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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첫 사랑의 회복 (계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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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랑의 회복 (계 2:1-7) 


미국의 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토니 캄폴로 박사가 95세 이상 된 사람 50명을 대상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의 앙케이트 조사를 했습니다. 이는 우리도 깊이 참고해야 할 이야기 같습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또다시 삶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세 가지만 기록해 주십시오?” 

가장 많이 나온 응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날마다 반성하며 살겠다”였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다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반성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많은 응답이 “용기 있게 살겠다”는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비굴했다는 것입니다. 눈앞의 이득 때문에 양심을 속였다는 것입니다. 불의와 타협했다는 것입니다. 진실을 말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한번 더 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용기 있게 살겠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죽은 후에도 무엇인가 남는 삶을 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지금까지 물거품 같은 삶을 살았고 다 없어지고 말 것만을 추구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긍극적인 의미에서 좋은 본이 못 되었다는 것이 아닙니까? 

외람된 말씀일지 모르지만 최근에 들어 저도 나이를 의식하게 됩니다. 지나온 날을 돌아봅니다. 이제는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짧기에 남은 생애를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해 봅니다. 특히 몇 년 전부터는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난날의 나의 신앙생활과 요즘의 나의 신앙생활을 돌아 볼 때 솔직히 많은 부분이 타성에 젖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앞으로도 타성에 젖어 무력한 사역을 마칠 수가 있다는 심각한 이야기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비단 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제 마음을 떠나지 않는 단어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회복’이라는 단어입니다. 

보세요. 우리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 되었습니다. 신앙의 본질은 이 단절 된 관계의 회복에 있습니다. 이 회복이야말로 참 된 신앙의 동기요 과정인 동시에 목표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첫 단추를 잘못 끼워놓고서야 아무리 정진을 한다하더라도 그 미래가 계속 어긋나기밖에 더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저는 두 달에 걸쳐서 우리 신앙의 기초를 다시 한번 돌아보고 그것이 잘못되어 있으면 바로 고치는 회복의 과정을 통해 더 성숙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대하는 본문을 보면 이 에베소 교회가 “첫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로 주님으로부터 호되게 책망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도 아시지만, 에베소 교회는 대단히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오랜 전통 속에서 안정된 교회였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남부러울 것이 없는 교회였습니다. 무엇보다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이 개척한 교회이었고, 그는 이곳에서 자신이 개척을 한 교회 중 가장 오랫동안 3년을 머물면서 목회를 한 교회입니다. 

그리고 유명한 성경교사였던 아볼로, 신실했던 목회자인 디모데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현장에서 직접 어머니를 부탁받았던 사도요한이 예수님의 어머니를 끝까지 모시고 목회했던 곳이었습니다. 교회가 있던 지역은 무역으로 유명한 소아시아에서 가장 큰 항구도시였습니다. 한편으로 우상 숭배와 미신으로 선교가 힘든 지역이기도 했습니다. 아데미 여신전이 있었기 때문에 복음 사역이 가장 힘든 곳이어서 바울사도는 두란노라고 하는 서원을 세워 말씀으로 교인들을 집중적으로 훈련시켰던 것입니다. 

또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라는 헌신적인 부부가 나왔던 곳이기도 하고 소아시아 교회 중에서 가장 모범이 되면서도 정통적이고 뿌리가 깊은 교회였습니다. 주변교회로부터 많은 칭찬을 받는 교회, 주님이 주인 되시는 교회였다는 사실입니다. 얼핏 보아서는 책망 할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특별히 주님께서 에베소 교회를 칭찬한 이유 중의 하나는 교회에 이단이 들어오려 했을 때, 말씀의 기준이 분명하여 지혜롭고도 조용하게 분별해내었습니다. 2절 말씀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모범적이고 든든한 교회가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는 쉽게 발견할 수 없지만, 주님은 그것을 분명하게 지적하셨습니다. 교회의 존립 자체가 흔들릴 정도로 치명적인 문제가 에베소 교회에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이었습니다. 4절에 보면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이들은 대단히 열심이었고, 말씀에 근거해서 거짓 교훈을 가려낼 정도로 뿌리 깊은 신앙을 가진 교인들이었지만, 첫사랑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첫 사랑’이 무엇입니까?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 가슴 가득히 밀려온 감격과, 주님을 생각하기만 해도 눈물이 앞을 가렸던 황홀할 정도로 감사했던 마음, 주님이 말씀하시면 목숨까지 내놓겠다는 마음으로 주님을 위해 섬겼던 뜨거운 열정이 아닙니까? 불행하게도 에베소교회는 그 첫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지금 주님은 만일 그 첫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네 금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 촛대를 옮기시겠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촛대는 빛을 발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주님이 자신의 몸 된 교회에 대해서 가지시는 가장 커다란 기대라는 것은 새삼스럽게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가 첫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교회됨을 소멸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에베소 교회를 교회로 인정하지 않으시겠다는 엄중한 경고인 것입니다. 첫사랑을 잃어버리고 잃어버린 첫사랑을 회복하지 못한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정말 심각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이 아침!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에 대한 첫사랑의 감격을 여전히 간직하고 계십니까? 아직도 주님에 대한 첫사랑의 감격이 나를 감격스럽고 황홀하게 만들고 있습니까?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신 그 사랑 때문에 예배 나오는 것이 즐겁고 내가 주님의 일에 쓰임 받는 그것이 너무도 기뻐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헌신한 때가 있었지 않나요? 그런데 오랫동안 신앙생활하다 보면 모든 것이 기계적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봉사를 할 때에도 오랫동안 그렀게 해 왔기 때문에 그저 반복적으로 할 뿐입니다. 뭔가 하지 않으면 마치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지 않는 것처럼 무언가 개운치 않기 때문에 열심히 일은 합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 기쁨과 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서도 마음에 찡하게 다가오는 감격이 없습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려본지도 너무나 오래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 앞에 간절하게 기도해본 기억도 가물가물합니다. 예배시간에 엄숙하게 예배를 드리기는 합니다.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헌금은 다 하고 있습니다. 말씀에 대한 지식도 있기에 이단을 분별해 내는 능력도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뜨거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삶만 있을 뿐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사랑하는 마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랑에는 뜨거운 감격이 있습니다. 생동하는 열정이 있습니다. 성령의 뜨거운 역사는 우리의 신앙을 살아 있는 신앙으로 만들어 줍니다. 그런데 성령의 능력보다는 자신들의 오랜 신앙생활 경험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사랑의 감격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찾아내는 데에는 정확하고 아주 빠릅니다. 열심이라면 어느 누구 못지않게 열심을 냅니다. 성경에 대한 지식도 풍부합니다. 교회 생활에도 아주 익숙합니다. 누가 보아도 아주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 복음의 능력은 없습니다. 뜨거운 기도도 없습니다. 가슴 벅찬 찬양도 드리지 못합니다. 그냥 모두들 자기들의 모범적인 종교생활에 만족하고 살아갈 뿐입니다. 예수 믿으면서 기쁨도 없고 감격도 없이 신앙생활 한다면 그것보다 더 불행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는 것 때문에 세상적인 즐거움을 다 뒤로하고 신앙생활하고 있는데, 이 신앙생활에서조차 즐거움을 찾지 못한다면 참으로 불행한 인생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 첫 사랑을 잃어버리고 아무 영적인 감각 없이, 그렇게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회복을 찾는 비결을 가르쳐 주십니다. 5절입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이 말씀 안에는 에베소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인 ‘잃어버린 첫 사랑’을 회복하는 비결이 세 단계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1)생각하고 2)회개하여 3)처음 행위를 가지라. 

여러분 가운데 바둑을 좋아하는 분들이 계실 줄 압니다. 프로 바둑 기사가 바둑 한판을 두는데는 보통 400여 수를 주고받습니다. 그런데 프로 기사들은 바둑이 끝나고 나서 그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확하게 복기할 수가 있습니다. 물론 그 분들의 두뇌가 뛰어난데다가 강훈련을 한 결과일 것입니다. 그러나 실은 프로가 아니더라도 이것은 가능합니다. 제가 신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바둑 실력이 5-6급이었습니다만, 저도 10-20수 이상을 복기 할 수가 있습니다. 

어느 날 바둑을 잘 두시는 분에게 어떻게 복기가 가능한가를 물었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대담을 했습니다. “프로 기사들은 의미 없는 돌을 놓지 않습니다. 의미 있는 돌만을 놓기 때문에 그 의미를 따라가면 복기가 가능하지요” 여러분의 인생을 돌아보십시오. 30년을 살았습니까? 50년, 혹은 그 이상을 살아 오셨습니까? 가운데 몇 수까지를 복기할 수가 있습니까? 만약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도 모르게, 복기할 수도 없을 만큼 그렇게 살았다면 내 인생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이제부터는 의미 있는 돌을 놓아야 합니다. 

자! 여러분 가운데 첫사랑을 잃었나요? 어디서 첫 사랑을 잃었는지 생각해 보세요! 오늘 부부들이 나오셨죠? 아마 다 첫 사랑의 추억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그 사랑의 힘 때문에 정말 윤기 나는 삶을 살아가나요? 아니면 이미 마지못해 살아가는 그런 사이는 아닙니까? 첫 사랑을 잃어가는 부부들에게 상담자들은 종종 추억 여행을 권합니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곳, 첫 키스를 나누었던 곳, 프로포즈를 했던 곳-이런 여행을 통해서 우리는 문득 그 첫 사랑의 감회를 되찾고 우리의 사랑의 언약을 기억해 낼 수가 있습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닙니다. 지난 날 자주 주님을 처음 만난 그 곳으로 기도의 여행을 떠날 필요가 있습니다, 거기서 내가 주님에게 드렸던 약속과 결단을 되새겨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 때문에 언제부터 내가 그 언약, 그 결심에서 멀어져 갔는가를 기억해 내셔야 합니다. 회개는 돌아가는 것입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품,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듯 내가 서 있어야 할 그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저 역시 처음 예수를 만났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이후 정말 예수님과 연예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주께서 나를 쓰시는 곳엔 어디든 기쁨으로 달려갔습니다. 교도소, 창녀촌, 군부대, 노방 전도 지하철 전도, 정말 내가 쓰임 받는다는 그것 하나 때문에 토큰이 없어도, 점심 값이 없어 굶고 다녀도 그냥 좋았습니다. 길거리에서 예수 전하다 뺨을 맞아 안경이 길에 나뒹굴어도 그냥 기뻤습니다. 그러던 내 안에 나도 모르게 타성에 젖어가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세상적으로 말하면 공부도 할만 큼 했습니다 학위도 있습니다. 또 명예도 누려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교회도 제가 섬기기에는 과분할 정도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첫사랑에 대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내 안에 받은 그 사랑을 가지고 이번 아이티를 가고 싶습니다. - 

지금 아이티는 콜레라가 창궐하여 현재 콜레라로 약 10만명 감염되었고 3000명이 사망했습니다. 앞으로 6개월 이내에 수십만명이 콜레라에 감염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방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해서 삼성 병원에서 콜레라와 말라리아 파상풍 주사를 맞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밤새도록 설사를 하면서 ‘내가 꼭 이렇게 해서 가야하나’ 왜 너 사서 그 고생을 하지!! 그렇게 목회 안 해도 되잖아!!“ 이런 생각을 하면서 밤새도록 화장실을 다니는데 갑자기 하나님 음성이 내 마음에 울리고 있었습니다. “안목사, 네가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 누구 때문인가” 따지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주님 역시, 이 더럽고 추악한 냄새가 나는 이 세상 한 복판에 당신의 그 영광의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죄악으로 물들고 오염된 나 하나를 건지기 위해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뛰어드신 것입니다. 뭐 자격을 따지지도, 무엇을 요구하지도 않으시고 그냥 달려와 십자가에서 나의 더럽고, 역겨운 냄새로 진동하는 나의 죄를 그대로 끌어안으시고, 희생 제물로 나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있는 그 모습 그대로 받아 주십니다. 이 엄청난 사랑을 이미 우리가 받은 것입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자신의 못난 모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믿어주시고 자기를 받아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 이 고백이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삶의 현장에서 늘 이 하나님의 사랑을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내 자신이 메말라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순수했던 첫사랑의 열정은 다 사라지고 너무 이기적이고 너무 계산적이지 않습니까? 

스펄전 목사님이 어느 날 엉엉 울었다고 합니다. “여보 당신 왜 울어요”, “내 마음이 병들었어. 내가 주님의 십자가 보혈 얘기를 들어도 마음에 감격이 없어. 감격이 없고 기쁨이 없어. 내 심령이 병들었어.” 이 고민은 스펄전에게만 있는 게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런 심각한 통증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도 아시지만, 작년 1월 12일 중남미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 아이티에서 7.0의 지진이 났습니다. 975만 인구 중에 지진으로 사망한 20만 명과 부상당한 25만 명, 그리고 지금도 복구가 안된 채 국민의 70%가 한 달에 2달러도 못 버는 눈을 뜨고는 차마 볼 수 없는 고통의 현장입니다. 그런데 이 지진으로 인해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번 지진 때 아이티의 Prevel 대통령은 매년 진행하는 마리그라 축제를 취소하고 국민을 향해 3일 동안 금식기도회를 선포했습니다. 그 때 100만이 넘는 아이티 국민들이 기도회에 참석했다고 합니다. 전체 인구의 10%나 되는 엄청난 숫자입니다. 

작년 아이티선교협회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지진 참사 이후 약 50일 동안 무려 40,127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기독교로 개종하였다고 합니다. 아마 그 이후로 수많은 영혼들이 주님께로 돌아왔을 것입니다. 지진으로 인해 아이티에 엄청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저는 제가 단지 전하러 가는 것만 아니라 그곳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려고 합니다. 그 굶주림과 고통 속에서도 다시 하나님의 사랑을 붙잡고 일어서는 그들 속에 파묻혀서 나를 향한 첫 사랑을 회복하는 은혜를 경험하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첫사랑을 회복한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주시는 약속의 말씀이 있습니다. 7절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이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인생을 살며 우리가 처음 사랑을 간직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주님은 아십니다. 처음 주님의 사랑을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간직하는 것도 어려운데 그 간직하는 방법은, 바로 성령의 외침 앞에 끊임없이 우리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성령은 살리는 영이요. 회복시키는 영입니다. 이제 오늘부터 우리 회복의 첫 걸음을 이 생명이 움돋는 희망의 계절에 내딛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여기 보세요. 첫사랑의 감격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게 하심으로 하늘나라의 생명과 즐거움에 참여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뜨거운 감격이 있던 첫사랑을 회복하셔서 구원의 기쁨과 감격 속에서 신앙생활 하시고, 하늘나라의 즐거움을 바라보시면서 삶의 고난이 있더라도 기쁜 찬송을 부르며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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