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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얼 먹고 사나? (대상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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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얼 먹고 사나? (대상 21:1-8)

  
여러분, 이런 속담이 있죠.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 위급한 상황이 되면 하찮은 것이라도 의지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위급할 때만 그런 게 아닙니다. 인간은 항상 무언가를 의지하기 마련입니다. 인간은 자존자(自存者)가 아니라 의존자(依存者)인 것입니다. 스스로 존재하는 자존자는 오직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모든 피조물은 의존자입니다. 인간도 예외가 아닙니다. 

인간은 태초에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설계되고 창조됐습니다. 그런데 인류의 시조 아담 때부터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대신 다른 신들을, 혹은 다른 것들을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이게 바로 인간의 비극입니다. 전능자 하나님을 믿고 살면 맡아 놓고 승리하는데, 하나님 대신 다른 것들을 믿고 사니까 번번이 실패합니다.

이런 말이 있잖아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철석같이 믿는 사람에게 배신당할 때 쓰는 말입니다. 그런데 인간만 배신하는 게 아닙니다. 세상 모든 게 인간을 배신합니다. 돈을 믿고 사는 사람은 돈에 배신당합니다. 권력을 믿고 사는 사람은 권력에 배신당합니다. 명예를 믿고 사는 사람은 명예에 배신당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모름지기 하나님을, 아니 하나님만 믿고 살아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인간이 하나님을 믿지 않으려 합니다. 다행히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게 됐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동시에 세상 것을 믿고 사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이런 건 온전한 신앙이 아닙니다. 양다리 걸치기 신앙이요 회색 신앙입니다. 

여러분, 왜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믿고 산다면서 거듭 실패합니까?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을 믿으면서 동시에 세상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럴 경우 하나님이 싫어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지 않습니다. 

적잖은 성도들이 이런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고난의 때에는 하나님을 원망하며 세상을 의지하고, 형통의 때에는 자기가 잘난 줄 알고 세상과 짝하고 ... 그럽니다. 이건 엄밀히 말해서 하나님을 믿고 사는 게 아닙니다. 세상을 믿고 사는 겁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고난의 때보다 오히려 형통의 때에 세상을 더 의지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고난보다 형통의 때에 제대로 신앙생활 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오늘 본문이 교훈하는 바가 바로 이겁니다. 고난의 때에도 하나님을 의지해야 되지만, 특히 형통의 때에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라고 말씀합니다. 본문은 다윗의 인구 조사 사건의 기록이죠. 부디 오늘 말씀을 통해 저와 여러분은 고난의 때나 형통의 때나 오직 하나님만 믿고 살아감으로 꼭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1] 다윗의 인구 조사 : 자기 신뢰(교만) 

인구 조사 사건은 다윗의 생애에 있어 몇 가지 오점 중의 하나입니다. 물론 인구 조사 자체는 잘못이 아닙니다. 민수기 같은 데 보면, 하나님께서 인구 조사를 명령하셨습니다. 

민수기의 타이틀 자체가 그런 뜻 아닙니까? 民數記(백성의 수를 기록한 책), 영어 성경은 ‘Numbers’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이 왜 잘못일까요? 다윗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기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즉 ‘자기 신뢰’(self-confidence) 때문입니다. 자기 신뢰가 무엇입니까? 결국은 자기가 갖고 있는 소유나 조건을 믿는 것, 다시 말하면 세상을 믿는 겁니다. 

다윗이 왜 인구 조사를 하게 됐나요? 1절.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그는 사탄의 유혹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군사력을 헤아려보고 싶었습니다. 당시는 시기적으로 이스라엘이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을 때입니다. 다윗은 자기도취에 빠져 있었고, 우쭐대고 있는 겁니다. 동기부터 잘못이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 아닙니까? 시골의 별 볼 일 없는 집안의 막내이며 목동 출신이었던 그를 택하시고 부르셔서 여기까지 세워 놓은 게 누굽니까? 

사울 왕의 핍박 가운데 광야를 유리방황하고 이방 블레셋을 넘나들며 망명생활을 할 때 목숨을 보존하고 왕으로 등극하게 된 게 누구 때문입니까? 압살롬의 반란 가운데 풍전등화 같은 나라의 위기를 넘기고 태평성대를 이루게 된 게 누구 때문입니까? 하나에서 열까지 하나님 때문이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그 모든 은혜를 잊어버리고 자기 힘을 자랑하고 있는 겁니다. 미래에 혹시 전쟁이 일어난다 해도 당시의 군사력으로 끄떡없음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한 마디로 엉덩이에 뿔이 난 겁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한심하고 괘씸한가! 

이처럼 다윗의 동기가 잘못되어 있었습니다. 요압 장군이 그 명령에 반발한 것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3절~4절. “3 요압이 아뢰되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보다 백 배나 더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이 백성이 다 내 주의 종이 아니니이까 내 주께서 어찌하여 이 일을 명령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하시나이까 하나 4 왕의 명령이 요압을 재촉한지라 ... ” 요압은 평소에 신앙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눈에 보기에도 다윗의 처사가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나라가 강성해진 게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인데, 다윗이 숫자 놀음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잘못된 모습을 지적했는데, 다윗은 오히려 화를 내며 강압적으로 재촉합니다. 그는 완전히 사탄의 시험에 사로잡혀 있었던 겁니다. 충언이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마음에 욕심이 가득 차니까 아무도 못 말리는 겁니다.

요압은 마지못해 없이 인구 조사에 들어갑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됩니까? 5절. “요압이 백성의 수효를 다윗에게 보고하니 이스라엘 중에 칼을 뺄 만한 자가 백십만 명이요 유다 중에 칼을 뺄 만한 자가 사십칠만 명이라” 군사 수가 이스라엘 중에 110만, 유다 지파 가운데 47만 도합 157만 명입니다. 

여러분, 다윗의 모습이 어떻습니까? 마치 눅12:16~21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의 모습과 오버랩이 됩니다. 한 부자가 있었죠. 그는 대농이었습니다. 아마 소작인들을 여럿 두고 크게 농사를 지은 것 같습니다. 소출이 어마어마했습니다. 창고를 늘였습니다. 수확을 해서 창고에 쌓아두었습니다. 얼마나 뿌듯했을까요? 자기의 힘을 자랑하며 남은 인생을 설계합니다. 

이제 돈도 많이 벌었으니 놀며 살자 ...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자! 요즘 식으로 말하면, 노후대책이 다 됐으니 건강관리나 하고, 맛있는 요리나 먹으러 다니고, 좋은 데 구경이나 다니며 살자 ... 이런 식입니다. 그 부자의 생각 속에, 삶 속에 하나님의 자리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눅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하나님이 주인이신데, 하나님은 은혜를 모르고 살다가 갑자기 하나님이 부르시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이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다는 게 과연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임을 고백하고 사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살았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임을 잊지 않고 살아가야 합니다. 지금 혹시 고난 중에 있으면 주인이신 하나님의 처분을 기다라며 겸손히 기도하고, 지금 혹시 제법 괜찮은 모습이면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므로, 감사하며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고전4:7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교만은 불신앙의 극치입니다. 하나님의 대적하는 것입니다. 사탄의 종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잖아요! ‘천사+교만=사탄’ 그 아름답던 믿음의 사람 다윗에게 교만이 들어가니까 사탄의 종이 되고 말았던 겁니다. 

[2] 하나님의 징계 : 교만을 꺾으심 

이쯤 되면 하나님께서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죠. 하나님의 무서운 징계가 시작됩니다. 그의 교만을 꺾으시려는 겁니다. 그게 그의 인생에 약이 됐습니다. 7절. “하나님이 이 일을 악하게 여기사 이스라엘을 치시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자기 신뢰, 자기 자랑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불신앙이요,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악입니다. 약4:16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선지자 갓을 통해 통보합니까? 3가지 징계 중 하나를 선택해 봐라! 3년 기근, 전쟁에 패배하고 쫓겨 다니는 것, 3일 간의 전염병이 번지는 것 ... 다윗이 무엇을 선택합니까? 3일 전염병 ... 그 결과 어떻게 됩니까? 대상21:14 “이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염병을 내리시매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죽은 자가 칠만 명이었더라” 3일 동안 무려 7만 명이 죽어나갑니다. 여기서 혹시 그런 의문이 들지 모릅니다. 다윗이 잘못했는데 왜 애매하게 백성에게 그런 일이 ... ? 백성들도 매한가지였습니다. 나라가 태평하다 보니까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 신뢰와 자기 자랑에 빠져 있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믿으면 모두 우상 숭배임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신을 섬겨야만 우상 숭배인 게 아닙니다.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건강하거나 병들거나 항상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게 진정한 믿음입니다. 신명기를 보면 모세는 거듭거듭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분명히 명령합니다. 신8:10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를 네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라” 그런데 만일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교만하면 큰일 납니다. 

모세는 그게 심히 염려스러웠습니다. 신8:12~14 “12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13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14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 ” 이렇게 되면, 그 다음 수순은 망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방관하지 않습니다. 잠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인간이 뭔가 쥐고 있게 되면 미래에 대해 장밋빛 전망을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착각입니다. 억만금을 쌓아둔다고 그게 내 인생의 미래를 보장해 주지 못합니다. 높은 권력을 쥔다고 그게 내 인생을 만세반석에 올려놓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 외에 내 인생을 보장할 분은 없습니다. 잠27:1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통계적으로 갑자기 부자가 되었을 때 오히려 불행해지는 경우가 많이 나타납니다. 미국에서 거액 복권에 당첨된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80%가 복권에 당첨된 뒤에 오히려 불행해졌다고 합니다. 복권 당첨 후에 도박 등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돈 문제로 갈등을 일으키다 이혼하고, 돈이 있으니까 괜한 사업을 시도하다 망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개발로 인해 땅값이 갑자기 오른 지역에서 유사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자주 봅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원이 갑자기 발견되었을 때 반짝하지만, 오히려 국민들이 게을러지고 자만에 빠져 나라가 추락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오죽 하면 ‘자원의 저주’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권력도 매한가지입니다. 얼마 전 신문 칼럼에서 공기업에 낙하산 인사가 많은 것을 비판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 이런 표현이 있었습니다. ‘백박(百博)이 불여일빽(不如一빽)’ 100명 박사의 실력보다 든든한 빽 하나가 더 세다는 뜻입니다. 빽이 통하는 세태를 꼬집은 말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 빽 때문에 낙하산 줄이 끊어지고 추락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것을 너무 믿으면 안 됩니다.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고전10:12 말씀대로, 스스로 선 줄로 생각하면 넘어지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징계가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일 수 있습니다. 정신을 차리게 해 줍니다. 주제 파악을 하게 됩니다. 오히려 약한 게 부족한 게 은혜일 수 있습니다. 나의 본래 모습을 늘 의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다윗의 회개 : 하나님 절대 신뢰 

다윗은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 뼈저리게 느낍니다. 자기는 아무 것도 아님을! 하나님이 잠시 손을 대니까 7만 명이 날아갔습니다. 나라가 흔들거립니다. 그는 바짝 엎드립니다. 그리고 회개의 증표로 하나님께 제사를 올립니다. 그리고 사죄의 은총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이제는 사나 죽으나 모든 게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신앙을 결단합니다. 

그가 제사를 위해 오르난의 타작 마당을 구입하는 장면입니다. 대상21:25~27 “25 그리하여 다윗은 그 터 값으로 금 육백 세겔을 달아 오르난에게 주고 26 다윗이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여호와께 아뢰었더니 여호와께서 하늘에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시고 27 여호와께서 천사를 명령하시매 그가 칼을 칼집에 꽂았더라” 오르난은 자기 땅에 왕이 오니까 황송해서 거저 제공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굳이 돈을 지불합니다. 진정한 회개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제사를 기뻐 받으시고 불로 응답하십니다. 그러자 천사가 칼을 칼집에 꽂음과 동시에 전염병 징계가 중지됩니다. 

여러분, 여기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그곳에 성전이 세워집니다. 그곳은 과거 아브라함에 이삭을 하나님께 바쳤던 모리아입니다. 그리고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세울 곳입니다. 다윗이 바로 이곳에 성전을 세울 준비를 시작합니다. 더 이상 군사력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자기 자신도 세상도 믿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만 믿기로 결단한 겁니다. 잘 아시는 대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성전 건축을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그 아들 솔로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준비는 다윗의 손으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가 준비를 마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치며 드린 기도가 역대상 29장에 나옵니다. 그 중에 이런 기도가 있습니다. 

대상29:11~12 “11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12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다윗은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심지어 자기가 성건 건축 준비를 마친 것도, 모든 것을 드리는 헌신의 마음조차 하나님이 주셔서 감사하다고 고백합니다. 이제 제대로 된 겁니다. 

다윗은 그의 시편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시146:3~5 “3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4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세상에는 믿을 게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오직 하나님만 믿으라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보장해 주시고 그게 바로 진정한 축복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을 위해 우리가 준비할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믿음만 온전히 준비하면, 하나님께서 앞으로 남은 생애 완전하게 책임져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가장 소중한 자산입니다. 아니, 믿음만이 우리의 전 재산입니다. 미음만이 완전한 노후대책입니다. 부디 이 믿음 꼭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영국인 의사 제임스 Y. 심프슨 卿(Sir James Y. Simpson 1811~1870)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산부인과 의사였는데, 29세의 나이에 에딘버러 의과대학 교수가 됩니다. 외과적 수술을 많이 하면서 환자들이 당하는 고통을 지켜볼 때마다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당시에는 마취제가 없어서 환자의 수족을 결박한 후 수술을 했다고 합니다. 아픈 마음으로 기도하던 중 창세기를 읽게 되었는데, 창2:21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 ” 여기서 힌트를 얻어 마취제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클로로포름입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모두 두려워하자 자기가 직접 실험 대상이 되어 직접 마취제 맞고 취했다 깨어나게 됩니다. 마침 빅토리아 여왕이 왕자를 분만할 때 이 클로로포름 마취제를 이용하여 고통 없이 순산하게 됨으로 이 마취법이 공인됩니다. 이를 계기로 경(Sir)의 칭호도 받았습니다. 말년에 한 제자가 강의시간에 그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지금까지 발견한 것 중 가장 큰 발견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심프슨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의 발견 중에 가장 큰 발견은 내가 큰 죄인이라는 것과 예수님만이 나의 구세주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일세.” 오직 예수님만 믿는 그 믿음이 그를 교만하지 않게 했고, 계속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반짝 하다 끝나는 이유가 교만해지고 세상을 믿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성공했다 할지라도 겸손히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꾸준히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과연 무얼 믿고 삽니까? 정말 하나님을 믿고 삽니까? 아니면 세상의 다른 것을 믿고 삽니까? 통장의 잔고가 많다고요? 든든한 빽이 있다고요? 끈끈한 사랑을 가진 가족들이 있다고요? 이 모든 게 좋은 것이지만 필요조건일 뿐입니다. 충분조건은 못 됩니다.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만이 인생의 필요충분조건입니다. 오히려 세상의 조건이 부족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더욱 의지할 수 있다면, 교만해서 하나님을 멀리 하고 세상을 믿다 낭패하는 것보다 훨씬 복된 일입니다. 부디 세상을 믿지 말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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