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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들 (마 15: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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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들 (마 15:10-21) 
 
  
10 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 
11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12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심은 것마다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14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 
15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옵소서 
 
1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 
17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 알지 못하느냐 
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어느 강의실에서 강사가 청중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여러분!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의 부인과 결혼을 하시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고 있는데, 그 중 한 남자가 손을 들더니 말했습니다. “난, 지금의 아내와 살겠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우와, 대단하다.”라고 감탄했습니다. 강사가 물었습니다. “부럽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부인이 싫다고 한다면 어떡하시겠어요?” 그러자 그 남자가 즉시 대답했습니다. “그럼 고맙지요! 뭐” 그 남자의 본심은 이것이었습니다.

바둑을 매우 좋아하는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일주일 내내 그 주간에는 시간만 있으면 바둑을 두었습니다. 그러다가 주일날이 되어 강단 위에 서서 보니, 성도들의 머리가 바둑알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까? 바둑의 ‘아다리’ 치는 것이 이쪽저쪽으로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흰머리 검은머리가 흰 바둑알, 검은 바둑알로 보였던 모양입니다. 목사님은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눈을 다시 한 번 비비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기도를 드렸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다리!” 이 두 이야기가 모두 마음과 관련이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힐문했습니다. 장로들의 전통이란 유대인의 조상들로부터 내려 온 유전, 곧 성문 율법이 아닌 구전으로 내려 온 교훈을 말합니다. 장로들의 전통에 의하면 음식을 먹을 때에 반드시 손을 씻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 손을 씻는 것이 우리처럼 위생적으로 청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손을 씻고 먹어야만 영적으로 정결하게 되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먹는 것은 장로들의 전통을 어기는 죄악이라고 하면서 힐문하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에는 음식 먹을 때에 손을 씻어야만 한다는 법이 없습니다. 그것은 장로들의 전통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자기들의 전통을 앞세워 오히려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는 우를 범하였던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고르반’ 이라고 했습니다. 장로들의 유전에 의하면, 하나님은 부모보다 크고 귀한 분이시니까, 누구든지 하나님께 바침이 되었다고 곧 ‘고르반’ 하고 선언을 해버리기만 하면, 부모를 공경하지 않아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부모공경을 회피하려는 탐욕적인 동기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께서 주신 인륜 최고의 계명을 범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같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하여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고 책망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하여 외식하는 자들, 곧 겉과 속이 다른 표리부동한 자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실제로는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경외하지도 않으면서, 단지 하나님의 율법에 장로들의 유전까지 더하여 지킨다는 것만으로, 마치 자기들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기는 자들인 것처럼 위장하는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예수님은 신랄하게 책망하신 것입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이 말씀은 입술의 종교와 마음의 종교가 엄연히 실존함을 가르쳐주는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입술로만 그럴듯하게 신앙고백을 하고, 찬송을 하고, 기도를 한다면, 입술의 종교인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이같이 마음은 없고 형식적인 종교인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항상 우리 자신을 살피고, 내 의식 속에, 무의식 속에, 꿈속에 늘 주님이 계시기를 힘써 기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10절에 보면 예수께서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자신이 이제부터 하실 말씀을 주의 깊게 듣고 그 말씀의 참뜻을 올바로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처럼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에게 자신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들을 것과, 또 그 말씀을 올바로 깨달을 것을 명령하신 이유는, 그것만이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범하고 있던 오류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며 구원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우리들 역시 세상의 거짓된 가르침과 유혹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고 또 천국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알아야만 합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또 깨닫지도 못하는 자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천국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자들만이 이를 수 있는 곳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면, 혹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면 그는 천국 길에서 벗어나 멸망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성도들 중에는,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소홀히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직 주일 날 목사의 설교를 듣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이 상당 수 있는가하면, 그것마저 귀찮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는 결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없으며, 따라서 천국에 이를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주일날 교회에서 목사의 설교를 듣는 것으로만 만족하지 말고, 집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함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뜻을 깨닫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천국에도 이를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한두 번 듣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을 계속 듣고 깨달아야만 영적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에게 “듣고 깨달으라.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장로들의 전통에 의하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을 때 부정하게 된다고 가르쳤지만, 예수님께서는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걸림이 되다’라는 말은 ‘함정’ ‘올무’ ‘비난거리’ ‘성낼 만한 것’ 등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말씀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걸림이 되었다는 것은, 곧 그들의 비위가 상해서 맹렬하게 화를 내며 비난하였다는 뜻입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은 지키면서도, 하나님의 계명은 저버린다는 예수님의 책망을 듣고, 그 잘못을 뉘우치거나 회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쾌하게 생각하고 비위가 상해서 진리의 대적자가 된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모습이 악인의 특징입니다. 악인들은 자기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자, 곧 진리를 말하는 자를 대적하고 해하려 듭니다. 그래서 진리를 말하는 자는 항상 악인의 원수가 되어 악인들에게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하나님의 백성은 언제나 악인들 앞에서 당당하게 진리를 말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악인의 원수가 되기를 두려워하여 혹은 그들의 핍박을 두려워하여 진리를 굽힌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의 백성 되기를 포기하는 것이요, 더 나아가서 악인에게 동조하여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악인과 원수 되기를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진리를 굽히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분명하게 정당치 못한 일이요 비진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침묵으로 일관하는가 하면, 심지어 그 정당치 못한 일에 동조합니다. 여러분은 이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일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물론 악인의 벗이 되고 하나님의 원수가 되면 당장은 편합니다. 그들로부터 핍박을 당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 됩니다. 곧 영원한 멸망에 들어가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호히 악인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그들의 잘못을 당당하게 지적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결코 악인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편이 되려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하나님 편에 서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말을 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잘못을 고치기는커녕 오히려 주님을 대적하면서 그들의 주장만을 계속 고집하는 것을 보고 “심는 것마다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라고 경고 하셨습니다. 여기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이란, 하나님께서 주신 게명이 아닌 장로들의 유전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장로들의 전통과 그 유전을 가르치며 수종하는 자들은 언젠가는 반드시 함께 근절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심지 않으신 것은 종국에는 다 뽑히게 될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이 땅에 있는 이단 종교들이 영원히 존재할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면 그릇된 교리와 그 교리의 추종자들, 곧 하나님께서 심지 않으신 모든 것들은 이 땅에서 뽑혀 영원히 타는 지옥 불 속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의 온갖 이단들이 언제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들은 마침내 하나님에 의하여 뽑혀서 멸절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처럼 하나님에 의하여 뽑혀지게 될 이 세상의 가라지와 같은 이단에 미혹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심으신 참 진리 안에서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책망을 듣고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오히려 화를 내며 돌아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가리켜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고 하셨습니다. 즉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자기들도 진리를 알지 못하는 맹인과 같은 자들인데,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자기들만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까지도 함께 망하게 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주님의 그 말씀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요청을 받고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 알지 못하느냐. ”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먹는 음식은 입으로 들어가 배를 거쳐 영양분을 섭취하고 나면, 나머지는 배설물로 다시 몸 밖으로 나오는 것이므로, 결코 인간의 영혼이나 인격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는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그렇습니다. 사람을 더럽게 하는 모든 악의 근원은 바로 마음입니다. 이 마음속에서 나오는 사악한 생각들이 사람으로 하여금 살인을 하게도 하고, 간음을 하게도 하며, 도둑질과 거짓 증거를 하게도 하는 것입니다. 잠언 23:7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이라고 했으며, 예레미야 17:9절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하였고, 이러한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잠 28:26)라고 하였습니다. 부패한 마음은 죄악의 못자리요 죄악의 생산 공장과 같은 것입니다.

한 네덜란드 시인이 꿈에 죽어서 저 세상에 갔습니다. 저 세상에 들어서니 한 천사가 그를 맞으며 금빛 나는 책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게 무슨 책입니까?” “그대의 삶을 기록한 것이지.”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책의 첫 장을 넘겨보았습니다. 거기엔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게 무엇입니까?” “그대가 저지른 악한 행동들이지. 참 많구나.” 천사가 다음 장을 넘겼더니 거기엔 아까보다 더 많은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이건 그대 입에서 나온 악한 말들이야. 

사람은 본래 행동보다 말이 많게 마련이야.” 시인은 두려웠습니다. 다음 장을 넘기니 거기엔 더욱더 촘촘하게 기록된 것이 보였습니다. “이건 무엇입니까?” “이건 그대 머릿속에 있던 악한 생각들이야. 사람이란 말하고 행동하는 것보다 생각하는 게 많으니까.” 시인은 떨리는 음성으로 다음 장도 넘겨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천사가 그 다음 장을 넘기자 그곳은 마치 칠흑 같이 어두운 밤처럼 온통 검게 칠해져 있었습니다. “이건 그대의 악한 마음일세. 검은 마음에서 그 모든 생각이며 말이며 행동이 나오는 것이지.” 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해야만 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모든 악하고 더러운 생각을 몰아내고, 오직 거룩하고 순결한 마음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정결하게 못한다면, 아무리 겉으로 드러나는 행실을 바로잡으려고 해도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밭에 잡초가 나면 그 뿌리를 캐내어야 다시 잡초가 생기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고 위로 돋아난 잡초의 줄기만 잘라주면 또 다시 잡초가 무성해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의 본질적인 악은 제거하지 않고, 표면적인 행실만 고치려 한다면 영원히 악한 행실을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외모와 행동을 거룩하게 꾸미기에 앞서, 먼저 마음을 정결하게 해야만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할 수 있습니까? 조선 말, 당시 최고의 세도가였던 민 씨 집안에 처음으로 비누가 들어오자, 수많은 대감들이 비누를 신기해하며 앞 다투어 비누로 손을 씻어보면서 최고라며 아부했습니다. 이때 손님 중의 한 사람인 이상재 선생이 갑자기 선물 받은 비누를 씹어 먹는 것이 아닙니까? 사람들이 깜짝 놀라면서 어떻게 비누를 먹을 수 있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때 이상재 선생이 돌아서서 말했습니다. 

“여러분 모두는 비누로 얼굴과 몸의 때를 벗기지만, 나는 뱃속에 낀 때를 벗기려고 먹고 있소이다.” 아마도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던 이상재 선생은 마음의 정결을 몹시 사모한 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합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네가 잿물로 스스로 씻으며 네가 많은 비누를 쓸지라도, 네 죄악이 내 앞에 그대로 있으리니” 그렇습니다. 우리의 더러운 마음은 결코 비누나 샴푸나 락스로 씻어낼 수 없습니다. 죄로 더럽혀진 우리의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정결하게 씻음 받을 수가 있습니다. 

한 철학자가 오랫동안 가르쳐 온 제자들을 떠나보내며 마지막 수업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제자들을 데리고 들판으로 나가 빙 둘러 앉았습니다. 철학자는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앉아 있는 이 들판에 잡초가 가득하다. 어떻게 하면 잡초를 모두 없앨 수 있느냐?” 제자들은 학식이 뛰어났지만, 한 번도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건성으로 대답했습니다. “쟁기로 땅을 갈아엎으면 됩니다.” “불로 태워 버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뿌리째 뽑아 버리면 됩니다.” 철학자는 제자들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습니다. “이것은 마지막 수업이다. 모두 집으로 돌아가서 자신이 말한 대로 마음속의 잡초를 없애 보거라. 

만약 잡초를 없애지 못했다면, 일 년 뒤에 다시 이 자리에서 만나기로 하자.” 일 년 뒤, 제자들은 무성하게 자란 마음속 잡초 때문에 고민하다가 다시 그곳으로 모였습니다. 그런데 예전에 잡초로 가득했던 들판은 곡식이 가득한 밭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스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이런 글귀가 적힌 팻말 하나만 꽂혀 있었습니다. “들판의 잡초를 없애는 방법은 딱 한 가지뿐이다. 바로 그 자리에 곡식을 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마음속에 자라는 잡초는 성령을 좇아 행할 때 몰아낼 수 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은 인간의 영혼을 더럽히지는 않지만, 그러나 인간의 눈으로 보는 것은 인간의 마음을 더럽힐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포르노 잡지, 포르노 비디오, 인터넷 포르노 싸이트 등을 피해야 합니다. 인간의 실체는 그의 마음입니다. 클레멘트 스톤이란 사람은 말하기를 “마음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인격이 바뀌고, 인격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고 하였습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합니다. 그러므로 이아침 다윗의 기도가 우리의 간절한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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