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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복의 근원 예수 (눅 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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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근원 예수 (눅 5:1-11)


I. 들어가는 말

여러분 ‘파랑새증후군’이라는 용어를 아십니까? 자기의 주변이나 현실을 만족하지 못하여, 이 공허함을 채우고자 끊임없이 다른 외적인 것을 것들을 찾아 헤매는 증세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벨기에의 극작가인 모리스 마테를링크가 쓴 아동극 '파랑새'의 내용을 보면, 주인공 치르치르와 미치르 남매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꿈을 꾸게 됩니다. 요정의 안내를 받아 행복의 상징인 파랑새를 찾아 나선 남매는 여러 곳을 전전하면서 수없이 많은 어려움을 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곳에서도 파랑새는 없었습니다. 잠에서 깨어나니 머리맡 창가의 새장에는 비둘기가 평화롭게 놀고 있는데, 그제서야 이 남매는 자기들이 찾아 헤매던 파랑새가 바로 그 비둘기였음을 깨닫게 된다는 내용으로,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가까이 있다는 것을 전하는 동화입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찾아 열심히 이리저리 분주하게 달려 다니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한번쯤은 이러한 “열심”이 소득 없는 노력으로 끝나버리고 말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경우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며, 대부분은 내 안에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상 보물이나 귀한 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그러나, 파랑새의 일화처럼 그것을 외적인 것에서 찾으려고 하거나, 분명히 손에 잡히는 물질적으로 것으로만 여기기 때문에 행복을 놓치는 경우가 참 많다는 것입니다. 

그럼 도대체, 행복의 정수는 어디에 있을까요?

행복의 근원지를 알기 위해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제자들을 행동을 잘 관찰해 보고 답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게네사렛(갈릴리, 디베랴 바다) 호숫가에서 베드로를 비롯하여 여러 제자들을 부르시는 이야기입니다. 이 본문을 통해서 행복은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참된 행복이 여러분의 삶 속에 넘치도록 채워지길 축원합니다.


II. 본론 

1. 참 행복의 근원 ; 예수를 만나야 한다

여러분 세상에 행복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오늘도 행복을 위해 열심히 수고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의 고국인 한국을 보면 그 노력이 가히 상상을 초월합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하고 돈도 벌고, 그 돈으로 가정의 의식주를 위한 여러 투자를 하며, 자녀교육을 위해 열정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럼, 이렇게 열심히 노력한 결과 모두가 행복해졌을까요? 
일반적으로 생활의 수준이 높아지고, 물질이 풍요해지며,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문화적인 여건이 좋아지면, 그 만큼 행복 지수도 더 높아야 정상일 겁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행복은 이것들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최근 한국의 뉴스는 카드 빚으로 인한 살인과 자살소식이 낯설지 않게 느껴질 정도로 일상화되었습니다.

저는, 얼마 전, 모 대기업체 사장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돈이 많다는 강남은 가진 돈의 액수만큼 담장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아이들은 입시지옥, 부모들은 노동지옥, 도로는 교통지옥이고, 얼마 전 한국인의 의식조사에서 물질적으로는 2/3이상 만족하는데, 삶의 만족도는 1/3이 채 안 되는 사람들만이 행복하다고 발표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부가 행복의 척도라면 세계에서 제일 잘 산다는 미국이 행복지수가 가장 높아야 할텐데, 의외로 세계제일의 행복 만족도를 가진 나라는 방글라데시라는 것, 여러분도 잘 아실 겁니다.

그럼, 행복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일단, 이 기준은 모른다 할 지라도 한 가지만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제목이 있었는데, 마찬가지로, ‘행복의 기준이 뭔지는 모르지만 성적순도 아니요, 돈도 아니요, 명예순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말을 하면 여러분 중 혹, “그래도 돈이 최고지” 하실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네, 어느 정도는 맞습니다. 돈이 있으면 좋죠. 편리하고 누릴 수 있고, 마음 든든하고, 왠지 좋을 것만 같습니다. 명예도 있으면 대우받고 뽐 나게 살 수 있으니 그럴듯한 한 자리 있으면 사는 재미가 분명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행복과 구별되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만족이고, 또 하나는 행운입니다. (예: 만족이란 빵 5개까지, 그 이상은? 따라서, 어느 정도까지는 만족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 돈이 기쁨이 될 수 있습니다. 행운이란 공짜로 얻어지는 유익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복권에 당첨되듯이....그런데, 세상엔 공짜가 없습니다. 거저 얻은 것 때문에 그 만큼 잃는 게 있습니다. 복권당첨자중의 60% 이상이 현재 불행해졌다고 대답했다. 혹시, 복권 좋아하시는 분들 결코 좋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일시적인 것은 행복이 아닙니다. 또, 역대 대통령들이나 몇몇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명예를 추구하다가 불명예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고, 도피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예외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자리가 사람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지는 못합니다.

11절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So they pulled their boats up on shore, left everything and followed him.

오늘 본문의 어부들이 발견하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행복은 세상의 어느 것에도 있지 않습니다. 배도 아니고, 그물도 아니고, 횡재로 얻은 고기도 아니었습니다. 이 어부들이 발견한 행복은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이 들은 밤새 고생하다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 예수님의 말씀대로 따랐더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의 고기를 얻었습니다. 그런 후에 그들은 참 행복이 예수님의 말씀에 있음을 깨닫고 그물을 버려 두고 좇았습니다. 잡힌 고기에 행복이 있는 것이 결코 아님을 우리는 이들의 행동을 잘 살펴봄으로서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이 만일 횡재로 얻은 고기에 눈이 어두웠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당분간 고기를 실컷 먹을 수 있을 때까지는 행복인줄 알고 좋아하며 살았겠죠. 그 후는 어떨까요...다시 옛날로 돌아가 밤새 헛수고하는 그물질만 되풀이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들은 손에 든 고기에 현혹되지 않고 행복의 정수를 바로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자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 단 한 분뿐이란 걸 알았던 것입니다.
그 후의 이들의 삶은 말씀드리지 않아도 여러분이 잘 아십니다. 평생 이들의 삶에 고기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들의 이야기가 성경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행복의 가치를 세상 것에 두었던 바울은 예수를 체험한 뒤 예수님을 아는 지식가장 고상하며 다른 것을 만도 못하다(배설물:쓰레기-로 여긴다) 엡3:7-8에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진리를 붙잡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밤이 맞도록 노력하여 보아도 진리가 아닌 것에 매달린 결과는 공허함이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진리는 가까운 곳에 있다, 그렇지만 깊은 곳에 있다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깊은 곳은 어디입니까? 가까이 있었지만 그동안 한번도 다가가지 않았던 참 진리의 근원지, 바로 지금 이 시간 세상 속에 우리 곁에 와 있지만 크게 관심 두지 않았던 예수님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밤이 맞도록 수고했으나 얻은 것이 없다는 베드로의 고백은 세상의 주변적인 것들에 목숨걸고 진리를 외면한 채 달려가는 불쌍한 사람들의 모습에 경종을 울려주는 말씀입니다. 빨리만 달리면 성공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이 세상에 실패하는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믿을 만한 가이드가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어렸을 때 운동회 경기 중에 잊혀지지 않는 게 있다. 바로 장애물 경주이다. 
우리 반에서 두 명의 선수가 나갔는데 한 아이는 육상선수였고 또 다른 아이는 키가 가장 작은 아이였다. '땅!' 하는 신호음과 함께 육상선수인 아이는 당연히 먼저 뛰어나가 사다리를 통과하고 뜀틀을 뛰어넘어 가마니까지 뒤집어쓰고 나왔다. 저만치 앞에 놓인 쟁반 위의 밀가루에 얼굴을 파묻고는 접혀진 종이를 입술로 물었다. 그리곤 관중석을 향해 쏜살같이 뛰었다. 

접힌 종이를 펼치는 순간 그 아이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뿔사! 접힌 종이 속엔 󰡐할머니󰡑라고 쓰여 있지 않은가! 그 친구가 아무리 잘 뛰면 뭣하나? 할머니가 뛰질 못하는 걸…. 결국 그 아이는 다 이긴 경기를 놓치고 말았다. 

반면에 키가 작은 아이는 종이를 펼치는 순간 얼굴이 환해졌다. <체육 선생님>이란 글자가 뚜렷하게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얼씨구나' 하고 선생님 손을 잡고 뛰는데, 아이의 걸음이 시원찮았던지 체육 선생님은 "얘, 안되겠다. 내 등에 업혀라" 하시곤 그 아이를 들쳐업고 뛰기 시작했다. 1등으로 들어온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인생이라는 경주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장애물과 고비가 우리 앞에 있다. 빨리 가고 못 가고는 내 소원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그렇지만 예수님과 함께 뛰는 경주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예수님께서 내 손을 잡고 뛰시다가 내가 시원찮으면, 󰡒얘, 안되겠다. 내 등에 업혀라󰡓 하신다. 그때 우리가 할 일은 예수님만 믿고 몸을 맡기기만 하면 된다. 우리는 인생 경주에서 앞으로도 계속 달려야 한다. 그러나 그 길이 예수님과 함께라면 어디를 가든 걱정할 건 전혀 없다. 

여러분, 행복은 세상 것과 비례하지 않습니다. 교회 다니는 것, 성경지식과도 비례하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세상적으로 잘 나가도, 아무리 교회 많이 다니고 성경을 알아도 예수님이 그 중심에 없으면 일시적인 만족이요, 단순한 종교생활일 뿐입니다. 구원과는 별개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적으로 못 배우고 부족하고, 보잘 것 없어도, 심지어 성경도 잘 모르고 무식하더라도, 그 마음의 중심에 예수님을 받아들이면 행복을 찾은 것입니다.   

날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행복의 근원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행복은 결코, 먼데 있지 않습니다. 이미 여러분 곁에 와 있습니다. 이미 만난 분도 계시겠고, 그렇지 않은 분도 계시겠지만, 간절히 바라기는 오늘 여기에 오신 여러분 모두는 참 행복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매일 매일 새롭게 만나므로 인생의 참 승리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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