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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최대한 기다려 주는 것

  • 김부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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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15일 주일설교

성경말씀 : 마태복음 13장 24절~30절

설교제목 : “최대한 기다려 주는 것”

 

【예수께서 그들에게 또 다른 비유를 들어서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밭에다가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과 같다. 사람들이 잠자는 동안에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 가라지를 뿌리고 갔다.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도 보였다. 그래서 주인의 종들이 와서, 그에게 말하였다. '주인 어른, 어른께서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에서 생겼습니까?' 주인이 종들에게 말하기를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하였다. 종들이 주인에게 말하기를 '그러면 우리가 가서, 그것들을 뽑아 버릴까요?' 하였다. 그러나 주인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그것과 함께 밀까지 뽑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거둘 때가 될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게 내버려 두어라. 거둘 때에, 내가 일꾼에게, 먼저 가라지를 뽑아 단으로 묶어서 불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에 거두어들이라고 하겠다.'"(마태 13:24~30)】

 

  <성서 이야기>

  농사 지어 본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벼’의 새순과 ‘피’, 즉 잡초의 새순이 너무 비슷하다는 점입니다. 벼의 새순들이 놓여 있는 자리에 간혹 잡초인 ‘피’가 섞여 있곤 했는데, 농사를 처음 지어보는 사람들은 그 구별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잡초 제거를 하는 중에 간혹 벼의 새순마저 뽑아버리는 경우가 있게 됩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바로 그런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밀밭에 뿌리워진 가라지, 그 잡초, 암적 존재. 이를 어찌해야할까요? 사람들은 이 암적 존재인 가라지를 뽑아버리려 하지만, 예수께서는 이에 반대하셨습니다. “아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그것과 함께 밀까지 뽑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거둘 때가 될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게 내버려 두어라. 거둘 때에, 내가 일꾼에게, 먼저 가라지를 뽑아 단으로 묶어서 불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에 거두어들이라고 하겠다.'"

  예수의 대처법은 암적 존재를 추출 혹은 추방,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기다림’이었습니다. 최대한 오랫동안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참고적으로 말씀드리면, 여기서 ‘최대한’이란 자신이 견딜 수 있는 한도까지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10년일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10일일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10시간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아무튼 자신이 견딜 수 있는 시간만큼 기다리는 것, 그게 예수의 방법이었습니다. 물론 가장 권장할만한 대처방법으로는 추수 때, 즉 하느님의 심판 때까지 그 암적 존재인 가라지들을 오래 참으며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왜 기다려야 할까요? 그 암적 존재들을 단 칼에 베어버리면 간단하게 끝나는 데, 왜 우리는 고통스럽게 오래 참으며 최대한 그 암적 존재를 기다려야할까요? 오늘 그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다려야할 이유들>

  우리가 ‘가라지’라고 판명한 것들에 대해서 최대한 오래 참으면서 기다려야할 이유로 몇 가지를 생각해 봤습니다.

  첫째, 가라지로 판명되었던 것들이 사실은 알곡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실수의 가능성, 내가 잘못 판단했을 가능성, 정말 소중한 알곡을 하찮은 가라지로 잘못 판단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가라지가 알곡으로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입니다. 가라지로 태어났다고 해서 죽을 때까지 가라지로 살다 죽는 것만은 아닙니다. 아주 극소수의 경우이기는 합니다만, 사악한 가라지가 선량한 알곡으로 변화되는 기적이 일어나곤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라지에 대해서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인간은 알곡과 가라지, 그 둘 모두를 한 몸에 품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착한 인격과 악한 인격을 한 몸에 품고 있는 존재, 그게 인간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모호한 존재인 인간을 ‘알곡 아니면 가라지’로 쉽게 판명할 수 있을까요? 너무나도 어려운 작업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에 대해서 최대한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김홍섭 선생 이야기>

  고등학교를 막 졸업할 무렵에 읽은 책이 하나 있습니다. 『무상을 넘어서』(김홍섭 지음). 50여년의 세월을 구도자로서 일관한 인물, 김홍섭 선생이 평생 써 놓은 이런 저런 글들을 모은 책입니다. 20대의 풋풋한 나이 이래로 지금까지 김홍섭 선생의 정취가 제 마음 가운데 새겨져 있습니다.

  김홍섭은 판사였고,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그이는 판사로서 죄인들에 대한 양형 선고에 최대한 신중했습니다. 법전에 기록되어 있는 양형의 기준을 기계적으로 그대로 적용해서 죄를 지은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선고하는 판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인간적인 고뇌를 할 줄 아는 판사였습니다. 그는 죄를 지은 사람의 불가피했던 상황을 고려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특히 사형을 선고해야만 했던 죄수들에 대해서 괴로워 했습니다.

  그는 ‘가라지들’에 대해서 ‘가라지’라고 판별했지만, 그 가라지들이 어떻게 하면 알곡으로 변화될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판사였습니다. 그래서 감옥살이하고 있는 죄수들을 자주 찾아가서, 그들에게 인생의 벗이 되어주고자 했습니다. 가라지가 가라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라지가 알곡이 되도록 하는데 작으나마 소중한 도움을 주고자 했습니다.

 

  <설교의 결론>

  어느 공동체나 가라지들이 섞여 있습니다. 알곡들만 채워져 있으면 좋으련만, 야박하게도 세상살이는 그렇지 못합니다. 이때 우리들의 판단과 처신은 어떠해야할까요? 이에 대한 예수의 응답은 “최대한 기다려주자”는 것이었습니다. 최대한. “그대들이 견딜 수 있는 한도까지, 최대한 기다려 주자.” 그게 하느님의 방법입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이제 설교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말씀의 제목을 ‘최대한 기다려 주는 것’이라고 잡아보았습니다. 오늘 이 설교말씀의 제목을 깊이 묵상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축도

 

하늘의 님이여. 땅의 예수여. 바람의 성령이여!

이제는 우리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느님의 신비로운 사랑과

이 땅에서 진리의 세계로 진입한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의 은총이

우리 수도교회 교우들 머리 위에 영원토록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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