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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옥은 있습니다(2) (눅 16: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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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은 있습니다(2) (눅 16:27-31) 
 
 
 
❚죽은 자가 살아오다

모든 인간관계가 쉽지 않습니다만 그 중에도 솔직히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가 참 쉽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하나님도 어찌 할 수 없는 관계라는 말까지 나오겠습니까? 생각해 보면 그 원인은 이렇습니다. 서로 어려운 겁니다. 며느리도 시어머니가 어려울 뿐 아니리 시어머니도 며느리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친딸처럼 편하게 대하면 되지” 하고 말은 쉽게 하지만 당사자는 괜히 남의 집 귀한 딸 데려와서 잘못 될까봐 어렵게 생각하니 시부(媤婦) 관계가 더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마치 친엄마와 딸처럼 사이좋은 시어머니와 며느리를 많이 보기에 참 흐뭇합니다만 그렇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 모양입니다.

어떤 가족이 형제들끼리 부모님을 모시고 모처럼 성지 순례에 나섰습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예루살렘을 돌아보던 중 갑자기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가족들이 긴급회의를 열고 장례식을 한국에 가서 치루고 싶지만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드니 여기서 치루는 편이 낫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큰 며느리가 강력하게 서울로 가서 장례를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자기가 비용을 다 대겠다는 것입니다. 

형제들은 이 큰며느리의 지극한 효성에 감동을 했습니다만 사실 큰 며느리가 이렇게까지 예루살렘이 아닌 한국에 가서 시어머니 장례를 치르려 했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유가 뭐겠습니까? 그것은 예루살렘에서 장례를 치르면 믿음 좋은 이 시어머니가 부활할까봐 겁나서였던 것입니다. 웃으라고 한 이야기인데 아무도 안 웃으시네요. 특히 시어머니들의 인상이 상당히 굳어지시는 것 같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 이야기에서 시어머니가 믿음이 좋은 것일까요? 아니면 큰 며느리 믿음이 더 좋은 것일까요?

물론 우스갯소리입니다만 제가 지금 시부 관계를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라, 죽었다가 살아나는 문제에 대해 말하려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종종 이런 이야기를 듣지요? 정말 죽었던 사람이 살아 돌아왔다는 말 말입니다. 누가 죽었다가 몇 시간 만에 살아났다, 심지어 며칠 만에 살아 돌아왔다고도 합니다. 그 중에는 내가 죽어서 천국에 가보았다, 지옥에 가보았다고 다니며 간증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나십니까? 정말 그 말을 믿으십니까? 이 큰 며느리처럼 정말 죽은 자가 살아 돌아오는 일이 있다고 믿으십니까? 아니면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작년 10월에 미국 메릴랜드 주 아나폴리스라는 도시에서 혼자 살던 루스 실링글로우 존슨(89세)이라는 할머니가 화장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경찰이 출동해서 화장실에 들어가 보니 이미 숨진 지 며칠 되었는지 시체 썩는 냄새가 나고 피부가 파랗게 변한 채 숨을 쉬지 않고 있어서 담당 경찰관들이 할머니가 사망했다고 결론을 지었습니다. 

현장 보존을 위해 할머니의 시신을 그대로 둔 채 할머니가 평소 유언한 대로 시신기증을 하기 위해 직원을 불렀는데 직원이 할머니의 시체를 옮기려 할 때 때 할머니의 팔이 미세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조사를 해보니 담당 경찰이 현장상황만 가지고 의식불명인 할머니를 사망했다고 섣불리 판단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만 아무튼 할머니는 산 채로 시신 기증을 할 뻔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습니까? “그럼 그렇지, 어떻게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나? 뭔가 착오나 실수를 한 거지.” 하고 생각하셨습니까? 아니면 그 이야기는 그 이야기고 정말 죽은 자가 살아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셨습니까? 참 어려운 문제지요. 그런데 저는 솔직히 이 문제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이런 일이 실제로 있느냐 없느냐 여부를 떠나 이 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는 까닭은 성경이 여기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 결말 부분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부자의 마지막 소원

지난주까지 우리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 천국이 실제로 있음을 깨달았고 지옥도 반드시 있으며 지옥불도 실제로 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면서 지난 시간 지옥에 간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첫 번째로 간절히 부탁한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보았지요. 바로 지옥불이 너무도 뜨겁고 자기 목이 너무도 타니 제발 나사로의 손가락 끝에 물 한 방울만 찍어서 혀를 적셔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매몰차게 이 간절한 부탁을 거절하지요. 바로 천국과 지옥의 불통(不通) 때문에 천국에서 지옥으로 갈 수도 없고 지옥에서 천국으로 갈 수도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부자는 이제 완전히 절망하고 자포자기 합니다. “이젠 끝났구나. 땅을 치고 가슴을 쥐어뜯고 원통해 하고 후회해 봐도 소용이 없구나. 이제 나는 끝이로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완전히 자포자기 하려는 순간 문득 생각난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오늘 본문 27절과 28절에 나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27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무슨 뜻입니까? 나는 끝났지만, 나는 더 이상 가능성이 없지만 아직 저 세상에 남아있는, 아직 살아있는 내 형제 다섯은 마지막 가망이 있지 않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이 부자는 그래도 일말의 신앙이 있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아예 신앙이 없는 사람은 아마 이런 생각조차 못할 것입니다만 그래도 세상에 남아있는 형제들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 이 부자는 작은 신앙이라도 있는 사람인 듯 보입니다, 저는 이 부자를 볼 때마다 이런 사람이 생각납니다. 

오늘날로 치면 이 부자는 어려서부터 교회 다닌 사람 아니겠느냐? 모태신앙이든지 아주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든지 아무튼 어려서부터 교회 다니면서 뭔가 주워들은 것은 많고 찬송가도 잘 부르고 성경도 잘 찾긴 하는데 정작 믿음은 없는 사람,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지 못한 사람 말입니다. 교회를 안 다닌 것도 아니고 아주 신앙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문제는 천국에 못 간다는 것이지요. 

천주교 같으면 이런 애매한 사람을 연옥 보내면 될 텐데 연옥은 없으니까 지옥 가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면 그리스도인처럼 보이고 하는 행동이나 말하는 것을 봐도 그리스도인 같은데 정작 천국은 못 가는, 지옥 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저는 이런 사람들을 ‘유사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어떤 분들은 아예 적나라하게 ‘짝퉁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더군요. 아무튼 겉으로 볼 때는 그리스도인처럼 보이는데 천국은 못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어쩌면 이 비유에 나오는 부자는 바로 이 ‘유사 그리스도인’에 속하는지도 모릅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아무튼 부자는 지옥에 갔지만 일말의 신앙은 남아있었는지, 아니면 옛날 어렸을 때 교회학교에서 주워들은 말이 생각났는지 모르지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는데 비록 나는 세상 재미에 빠져 살다 지옥 왔지만 아직 세상에 남아있는 형제들은 기회가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 다섯 형제들도 다 나처럼 세상 재미에 푹 빠져 예수 안 믿고 교회도 안 다니니 저러다가 틀림없이 나처럼 지옥 오지 않겠는가? 여섯 형제가 다 지옥에서 만나면 얼마나 끔찍하고 안타까운 일인가?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러다가 이런 생각이 나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당신 품에 안긴 나사로를 좀 내 아버지 집에 보내서 형제 다섯에게 증언하게 해주세요. 내가 지금 지옥불에 타고 있다고요. 저 거지 나사로는 이 땅에서 지지리도 고생하다가 천국 가서 인생역전,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되었지만 나는, 당신의 형제는 이 땅에서 부러움 사고 살았지만 지금 지옥불에서 영원한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언하게 해주세요. 이렇게라도 해서 제발 내 형제들만이라도 지옥 안 오게 해주세요.” 정말 간절한 부자의 마지막 소원이었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지옥불 떨어져 고통 받는 부자의 마지막 소원입니다. 못 들어줄 이유가 없습니다. 게다가 정말 부자의 생각이 맞지 않습니까? 정말 나사로를 형제들에게 보내면 형제들이 안 믿겠습니까? 안 믿을 이유가 없지요. 죽었던 자가, 죽은 지 한참 지난 자가 다시 살아 돌아와서 “당신들 형제가 지금 지옥에 가있소. 그 형제가 나를 보내서 온 거요. 그러니 당신들은 지옥 안 가도록 지금이라도 예수 믿으시오.” 하면 그들이 왜 안 믿겠습니까? 아무리 완악한 자들이라도 당장 믿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부자의 생각이 옳은 것처럼 보입니다.

❚안 되는 이유

그런데 여러분, 이 부자의 간절한 마지막 소원을 아브라함이 들어줍니까? 안 들어줍니까? 안 들어줍니다. 아브라함은 이번에도 매몰차게 거절합니다. 왜요? 그들에게도, 부자의 다섯 형제들에게도 분명히 기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예수 믿고 구원 받아 지옥 안 가고 천국 갈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기회가 바로 29절에 나옵니다. 함께 읽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여기서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여기서 ‘모세’란 모세오경, 즉 구약의 율법서를 뜻합니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요. 그리고 ‘선지자들’이란 선지서, 즉 구약의 예언서를 뜻합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에 ‘모세와 선지자들’이라 하면 그것은 구약성경을 뜻하는 말입니다. 오늘날 말로 바꾸면 ‘성경말씀’입니다. 그들에게는 성경이 마지막 기회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깨달아야 하고, 성경을 읽고 예수 믿어야 구원 받아서 천국 감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방법은 성경말씀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부자가 더욱 간절하게 부탁합니다. 30절입니다.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부자는 더 마음이 타서, 더 안타까워서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아니요, 제발 부탁합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회개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아브라함은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왜요? 아브라함이 한 말을 봅시다. 31절입니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이런 뜻입니다. 부자가 생각하는 대로 하면,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 돌아와서 형제들에게 찾아가 경고하면 들을 것 같지요? 아무리 완악한 사람들이라도 금방 예수 믿을 것 같지요? 절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죽었다가 산 자가 찾아가도 안 됩니다. 아무리 당신들 형제가 지금 지옥불에 활활 타고 있다고 경고해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미 마음이 닫혀있고 귀가 닫혀있으면 아무리 죽은 자가 깨어나도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절대 안 믿는다는 것입니다. 

“너는 지금 지옥에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건 순진한 생각이다. 아직 땅에서 지옥불의 뜨거운 맛을 못 본 네 형제들은 아무리 지옥이 있다고, 당신들 형제가 거기서 불타고 있다고 외쳐봐야 절대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보세요. 분명한 증거가 있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사신 분, 누구입니까? 예수님이지요. 그런데 죽음에서 다시 부활하신 예수님이 말씀하셔도 안 믿는 사람은 끝까지 안 믿지 않습니까? 아예 죽음에서 부활한 자체까지 부인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말씀도 안 믿는데 나사로가 다시 살아 증거한들 믿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정말 그들에게는 더 이상 기회가 없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분명 그들에게도 기회가 있습니다. 그들도 예수 믿고 구원 받아 지옥 안 가고 천국 갈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기회가 바로 뭐라고 했습니까? 바로 성경말씀이지요. 그러니 형제들이 성경을 보고도, 복음을 듣고도 끝까지 안 믿으면 더 이상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비록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 그들에게 가서 전한다 해도 안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영안(靈眼)이 닫히고 영적인 귀가 닫히고 마음이 닫혔기 때문에 무슨 소리를 들어도 안 믿는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맞습니다.

❚기회가 별로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방법을 쓰시는 것입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 돌아와서 전하면 다 예수 믿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시지요. 하지만 안 되는 것을 아시니까 나사로처럼 ‘죽은 자’가 ‘저 세상]에서 와서 전하게 하지 않고 우리처럼 ‘산 자’가 ‘이 곳, 이 땅’에서 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전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전도를 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처럼 모세와 선지자, 즉 ‘성경말씀’을 가지고 전도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31절 말씀에 나온 것처럼 그들이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도록’ 즉, 성경말씀을 듣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일단 초청해서 말씀을 듣게 하십시오. 나도 전도하면서 말씀 전해야 하겠지만 일단 무슨 수를 써서든, 무슨 짓을 해서든 교회에 나오게 해서 말씀을 듣게 하십시오. 제가 설교 잘 해서가 아닙니다. 누구든지 일단 우리 교회만 와서 제 설교만 들으면 다 믿는다?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자체에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기”(롬 10:17)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이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가지고 총 네 번에 걸쳐 말씀을 나누었는데 간단하게 정리합니다. 오늘 이 비유는 정말 기가 막힌 비유입니다. 성경이 다 귀하지만 성경에서 이렇게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보여주는, 정말 적나라하고도 정확하게 보여주는 말씀은 드뭅니다. 그런데 이 비유가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첫째, 전도밖에는 길이 없다는 뜻입니다. 말씀을 전하고 예수님을 소개하는 전도만이 그 사람을 지옥불에 안 떨어지고 천국에 나와 함께 가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가 많지도 길지도 않다는 뜻입니다.

셋째,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하기 전에 무슨 수를 써서든, 목숨을 걸고 전도하라는 뜻입니다. 기회가 있을 때, 아직 그 분이 이 땅에 있을 동안에 말입니다. 그러니까 꼭 전도하세요.

어떤 목사님이 간증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내용이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한 여자 분이 상담을 하겠다며 찾아왔습니다. 그날따라 너무 바쁘게 보내서 정말 피곤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도 아니고 알지도 못하는 분인데 솔직히 좀 귀찮다 싶더랍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찾아와 상담을 하겠다는데 뿌리칠 수 없어 잠시 만났습니다. 자기는 예수 안 믿는 사람인데 가정불화가 심하고 경제 문제까지 생겨 너무 힘들다는 것입니다. 

너무 삶의 무게가 무거워서 지나가다가 교회 십자가를 보고 들어왔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그래도 좀 참고 살아봐라” 하고 잠시 위로해주고 돌려보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이런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신상을 비관해서 그만 자살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 만난 그 분이 자살을 했다는 사실도 충격적이지만 그보다 그 분이 찾아왔을 때 왜 “예수 믿고 구원 받으라”는 말을 못 했을까 하는 죄책감 때문이었습니다. 

힘들고 솔직히 귀찮기도 했지만 그래도 세상에 의지할 것 없어 찾아온 그 분에게 잠깐의 위로의 말 “좀 참고 살아봐라”고 말하고 돌려보낸 것이 정말 통탄할 일이었습니다. 그 때가 그 분에게는 마지막 기회였던 것입니다. 그 때 그분에게 “참된 위로는 하나님께만 있으니 예수 믿고 구원 받으라”고 복음을 전해야 했는데 그냥 위로하고 돌려보냈더니 자살하고 말았어요. 죽어서 어디로 갔겠습니까? 그래서 자신은 그 짐이 평생 너무 무겁고 그 충격, 죄책감 평생 잊을 수 없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생전 모르는 사람이 찾아왔는데도 이런데 하물며 내 남편, 내 아내, 내 부모와 형제, 자식, 친구,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겠습니까? 그 사람이 언제 어떻게 될지 누가 압니까? 그분에게 얼마나 삶이 허락될지,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 어떻게 압니까? 모릅니다. 아무도 몰라요. 그러니 기회는 지금뿐입니다. 미루지 마십시오. 핑계도 대지 마십시오. 그 사람의 영원한 생명에 관한 일입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이 어디 있다는 말입니까? 여러분, ‘천국’은 분명히 있습니다. ‘지옥’은 분명히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바로 이 순간 여러분이 천국과 지옥 가운데 어디로 가실지 택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 사랑하는 사람을 천국과 지옥 중 어디로 가게 할 것인지 택하기 바랍니다. 이 한 번의 선택이 우리의 영원을 좌우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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