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작은 여우를 잡아라(2) (아 2:10-17)

첨부 1


작은 여우를 잡아라(2) (아 2:10-17)


삼미 그룹의 부회장이었던 서상록 씨가 호텔 웨이터가 되어 활동하면서 유명인이 되었습니다. 회사가 부도가 나서 어렵게 되자 그는 아파트 경비를 하기 원했지만 나이가 많다고 거절당했습니다. 그가 어렵게 들어간 곳이 호텔 웨이터였습니다. 그는 호텔 웨이터로서 성공적인 삶을 사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주었습니다. 기업과 관공서 등에서 강사로 청빙이 되었고 메스컴을 타면서 유명 인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성공적인 삶을 살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몇 가지 제안을 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자신이 하는 일에 프로 정신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서상록씨는 ‘내 인생 내가 살지’라는 자신의 책에서 자신의 집 파출부로 생활하던 아주머니의 변화를 예로 들었습니다. 자기 집에 파출부를 두고 있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파출부 아주머니가 항상 신세타령을 하고, 죽는 소리를 하면서 얼굴을 찌푸리고 짜증스런 표정으로 일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하루는 서상록 씨가 파출부 아주머니에게 ‘아주머니 항상 그렇게 불만스런 표정으로 일을 하는데 만약 아주머니가 어느 집에 가서 일을 한 후에 퇴근을 하면서 주인에게 장미 한 송이를 전해 주면서 나를 불러 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하면 아마 그 집은 일이 있을 때마다 아주머니를 부를 것입니다. 그리고 약간의 투자를 해서 식탁보나 커튼 등 집안의 분위기를 새롭게 꾸밀 수 있는 감각을 길러 집 주인이 집에 변화를 주기 원할 때 조언을 해 주면 좀 더 새로운 일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답니다. 

그 아주머니가 파출부 일을 그만 두고 몇 년이 흐른 후에 전화가 왔답니다. 아주머니가 서상록 씨에게 감사 인사를 하면서 회장님이 그렇게 이야기 해 주셔서 도전을 받고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일을 시작했는데 이제는 파출부를 12명을 두고 용역 회사를 운영하는 사장이 되었다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불평과 원망을 하며 파출부 생활을 하던 사람이 일을 끝내고 장미 한 송이를 집 주인에서 선물로 주는 감사의 마음을 가질 때 그녀의 삶에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똑같은 일을 하지만 생각을 조금만 바꿔도 삶의 자리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작은 관심 하나가 내 인생 전체를 바꿔 놓을 수가 있습니다. 긍정적인 작은 것 하나에 인생이 성공할 수가 있고 부정적인 작은 것 하나에 인생이 실패할 수가 있습니다. 

‘아가’라는 이름은 한문 성경의 제목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가서1:1에는 ‘솔로몬의 아가라’고 했습니다. ‘아가’(雅歌)라는 뜻은 ‘뛰어난 노래,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입니다. 아가의 ‘아’자는 ‘아담할 아’, ‘맑을 아’라고 하여 ‘뛰어나고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입니다. 본래 히브리 성경에는 ‘쉬르 하시림’이라고 하는데, ‘쉬르’는 노래라는 말이요, ‘하시림’이란 정관사 하를 붙이면서 ‘시림’이란 노래들이라고 합니다. 쉬르 하시림이란 ‘노래들 중의 노래’라는 말입니다. 솔로몬은 1005편의 노래를 지었는데, 가장 아름다운 노래, 노래들 중의 노래를 지었습니다. 바로 아가서입니다.

유대인들은 민족적인 절기인 유월절에 아가서를 읽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노예에서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아가서의 내용으로 보면 남녀 간의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인데, 그러한 사랑의 노래가 어떻게 이스라엘 최대의 명절인 유월절에 읽게 되는 성경이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남녀 간의 사랑을 노래하지만, 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고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솔로몬은 자신과 술람미의 사랑을 말하면서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사랑을 ‘꽃이 피는 포도원’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솔로몬은 15절에서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고 말합니다. 작은 여우들이 포도원에 들어와 땅을 파헤치고, 포도나무 줄기를 갉아 먹으면 포도원이 다 망치게 되니 작은 여우를 잡으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우리 인생의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정과 우리의 삶의 자리, 그리고 교회 공동체로 볼 때 그 행복을 깨뜨리는 작은 여우는 어떤 것이 있을까? 우리들이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두 주전에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부정적인 말’이 작은 여우의 역할을 해서 우리의 행복한 가정과 교회, 그리고 삶의 자리를 깨뜨릴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작은 여우를 다른 측면에서 한 번 보기 원합니다. ‘열등의식, 열등감’은 우리의 행복한 포도원을 허무는 작은 여우가 될 수 있습니다. 

아가서를 읽어 보면 술람미라는 여인이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던 부분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가서 1장 5,6절을 한 목소리로 읽어봅시다.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그녀의 열등감이 묻어나오는 한 장면입니다. 6절에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검은 피부에 대한 열등감을 표현하면서 타인을 의식하고 있습니다. 그녀에 의하면 오빠들이 자신에게 포도원을 가꾸는 일을 시켰다고 합니다. 포도원을 가꾸는 일을 하면서 자신의 포도원을 지키지 못했다고 말하는데 이는 자신의 몸을 관리하지 못했다는 표현입니다. 뙤약볕 아래에서 포도원을 가꾸다 보니 자신의 피부를 관리하지 못해 검게 탔다는 말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검은 피부를 ‘게달의 장막’에 비유합니다. 게달의 장막은 검은 염소 가죽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피부가 검었다는 말입니다.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중요한 원인 중에 하나가 열등감입니다. 이 세상에 어떤 사람도 완전한 사람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람이 없다는 말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어떤 사람도 열등감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문제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열등감에 사로잡혀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열등감에는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이 있습니다. 외적인 열등감은 얼굴 생김새, 키, 다리 길이, 몸매, 신체장애 등처럼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한 열등감입니다. 

내적인 열등감은 학벌, 재력, 가정환경 등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열등감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위축시키게 됩니다. 열등감은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많은 장애 요소를 갖게 합니다. 매사 공격적입니다. 아니면 지나치게 자기 방어적이 됩니다.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고 의심합니다. 내가 못 배웠다고 무시하나? 내가 없다고 무시하나? 내가 이런 일을 한다고 무시하나? 자신의 열등감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판단합니다. 그러다 보니 주변 사람들과 원만한 인간관계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가정과 교회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열등감을 치료 받으며 더 건강한 모습으로 회복될 수 있는 기관으로 주신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부부로 짝지어 주시며 가정을 이루게 하셨을 때 가정의 가장 아름다운 표현은 창세기2장 25절입니다.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여기에서 벌거벗었다는 것은 자신의 약점을, 약점이 드러나도 그것이 크게 허물이 되지 않았더라는 말입니다. 그 약점을 그대로 수용하고 사랑해 주는 사람으로 인해 열등감을 가지지 않고 살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사도행전에 교회가 태동되는 과정을 보면 그곳에 보인 120명의 성도들과 특히 사도들은 흠이 없는 완전한 믿음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실 때 한결 같이 예수님을 배신하고 도망했던 사람입니다. 서로의 단점과 허물을 지적하고 싸웠다면 아름다운 초대교회는 세워질 수 없었습니다. 그 허물을 감싸고 품으며 교회가 세워졌는데 서로의 단점과 열등감을 품을 수 있는 힘은 마가 다락방에 임하신 성령님이었습니다. 성령을 통해 그들 서로의 단점을 수용하고 인내하며 초대교회를 세우게 되었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서로의 열등감과 단점을 치료하며 교회를 세워나갔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열등감의 치료처가 되어야 할 가정과 교회가 그 역할을 하지 못하고 도리어 열등감이 더 심화되고 상처가 덧나는 곳이 되니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부부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가정을 보면 부부가, 부모와 자녀가 서로의 약점과 열등감을 수용하지 못하고 그것이 도리어 공격의 대상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도 자신을 잘 알고 있는 가족 안에서 자신의 약함과 열등감, 그리고 수치심이 가려지지 않고 수용되지 못하면 그들은 어디에서도 위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가 누구보다도 서로의 약점을 잘 알고 있는 가정과 교회가 서로의 열등감과 약점을 헤집어 놓으면 그곳은 천국이 아닌 지옥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을 수용하고 품으며 세우면 이 세상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힘을 공급받고, 위로가 될 수 있는 천국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정과 교회는 이 세상 어느 곳 보다도 더 행복하고 평안한 곳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평안과 행복한 공동체를 깨는 작은 여우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열등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열등감은 나와 상대방의 관계를 허물어뜨리는 작은 여우가 될 수 있습니다. 열등감이라는 작은 여우는 꽃이 핀 포도원 같이 행복한 우리 가정과 교회를 황폐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그 행복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수 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고 말합니다. 

술람미 여인이 자신의 검은 피부의 열등감을 ‘게달의 장막’에 비유한 후에 바로 그 피부를 ‘솔로몬의 휘장’에 비유합니다. 게달의 장막 같이 검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처럼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열등감을 승화시켜 자신감으로 아름다움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열등감을 치료받고 그것을 도리어 아름다움의 자신감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술람미가 자신의 열등감을 자신감으로 바꾸게 된 배경에는 검은 피부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극진히 사랑해 주는 솔로몬이 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의 사랑은 술람미 여인의 변화를 만들었습니다.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던 그녀를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변화시켰습니다. ‘게달의 장막’과 같은 자신의 피부를 ‘솔로몬의 휘장’과 같다고 노래하게 만든 힘은 솔로몬의 그녀를 향한 사랑의 힘이었습니다. 사랑의 힘은 열등감을 치료받고 도리어 자신감을 갖게 하는 능력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열등감을 극복하고 더 힘차게 세상을 향해 설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간증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허물과 열등감을 지적하며 상처를 주고, 힘을 빼고, 불안하게 만들고 지치게 하는 분이 아닙니다. 그 역할은 사단이 하는 역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열등감과 약함을 품으시고 인내를 가지고 치료하시며 세우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술람미와 같이 ‘게달의 장막’과 같은 열등감과 약함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은 한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품으심으로 ‘솔로몬의 휘장’으로 바꿔 놓으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들에게도 예외 없이 행복의 관계를 깰 수 있는 열등감과 단점이 있었습니다. 세상은 그들의 약점과 열등감을 수용하지 못하고 공격하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으로 그들의 열등감과 단점을 수용하시고 품으시며 치료하셔서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일꾼이라는 자긍심을 갖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결국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자리에 섰습니다. 

우리와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 중에 구두닦이를 하면서도, 트럭을 끌고 채소장사를 하면서도 하나님으로 인해 행복해 하며 감사함으로 사는 진정으로 복된 사람이 있습니다. 이지선 양이 화상을 입어 온 몸이 일그러졌어도 도리어 아침 마다 거울을 보며 ‘지선아, 너 정말 예쁘다. 지선아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도록 해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그 힘이 세상의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들을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은 게달의 장막과 같은 우리의 약한 모습을 솔로몬의 휘장과 같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사단은 게달의 장막과 같은 우리의 약점, 열등감에 사로잡혀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할 가정과 교회를 흔들어 놓고, 아픔과 상처로 얼룩지게 하기 원합니다. 성령의 능력과 분별력을 가지고 사단이 불화의 도구로 사용하는 열등감이라는 작은 여우를 우리 생활 속에서 잡아내 우리의 가정과 교회를 하나님의 평화를 만들어가는 도구로 세워가는 은혜가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