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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깨어 있는 믿음을 가집시다 (시 57:1-11, 막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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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있는 믿음을 가집시다 (시 57:1-11, 막 1:35)

   
한국 최초의 영적 대 각성 운동은 1907년 1월 13일,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장로교와 감리교 연합 부흥회가 열릴 때였습니다. 전날 하디 선교사의 집회로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연후 길선주 목사가 인도한 집회에서 성령의 불길이 터져 올랐습니다. 교인들의 감동은 놀라웠습니다. 교회는 '신비스러운 경험'을 하였습니다. 교회에는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는데, 그 사이사이에 힘 있는 영적 압력이 베어 구속하는 듯 했습니다. 

다음날 월요일 밤에도 장중한 신비의 세력이 임재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교회에 들어설 때 확실히 체감으로 거기서 성령의 임재에 압도당하듯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 날 전형적인 평양 대 부흥의 분위기가 감격 넘치게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런던 타임지의 기사에 의하면, "나의 아버지여! 라는 말을 하자마자, 밖으로부터 흠뻑 밀려드는 강대한 힘의 임재에 압도당했다"고 합니다. 교인들은 눈물과 감격으로 밤새워 기도했고, 그 감동의 격류는 몇  일 밤낮을 계속했습니다. 통성 기도의 음성은 신비로운 조화와 여운을 가지고 있었으며, 통회의 울음은 성령의 임재에 압도되는 영혼의 넘치는 찬양의 물결 같았습니다. 

그 통회 자복의 광경을 묘사하는 한 여 선교사의 기록에 의하면, "저런 고백들! 마치 지옥의 지붕을 열어젖힌 것과도 같다. ... 이루 상상할 수도 없는 저 죄악의 고백들, 부끄러움도 없이! 사람이 무엇으로 이런 고백들을 강제할 수 있으랴? 많은 한국 교인들이 하나님에의 두려움에, 마루에 얼굴을 가리고 슬피 탄식하였다"고 합니다. 

한국의 최초의 영적 대각성운동이 식을 줄 모르고 빠르게 확대되면서, 한국교회역사의 새 불을 지폈습니다. 그토록 뜨거운 죄고백과 회개를 불러일으킨 성령의 역사는 식을 줄 모르고 밤을 새우는 게 보통이었고, 또 새벽부터 낮 동안 계속 연장되었습니다. 지나가다가 성령의 불을 받은 사람, 스스로 일어나 죄를 고백하며 성령의 뜨거운 체험을 하면서 예수를 영접한 그들에게 그동안 행해져 왔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기독교신자가 되기 전에 이날 까지 해왔던 불교의 새벽 예불기간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어떤 특정한 기간이 아니더라도 새벽만 되면 예불을 드려왔던 것이 그 당시에 크리스천이 아닌 이들에게 보편적으로 있었던 정기행사였습니다. 그때 길선주 목사는 이왕 예수를 믿게 되었으니, 그동안 행했던 새벽 예불을 없애지 말고, 하나님께 새벽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이어가자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의 새벽예배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종교 개혁자들은 종교 개혁을 통해 영적 신앙의 잠을 깨우는 일을 했습니다. 성도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1.신앙이 잠들면 영혼이 죽습니다. 그러면 이런 특징이 나타납니다. 

1) 영의 생각이 사라지고 육의 생각만 합니다. 영의 생각이야말로 성도가 가장 먼저 갖아야 할 고귀한 생각입니다. 롬8:5-8에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니라 육신에 있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했습니다. 

성도는 어떤 일을 계획할 때도, 일을 시작할 때도 먼저 영의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지, 성도들과 교회에 유익한 것인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성도가 신앙이 잠들면 땅의 것만 생각하고 육의 소욕을 따라, 세상 풍조를 따라 모든 일을 계획하고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골로새서 3:2절 말씀에 보면 "너희는 하늘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땅의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골로새서 3:5절에 보면 땅의 것이 무엇인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땅에 있는 것은 육체의 욕망인데, 곧 음란과 더러운 것과 정욕과 악한 욕망과 지나친 욕심 즉 우상 숭배를 버리라 이런 것 때문에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게 된다." 그랬습니다. 땅엣 것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사게 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6:5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육에 속한 사람들이 되어 얼마나 악한지 생각하는 것마다 항상 악하였습니다. 그들이 생각하고 계획하는 것은 언제나 악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언제나 영의 생각 속에 사로 잡혀서 하나님의 신실한 일꾼이요 충성된 종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2) 기도할 마음이 식어집니다. 기도는 성도의 특권이요, 영혼의 호흡과도 같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했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그 생각 속에 늘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통하는 것을 끊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영이 깨어 있는 사람은 형통할 때도, 시련의 때에도 항상 기도에 힘쓰는 사람이 됩니다. 

빌립보서 4:6∼7절에 보면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그랬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주님이 지켜 주심으로 부정적인 마음을 긍정적인 마음으로 바꾸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원망하고 믿지 못하는 부정적인 믿음을 주님을 신뢰하는 긍정적인 믿음으로, 원망의 마음을 감사한 마음으로, 절망의 마음을 할 수 있다는 담대함과 자신감으로 채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가 영혼이 잠들면 기도할 생각은 하지 않고 어떤 절망적인 상황을 만나면 쉽게 실망합니다. 쉽게 좌절합니다. 기도를 하기도 전에 낙심부터 먼저 합니다. "이젠 끝이구나!, 이젠 죽었구나!" 하고 자포자기에 빠지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은 참으로 요동하는 바람과 같습니다. 마치 풍랑에 밀려 요동하는 배와 같이 사람의 생각은 언제나 불안정하고 위태합니다. 풍전등화와 같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지켜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나 불안과 초조와 공포 속에서 실패만 거듭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 다윗은 시편 19:14절에서 "나의 반석이 되시고 나의 구원자가 되시는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내 마음의 생각이 주가 보시기에도 기뻐할만한 것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고 간구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혼이 잠들지 않게 항상 깨어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 말씀에 대한 갈망이 사라집니다. '죤 번연' 은 그런 말을 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도를 들으시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먼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당신의 기도를 들으시지 못하게 막는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의 기도가 상달되기를 바라기 전에 먼저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내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주의 뜻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편 1:2절에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 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오직'이라는 단어에 유의해야 합니다. 다른 길은 없다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오직 여호와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 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배시간 한 시간 듣는 말씀으로만 그치지 말고 소가 일단 먹은 것을 되새김질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늘 묵상하며 그 말씀을 준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신앙이 잠들면 말씀에 대한 갈망이 사라집니다. 그러면 영이 굶주려 죽게 됩니다. 요즘 세계에서는 5세 미만의 아이들만 헤아려도 하루에 약 4만 명에 이르는 아이들이 굶어 죽고 있다고 합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굶어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처음에는 음식에 대한 갈망이 대단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정신이 혼미해지고 마침내 어떠한 음식도 먹고 싶지 않은 단계에 이른다고 합니다. 영적인 굶주림도 이와 같은 절차를 밟습니다. 날마다 성경 말씀을 묵상하던 사람이 하루정도 말씀 읽기를 거르게 되면 말씀에 대한 배고픔을 심하게 느낍니다. 그러나 말씀 읽기를 계속해서 하지 않는다면 어느 사이엔가 말씀에 대한 배고픔조차 못 느끼는 상태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항상 말씀을 갈망함으로 깨어 있는 신앙의 사람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우리 모두 항상 깨어 영의 생각을 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하여 산 신앙 가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깨어 있는 신앙이 귀합니다. 

1) 주님과 항상 영적 교제를 나누게 됩니다. 사람에게서 가장 귀중한 것은 육신이 아니라 영혼입니다. 

창1:27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닮은 것은 육신이 아니라 영혼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영혼은 귀중한 것입니다. 영이 살아 있을 때 하나님과 교제가 가능하고 그 때 가치 있는 인생이 됩니다. 하나님과 영적 교제가 끊어져 있는 사람은 살았으나 죽은 자와 같습니다. 창6:3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고 했습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영혼이 죽고 육체만 살아있는 짐승이나 다를 것이 없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이 아니라 한탄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영혼이 가치가 있기 때문에 사탄은 공격하여 죄에 빠지게 하고 하나님을 떠나게 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에스겔 13:18에 보면 사람의 영혼을 사냥하고자 하는 영혼의 사냥꾼에 화가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역사 이래 영혼의 사냥꾼들에게 많은 신령한 성도들이 고난을 당해왔습니다. 영으로 사는 자들은 언제나 사탄과 영혼 사냥꾼들의 공격대상이 됩니다. 

신앙생활이란 영혼을 지키기 위한 생활입니다. 영혼을 지키기 위해서는 육체를 버리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육체를 과감하게 버리는 것이 신앙의 승리자요, 순교입니다. 신령한 성도들은 그들의 영혼을 위하여 필사적인 노력을 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자기의 영혼을 지킨다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그들은 공통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본문 시57:1에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아래서 이 재앙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했습니다. 성도는 영혼에 대한 확신이 올 때까지 영혼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나의 영혼, 가족들의 영혼, 이웃의 영혼, 전 인류의 영혼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영혼이 하나님 앞에 똑바로 설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들의 세상사는 근본적인 목적은 그의 영혼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영혼을 잃으면 세상을 얻었다 해도 아무 소용없습니다. 영혼을 잃으면 영원을 잃고 영생을 잃는 것입니다. 

2) 영육 간에 항상 은혜 가운데 살게 됩니다. 항상 기도에 힘쓰면서 깨어 기도하는 사람은 영육 간에 큰 은혜를 받게 됩니다. 8절에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했습니다. 

행5:21에 “저희가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던 대로 새벽에 일어나 새벽기도회를 인도했습니다. 그러한 예루살렘 초대교회는 날로 은혜가 넘치고 사랑이 넘치고 무수한 기적과 이사로 제자의 수가 날로 늘어났습니다. 영육 간의 복으로 넘쳤습니다. 

영국의 고아의 아버지 조오지 뮬러는 93살을 살면서 일생에 5만 가지 이상의 기도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기의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원칙이었는데 나의 가장 좋은 것은 새벽 시간이라 하여 새벽을 주님께 드렸더니 93세로 장수하고 건강하고 기도 응답을 다 받은 사람, 놀랍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이루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기도는 불가능을 가능케 합니다. 기도는 모든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처럼, 예수님이 새벽 미명에 기도하신 것처럼 새벽을 깨워 기도하시고, 길을 가면서도 하나님과 대화를 하시기 바랍니다. 괜히 쓸데없는 생각으로 실망하고 낙심하고 속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영적인 생각, 믿음의 생각, 기도의 생각을 하시기 바랍니다. 차를 타고 가면서도, 창밖에 펼쳐지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기도하세요. 아침에도 기도하고 저녁에도 기도하고, 일을 하기 전에, 일을 진행하면서, 그리고 일을 마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기도의 생각이야말로 성도가 갖아야할 고귀한 생각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 쓸 수 있는 연결 코드와도 같습니다. 코드를 꼽기만 하면 발전소의 무한한 전력이 각 가정에 공급되는 것처럼, 기도를 하면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시시때때로 언제든지 기도를 해야 합니다. 위기를 만날 때, 어려움에 처할 때는 물론이고, 가정의 문제, 직장의 문제, 사업의 문제, 자녀의 문제,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세계 선교를 위해서 성도는 기도함으로 깨어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 합니다. 

3) 모든 대적을 이기게 되고 시험에 들지 않게 됩니다. 다윗은 본문 3절에서 "저가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나를 구원하실지라 하나님이 그 인자와 진리를 보내 시리로다."(3)라고 했습니다. 깨어 있는 영성을 가지고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는 자들은 반드시 비방을 받기 마련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비방을 받았고, 다윗이 엄청난 비방을 받았습니다. 느혜미야와 에스라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많은 비방을 받았습니다. 사도들이 초대교회 성도들이 복음을 위해 일하다 엄청난 박해를 받고 순교의 길을 가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을 하자면 많은 훼방과 비난, 박해와 고난, 위협과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 때 할 수 있는 일은 기도 밖에 없습니다. 다윗은 본문 4절에 "내 혼이 사자 중에 처하며 내가 불사르는 자 중에 누웠으니 곧 인생 중에라 저희 이는 창과 살이요 저희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여기서 생명이란 육신의 생명을 말합니다. 이 생명을 위해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대적들에게서, 환난과 재난 속에서, 우환질고 속에서, 생명을 위해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다윗처럼, 히스기야처럼, 욥처럼,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많은 병자들처럼 생명을 구해야 한다. 우리들의 육신의 생명도 하나님이 지켜 주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또한 다윗은 6절에서 "저희가 내 걸음을 장애 하려고 그물을 예비하였으니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 저희가 내 앞에 웅덩이를 팠으나 스스로 그 중에 빠졌도다."(6)라고 기도했습니다. 장애물 경주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신앙생활에도 장애물이 많습니다. 

신앙생활의 장애물을 혼자의 힘으로 극복하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의 힘이 되시어 모든 장애물과 대적을 이기게 하십니다. 우리 모두 깨어 있는 믿음으로 주님과 영적 교제를 나누면서 때를 따라 주시는 은혜를 공급 받아 모든 장애물과 대적을 이기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깨어 있는 신앙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1) 잠든 신앙은 하나님의 근심과 탄식의 대상이 됩니다. 주님이 십자가 수난을 앞두고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셔서 깨어 기도할 것을 당부하셨지만 계속 잠들어 있다가 주님 잡혀가실 때 주님 버리고 다라 났고, 베드로는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는 부끄러운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도 깨어 있지 못하면 부끄러운 신앙인이 되고 맙니다.   

로마서 13:11-14에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고 했습니다. 

잠언 6:9-11에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했습니다. 

이 말씀은 육적인 면에서도 그렇지만 영적인 면에서도 부지런 하여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기지 아니하면 나약하고 빈약한 성도가 됩니다. 따라서 지금은 깨어날 때입니다. 깨어나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를 깨워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며 그 하나님은 어떤 목적을 가지시고 반복해서 우리를 깨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20에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했습니다. “서서 두드리노니” 원문의 뜻을 보면 ‘주님은 오래 전부터 서 계셔 왔고, 지금도 계속해서 두드리고 계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극진하신 사랑으로 아직 회개치 아니한 자기 백성들의 마음 문에 인내하는 자세로 서서 문을 열 때까지 죄인을 위해 끈질기게 두드리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지금도 일깨우시는 주님의 음성 듣고 깨어 있는 성도가 됩시다. 

2) 감사, 찬송,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시편57:9-11) 신앙이 잠들면 일이 잘 될 때 자기가 잘해서 그런 것처럼 자기를  들어내고, 자기를 자랑합니다. 일이 잘 못 될 때 하나님과 남을 탓하고 원망합니다. 그러나 깨어 있는 신앙의 사람은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감사하는 자가 됩니다. 

본문 9절에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열방 중에서 주를 찬송 하리이다.”했습니다. 찬양은 감사의 적극적인 표현입니다. 다윗은 심령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주신 은혜에 감사하여 가장 먼저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다윗은 고통 중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찬양은 고통을 기쁨으로 변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노래도 이 같은 기쁨을 주는 노래는 없습니다. 

다윗은 그가 하나님께 찬양 드려야 할 이유를 뚜렷하게 알았습니다. 10절에 “주의 인자”와 “주의 진리” 때문에 그가 하나님을 찬양 할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그의 진리를 경험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인간의 찬양을 받을 만한 진정한 대상은 하나님 밖에는 없습니다. 

다윗의 찬양의 내용은 “오직 주의 영광이 온 세계에 높아지는 것”(11절)이었습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주님께만 영광 돌리는 성도가 됩시다. 

3) 다른 사람을 깨우는 파수군의 사명을 감당하는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깨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깨우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대마다 일꾼을 세우시는 목적도 거기에 있습니다. 신실한 사역자는 새벽을 깨우는 사람입니다. 새벽에 일어나 하나님과 교제하며 신선한 영적 양식을 공급받을 때 맡겨진 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왜 큰일을 하는 사람이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의 영혼을 일깨웠겠습니까? 

인생을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께 지혜를 얻고자 함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으신 예수님의 사역은 인류 구원의 길을 열어 놓는 실로 막중한 사역이었습니다. 이 사역을 온전히 감당키 위해 주님은 새벽을 깨워 기도하셨습니다. 공  생애를 시작하시면서 40일 금식하며 기도 하셨고, 중요한 사역을 앞두시고 밤을 새워 기도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도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시57:8, 108:2).” 했고,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시46:5).” 출 애급 한 이스라엘 백성을 막고 가로 지른 요단강이 새벽에 갈라졌습니다. 

수6:15에 보면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데 첫 번째 장벽이 되었던 여리고성도 새벽에 무너졌습니다. 마28:1-6에 보면 예수님의 부활도 새벽에 일어났습니다. 

기도는 하늘 보좌를 움직입니다. 기도는 능력이 있습니다. 기도의 능력을 믿는 자는 기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마음을 가집니다. 

인천 성산교회에 다니는 얼짱 포켓볼(당구) 소녀 차유람 선수(19세)가 있습니다. 그녀가 갖고 있는 힘의 원천은 신앙입니다. 그녀의 좌우명은 “온 세상이 내 안에서 주의 영광을 보리라”입니다. 바쁜 시합 일정과 얼짱 당구소녀라는 유명세를 치르는 가운데서도 일주일이면 2-3차례 새벽기도를 꼭 합니다. 기도는 평상심을 잃지 않는 버팀목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예배를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담임 목사님은 “유람이의 신앙은 순수하다.”라고 말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날은 유람이가 고된 훈련과 시합을 마치자마자 교회를 달려왔어요. 나를 보더니 예배를 드리고 싶었다며 30분 동안 눈물을 흘리며 울더군요. 유람이게는 실력을 키우고 시합을 잘 치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 앞에서의 믿음과 은혜가 우선이라는 마음이 있어요. 인기가 상승할수록 믿음이 흔들리고 약해질까 봐 고민하는 순수한 아이에요.” 

게임할 때 그녀는 반드시 목사님의 핸드폰에다 “기도해주세요.”라는 문자를 보냅니다. 큰 시합이든 작은 시합이든 가리지 않습니다. 기도의 힘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녀를 하나님은 도와주셔서 세계적인 포켓볼 스타 ‘자넷 리’와의 게임을 치르게 하셨고, 카타르 도하 아시안 게임 포켓볼 시합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게 하셨습니다.   

새벽을 깨워 기도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기적을 볼 수 있습니다. 몸이 피곤하신 분들도 나오십시오. 병들어 아프신 분들도 주님의 능력을 믿고 나오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들에게 한없는 축복으로 채우실 것입니다. 내 영혼이 깨어나면 나를 통해 다른 사람이 깨어납니다. 오늘 새벽부터 세이레 특별 새벽 기도가 시작 되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내 영혼 살려주시려고 기꺼이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주님을 생각하며 자신을 쳐서 복종시킵시다. 피곤하다는 생각, 몸이 약하다는 생각, 나는 새벽에 못 일어난다는 생각을 버립시다. 그것은 마귀의 소립니다. 마귀의 소리에 설득당해 영혼을 망하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다짐하고 새벽을 깨우시려고 할 때 반드시 성령께서 도우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도우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역사를 체험 하는 성도가 됩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이 잠들면 영혼이 죽습니다. *영의 생각이 사라지고 육의 생각만 합니다. *기도할 마음이 사라집니다. *말씀에 대한 갈망이 사라집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면 신앙의 위험신호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깨어 있는 신앙이 귀합니다. *깨어 있는 신앙의 사람은 주님과 항상 영적 교제를 나눕니다. *영육 간에 항상 은혜 가운데 살게 됩니다. *모든 대적과 장애물을 이기는 신앙의 승리자가 됩니다. 

깨어 있는 신앙을 가져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잠든 신앙은 하나님의 근심과 탄식의 대상이 됩니다. *감사, 찬송,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영혼을 깨우는 파수군의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잠을 깨웠던 종교 개혁자들의 신앙을 본받아 항상 깨어 있는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 찬송, 영광을 돌리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승리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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