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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위대한 백성 (출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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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위대한 백성 (출 19:1-6)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이라는 책을 써서 유명해진 제임스 콜린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다음으로 쓴 책이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라는 책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위대한 삶을 사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대개의 경우 좋은 삶을 사는 것으로 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좋은 것은 위대한 것의 적이다”(Good is the enemy of Great)라고 지적합니다. 좋은 것에 안주하여 위대한 것이 되기를 포기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좋은 것, 작은 성공에 안주하지 말고 위대한 기업이 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교회와 신앙인들에게도 귀한 교훈을 줍니다. 그냥 신앙생활하기에 좋은 교회에 머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이 땅에 있는 모든 교회들은 위대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개인의 인생도 그냥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위대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성경말씀 출19장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 앞에 이르렀을 때의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조그마한 백성 이스라엘을 위대한 백성 삼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여기 이스라엘은 한 교회 그리고 한 성도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탈출한지 3개월쯤 되었을 때에 시내 광야에 도착하게 됩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체결합니다. 하나님은 떠돌이 유랑 민족, 430년 동안 종살이나 하던 민족, 노예근성이 덕지덕지 붙은 이스라엘 족속을 택하여 위대한 백성을 만들고 싶어 하십니다. - 하나님은 우리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위대한 백성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단순히 좋은 사람이 아니라 영광스런 비전의 사람이 되기를 기대하십니다. 

그래서 어떤 구약학자들은 구약성경 전체에서 제일 중요한 구절이 바로 오늘 본문 출애굽기 19:1-6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언약을 체결한 결혼예식과 같은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한 나라의 왕자가 왕국 바깥의 마을 모퉁이에 사는 거지 아가씨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가끔 왕궁을 빠져나와 거지 아가씨와 데이트를 즐기고 밥을 사 주고 옷을 사 입혔습니다. 어느 날 이 아가씨를 왕궁으로 초청하여 결혼 예식을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이 아가씨에게 있어서 가장 위대한 인생의 전환점은 바로 결혼 예식장 그곳이었습니다. 

시내 광야에 솟아있는 시내산이 바로 그런 장소입니다. 또 다른 이름으로 호렙산이라고 불리는 산. 지금 현재는 ‘모세의 산’이라 불립니다. 오늘 본문의 언약을 ‘시내산 언약’이라 말하는데 시내산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혼인 예식장이 되었던 곳입니다. 이 시내산 언약을 통해, 천덕꾸러기 백성이 하나님의 보물 같은 백성으로 바뀌어졌습니다. 노예로 태어나 노예로 살던 사람들이 제사장 나라가 되었습니다. 버려진 백성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구별된 백성이 되었습니다. 거지 아가씨가 왕비로 바뀌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 ‘지금까지 너희가 보물같은 백성이었다. 제사장 나라였다. 구별된 백성이었다.’ 과거형으로 말씀하지 아니하고, ‘되겠고’, ‘되리라’ 미래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너를 그렇게 만들겠다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이 시내산 언약이 있기 전까지 그들은 별 볼일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내산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대단히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존재가치가 바뀌어지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 우리 모두에게도 이러한 영적인 시내산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 그분 앞에 자신의 인생을 드렸던 그 자리, 그분을 만나 나의 취미도 바뀌고 꿈도 비전도 새로워지고 인생의 소원도 목적도 달라졌던 시내산! 이 경험이 우리를 위대한 백성으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하나님의 위대한 백성은 어떤 백성일까요? 

1. 하나님의 위대한 백성은 ‘하나님의 보물’이라는 말입니다. 

애굽 땅을 떠난 지 3개월이 되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러서 장막을 치고, 모세는 산으로 하나님 앞에 올라갔습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3절, ‘너는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라’,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4절)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여기에서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독수리는 새끼를 위해 높은 절벽에 둥지를 치고 부드러운 털로 보금자리를 마련한다고 합니다. 알을 낳고 부화시키고 먹이를 나릅니다. 그러다가 새끼들의 날개에 힘이 붙은 어느 날 갑자기 새끼들을 둥지에서 밀어냅니다. 새끼들은 연약한 날개를 퍼득이며 몸부림치면서 벼랑 아래로 떨어집니다. 어미는 그 새끼 밑으로 쏜살같이 내려가 날개를 쭉 펴고 받아서 업습니다. 

‘내가 너희를 등에 업어 여기까지 인도하였느니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방법이었습니다. 여기 독수리 새끼는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의 자녀인 내게 왜 이런 일이? 벼랑에서 떨어지는 한 마리 독수리처럼 깜짝 놀라 심각한 질문을 던질 때가 있습니다. “내게 왜 이런 건강의 이상이? 내게 왜 이런 사업의 어려움이? 내 자녀들에게 왜 이런 위기가? 내게 왜 이런 잠 못 이루는 아픔과 불안이 있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보금자리에서 밀어내는 것입니다. 왜요? 물어다주는 먹이만 먹는 어린아이의 자리에서 나오라는 것입니다. 잘못된 가치관을 떨쳐버리라는 것입니다. 꿈도 비전도 없는 자리에서 새로운 꿈을 꾸고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위대한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기억하십시오. 벼랑에 집어던졌지만 절대 땅에 떨어지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5절)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여기서 ‘내 소유가 되리라’는 말은 ‘내 보물이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은 하나님의 보물 같은 백성이란 뜻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꼬리표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대대로 노예로 살아왔기 때문에 노예근성이 있었습니다. 부정적이고 패배주의에 찌든 의식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바꾸어야 위대한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야곱이 위대한 조상이 되기 위해서는 떼내어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형의 발뒤꿈치를 붙잡고 나온 놈, 욕심으로 남에게 딴지거는 인생이란 꼬리표를 떼내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얍복강 나루에서 씨름하던 천사가 물었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입니다.’  ‘그 꼬리표를 떼라. 이제부터 이스라엘이라 하라’ 

‘앤서니 라빈스’의 『네 안의 잠든 거인을 깨워라』는 책이 있습니다. 우리 안의 영적인 거인이 잠들어 있습니다. 그 영적인 거인을 깨워야 합니다. 우리 안에 위대한 보물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 보물을 발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백성은 하나님나라의 보물 같은 존재입니다. 


2. 하나님의 위대한 백성은 ‘제사장’ 의식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6절)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 

하나님의 위대한 백성은 제사장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신약성경 벧전 2:9에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라 했습니다. 

이 힘든 세상을 살며 늘 불평하며 원망하며 이 사람 저 사람 비난하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공동체의 중심에 서지 못하고 늘 변죽이나 울리며 변방에서 서성이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늘 부정적인 면만 보고 항상 부정적인 말만하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노예근성입니다. 짜투리 인생, 변방 근성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위대한 백성은 제사장(중보자) 의식으로 살아갑니다. 역사의 구경꾼이 아니라 역사의 중심에 서서 역사의 아픔을 붙들고 살아가는 중보자, 제사장 나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어떻게 삽니까? 입으로, 삶으로 이웃을 저주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축복하며 살아갑니다.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며 살아갑니다. 항상 복을 빌어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하나님의 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 그 40일을 기다리지 못하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불평이나 하는 백성들, 기다리지 못하고 걸핏하면 우상을 숭배하는 백성들,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칼을 높이 들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 매달려서 그 칼날을 몸으로 막으며 매달리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모세입니다. 백성들의 허물과 상처와 실수를 자신의 몸으로 가로막으며 하나님 차라리 생명책에서 내 이름을 지우는 한이 있더라도 이 백성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이것이 바로 제사장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백성은 제사장 의식을 가진 사람입니다. 


3. 하나님의 위대한 백성은 ‘구별된 백성’ 이라는 말입니다. 

(6절) “너희가...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백성은 ‘거룩한 백성’입니다. 거룩한 백성이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살도록 지어진 구별된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거룩한 백성, 구별된 백성이란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도록 지어진 존재를 말합니다. 

(찬송292장) “주 없이 살 수 없네 죄인의 구주여” 

우리는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과 거룩한 교통이 없이는 우리는 절대로 행복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진 존재들입니다. 

다윗은 자식의 반란으로 왕궁을 떠났을 때에, 어려운 처지로 버림받았다고 느낄 때에 왕궁을 그리워하지 않았습니다. “주여 나를 버리지 마시옵소서. 내게 성령을 거두지 마옵소서. 주의 성령이 나와 함께 한다고 하면 나는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나는 다시 행복할 수 있습니다.” 

주 없이 살 수 없는 존재가 바로 거룩한 백성들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위대한 백성을 꿈꾸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교회를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몇 년 전, 한신교회 이중표 목사님이 소천하셨을 때 안타까운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것은 그분이 돌아가시기 1년 전, 제가 병원에 입원하여 있으면서 그 목사님의 책을 읽으며 감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중표 목사님은 기독교장로회 출신의 목회자로서는 교회를 가장 크게 부흥시키며 교회의 성장과 부흥을 이끄신 분입니다. 기장교단의 총회장도 지내시고, 유명해지셔서 세계 곳곳에 강사로 불리어 다니셨지만 한평생 물욕을 버리시고 곳곳에서 받은 강사비는 다 교회에 헌금하시고, 자신을 위해 물질을 쌓지 않으셨습니다. 

소년 시절 폐결핵으로 사경을 헤매는 가운데 예수님을 만나 영접하고,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가 된 이후로 평생 4차례의 죽음의 위기를 넘겼습니다. 1973년 이후 7년마다 입원과 수술을 반복했던 목사님은 별세신앙을 주창했습니다. 이 목사님은 목회자 세미나를 열어 ‘목사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면서 목회자들이 ‘별세 영성’을 갖고 사역을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평생 복음전도 사역을 귀중히 여기셨던 이 목사님은 갈2:20과 행20:24을 삶의 모토로 삼으셨습니다. (행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소천하시기 전 해 여름 담관암 수술을 통해 4번째 위기를 넘긴 이 목사님은 ‘거지(巨智 : 큰 깨달음)선언’을 했습니다. 그 내용은 별세는 큰 깨달음이니 자기를 비우고 거지로 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자신은 물론 모든 목회자와 성도들이 실천해 나가자는 선언이었습니다. 소천하시기 직전에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듯 “나는 죽어도 행복합니다.”라는 책을 써서, ‘축복보다 더 좋은 것이 죽복(죽음의 행복)’이라고 말했습니다. 평생 자신을 위한 개인통장을 가져본 일이 없는 무욕의 삶을 사시며 두 자녀를 입양하는 등 자신의 별세신앙을 실천적 운동으로 승화시킨 분이십니다. 제가 병원에서 심각한 병으로 입원해 있을 때 이 목사님의 책을 읽으며 ‘목사는 적어도 이렇게 살아야 하지 않겠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것이 위대한 것입니까? 세상에서 크게 성공하는 것입니까? 세상에서 유명해지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그 뜻을 이 땅에 펼쳐가는 것이 위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꿈꾸시던 그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고 그 꿈을 이 땅에 펼쳐가는 사람이 위대한 사람이고, 그 꿈을 펼쳐가는 교회가 위대한 교회입니다. 

“그 사람, 사람은 좋지!” 이 말은 칭찬이 아닙니다. 욕일 수 있습니다. 비전이 없는 사람, 영향력이 없는 사람이란 뜻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열정이 모자란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왜 우리는 위대한 백성이 되어야 합니까?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 땅에 나를 더 오래 살도록 내버려두신 이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가는 곳곳마다 위대한 영향력을 나누며 살아가는 위대한 백성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받은 복이 한없이 흘러 넘쳐서 여러분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제사장 백성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을 바꿀 위대한 백성 거룩한 백성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살 때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의 위대한 백성입니다. 그 위대한 백성으로서의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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