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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로운 시작 (롬 1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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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 (롬 10:1-13)   


오늘 살펴볼 말씀은 영적인 삶의 근본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내용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 말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에 이르는 길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올바른 구원의 길이 무엇인지에 대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길이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의 자리로 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내용은 기독교가 독선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가장 큰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산 정상에 오르는 길이 여러 군데가 있듯이 구원에 이르는 길도 종교마다 각기 다른 길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러한 주장이 완전히 잘못된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영적인 실체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단순히 인간의 생각 수준에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도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오해하여 지금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참된 복음적 회복이 있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이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인생의 이정표를 분명히 발견하여 하나님의 큰일을 행하며 반드시 승리하는 현장 전도 제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새로운 열정 회복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롬 10:1~3) 

사도 바울의 생각은 자기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동족을 향한 깊은 기도 가운데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을 얻지 못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잘못된 열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는 이 말씀은 그들의 방향이 잘못되어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만큼 하나님께 열심이고 특심인 이들도 없습니다. 한 유대 랍비는 “표범처럼 강하게 독수리처럼 잽싸게 영양처럼 빠르고 사자처럼 용감하게 하늘에 계신 그대 아버지의 뜻을 행하라.”라고 가르쳤습니다. 과감하고 민첩하게 하나님의 뜻을 즉각적으로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동물의 습성으로 표현한 내용입니다. 

이 정도로 유대인들의 열심은 대단했습니다. 이 같은 열심은 다른 종교에서도 보입니다. 어떤 종교적 행위나 헌신‧봉사‧구제 등이 구원의 조건이라고 여기며 그에 집중합니다. 선행이나 봉사 등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그것이 결코 구원의 길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인간의 도덕이나 윤리와 같은 기준을 구원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 3절에서 이런 모든 종교적 행위가 결국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특히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보통 사람들이 지키지도 못할 율법을 지킨다고 하면서 자기 의를 내세우는 데 온갖 노력을 기울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의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바울은 아래의 말씀을 통해, 창세기 3장에서 발생한 인간의 범죄 즉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를 지어 하나님을 떠나 죄와 저주 가운데 사단 종노릇 하며 살다가 영원한 멸망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인간을 구원의 이끄는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 정확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롬 10:4)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의라는 것을 말합니다. 범죄한 인간은 결코 스스로 의롭게 되지 못합니다.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의를 충족시켜 드리는 구원의 자리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일 뿐 인간의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님을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기를 꺼려하는 이들은 대개 과거에 지은 죄가 많다든지, 술이나 담배를 하기 때문이라는 등의 이유를 듭니다. 하지만 이것은 속는 것입니다. 지금 그 상태로 나오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는 모두 ‘공사 중’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미국의 빌리 그래함 목사 부인인 루스 그래함 여사의 묘비에는 ‘공사 끝. 그동안의 인내를 감사.’라는 문구가 쓰여 있습니다. 이 묘비 문구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어느 날 부부가 운전을 하고 가다가 동네에 늘 붙어 있던 ‘공사 중입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라는 안내 문구 대신 ‘공사 끝. 그동안의 인내에 감사합니다.’라는 안내판이 새롭게 세워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에 루스 그래함 여사가 남편에게 저 문구를 자신의 묘비에 새겨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인간의 모습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직 공사 중입니다. 부족하고 연약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필요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도 율법의 눈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보고 다른 사람을 보시기 바랍니다. 자신을 의롭게 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구원의 유일성을 붙잡고 나갈 때 인생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이 이러한 영적인 진리를 분명히 붙잡고 신앙생활을 해 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새로운 시작

사도 바울은 인간의 행위를 자꾸만 강조하는 율법적 접근에 대해 본문 4절에서 그에 종지부를 찍는 선언을 한 후, 우리가 구원을 얻는 길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롬 10:5~8)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려고 하늘에 올라가서 찾을 필요가 없고, 예수 그리스도를 찾으려고 죽은 자들 세계를 돌아다녀야 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모든 죄 문제를 완벽히 해결하시기 위해 육신의 옷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 대속과 부활을 통해 인생의 모든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영적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마치 복음이 먼 곳에 있는 것 마냥 헤매고 돌아다니지 말라는 것입니다. 구원을 얻는 하나님의 복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습니다. 그 영적 진리를 믿고 시인하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 10:9~10)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과 부활을 통해 우리의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죄가 완벽히 사해졌다는 사실을 믿고 시인하면 구원을 얻게 됩니다. 이를 영접이라 하며, 신앙생활은 여기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주인”이라는 믿음의 고백이 영적 첫걸음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인생 최고의 축복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남녀노소, 빈부귀천에 상관없이 주어지는 축복임을 다음의 말씀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롬 10:11~13) 

이 놀라운 축복의 외침은 당시 율법주의에 사로잡혀 있었던 유대인들에게는 충격적인 도전이었고 이방인들에게는 감격적인 복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모든 문제가 눈과 같이 희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누구도 여러분을 정죄할 수 없고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하나님 자녀 된 신분과 권세를 확실히 누리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를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담겨진 부요의 비밀을 날마다 깨닫고 맛보는 것이 성경적 신앙생활임을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그 출발점이 바로 강단입니다. 항상 말씀의 자리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서양 격언에 “Out of sight, Out of mind.”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안 보면 멀어진다.”라는 뜻입니다. 복음은 함께하는 것이며, Oneness를 이루는 것입니다. 어색하더라도 교회 안에서 자꾸 만나야 합니다. 예배의 자리에서, 전도회에서, 지교회당에서 계속해서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러다보면 저절로 삶의 체질이 복음화되어 갑니다. 이를 통해 삶이 부요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이 이러한 새로운 시작을 통해 삶 속에서 응답을 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유명한 심리학자 매슬로우가 자기 자신을 귀신이라고 생각하는 한 환자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를 찾아온 환자는 “저는 틀림없이 귀신인가 봐요.”라고 하면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의사가 “귀신과 사람의 차이점이 뭐죠?”라고 질문하자 그는 “귀신을 피가 나오지 않지만 사람은 피가 나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의사가 환자 손가락에서 바늘로 피를 조금 뽑아 보여주면서 말했습니다.

“당신은 귀신이 아니고 사람이네요.”

그러자 환자가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아! 아마도 저는 저주받은 귀신인가 보네요.”

한 사람의 고정관념, 선입견, 편견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보여 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에도 이처럼 옛 습관, 옛 체질, 옛 생각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이는 자신의 의지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야 합니다.

성령 인도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에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강단의 메시지를 매주일 언약으로 붙잡고 기도하면 됩니다. 그것을 자신의 삶에 하나씩 적용해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체질이 바뀌고 삶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흐르게 됩니다. 인생의 결론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안에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이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신앙생활의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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