상실한다는 갈라디아인주의도 아주 사악한 이단 사상입니다. 율법주의도 갈라디안주의도 옳지 않고 오직 구원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구원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법이 마음에 기록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순종해야 한다는 것 또한 진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로 구원 받은 성도가 성화의 기준으로 삼을 것은 10계명입니다. 10계명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어주는 능력이 없습니다. 능력은 예수님을 믿어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능력을 주시는 것은 우리 속에 있는 거룩한 법을 따라 성화를 이루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능력은 성령으로부터 오는 것이고 기준은 하나님의 거룩한 법인 것입니다. 만약 10계명이 필요 없다고 율법폐기론에 빠지게 되면 성령께서 역사하셔도 무슨 기준을 갖고 역사하십니까? 그러므로 10계명을 버리면 성령을 따라 산다해도 신비주의적인 체험만을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역사하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거룩한 법을 따라 성화되라고 하는 것이지 무슨 신비체험이나 하라고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Ⅲ. 호세아 시대에 북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을 지키기 어려웠던 이유 

북 이스라엘 백성이 호세아 시대에 율법을 지키기 어려웠던 이유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이유입니다. 
  
첫째, 정치적인 이유는 북 왕국이 율법을 지키게 되면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솔로몬 성전에서 예배를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백성의 마음을 자꾸 남 왕국에게 빼앗기게 되고 북 왕국의 기초가 흔들리기 때문에 여로보암은 이것을 막기 위해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만들어 놓고 내려가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둘째, 경제적인 이유는 바알, 아세라 우상을 섬기니까 우상 장사들이 생겨납니다. 우상을 깎아 만들어 금으로 만들고 동으로 만들어서 파는데 장사가 잘 되었습니다. 그런데 북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을 지키면 이 사람들이 망해버리기 때문에 반대했던 것입니다. 
  
셋째, 경제적인 이유는 아모스 선지자가 지적한대로 사회 지도층들이 약자를 약탈하고 뇌물을 받는데 율법을 지키게 되면 자신들이 누리는 특권을 누릴 수가 없게 되어서 반대했던 것입니다. 


결론 

정치, 경제, 사회적인 이익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거룩한 법을 멸시하고 무시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법을 멸시하는 이유를 한마디로 줄이면 돈 때문이었습니다. 돈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거룩한 법을 결국 무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공무원이 뇌물을 받으면 평생 약점이 잡혀서 고통스럽게 살아갑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을 무시한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호세아 8장 1절에 대적이 독수리처럼 덮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독수리는 아주 좋은 새로 생각하지만 성경에서 독수리는 심판의 상징입니다. “곧 여호와께서 원방에서 땅 끝에서 한 민족을 독수리의 날음 같이 너를 치러 오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그 언어를 알지 못하는 민족이요” (신 28:49) 

독수리는 침략과 약탈의 상징입니다. 앗수르 왕이 독수리처럼 오더니 북 왕국 이스라엘을 침략하고 약탈하였습니다. 그때 북 왕국 백성은 주를 안다고 하면서 살려달라고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지식이 없어 망한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주를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법을 멸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법을 마음에 새겨 하나님의 법을 존중하고 사랑합니다.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라고 시편 1편에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율법폐기론은 사소한 사상이 아닙니다. 성도의 삶을 황폐와 저주로 몰고 가는 사상입니다. 

오늘 설교를 들으면서 다 까먹어도 한 가지만 기억하십시오. “내 마음에는 10계명이 기록되어 있다. 나는 성령의 능력을 받아 10계명의 기준대로 살아가야 되겠다. 그러면 하나님이 내 삶을 형통케 하시고 축복해주실 것이다.” 10계명을 사랑하고 존중하고자 하는 이 한 가지 마음을 가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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