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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 (행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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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 (행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성경이 예언하고 있는 종말 시대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주류 교회의 배도(背道) 현상입니다.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살후 2:3). 
이 시대 배도의 기운은 종교다원주의를 통해 하나님의 교회 안으로 무섭게 침투되고 있습니다. 이

럴 때일수록 우리는 오직 예수 신앙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유일한 길이

요 진리요 생명임을 더욱 확신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 을 확신하고 이를 공고히 다져야 하겠습니다. 
복음을 전하다보면 흔히 듣는 말 중에 ‘당신이 신실하게 믿는 한 무엇을 믿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 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신실함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신실하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닙

니다. 수세기 동안 사람들은 태양이 지구의 둘레를 돈다고 신실하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

리가 아니었습니다. 
‘무엇을 믿는가와는 상관없이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진심으로 믿는 것’ 이라는 말이 어리석은 것

이라면, 왜 사람들은 유독 종교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그렇게 말할까요? 그 이유는 사람들이 진리나 

믿음에 관해 꼼꼼히 생각해 보지도 않고 종교적 논쟁에 휘말리기를 꺼려하기 때문입니다. 더 깊은 

이유가 있는데, 사람들은 삶과 죽음이라는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아는 것을 불편해 하고 두

려워합니다. 
지금은 글로벌 시대입니다. 세상은 지구촌이 되어가고 있고, 같은 장소에서 동시에 수많은 타문화

와 타종교의 요소들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신은 하나이고 모든 종교는 다

른 방법으로 같은 신을 찾는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인, 힌두교인, 모슬렘인, 그리고 불교

인은 비록 방법은 다르지만 같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매우 매력적인 아이디어이고 

폭 넓은 견해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더욱이 주된 종교들은 한결같이 윤리적 측면을 강조하여, 평화를 사랑하고 나눔과 돌봄을 선호합니

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러 종교들의 다양한 견해들을 받아들여 신(神)에 관한 전체적인 그림을 그

리려고 합니다. 인도의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는 “종교의 영혼은 하나인데 다만 

다른 형태들 안에 넣어져 있을 뿐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종류의 혼합주의는 얼핏보면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다른 

믿음을 갖고 있는 예배자들에게 모든 종교는 같은 것인가를 질문한다면 그들은 펄쩍 뛰며 부인할 

것입니다. 더구나 세계종교들을 조사해보면 ‘모든 종교는 같다’ 는 주장은 설 자리가 없다는 것

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보십시오. 힌두교가 믿는 신은 비인격적이지만 모슬렘의 알라는 인격적입니다. 불교는 신이 없는, 

즉 최종적인 존재가 없는 종교입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인간을 용서하실 뿐 아니라 초월적인 도

움을 주십니다. 불교와 힌두교에는 오직 인과응보(Karma)만 있을 뿐 용서나 초월적인 도움은 없습

니다.
또한 각 종교가 추구하는 삶의 목표도 같지 않습니다. 이 땅의 삶이 끝난 후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불교에서 모든 존재의 목표는 소멸입니다. 다시 말하면 욕망과 인격의 완전한 정지, 547

번 이상의 윤회를 통해 붓다가 도달한 니르바나(nirvana)입니다. 모슬렘은 포도주와 연인들과 노래

로 가득찬 육감적인 파라다이스를 추구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존재 목표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영원히 하나님을 즐기는 것입니다. 보시다시피 각 종교는 매우 

다른 것을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까?
아마도 모든 종교들 간에 가장 큰 차이점은 다음과 같은 기독교의 주장에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도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 최선을 다해 모든 것을 시도해도 자신을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자격이 있는 자로 스스로 만들 수 없다.” 
죄 값을 지불하는 ‘인과응보’ ‘카르마’의 원리는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거저 주어지는 ‘은

혜’(grace) 와는 극과 극입니다. 사랑이 많으신 인격적인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적 세계관은 인격

적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동양의 종교관과는 타협할 수 없는 대조를 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좋아하건 싫어하건 상관없이 ‘모든 종교는 동일하지 않다’ 는 것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예수님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저는 지금 ‘무엇이 기독교를 특별하게 만드

는가?’ 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사실 여러 가지 면에서 기독교는 특별하지 않습니다. 기독교 역시 

다른 종교들이 갖고 있는 과실과 약점들이 많습니다. 
기독교는 제도상으로 많은 세속적 조직들의 특성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탐욕과 부

패와 전쟁들로 얼룩져 있습니다. 기독교인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틀리기 쉬운 사람들입니

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들보다 반드시 우월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특별한 것이 

있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무엇이 예수님을 특별하게 만듭니까? 수많은 위대한 종교적 천재들이 있는데 왜 유독 예수님입니까

? 왜 다른 위대한 성인들은 안중에도 없을 정도로 예수님에게만 심취해야 합니까? 무엇이 예수님을 

다른 종교적 지도자들의 무리로부터 구별합니까? 무엇이 예수님을 특별하게 만듭니까?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의 유일성을 확신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종교다원주의에 맞서 싸

우는 영적 전투에서 오직 예수 신앙으로 승리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예수님의 비할 수 없이 위대한 영향력
예수님이 특별한 존재인 이유는 그분이 세상에 끼치신 영향력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상 어느 누구

도 예수님만큼 영향력을 끼친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종교도 기독교만큼 많은 예배자들을 소유해본 

적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유일성은 주님의 비할 수 없이 위대한 영향력을 통해 잘 나타납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이 땅에서 짧은 삶을 사셨고 책 하나 글 한줄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위해 어떤 기념물이나 법인을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분에 관한 책이나 기

관이나 기념물들이 온 세상을 뒤덮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 그리고 그의 영향

으로 시작된 초대교회에 관한 풍부한 자료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후대의 제자들은 예수님에 관한 원본의 기록을 엄청난 수의 사본으로 남겼습니다. 5,000개 이상의 

헬라어 사본들과 10,000개 이상의 라틴어 사본, 그리고 9300개의 다른 언어로 쓰여진 사본들이 있

으며, 그뿐 아니라 초대교회 교부들의 글 속에 36,000개 인상의 인용구절들이 있습니다. 인류 역사

에 이런 기록에 근처에나마 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영향력은 비할 수 없이 

위대합니다. 

나폴레옹이 헬레나 성에 수감되었을 때 예수님의 인격을 묵상한 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알

렉산더, 시저, 그리고 나는 위대한 제국을 건설해 왔다. 우리의 모든 천재적 작품들은 힘 위에 세

워졌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분의 나라를 사랑 위에 건축했다. 바로 오늘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예

수님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칠 것이다.”
나폴레옹은 계속합니다: “나는 군중들이 나를 위해 광적으로 헌신하도록 그들을 고무시킨다. 이렇

게 하기 위해 나의 표정이나 연설문, 목소리의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내가 청중을 바라보고 그

들에게 연설할 때, 나는 그들의 심장 안에 잠자고 있는 헌신의 불꽃을 일으킨다. 그러나 예수 그리

스도는 무려 1,800년이란 시간 차이에도 불구하고 어떤 신비적인 영향력으로 사람들의 심장을 강력

하게 잡아당겨 그분의 한마디 말에 수천 명이 자신들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불을 뚫고 물을 건너 

예수 자신을 향해 달려오게 만든다.”
예수님은 다른 어떤 위인보다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큰 영향력을 나타냈습니다. 오늘날 영향력을 

말한다면 모하메드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의 양식은 예수님의 사랑의 삶과는 비교

할 수 없이 전투적이었습니다. 세상의 여러 국가에 현존하는 이슬람은 나이지리아나 인도네시아에

서처럼 여전히 힘의 종교로 남아 있습니다. 
그에 비해 예수님은 무력의 방법을 거부했고 사랑의 방법을 수용했습니다. 십자가야말로 원수를 위

한 희생적 사랑의 지고(至高)의 본보기가 아니겠습니까! 또한 예수님은 용기와 관용, 이웃 사랑과 

순결을 갖도록 사람들을 격려했습니다. 수세기를 내려오면서 그가 전 세계에 걸쳐 농부나 귀족, 지

식인이나 문맹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그리 놀랄만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지역, 모든 문화권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을 손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도의 고지대 부

족이나 전쟁을 좋아하는 케냐의 마사이 부족에서, 남아프리카의 무지개 마을이나 핀란드나 싱가폴

에서 지금도 그리스도인의 수가 계속 확대되고 있습니다. 무수히 핍박을 당해도 그들은 겁먹지 않

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매력 앞에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가난하고 연약한 자에게 희망과 정의와 사랑을 주었고, 노인과 젊은이, 교

만한 자와 자기 학대자 등 모든 사람들을 포용했습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인류 역사 어디에서 

예수님과 같은 인격의 소유자를 찾을 수 있습니까? 누가 각 세대의 남자와 여자, 심지어 어린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예수님의 영향력과 맞설 수 있습니까?
세상 누구도 나사렛 예수님과 같은 영향력을 끼친 사람은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을 특별하

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2. 예수님의 비할 수 없이 심오한 가르침
둘째로, 예수님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그분의 심오한 가르침입니다. 어느 누구도 예수님처럼 가

르친 자는 없습니다. 
예수님이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는 그분의 가르침의 많은 부분이 자신에 관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우리는 예수님과의 관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

다.
사람들의 내면 깊은 곳에는 굶주림이 있습니다. 20세기 심리학의 선구자들은 모두 이 점을 깨달았

습니다. 프로이드는 “사람들은 사랑에 굶주려 있다”고 했고, 칼 융은 “사람들은 안전에 굶주려 

있다” 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들러는 “사람들은 의미에 굶주려 있다” 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

님은 “나는 생명의 떡이니”(요 6:36)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너의 굶주림을 채우고 

싶다면 나에게 오라”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무나 자신만만한 주장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둠과 절망 가운데서 가야할 곳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많은 이들이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 11:25-26).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걱정, 근심, 죄의식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까? 주님은 말씀하십니

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성도 여러분! 세상에 이런 식으로 자신 있게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영접

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며(마 10:40), 자신을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본 것(요 14:9)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하나님과 같은 위치에 있음을 보여주는 말을 여러번 하셨습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예수께서 자신이 죄를 용서할 수 있는 분임을 주장하신 점입니다. 주님은 중풍

병자에게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막 2:5)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말씀입니다.
또 한 가지 예수께서 하신 특이한 주장은 언젠가 그가 세상을 심판하시리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다

시 돌아와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마 25:31)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민족들이 그 앞에 모

이며 그가 민족들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받겠지만 다

른 사람들은 영원한 형벌의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직접적으로 주장하셨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냐?” 라는 질문을 받고 예수님은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막 14:62) 고 대답하셨습니다. 
12제자 중 하나인 도마가 부활하신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

이다” 라고 말했을 때 주님은 그 말을 부정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늦게 깨달은 도마를 나무라셨습

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성도 여러분! 이처럼 엄청난 말씀을 거침없이 주장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이 모든 서구 문명의 기초

가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서도 그의 가르

침은 가장 위대한 가르침이라 널리 인정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산

상수훈을 좋아합니다. 내 생활 신조입니다.”
실제로 산상수훈을 찬찬히 읽어보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의 권능을 느껴보십시오. 구약은 살인과 

간음을 금하지만 예수님은 더 깊이 들어가 증오와 욕망을 금합니다. 구약은 이웃 사랑을 격려하지

만 예수님은 더 깊이 들어가 원수를 사랑하라고 격려하고 사랑 실천을 요구합니다. 구약은 “눈에

는 눈, 이에는 이” 라고 복수를 제한하지만 예수님은 복수 그 자체를 완전히 금합니다. “악한 자

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마 5:39).
심오하지 않습니까? 오늘까지 어느 누구도 주님의 가르침에 더 나은 도덕을 추가하지 못했다는 사

실을 여러분은 어떻게 받아들이십니까? 만일 여러분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개선할 수 있다면 세계 

주요 신문 1면에 보도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가르침에 있어서도 유일하신 분입니다. 

3. 예수님의 비할 수 없이 균형잡힌 인격
예수님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그분이 끼친 영향력과 그분의 심오한 가르침, 그리고 그분의 균형

잡힌 인격입니다. 예수님과 같은 인격의 소유자는 지금까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주님은 겸손하면서도 강하고, 깊은 신앙을 가졌으나 현실문제로부터 도피하지 않으시고, 평화로우

나 열정적이고, 육체적으로 강하지 않았지만 역동적인 삶을 사셨습니다. 그분은 죄나 악과는 일체 

상관이 없으셨고, 인류와 관계된 모든 덕목을 구현하셨습니다. 세상에 인격과 품성 면에서 예수님

과 비교할 자는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인류 역사에 훌륭한 가르침을 남긴 분들은 많습니다. 모세, 소크라테스, 공자, 석가

와 같은 고대의 성현들, 그리고 이 시대의 어머니 테레사, 마틴 루터 킹, 빌리 그래함 등은 모두 

훌륭한 가르침을 남겼고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가르침을 붙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위대한 인물들 

가운데 자신의 가르침 모두를 실행한 자는 없습니다. 
석가는 응석받이의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공자의 결혼은 재앙이었고 결국 이혼으로 끝났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부적절하게 어린 소년들을 좋아했습니다. 모하메드는 비록 자신이 네 명의 아내를 취

할 수 있다는 신의 계시를 선언했지만(sura 4.3) 자신은 11명의 아내와 수많은 첩들을 취했습니다

(sura 33.50). 더욱이 모든 위대한 성현들은 양심의 가책을 시인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정직한 시

인이야말로 그의 성인됨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면에서도 전혀 달랐습니

다. 
예수님은 어떤 사람도 제시할 수 없는 가장 높은 수준의 삶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

을 스스로 지키셨습니다. 믿기 어렵지만 그것이 사실임을 증명하는 강력한 증거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원수들조차 그분에게서 어떤 잘못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본디오 빌라도같은 악하고 불

의한 지배자도 세 번씩이나 예수님의 무죄를 선언했을 정도입니다. 주님을 배반한 가룟유다도 결국 

자신이 무죄한 피를 배신했다고 시인했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한편 강도도 예수님

은 잘못이 전혀 없는 분이라고 했고, 십자가 형을 집행한 로마의 백부장도 “이 사람은 정녕 의인

이었도다”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적들로부터 나온 증거들이 매우 인상적이라면 주님의 친구들로부터 나온 증거들은 더 강

력합니다. 왜냐하면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약점이 모두 노출되기 때문에 그들에게 영웅이 되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제자 요한은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가까이서 알고 있었는데, 그는 예수님을 ‘세상에 와서 각 사람

에게 비추는 참 빛’ 으로 불렀습니다(요 1:9). 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불의(不義)한 우리를 대

신하신 의인(義人)’ 이라 불렀습니다(벧전 3:18).
그뿐입니까?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 으로 묘사합니다(고후 5:21). 히브

리서 기자는 예수님을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히 7:26) 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매우 잘 알고 있었던 사람들에 의해 기록된 신약의 증언은 분명합니다. 예

수님은 완전한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잘못을 사과했다’ 또는 ‘예수님이 잘못을 인

정했다’ 라는 말을 결코 찾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우리 죄를 사하여 주소서” 라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 자신은 그와 같이 기도해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그분은 죄나 허물

과 전혀 관계없는 완전한 분이십니다. 할렐루야!

[나오는 말]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유일한 구주요 주님이십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

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예수님의 지대한 영향력, 그분의 깊이를 알 수 없는 가르침, 그분의 완전한 인격 --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의 유일성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유일성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주님의 십자

가와 부활인데 이것은 또다른 큰 주제입니다.
나사렛 예수! 그분은 사람들의 증거를 필요로 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자신과 하나님은 

하나라고 선언하여 군중을 격분케 했고, 성난 군중을 향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이 질문에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예수님이 자신에 대해 하신 말씀을 살펴보면 실제로 다음의 세 가지 경우가 가능

합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었으며 지금도 그러하다든지, 아니면 과대망상증 환자이었든지, 아니

면 그보다 더 끔찍스런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증거를 살펴볼 때 그가 미쳤다거나 악마였다는 것은 그분의 가르침과 성품과 행동 등에서 

볼 때 말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신성을 가지신 예수님께서 스스로 인

간임을 자각했다는 것에 대한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실로 나사렛 예수 그분은 우리의 유일한 구주요 주님이십니다. 

(대구서현교회.박순오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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