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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헌신하는 예배 (롬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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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하는 예배 (롬 12:1-2)


예배 중에 헌신 예배라는 것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몸과 마음을 다하여 정성껏 준비하여 헌신하는 결단의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를 헌신 예배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헌신 예배를 주관하는 부서에서는 미리 모여서 기도로 준비하며, 예배 담당자를 정하고 준비하여 복장도 단정히 하고 나와서 정성껏 예배드리게 되는 것을 봅니다. 저희 교회에서도 모든 부서가 이미 헌신예배를 다 드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준비하여 헌신 예배를 드린 줄 믿습니다. 

그러면 헌신 예배와 다른 예배는 어떻게 다른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헌신 예배는 헌신의 마음으로 1년에 1-2번 준비하여 드리므로 준비와 정성이 보이는데, 52주라는 적지 않은 기간에 드려지는 수많은 예배들은 종종 보면 가벼히 드려지는 느낌이 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배는 다 같은 예배입니다. 단지 형식과 외형이 달랐을 뿐 예배를 받으시는 분은 같은 하나님이신 줄 압니다. 그래서, 모든 예배를 헌신 예배처럼 헌신하는 마음으로 드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똑 같은 시간 드리는 예배 이왕이면 좀 더 헌신된 마음으로 드려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산 제사를 드리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예배자가 헌신해야 할 것들에 대하여 몇 가지 말씀드리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들으셔서 큰 은혜 받으시고 예배에 승리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예배’ 하면 우리는 흔히 ‘예배드린다’고 하는데, 그럼 무엇을 드려야 하는 걸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길은 하나로 통한다고 했듯이 무엇을 드리든지 진실한 마음으로 드려져야 할 것입니다. 예배는 진실한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진실한 마음인지 간단히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 진실한 마음이란 준비된 마음을 말합니다.

저희 큰집은 불신 가정이며 유교 가정입니다. 지금도 제사를 지내는데, 저는 아직 아버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에 작은 집이라서 큰집의 권위에 복종하기 위해 명절 새벽이면 저희 가정은 예배를 먼저 드리고 큰집으로 가서 제사 지내는 것을 참관해 주는 것으로 명절을 지냅니다. 제사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제3자의 눈으로 제사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야, 헛수고인 일에 어지간히 지극 정성이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큰 형수는 몇 일 전부터 제수를 준비하느라 시장 온 바닥을 휩쓸고 다닌답니다. 

제사 전날 두 형수는 음식을 준비하느라 밤을 꼬박 새우고, 큰 형님은 아침부터 목욕재개 하기에 바쁘고, 밤새 고향 친구들하고 놀다 늦게 들어온 사촌들 모두 피곤해도 벌떡 일어나 정장을 차려 입고 준비합니다. 꼬마 조카 녀석들까지 꼬까옷을 입히고 준비를 시킵니다. 얘기 듣기로는 종가집은 더 하다고 합니다. 그래도 요즘은 많이 간소화되었지만 아직까지도 제사 드리는 모습을 보면 지극 정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의 예배도 보면 매우 복잡하고 절차도 까다롭습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 덕분에 형식적인 예배로부터 자유로와 졌지만 구약시대는 달랐습니다. 준비하고 희생하며 성결하게 드려졌던 것이 예배입니다. 
참 진리를 모른 채 조상을 우상으로 모시는 일인 제사를 지내는 세상들도 저렇게 준비하는데, 예수님의 참 자유함을 몰랐던 율법주의 유대인들도 희생으로 제사 드리는데, 요즘 우리 개신교회의 예배는 상대적으로 준비된 마음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대부분 어떤 일이나 그렇듯이 형식이 자유로와 지면 내용이 부실해 지기 쉬운 것처럼 우리의 예배도 하나님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의 예배로 흐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많습니다. 

예정된 시간에 정확하게 예배를 시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코리안 타임이 예배에도 있는 것이죠. 예배시간에 늦지 않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시간 전에 와서 기도로 마음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저도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많이 회개했습니다. 교회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 늦을 때가 종종 있어서 반성했습니다. 

또, 어떤 때는 예배 위원들이 자신의 이름이 주보에 있는 것을 당일에 발견하고는 부랴부랴 가운을 챙기는 모습도 흔히 있는 일입니다. 예배 준비는 미리 하면 좋겠습니다. 헌금도 미리 준비해 와서 드리시기 바랍니다. 예배에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준비된 마음으로 나와서 예배드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참 자유는 자유가 주어졌을 때 방종하지 않는 자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하여 여러 가지 굴레를 벗고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입은 우리들은 그 참 자유의 의미를 알아서 먼저 준비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두 번째, 진실한 마음이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믿는 마음을 말합니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몸만 와있고 마음이 딴 곳에 있거나, 와서 앉아있기는 하는데, 전혀 믿음 없이 듣고 있다면 하나님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이야기입니다. 주로, 이런 예배를 드리게 되는 이유는 직분이나 체면에서 오는 의무감이나 반복되는 예배에 습관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데에 있습니다. 이유를 불문하고 자원하여 기쁨으로 드리지 않는 예배는 하나님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행동 중 어느 것을 더 기뻐 받으시길 원할까요? 네, 물론, 마음입니다. 
얼마 전 교회 주보에 이런 그림이 실렸습니다. 침대는 살 수 있어도 잠은 살 수 없습니다. 약은 살 수 있어도 건강은 살 수 없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저는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편지지는 살 수 있어도 사랑은 살 수 없습니다. 신부는 살 수 있어도 마음은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실 겁니다. 무엇이나 하실 수 있는 분이라고 우리의 마음까지 사서 갖는다면 무슨 기쁨이 있으시겠어요. 하나님도 우리의 마음만은 그 어느 것으로도 사고 싶어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자원하여 주님 앞으로 오는 것을 기뻐하실 겁니다. 

학생들 중에 억지로 나와서 예배드리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를 들어보면 참 재밌습니다. 저마다 다 다릅니다. 대부분은 가정의 평화와 안녕을 위하여(안 나가면 엄마의 잔소리를 듣게 되니까), 혹은 작은 꿈을 이루기 위한 인내의 시간으로(핸드폰이나 컴퓨터를 사준다고 하니까 그걸 얻기 위해), 또 어떤 아이들은 삶의 리듬을 깨지 않기 위하여(지금까지 자라면서 예배는 무조건 드리고 지냈는데 안드리면 이상하니까) 이런 등의 이유로 억지로 나와 앉아 있는 녀석들을 종종 봅니다. 

믿음이 없이 나왔으니 분명히 지루하기 이루 말할 수 없고, 국방부 시계 언제나 가나하며 제대날 손꼽는 말년 병장처럼 시계만 바라보다 꾸벅꾸벅 졸고 앉아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축도할 때는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잠에서 깨어나 축도가 끝나기도 전에 대한독립만세라도 외칠 기세로 뛰쳐나갑니다. 하나님이 보시면 얼마나 안타까워 하실까요? 그럼, 이 예배는 받지 않으실까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믿음이 없이 드렸으므로 분명 예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마음만은 받으실 거라고 믿습니다. 믿음이 없어서 힘들게 억지로 나와 앉아 있으려니 어쩔 수 없이 졸게 되고 재미도 없지만 그래도 억지로라도 나와서 앉아 있는 마음을 보면 하나님도 기특해하실 겁니다. 

우리도 혹시 이런 예배를 드리고 있지는 않은지 겸손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같은 시간 드리는 예배, 믿음으로 마음을 모아 자원하여 기쁨으로 드리시되, 설령 마음에 무거운 짐으로 느껴져 아무 느낌 없이 앉아 있다가 마당만 밟고 그냥 돌아간 날이라 할 지라도 그 마음을 주님은 이미 헤아리신다는 것을 아시고 예배드리는 일에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억지로라도 주님 앞에 나오시면 그 만큼 은혜가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다 하여 기쁨으로  나오시면 더 큰 은혜가 있습니다. 


세 번째, 진실한 마음이란 가난한 마음을 말합니다. 

여러분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은 별로 그렇지 않은데, 저와 부모님세대만 해도 가난한 집안에서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저 중고등학교때만 보아도 제가 사는 대천은 시였는데, 시내에 사는 사람들보다 면구석 어느 조그만 촌에서 버스타교 등교하는 아이들이 반장은 주로 도맡아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배고픔과 가난한 현실이 그들로 하여금 나태한 생활을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아니 한 자는 인생을 논할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의 참 가치는 가난 속에서 애타는 목마름으로 하루 하루를 연명해 본 자가 더 값지게 느낀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여러분 영적 세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영적으로 바닥에 떨어져 영혼의 갈급함으로 고통스럽고, 영적 기아에 지치고 힘들어, 힘든 몸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올 때 더 큰 은혜가 임한다고 믿습니다. 찬송가 중에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주님께로 나옵니다. 실패와 절망 당한 뒤에 주님께로 나옵니다” 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나올 때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그렇다고 삶에 실패하고 나오라는 말이 아닙니다. 가난한 심령으로 나오라는 말입니다. ‘제 영혼이 갈급 하오니 주님 채워 주셔야 합니다’ 라는 심정으로 나오시라는 말입니다.  

[마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시 107:9]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선교지에 있다보면 제일 그리운 것이 모국어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가끔 드리게 되는 모국어 예배 중에는 감격의 눈물이 다 납니다. 매일 매일 모국어로 예배드릴 수 있음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예배는 누굴 위해서 드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회복을 통해 내 자신이, 내 영혼이, 내 삶의 여러 문제들이 해결되는 생명수를 공급받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삶의 어려움에 있을 때, 영적으로 침체되어 있을 때, 나락에 떨어지고 포기하고 싶을 때 더욱 주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가난한 마음으로 나와서 열심히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에 갈급한 마음으로 나와서 뜨겁게 찬양하며, 믿음으로 기도하고, 진실하게 주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원함이 있는 곳에 채워짐이 있을 것입니다.  


네 번째, 진실한 마음이란 기꺼이 드리는 마음을 말합니다 

예배는 영어 원문 표기에 의하면 구약의 예배는 제사 “sacfice"(희생) 이라고 되어있고, 신약의 예배는 “worship"(경배, 섬김, 봉사) 이라고 나타납니다. 따라서, 예배는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이 그들의 섭리자이신 하나님을 바로 알고 섬기고자 무엇인가를 희생하며 드리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율법적인 제사를 드릴 때는 희생 제물을 끌고 와서 드렸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그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한번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휘장이 갈라지고 그가 영원한 희생 제물이 되었기 때문에 그 이름으로만 나오면 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예배가 율법 중심의 형식을 중시하는 예배였다면 신약의 예배는 마음이 중시되는 내용 중심의 예배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더 이상 어떤 희생 제물을 가지고 나올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이름만으로 나오는 그 속엔 신앙의 고백이 담겨야 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물질을 드림은 신앙의 고백이라고 했고, 하나님께서도 친히 당신 앞에 나올 때는 빈손으로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또한, 드리되 인색함으로 하지말고 즐겨 내기를 기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출 23:15]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칠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찌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찌니라

[고후 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분명 궁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동정을 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뇌물을 좋아하시지도 않습니다 단지, 소중한 것을 드리므로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 신앙을 고백하는 우리의 믿음을 보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 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여 우상처럼 섬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마 6: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고 성경은 말합니다. 

마음이 주님께 있다면 즐겨 내기를 기뻐함이 당연할 것입니다. 우리가 빈손으로 와도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물질을 준비하면 더욱 기뻐하십니다. 
선배 목사님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헌금 얘기를 하면 종종 시험 드는 분이 있다던데, 영광교회에는 그런 분이 한 분도 없을 줄 믿습니다. 

오늘 오전 예배 설교도 그랬듯이 저는 종종 어린이들의 마음을 빗대어 우리의 믿음을 돌이켜 보곤 하는데, 이제, 이 시간에도 어린이들의 눈 높이에서 어른들을 향하여 부르는 노래의 가사를 들려드림으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혹 이 가사 중에 나의 모습이 있다면 교만하여 시험 들기 보다, 겸손하여 회개하시고, 진정한 믿음과 헌신의 예배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돌이켜 보는 기회가 되시길 바랍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이런 믿음은 안돼” 라는 곡인데 얼마 전 누군가 저희 교회 홈페이지 게시판에도 올려 놓았던 적이 있는 찬양입니다. 

예배시간에 꼭 5분씩 늦어 헐레벌떡 뛰어가는 성도
주일학교 공과를 교회가는 버스 안에서 한 번 읽어보는 교사
남들은 직분 맡아 봉사하는데 수년이 지나도 그대로인 나중 된 자
이런 믿음은 주님이 원하지 않죠 오 안돼요 안돼 주님이 원하지 않죠

성가대 연습 제대로 안하고 이상한 소리내는 성가대원
설교시간 처음부터 졸기 시작해서 축도 할 때 정신이 드는 성도
헌금을 준비 않고 지갑 속에서 천원짜리 기막히게 찾아내는 자
이런 믿음은 주님이 원하지 않죠 오 안돼요 안돼 주님이 원하지 않죠

예배시간에 삐삐소리로 모두의 시선을 받는 성도
교회 일을 상의할 때 반대를 위한 반대로 분위기 망치는 성도님
교회 문 나갈 때 주님과 작별하여 생활 속에서 주님과는 별거하는 자
이런 믿음은 주님이 원하지 않죠, 오 안돼요 안돼, 주님이 원하지 않죠

우리의 예배는 감격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의 봉사는 사랑이 넘쳐야 하는데
우리의 믿음은 생명이 있어야 하는데
안돼요 안돼 선생님 집사님 장로님 / 성도님 성가대 여러분

할렐루야!
오늘 성경 말씀을 다시 한번 읽고 마치겠습니다. 롬 12:1-2

여러분, 진실한 마음으로 온전히 예배를 드려 하나님께는 영광 돌리고, 여러분 각자도 예배 속에서 참 자유와 기쁨을 누리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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