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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절대 주권적 선택 (롬 9: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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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주권적 선택 (롬 9:6-18)  


오늘 본문 말씀은 신학적으로 볼 때 예정론에 대한 내용입니다. 예정론이란 하나님께서 구원을 받을 자와 받지 못할 자를 이미 예정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을 자와 받지 못할 자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예정론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인간의 이성적, 상식적 눈으로 볼 때에는 논쟁의 여지가 충분한 내용입니다. 불신자의 입장에서는 “아니, 하나님이 누구는 사랑하고 누구는 미워하다니. 이렇게 불공평하고 편향적일 수 있느냐!”라고 따질 수 있습니다. 

또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 중에서도 이 예정 교리에 대해 오해를 하기도 합니다. “아니, 이미 예정되어 있는데 전도는 왜 하는가. 가만히 있어도 언젠가는 그 사람이 믿지 않겠는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더 극단적으로 가면 하나님의 예정과 주권을 자신의 실수에 대한 변명거리로 만들기도 합니다. 잘못은 자신들이 저질러놓고 모든 결과를 하나님의 뜻이라고 떠넘기는 파렴치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정론을 잘못 받아들이면 수동적이고 부정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논쟁의 여지가 있는 내용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이 사실이 변함없는 영적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이성적 잣대를 가지고 성경을 재단해 버리면 하나님의 의도는 하나도 남지 않고 그저 이스라엘의 역사책이 될 뿐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말씀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성도 여러분이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근원적인 뜻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분별하여 하나님의 큰일을 행하고 반드시 승리는 길로 나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하나님의 선택

지난 주 말씀을 통해 살펴 본 바와 같이 사도 바울은 누구보다도 자기 동족 구원에 대한 열정이 강했습니다. 차라리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다 할지라도 이스라엘 민족이 구원을 받게 된다면 그렇게라도 하겠다는 언약적 한이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언약적 한을 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회개하고 돌아오지 않는가에 대해 묵상했고 그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롬 9:6~8) 

바울이 얻은 답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여 다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부 아브라함의 육신적 혈통으로 태어나기는 했지만 어떤 사람은 구원을 받고 어떤 사람을 버림을 받았다는 것을 구약을 통해 발견한 것입니다. 바울은 구원의 축복이 단순히 육신의 혈통으로 인해 주어진 것이 아님을 실례를 들어 밝히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예가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가 아브라함의 씨’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이삭 외에도 이스마엘이라는 육신적 혈통으로 난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육신적 자녀가 아니라 약속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로 여기심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예는 이삭의 쌍둥이 아들인 에서와 야곱입니다. 10~1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리브가의 뱃속에서 에서와 야곱이 태어나기도 전에 야곱을 약속의 자녀로 택하셨다는 사실이 나옵니다. 그들이 태어나 자라면서 선을 행하여서 택함을 받고, 악을 행하여서 버림을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에서가 야곱보다 더 매력이 있는 남자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선택하셨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과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정확한 답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롬 9:11)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육적 이스라엘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 안에 있는 자 다시 말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만이 참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다음 말씀은 이 사실을 아주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엡 1:3~5) 

선택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선택받았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이며 축복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 15:10)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구원의 은혜, 쓰임 받는 은혜, 헌신할 수 있는 은혜 등 모든 것이 사도 바울에게는 은혜였습니다. 이러한 은혜 의식이 여러분의 삶 속에 사실적으로 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를 통해 성도 여러분이 약속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큰일을 행하고 반드시 승리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의 절대 주권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롬 9:14) 

바울은 하나님의 선택을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불의하다고 말할 수도 있음을 알고 이런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는 자신의 질문에 그는 “그럴 수 없다.”라고 단호히 답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선택은 피조물 된 인간이 이의를 달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에 대해 토기장이 비유를 들어 설명합니다.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롬 9:20~21) 

본문에서 토기장이는 하나님을, 진흙은 인간을 상징합니다. 영적 토기장이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그릇을 마음대로 만드실 권한이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롬 9:22~23)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기로 작정하신 사람은 진노의 그릇이 되고 택하신 사람은 긍휼의 그릇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구원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사역임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위기가 찾아와도 그것을 위기로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해 자칫 오해하면 인간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지만 도리어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은 절대 방관자적인 삶을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했던 사도 바울은 자신의 생 전부를 복음 증거하는 것에 바쳤습니다. 바울은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4),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골 1:29)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자, 하나님과 통하는 자는 말씀을 붙잡고 현장에서 복음을 증거하게 되어 있습니다.

건강하려면 3다(多)를 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많이 움직이고, 사람을 많이 만나고, 말을 많이 하라는 것이 그 내용입니다. 이 세 가지를 한 번에 응답받는 비결이 있습니다. 바로 현장 회복입니다. 모든 성도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절대 주권적으로 여러분을 선택하신 분명한 이유를 붙잡고 한 영혼이라도 더 살리려는 전도자의 삶을 살아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인터넷에 보면 각 연령대에 따른 부부간 수면 양상에 대한 재미있는 글이 있습니다.

“20대는 딱 달라붙어서 잔다. 30대는 마주보고 잔다. 40대는 천장을 보고 잔다. 50대는 등을 돌리고 잔다. 60대는 딴 방에서 잔다. 70대는 어디서 자는지 모른다.”

저는 이 유머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의 영적인 삶이 이렇게 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님과 가까이 통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도리어 영적으로 무감각해지고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는 양상을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하나님께 택함 받은 축복,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축복을 더 가까이, 더 깊게 맛보시기 바랍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선택을 받은 자라는 영적 정체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큰일을 행하고 반드시 승리를 얻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선택으로 구원 받은 성도의 반열에 서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어마어마한 축복 속에서 하나님과 영적 교제를 나누는 약속의 자녀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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