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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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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 28절-33절: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


자연법칙을 보면서 사람 속에서 움직이는 정신상태를 보면 ‘아, 저 정신은 나중에 어떤 상황이 덮치겠구나’ 하고 떠오른다. 하루아침에 확 바뀌는 게 아니라 어떤 결과를 이루기 전에 서서히 진행이 된다. 그 서서히 진행되는 걸 보지 못하면, 못 느끼면 그 결과를 맞고 만다. 신앙의 세계에서 성령의 눈으로 보는 서서히 진행되는 자기의 소원 목적 취미적인 정신적 그 흐름이 ‘하나님-->인간-->물질’의 순서 속에 다 들어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가지가 딱딱해지면 어느 철이 온다는 거냐? 겨울이 온다는 것이다.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기후가 따뜻하니 되어지는 현상이다.


산에 가서 방향을 모를 때 나무들의 어린 싹들이 어느 쪽 방향으로 틀어져 있는가를 보면 동서남북을 쉽게 알 수 있다. 보면 나무들이 햇빛을 많이 받는 쪽으로 향해져 있다. 그리고 나무가 한 쪽으로 많이 쏠려 있으면 어느 쪽에서 바람이 사시사철 부는 것인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햇볕이 따뜻한 양지쪽에는 얼음이 빨리 녹는다.


이런 자연을 보고 자기가 산에서 길을 잃어도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거다. 물은 아래로 흐르니까 물이 흐르는 걸 보고 ‘평야가 어디쯤 있겠구나’ 하는 걸 알 수 있다. 그런 지혜를 만물의 이치로 주었다. 사람도 살면서 ‘정신이 하락적으로 들어가 있구나’ 하면 그 사람의 결과가 어떤가가 나오는 거다.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세대는 사람이다. 사람이 없는 세대는 없다.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성분적으로 보면 자기에게 하는 말씀이다. 안 믿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온전에 관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일은 안 하고 안 믿는 정신을 가지고 교회에 들어와서 성경구절을 대면서 현상적 가식적 종교적 활동으로 나가면 이것은 그 소원 목적을 세상에 둔 것이다. 이것은 실상이 아니고 현상이다.


우리는 예수 믿으면서 현상세계에 살고 있지만, 임시적 세상에 살고 있지만 사건 환경이 지나가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실상을 자기의 실상적 인격으로, 하나님의 성품으로 온전하게 만드는 게 신앙 믿음이다. 믿는 사람은 세상에서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거다.


그런데 눈으로 보여지는 현상적 가식적인 세상을 따라가게 되면 그 사람 속에는 목적이 그게 들어있기 때문에 그 세상이 없어지기까지 그 활동 목적으로 사는 수밖에 없는 거다. 이렇게 되면 그 사람 속에는 성령의 눈으로 보는 인격적 성품적 열매는 안 맺혀지고, 쉽게 말하면 나이는 먹었어도 사람은 안 만들어지고 잎사귀만 무성해진다. 즉 활동만 냅다 무성하게 한다. 목적이 그렇게 되면 사람 속에 참 사람이라고 하는 열매는 없다. 사람인데 사람의 모습이 안 보인다.


개체적으로는 물론이고 한 개인이 품은 것처럼 교회 전체적으로나 기독교 전체적으로 그렇게 돌아가면 이제 성경이 말씀하는 대로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마지막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교인들이 세상이 좋아하는 대로의 열매가 없는 활동,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사는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을 때 마지막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그 마지막은 전체이면서 자기 개인도 들어가는 거다. 개인이 없는 전체는 없다. 전체 속에 개개인마다 다 들어가 있는 거다. 그래서 자기의 신앙의 질을 검토해 보아야 한다.


예를 들자면 성경에서 예수님이 잡혀있을 때 그걸 누가 잡게 해 줬느냐? 어느 무리들이 잡느냐? 어느 무리들이 헐뜯느냐? 그리고 평소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을 좋아하던 제자들 즉, 교인들 목사들은 어디로 다 튕겨져 나갔느냐? ‘예수 믿는다 하는 제자들이 다 도망갔구나’ 그렇게만 보지 말고 돈을 좋아하는 가룟유다의 성질을 가졌으면 목사고 성도고 간에 반드시 예수를 팔아먹는 데로 들어간다. 그리고 폭도들은 혼합적인 정신과 사상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물질에 의해서 상황에 의해서 돌발적 행동을 하게 돼 있다. 사람이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그런 이치를 가지고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그 이치가 성경 속에서 다 나오는 거다. 그러니까 성경을 가지고 주님을 기준하고 볼 때에 하루 이틀이 아니고 예수를 오래 믿으면 성경의 인물들 속에는 그 사람의 성격 성질 소원 목적이 들어있는 고로 그것을 보면서 ‘나의 위치는 어디에 있느냐’ 하고 비교해서 견주어 보면 ‘아, 나도 이 세대에 속한 자였구나’ 하고 나오는 거다. 이치에 의해 자기가 드러나는 거다.


성경은 왜 배우느냐? 자기의 위치를 바로 알아서 심판을 받지 않기 위해서다. 그게 성경을 주신 목적이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게 해서 심판을 안 받게 하는 거다.


충성봉사를 열심히 하면 심판을 안 받는 거냐? 그렇게 보면 안 된다. 신앙이라고 하는 그 정신이 계속 세상으로 나아가며 종교적 봉사적으로 살고 있다면 그건 신앙이 아니다. 그런 신앙은 성령의 열매가 없을 수가 있다. 예수정신으로 여물어지는 그건 없이 봉사적으로만 계속 활동을 하면 그 덕을 본 사람은 예수를 안 믿는다.


그래서 멸망의 가증한 것이 뭐냐? 썩고 불타지고 변동되고 진동되고 요동되는 그런 세상 것을 소원 목적으로 가지고 있으면 그게 멸망의 가증한 것이다. 교회 같으면 활동봉사 충성목적이 하나님 자리에 놓여져 있다면 즉, ‘그것이 제일 첫째로 신앙이다’ 하는 정신으로 놓여져 있다면 그건 끝난 것이다. 교회는 사람이니까 그런 이치를 가지고 개개인적으로 볼 때 자기 속에 그것이 서 있다면 너는 끝났다. 네 일생은 끝났다. 너를 만든 창조목적이 그게 아니다.


하나님의 인간창조의 원인 동기 목적이 세상 모든 것을 이용 활용 사용해서 자타가 하나님의 성품으로 만드는 그 일을 하는 것인데, 이게 바로 구원이다. 이건 ‘지옥에서 천국간다’ 하는 그런 장소적 의미가 아니라 성품적 영능의 실력적인 면에서의 구원을 말하는 거다.


31절: 엿새 동안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셨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천지를 없이 하실 분도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이룰구원을 위해서 천지를 만드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우리의 신령천국의 누림을 위해서 물질세상을 없이 할 분도 하나님이시다. 있게 하고 없게 하는 것은 하나님 당신의 주권에 놓여져 있다. 그러니 자기가 신앙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에 놓여있는 것을 자기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처럼 하지 말아라.


쉽게 말하면 자기가 몇 살까지 사는지는 자기 주권에 있는 거냐, 하나님의 주권에 있는 거냐? 하나님의 주권에 있는 거다. 그런데 ‘내가 몇 살 때까지 살겠다’ 한다면 이건 건방진 거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이 땅으로 올라가고 있는 것을 아말렉인들이 가로막았다. 사람을 천국으로 향해 소원 목적을 갖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못 닮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의해서 하나님과 대 원수가 되는 거다. 하나님의 원수가 된다. 창조의 목적에서 완전히 다른 길로 빼내는 것이니 그렇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징계와 앙화가 두려운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는 길은 오직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길인데 딴 길로 가버리면, 사마리아 길이나 이방인의 길로 가면 어떻게 되겠느냐? 예수 믿으면서 도둑을 다 맞는다. 젊음 시간 노력투자 한 거 다 도적맞는다. 사망이 와서 다 훔쳐간다.


이렇게 자기 일생을 살았더라도 자기 속에 든 것은 아무 것도 없고 그 사람의 정신은 썩어있다. 나쁘게 말하면 그 정신은 귀신의 집이 돼서 온갖 귀신들이 구더기처럼 와글와글하는 거다. 그래서 쌀 뒤지 속의 쌀이 벌레 먹은 걸 우리에게 보여주는 거다. 곡식을 관리를 못하면 곡식이 그렇게 되듯이 안간 자기가 하나님 앞에 관리를 못 받으면 자기는 벌레 먹은 좀 집이 된다. 그걸 영의 눈으로 보게 하는 거다. 그런 자는 주인으로부터 혼쭐이 난다. 표현을 하자면 그게 심판이다. 자기를 좀 집으로 만들지 말아라. 벌레를 먹게 하면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천지가 생겨지기도 하고, 우리의 이룰구원을 위해서 역사를 진행을 하셨고, 세상을 없이 하실 분도 하나님이시고, 인간 자기가 생겨남도 또는 죽는 것도 하나님 말씀 안에서이고, 안 믿는 사람이 생겨나게 하심도 죽는 것도 말씀 안에서 되는 거다. 모든 세상이 말씀 안에 다 들어있다. 그걸 피할 수가 없다.


인간들이 의식을 하던 안 하던, 세상 사람들이 믿어주던 말던 인간들의 역사의 변천사는 다 말씀 안에서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이루어진다. 성경을 떠날 수가 없다. 성경 안에 다 들어있다. 마귀도 들어있고 안 믿는 사람도 들어있고 믿는 사람도 들어있고, 모든 산천초목과 과거 현재 미래가 다 들어있다.


인간들이 과학적으로 지구의 연대를 측정하며 지구의 시작과 지구의 마지막을 아무리 말을 해도 그것과 상관없이 하나님 당신의 말씀으로 시작과 진행과 끝을 맺는 거다. 과학자들의 말에 의해서가 아니다. 이게 믿어지느냐?


하나님이 아닌 인간들이 세계 각국에서 핵을 터뜨려서 온 인류를 없이 했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세상 마지막을 이루려고 하는 그 말씀이 취소가 될까? 별개다. 인간들이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3차 세계대전’ 하는 것도 가만히 보면 하나님의 말씀 안에 들어있으면 있지 그것이 마지막을 만드는 주격이 돼서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을 뒤따라가는 게 아니다.


세상을 만들 때 무엇이 세상을 있게 했느냐? 어느 유명한 인간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셨으니 없이 하실 분도 하나님이시다. 말하자면 그 주권을 인간 네가 시인을 하고 있느냐 그 말이다. 그게 믿음이다. 안 하고 있다면 믿음이 아니다. 안 하고 있다면 그 다음은 말할 게 없다.


32절: 혹시 아버지 하나님께서 천사들에게 심부름을 시킬 때 세상 마지막 심판의 날짜를 하나님께서 써놓은 게 있었는데 이걸 천사들이 심부름을 하면서 아버지 본인 자신도 모르게 봤다거나, 아니면 하나님 마음속에 ‘내가 몇 년도에 세상을 끝내야겠다’ 하고 입속에서 중얼거리는데 천사가 그걸 듣고 어느 교회에게 ‘예수님께서 몇 년 몇 월 며칠 몇 시 몇 초에 온다’고 한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 아버지가 아들 예수님에게 귓속말로 마지막 날을 말씀해 주시면서 ‘교인들이 아무리 가르쳐 달라고 해도 그날까지 입도 뻥끗하지 말라’ 해 놓았기 때문에 이 성경에 아들도 모른다고 한 것이냐?


절대 비밀인데 혹시 어느 교인에게만 살짝 가르쳐준 것은 없을까? 혹시 안다면 그 안다는 게 아는 거냐? 혹시 안다면 그건 100% 마귀가 한 짓이다. 왜냐? 마귀는 거짓말을 잘 한다. 그 다음에 마귀는 시간낭비를 하게 만든다. ‘내일도 있다. 모레도 있다’ 한다. 자기가 지금 그러고 있다면 마귀에게 속고 있는 거다.


마지막 심판의 날은 아버지만 아심인데, 마지막 심판의 날을 가르쳐 달라고 금식기도로 보채다가 거짓 영을 받고 마귀 짓하는 거짓 종들이 많다. 왜 아버지의 주권을 자꾸 넘겨다보느냐? 우리는 깨닫는 수준이, 아는 수준이 일반사람들이 속는 그런 차원에 머물러 있지 말라. 일반차원에 속는 사람은 일반사람과 똑같은 취미나 소원 목적이 그대로 들어있다.


그 다음에 예수 믿는 자기라면 교회나 목사들에게 속지 말라. 왜 속느냐? 이상한 짓하는 걸 보고 ‘이 사람이 유명하다’ 이런 식으로 보고 들어간 것이다. 이건 잘못 보는 거다. 그렇게 되면 노력봉사, 심지어 자기 몸까지 빼앗길 수가 있다. 그렇게 해서 자기 마음을 도적맞으면 그 집안에 뭐가 남겠느냐?


그 다음에 교회에서의 교훈이 정확하게 이룰구원이 아니라면 그건 창조의 목적에 든 교회가 아니니 그런 교회에서 충성봉사를 하게 되면 자기가 수고한 모든 게 사망계로 떠내려 가버린다. 예수를 믿으면 예수라는 열매가 속성적으로 실상적으로 맺혀야 하는데 안 맺힌다면 이 사람은 피부와 골각은 사람일지 모르지만 사람 속에 열매 맺힌 게 없으니 짐승과 같은 거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자녀다운 지혜지식성 도덕성 능력성이 있어야 한다. 영적 기능 지능 면에서 빠르고, 그리고 살리는 운동을 해야 한다. 교회는 바로 그거다. 그리고 예수를 믿어갈수록 자기 속에서 깨달음으로 살아나는 것이 있어야지 맨 충성봉사나 하고 직분이나 받고 할 자기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과의 일대 일로 말하자면 자기 존재 하나 때문에 지구가 돌아가고 있고 존재하고 있는 그런 자기 존재다. 자기 하나 죽으면 그 자기에게는 세상이 필요가 없는 거다. 성경으로 보는 창조의 목적에서 자기의 존재목적을 바로 잡아라. 하나님 다음에 자기다.


33절: 마지막 형벌의 날은 아버지만 아신다. 그렇다면 성도인 내가 할 일은 뭐냐? 자기가 할 일은 뭐냐? 주의하고 깨어있으라. 눈으로 보이는 면에서도 주의해야 하지만 세상적인 비진리와 거짓된 자들과 짝하여 돌아다니면 영과 육의 손해가 막심하다.


예수 믿으면서 신앙 믿음 면에 손해를 보면 안 된다. 세상 사람들도 자기가 노력 것 해서 손해를 보면 그렇게 원통히 여긴다. 신앙 믿음에 있어서 세상이 자기를 속이고 자기 마음을 도적질해 갔다면 자기는 세상에 속은 것이다. 그 원수를 갚는 것을 눅:에 과부가 보여줬다. (계속)


*************************

성도가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발로된 인간구원의 의사를 좇아서 신앙을 해야만이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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