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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를 본 받으라 (빌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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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본 받으라 (빌 3:17)


지난 3월 9일이 사순절 시작일입니다. 사순절이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당하신 날을 기념하는 고난주간 전 40일을 사순절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고난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며 더욱 경건하게 살고자 노력하는 절기입니다. 이러한 사순절 첫째 주일인 오늘은 본문에 기록된“나를 본 받으라”는 말씀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신약성경의 한 부분인 빌립보서는 바울사도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라고 부릅니다. 빌립보서는 복음을 전하던 바울사도가 핍박을 받아 로마 감옥에 수감된 상태에서 보낸 편지입니다. 그러므로 빌립보서를 옥중서신이라고도 합니다. 빌립보 교회는 사도바울에 의해 세워진 유럽최초의 교회입니다. 이 빌립보 교회가 복음의 디딤돌이 되어 유럽을 복음화 시켰고, 이 복음이 미국을 거쳐 지금까지 온 세계에 전파되고 있습니다.

학교 강단에서 40년을 봉직하고 퇴임하는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 한분이 마지막 퇴임인사를 하면서“내가 40년 동안 선생으로 봉직하였으나 단 한 번도 학생들에게‘나를 닮으라.’고 말해보지 못한 채 교단을 떠납니다.”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우리가 누구를 가르칠 때‘내 말을 들으시오’‘이 교훈을 따라 사시오.’라고는 말할 수 있어도‘나를 본받으라.’고는 감히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사도는 본문에‘나를 본받으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나타나 있는 바울사도의 인품을 종합한다면, 이 말은 바울사도 자신의 우월감에서 나온 말이 아닙니다. 자신이 완전하기 때문에 본받으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향한 그의 신앙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사도의 무엇을 본받아야 하겠습니까?

1.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그의 삶을 본받아야 합니다.

바울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일이라면 어떤 고난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골로새서 1장 24절에 말하기를“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는 일이라면 어떤 고난이라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사도는 자신의 영광과 안일은 배설물처럼 버리고 오직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길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깨달은 사람은 누구나 바울사도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고난에 기꺼이 참여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는 애굽 왕궁에서 성장했습니다. 애굽의 영광을 한 몸에 누리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애굽의 모든 영광을 포기했습니다. 이러한 모세의 결단에 대하여 히브리서 11장 24절-26절 기록하기를“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했습니다. 모세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고난 받기를 즐겨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쁨으로 땀을 흘립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를 합니다.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는“요세 교인들은 싸구려 예수를 믿으려 한다. 십자가 없는 예수(고난 없는 예수), 편한 예수, 고통 없는 예수를 믿으려 한다.”라고 지적한바가 있습니다. 

진정한 마음으로 깨달아 안다는 것은 아픔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 랍비의 교훈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머리가 둘 달린 아이를 낳았습니다. 이 아이가 한 명이냐 두 명이냐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랍비에게 물었더니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이쪽 아이를 때렸을 때에 저쪽 아이도 울면 한 아이요, 이쪽 아이를 때려도 저쪽 아이가 울지 않으면 두 아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중요한 교훈입니다. 내가 누구를‘안다’‘사랑한다’하는 말은 그 사람의 아픔과 기쁨이 내게 전달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의 마음, 주님의 뜻, 주님의 기쁨과 주님의 괴로움이 내 가슴에 전달되는 일체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심정을 진정으로 깨달았다면 그리스도의 심정이 내게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불쌍한 사람을 볼 때에 예수님의 마음이 작용하므로 마음이 아픕니다. 도와 줘야할 사람을 도와주지 못했을 때 괴로워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교회에 문제가 있다면 내 집안의 문제처럼 여기며 고민하며 해결하고자 노력을 합니다. 교회의 기쁨이 있다면 내일처럼 기뻐하며 동참하게 됩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순교자 주기철 목사는 그의 마지막 설교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오는 고난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다음 내 무슨 낯으로 주님을 뵈오리까?
주님을 위하여 이제 당하는 수옥(囚獄)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다음에 너는 내 이름과 평안과 즐거움을 다 받아 누리고
고난의 잔은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신다면 무슨 말로 대답하랴.

주님을 위해 오는 십자가를 내가 이제 피하였다가 
이다음 주님이 너는 내가 준 유일한 유산인 고난의 십자가를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나는 무슨 말로 대답하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영광은 언제 왔습니까? 십자가 고난 뒤였습니다. 그래서“십자가가 없으면 영광도 없다.”라는 말이 있게 된 것입니다. 모든 영광은 고난 뒤에 감춰져 있습니다. 가을의 풍성함이란 무엇입니까? 무더운 여름, 농부가 땀 흘리며 손발이 부르트도록 일한 결과입니다. 영광의 금메달이란 무엇입니까? 자살할 마음이 생길정도의 혹독한 훈련을 이겨낸 운동선수의 땀 흘림의 결과입니다. 

이처럼 바울사도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모진 고난을 이기며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는 자신이 받은 고난에 대해 고린도후서 11장 23절-28절에 말하기를“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에 기꺼이 참여한 바울 사도의 삶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의 본분이기 때문입니다. 

2. 복음을 전하려는 그의 열정을 본받아야 합니다.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전 마지막 남기신 유훈 같은 당부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생명의 예수 그리스를 전하라는 것입니다.“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19-20)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 증거는 예수님의 지상 명령입니다. 절대복종해야할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전도는 은사가 아니라 본분이요, 사명입니다. 이 거룩한 명령에 대해 바울사도는 사도행전 20장 24절에 말하기를“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했습니다. 

또한 바울 사도는 복음증거에 대하여 고린도전서 9장 16절에 말하기를“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 했습니다. 

영국의 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가 침몰한지 4년 후 한 젊은이가 이렇게 간증을 했습니다. “저는 그때 타이타닉호를 타고 있었습니다. 부서진 나무 조각을 붙잡고 표류하는 내 곁으로 존 하퍼씨가 표류해왔습니다. 그는 내게 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나는 ‘나이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매우 갈급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오. 그러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는 말을 마치고 파도에 휩쓸렸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파도에 잠겼던 그가 다시 물위로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다시 묻더군요. ‘이제는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나는 역시 ‘아니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존 하퍼 목사의 마지막 피전도자였습니다.” 이 청년은 구출된 후 독실한 신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 증거는 무엇보다 긴박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디모데후서 4장 1절-2절에 당부하기를“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 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영혼구원을 위해 몸부림을 친 바울사도는 단두대에 목이 잘려 순교의 피를 뿌렸습니다. 

영국에 크롬웰이란 사람이 전도하다가 천주교 신도인 메리 여왕의 핍박으로 인해 죽게 되었습니다. 처형대의 칼날이 떨어지기 직전이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종이 여섯 번만 울리면 사형을 집행하게 되어있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종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종지기에게 사람을 보내어 확인해 보았더니 분명히 종을 쳤는데 종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종탑 꼭대기에 올라가 보았더니 한 여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종에 매달려 죽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크롬웰의 애인인데 크롬웰을 살리고자 온갖 애를 다 써보았지만 길이 없자 종탑에 올라가 종을 몸으로 부둥켜안고 종소리가 나지 않도록 한 후 자신은 종 틀에 끼어 죽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메리 여왕이 직접 그 곳으로 왔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본 메리 여왕은 말하기를“오 값진 희생! 크롬웰을 대신하여 죽었구나. 크롬웰을 석방하라. 그를 대신하여 애인이 죽었도다. 크롬웰을 위하여 대신 죽는 사람도 있는데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구나.”라고 말하며 그 자리를 떠났다고 합니다. 석방된 크롬웰은 손수건에 애인의 피를 묻히고“이 희생의 피”라 울먹이며 피 묻은 손수건을 가슴에 간직한 채 일생동안 다른 여자를 사랑하거나 결혼하지 않고 정절을 지키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증거에 힘써야 합니다. 이는 생명을 건지는 가장 시급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복음증거를 위해 애쓰는 것은 이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는 삶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증거자가 받을 축복에 대하여 주님께서 마태복음 6장 31절-33절에 약속하시기를“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생명의 복음증거를 위해 힘쓰면 대신 주님께서 우리들의 삶을 풍성하도록 해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또한 복음증거를 위해 애쓰는 사람과 항상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19-20)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의 결과는 무엇이겠습니까? 

사무엘하 5장 10절에“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고 하셨습니다. 빈민 유목가정에서 태어난 양치기 소년 다윗은 훗날 이스라엘 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왕이 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축복의 비결은 다름 아닌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을 누가 감히 대적하며 해하겠습니까? 군인으로 수많은 전쟁을 치른 다윗은 단 한 차례도 전쟁에서 진 적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다윗의 삶의 목적은 영혼구원이었습니다. 시편 71편 15절~18절에 영혼 구원에 대한 자신의 간절한 심정을 밝히기를“내가 측량할 수 없는 주의 의와 구원을 내 입으로 종일 전하리이다 내가 주 여호와의 능하신 행적을 가지고 오겠사오며 주의 의 곧 주의 의만 진술하겠나이다 하나님이여 나를 어려서부터 교훈하셨으므로 내가 지금까지 주의 기사를 전하였나이다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수가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을 장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라고 했습니다. 다윗도 장수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도하기를“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수가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이처럼 오래살기를 원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름 아닌 영혼구원이었습니다.“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을 장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시편 71:18)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다윗과 항상 함께하셨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 다윗은 점점 강성하게 되었습니다. 6천년 이스라엘 역사에 후대들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영혼 사랑의 결과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주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며 복음을 전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의 본분이기 때문입니다. 

주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며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주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며 복음을 전하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보람된 삶이기 때문입니다.

주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며 복음을 전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복을 받아 누리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주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며 복음을 전하는 것은 나와 자손들과 나라가 잘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한 고난을 기뻐한 바울사도의 삶, 영혼 구원을 위해 생명을 바친 바울 사도의 삶을 우리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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