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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아 (롬 4: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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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아 (롬 4:16-24)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다시말해 믿는 사람들의 모델이 되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지면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4장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행위로써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지 못하고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았다는 것입니다.  행위로써 온전치 못한 사람도, 하나님을 위하여 수고한 것이 없는 사람도, 죄를 많이 범하여 부끄러운 사람도 하나님께서 "너는 의인이다." 하고 인정하시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런데 누구든지 믿음만 있으면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기시고 후사로 삼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행위로 거룩하다, 의롭다고 인정받으려면 아무리 몸부림쳐도 실패합니다. 그러나 믿으면 누구든지 쉽게 의로워집니다. 의롭다고 하나님께 인정받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을 믿으매 의로 여기신바 되었습니다.  행위가 완전하여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하나님께 인정받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아브라함의 믿음은 어떤 것입니까?  우리가 본받을 믿음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는 것입니다.(18)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믿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우리의 믿음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네 후손이 이같이 많으리라."  그런데 현실을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 어려웠습니다.  오랜 결혼생활에도 아들이 없었습니다. 18절은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라고 말씀합니다. 불가능하게 여겨졌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믿었습니다.

바랄만한 것 즉 적당한 것을 믿는 것은 쉽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바랄 수 없을 만큼 굉장한 것을 약속하시며 믿으라고 하십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내가 너를 세계를 다스리는 지도자로 세우겠다."고 하시면 어떤 반응을 보이시겠습니까?  "에이, 하나님, 농담도 잘하십니다." 하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저는 아닙니다. 제 집도 잘 못 다스려서 쩔쩔매는데요." 하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바로 아브라함에게 그렇게 바랄 수 없는 엄청난 것을 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수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서 세상의 수많은 족속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수십년 결혼 생활을 통해 임신한 경험도 전혀 없는데 황당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을 아브라함이 믿었을까요?  아브라함은 믿고 하나님의 엄청난 약속을 바라고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우리에게도 말씀을 통해 큰 약속을 하십니다.  여러분이 장차 하나님 나라를 유산으로 받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여러분이 성령이 충만하게 되어 거룩한 성자가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여러분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천국백성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수 많은 복을 부어 주시어 여러분을 축복의 통로로 존귀하게 쓰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여러분 황당하게 여겨지는 이 약속의 말씀을 들을 때에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무시합니까?  믿음으로 받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들을 때에 믿음으로 나를 향한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나아가는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의롭다고 하십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히 4:2에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프린스톤대학의 교수중에 로버트 윌슨박사가 있었습니다. 이분의 큰 기쁨은 제자들이 목회자가 되어 신학교 강단에 와서 설교하며 목회보고를 하는 것, 즉 제자들의 성장한 모습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제자가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작은 도시에서 목회하고 있습니다. 저는 큰 욕심을 부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교인은 많지 않지만 저는 현실에 만족하면서 죄 짓지 않고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설교가 끝나자 노교수는 다가와 제자의 어깨를 툭 치며 "나는 자네의 설교를 두 번 다시 들을 수 없을 것 같네." "왜요?" "Your God is too small(자네의 하나님은 너무 작단 말이야."  이 다음에도 자네를 통해 하나님이 큰 일을 했다는 일은 도무지 들을 수 없을 것 같군."
  
여러분의 하나님은 너무 작지는 않습니까? 온 우주보다 크신 하나님을 너무 작은 믿음으로 축소시켜 아무것도 하실 수 없게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믿음을 키우십시오. 아브라함처럼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말씀을 통하여 큰 믿음을 품게 되기를 바랍니다. 

  
2.  의심의 유혹앞에서 흔들리지 않았습니다.(19)
  
아브라함의 믿음은 약속하신 말씀을 하나님이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는 자리까지 발전하였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하나님이 오셔서 약속하셨는데 3년, 5년, 10년이 지나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15년, 20년이 지났는데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도 사라도 이제는 아주 늙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임신할 수 있는 가능성이 다 사라진 것이 몸으로 느껴졌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몸은  '죽은 것같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성적인 기능은 정지되었습니다. 생식의 능력도 퇴화되었습니다.  완전히 절망할 수  밖에 없는 지경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19절에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라고 증언합니다.   
  
아브라함은  절망의 상태에서도 확신을 가지고 요동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의심치 않고",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믿음이었습니다.
  
이런 믿음은 하루  아침에 되어지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에도  굴곡은 많았습니다.  아들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종인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세우고자 했고,  하갈을 통해 아들을 낳자는 사라의 제의에  동의했었습니다.
  
믿음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에게 의심의 유혹은 반드시 찾아옵니다.  굳게 붙들고 있는 약속의 말씀을 놓아버리고 싶은 충동은 여러번 찾아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그럴수록 약해지려는 유혹을 이기고 견고해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의심의 유혹을 극복하고 확신에 서야 합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은 결코 약해지거나  의심하는 일이 없다'는 것은 마귀의  속삭임입니다.  어떻게 보면 믿음과 의심은  별개의 것입니다.  로이드 존스는 "어느 의미에서는 자기의 의심을 극복하고  그 의심에 대답하게 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참 믿음은 그 믿음을  약화시키려는 시련을 통과하면서 오히려 견고해지는 법입니다.  똑같이  햇살을 받으면서도 왁스는 녹아내리지만 진흙은  굳어지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요! 

아브라함은 믿음이 연약해질  때마다 하나님이 방문해주셨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므로 믿음이 강해진 것입니다. 20절을 보면 "견고하여져서", 21절 "확신하였으니" 라고 아브라함의 믿음을 묘사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하나님께 매주마다 가까이 나아가  은혜를 받아야만 믿음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신자의 삶에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힘들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때에 믿음을 앞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힘들다고해서 붙잡고 있던 하나님의 손을 아예 놓아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핍박이 두려워서 놓아버리고, 어떤 사람은 지쳤다고 놓아버리고, 어떤 사람은 세상의 유혹에 흔들려서 놓아버리고, 어떤 사람은 당장 눈앞의 현실이 불리하다고 놓아버립니다.  그러나 진정한 신자는 흔들릴수록 더 확신에 섭니다. 시험이 올수록, 의심이 밀려올수록 주님의 손을 더욱 굳게 붙잡습니다.  

  
3.  하나님을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으로 믿었습니다.(17)
  
아브라함은 믿음을 굳게 잡아 100세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믿음이 다 인정받은 것은 아닙니다.  이삭이 아름답게 자라가고 있는데 하나님이 다시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십니다. 번제로 바치려면 죽여야 합니다.  소나 양을 잡아 각을 떠서 제단위에 올려 놓고 불을 태워 제사를 드립니다. 이것이 번제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외아들을 짐승처럼 잡아서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아브라함으로서는 순종하기 어려운 명령입니다.  이런때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주실 때는 언제고 다시 죽여 데려가시겠다는 것은 무슨 경우란 말인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한없이 원망스럽게 느껴지기만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렇게 이해가 안되고 갈등이 생길 때도 믿어야합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으로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렇지! 하나님이 죽이라고 하실 때는 반드시 다시 살리실 계획이 있겠구나!  하나님께 얼마든지 죽은 자도 살리시는 능력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삭을 번제로 드려도 하나님이 약속의 말씀대로 주신 아들인데 다시 살려주실 것이다.' 하고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모리아산으로 이삭을 데리고 가서 믿음으로 번제로 드리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삭대신 숫양을 드리게 하시고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인정하셨습니다.  

24절에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심을 믿습니까?  아브라함은 이삭을 다시 살리실 것을 믿어 의롭다고 인정받았으나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죽음에서 다시 살리셨음을 믿어야 의롭다고 인정받습니다. 나도 언젠가 죽겠지만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날 무덤에서 일으키시어 영원히 살게 될 것을 믿어야 합니다. 부활의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께 인정받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범죄때문에 죽임을 당하시고 또한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살아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예수님이 무덤에서 부활하셨다는 성경을 어떻게 믿으라고 하느냐?  나는 그런 황당한 것은 못 믿겠다." 한다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려는 은혜의 선물도 취소될 수 밖에 없습니다.  여전히 여러분은 죄가운데 머물게 됩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진실되고 거룩하게 살려고 몸부림쳐도 불가능합니다. 의롭다는 인정대신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스데반은  부활신앙으로 웃으면서 천사의 얼굴로 순교했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부활신앙이 있습니까? 
만일 여러분이 아브라함과 같은 부활신앙이 없다면  세상을 따라가고야 말 것입니다.  어둠의 권세에 속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고  행복하게 사는 일에 실패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혹 작은 축복은 주실 수 있으나 불가능하게 보이는 것을 능히 이루시지 못하는 하나님이라고 믿지는 않으십니까?  믿는 자에게 이 땅에서 마음의 평안은 주실 수 있으나 영원한 나라를 주실수는 없는 분으로 믿지는 않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고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심을 확신하기 바랍니다.  

6.25때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하고 공산군을 물리친 맥아더장군이 미국 국회에서 연설할 때 "노병은 결코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고 하여 많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았습니다.  맥아더 장군의 거실 벽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쓰여져 있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해야 젊음을 지속할 수 있는가? 그것은 오직 한 길, 하나님을 믿으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그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기를 기대하십니다.  말씀의 성취가 불가능하게 여겨지는 현실속에서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고 의심치 않으며 믿음이 견고해지기를 기대하십니다.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을 믿으며 부활 소망을 가지고 사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이름만 신자로 살지 말고 믿음이 충만한 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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