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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기 피로 사신 교회의 사명 감당 합시다 (행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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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피로 사신 교회의 사명 감당 합시다  

(행 20:28)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사도 바울 자신은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인데, 가는 그 길이 자신이 받은 사명수행의 길인 줄 믿고, 자신의 생명까지 다 바치기로 작정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행 20:22~24).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미래를 용감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초청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회고적 고별사를 하는데 그 중심은 에베소 교회와 그 미래를 향한 예언적 메시지를 남겨 주며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다고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셨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달려 피를 흘리신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여기서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교회를 사셨다고 지적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릅니다. 이는 성부와 성자는 본질상 하나이신 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므로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곧 하나님 자신의 죽으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 부릅니다.

(롬 9:5)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골 2:9)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딛 2:13)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따라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로써 자기의 것으로 만드신 교회라고 하는  표현은 오히려 예수의 대속 행위가 하나님 자신의 거룩한 희생적 사랑에 대한 확증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자기 피로’라고 하신 말씀은 ‘그 자신의 피가 매개체가 되어서’라는 뜻입니다.
‘사신’이란 말씀은 값을 지불하고 도로 찾아내었다는 뜻입니다.
그 속전은 바로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입니다.

(벧전 1:18-19)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막 10:45)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여기 대속물이라 하신 대속은 팔려간 노예를 도로 찾아내기 위하여 값을 지불하는 속전을 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사 교회를 사셨습니다.

(히 9:12)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 9:14)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엡 1:7)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요일 1:7)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계 5:9)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교회는 돈으로 산 것이 아니고 피로 사신 곳입니다. 

김명혁 목사님은 고등학생 때 김치선 목사님께서 목회하시던 서울 창동교회 (나중에는 대창교회로 이름이 바뀌었음) 에 다니면서 은혜와 감동을 너무너무 많이 받곤 했는데 어느 해 여름 김치선 목사님께서 대구 주암산에서 인도하시는 부흥회에 따라가서 많은 은혜와 감동을 받은 일이 있었다 합니다. 어느 시간에 “내 주의 나라와 주 계신 성전과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라는 찬송을 부르게 되었다 합니다. 그런데 피 “흘려 사신 교회”라는 찬송가 가사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고 더 이상 찬송을 부르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울고 또 울었다 합니다. 

옆에서 바라보던 어떤 사람이 “학생, 무슨 슬픈 일이 있어?” 라고 물었지만 대답도 못하고 그저 한 2,30분 동안 울고 또 울었다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리고 예수님께서 피를 흘려서 교회를 사셨을까를 생각할 때 충격과 감동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더 사랑하고 더 사랑하게 되었다 합니다.
   
교회는 피 소리를 중계하는 중계소가 되어야 한다 하기도 합니다.(방지일 목사)
교회 안에는 예수님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와서 회개의 무릎을 꿇면 죄 사함의 은혜를 받고 구원의 은혜를 받습니다.
정결하게 되는 은혜를 받습니다.

“정결하게 하는 샘이 나의 앞에 있도다 성령께서 권고하심 죄 씻으라 하시네 찬양하리 찬양하리 죽임 당한 어린 양 주께 영광 돌리어라 우리 죄를 씻어주셨네”(새264).

교회에 와서 기도의 무릎을 꿇면 죄악의 세력을 이기고 사탄의 세력을 이기고 죽음의 세력을 이기는 승리를 얻게 됩니다.
교회 안에는 예수님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에 성부 하나님의 눈과 귀와 마음이 교회로 향하고 계십니다.

(대하 7:15-16)이제 이 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이는 내가 이미 이 성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

그래서 우리는 교회에 나와서 마음껏 회개하고 마음껏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는 양떼와 연결 됩니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는 말씀은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부름받아 구원받은 백성들의 공동체(회중)를 뜻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교회의 본질’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교회는 사람이나 이 세상의 산물이 아닌 특별한 하나님의 신적 산물이라고 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구속 받은 사람들의 공동체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의 직접적 산물, 자기 피로 값을 치루고 속량해낸 무리들의 모임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성도)는 마땅히 이 세상의 모든 개인이나 가정이나 단체와 구별되는 신령한 단체요, 구원 받은 거룩한 무리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양무리 들이야말로 예수님께서 자기 피로 사신 귀한 존재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신다는 말씀하셨습니다.
(요 10:15)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자기 양들의 이름을 각각 부르시면서 양들을 인도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10:3)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시23편에서는 양들을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계2장과 3장에 보면 주님께서 교회 안에 있는 신자들 즉 양무리들 가운데로 걸어가시면서 양무리들의 형편을 다 아신다고 말씀했습니다.

(계 2:1)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계 2:2-3)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계 2:9)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계 2:13)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계 2:19)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계 3:1)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계 3:8)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계 3:15)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누군가가 우리의 형편을 다 알아주신다는 것은 두렵기도 하지만 얼마나 큰 위로와 격려가 용기가 됩니다.
우리들의 선한 목자가 되시는 우리 주님께서 우리들의 사정과 형편을 모두 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양무리들을 너무너무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다 아시기에 잘못하는 것을 애정을 가지고 지적하시면서 결국 우리들을 아버지 집으로 인도하시는 가장 선하신 목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양무리들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을 따라갈 것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섬기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착한 양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사신 교회는 성령께서 감독자를 세워 보살피게 하십니다.

감독자는 장로들과 같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행 20:17)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다’는 말은 ‘목자’라는 뜻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초청한 에베소 교회의 감독은 장로요 목자의 이름을 가진 영적인 지도자들입니다.
성령께서 양떼(교회)를 위하여 저희를 감독자(장로, 목자)로 삼았다고 하였습니다.
‘삼았다’는 말은 ‘만들었다’, ‘임명하다’, ‘세우다’라는 뜻으로 성령께서 목회자들을 택하고, 부르고, 임명하셨다는 뜻입니다.

성령님은 저들을 영의 지도자로 세우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보살피게 하다’라는 말은 먹이다’ ‘돌보다’라는 의미입니다.
바로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에게 양을 먹이라 치라 하신 분부와 같은 뜻입니다

(요 21:16)...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나는 선한 목자라」고 하였습니다.
(요 10:11)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히브리서에는 예수님을 가리켜 ‘양의 큰 목자’라고 하였습니다
(히 13:20)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베드로서에는 예수님을 가리켜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이라고 하였습니다.
(벧전 2:25)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맡은 영적 지도자들에게 바로 그런 직함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영적 지도자는 피로 사신 교회와 양무리를 보살피게 하신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은혜와 복이고 특권입니다. 에베소교회의 감독자에게 부여하신 엄청난 은혜와 복과 특권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엄청난 은혜와 복과 특권을 베드로에게 부여하셨습니다.
(요 21:15-17)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이와 같은 엄청난 은혜와 복과 특권을 사도 바울에게 부여하셨습니다.
(딤전 1:12-14)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이와 같은 엄청난 은혜와 복과 특권을 부여 받은 사람들에게 사도 바울과 사도 베드로도 권면했습니다.
(행 20:28)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사도는 그만큼 교회 영적 지도자의 필연성과 중요성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삼가라고 하시니 말도 행동도 삼가고 조심하여야 합니다.
(벧전 5:2-3)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양 무리를 부득이함으로 치지 말고 자원함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하며 주장하는 자세로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고 분부했습니다. 그러면 영광의 면류관을 얻게 된다고 했습니다.

(벧전 5:4)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그러므로 교회의 지도자들은 자기를 위해서도, 또 온 양떼를 위해서도 ‘깨어’ 있어야 된다는 영적 각성을 촉구하며 삼가라고 합니다.

이는 주의를 기울이라 전심전력하라고 하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하나님의 백성=양떼)는 부름받고, 세움(임명)받은 깨어있는 영적 지도자인 감독(장로, 목자)들에 의하여 멱여지고, 양육되고, 성장되어간다는 바울 사도의 메시지입니다.
  
목회자는 자기 손에 붙잡혀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고 주님의 손에 붙잡혀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계시록에 보면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께서 오른 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계시다고 했는데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라고 했습니다.

(계 2:1)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계 1:20)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얼마나 큰 위로와 큰 기쁨과 큰 용기가 되는 말씀인지 모릅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의 영적 지도자는 바로 교회운동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할 것입니다.
역사상의 교회가 우리에게 이 요긴한 교훈을 남기고 있습니다.

초기 예루살렘 교회는 성령께서 세운 베드로와 야고보 같은 지도자에 의해서 창설되고 부흥되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께서 세우신 바울과 바나바에 의해서 이방선교의 중심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소아시아의 에베소 교회는 성령께서 세운 사도 요한과 그 뒤를 이은 디모데 같은 지도자에 의해서 부흥되어 마침내 소아시아에 3000여 교회 이상으로 부흥되는 교회운동을 이룩하였습니다.

콘스탄티노플에는 크리소스톰이, 아프리카의 히포에는 어거스틴이 있었습니다.
중세기의 종교개혁 전에 이탈리아에는 사보나롤라가, 영국에는 위클립이, 보헤미야에는 요한 허스가 있었습니다. 이들이야말로 개혁의 샛별이었습니다.
종교개혁 때는 독일에 루터, 제네바에 칼빈, 취리히에는 쯔빙글리가, 스코틀랜드에는 요한 낙스가 있었습니다.

그 후에 수많은 청교도 지도자들이 영국과 미국 등지의 기독교 역사를 이룩하였습니다.
선교 100여 년이 넘는 한국 기독교회도 성령께서 세운 말씀의 지도자들에 의해서 2000년 세계선교역사에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복을 받았습니다.
교회를 향한 미래적 복의 보장과 부흥은 성령에 의하여 세움을 받은 말씀의 지도자에 있는 것입니다.
교회와 양무리 들을 보살피는 직분만큼 귀하고 복된 직분이 없습니다.
자격이 없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긍휼로 우리들에게 맡기신 직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는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 합니다.
(행 20:32)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이는 택하신 백성들의 구원역사의 방편인 하나님의 말씀만이 교회 미래의 안전이요 보호요 부흥이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의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워주기 때문입니다.
든든히 세운다는 말은 ‘집을 든든히 세움’에 해당되는 말로 구원에 이르는 확고한 신앙을 가리킵니다. 집이 든든히 세워짐 같이, 그 은혜의 말씀이 교회 존립과 성장의 뿌리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나아가 그 은혜의 말씀이, 천국 기업이 있게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성도들이 말씀신앙으로 구원에 든든히 서서 마침내 약속된 기업인 하나님 나라에 이르게 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영적 지도자들을 주님과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주와 그 은혜의 말씀에 사로잡힌 감독들이 바로 에베소 교회의 미래를 책임 맡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에 어느 책도 사람을 살리지는 못합니다.
기껏 해 봐야 좋은 책들이라는 것이 마음에 양식을 주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을 때는 그 말쏨을 통해 죽은 영혼이 살아나는 역사가 있습니다.
다 죽게 된 영혼이 소생하는가 하면,교만한 영혼이 자기의 죄를 깨닫고 되살아나기도 합니다.

또 우리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바로 이러한 면 때문에 종교 개혁자 루터(M.Luther)는 말하기를 “성경은 살아 았다(The Bible is alive)”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그래서 성경은 나에게 말씀하신다. 말씀은 발이 있다. 그래서 나를 따르신다. 말씀은 손이 있다. 그래서 나를 붙드신다. 말씀은 살아서 역사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는 십자가의 피의 복음을 전하는 말씀의 지도자에 의하여 계승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이룩하여 가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택자 구원운동의 구속사에 하나님이 친히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교회가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곳입니다. 피로 사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이 신령한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린 대속의 피의 산물입니다. 여기 ‘교회’란 다름 아닌 기독신자들의 무리, 성도들의 공동체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우리의 이 모임 자체를 의미합니다. 양무리 들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들입니다. 주님의 사랑과 인도하심을 받는 귀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교회는 성령께서 택하시고, 부르시고, 세우신 감독들에게 맡겨졌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세움 입은 감독들은 주님과 그 은혜의 말씀에게 붙잡혀 있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교회는 예수 피로 세워지고 성령 받은 사자들에게 맡겨지고, 그 사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교회를 세워나가야 된다는 뜻입니다.

이 놀라운 교회운동의 흐름이 하나님의 구속사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구속사 운동은 유구한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교회는 하나님이 피로 사신 교회이니 성령 받은 십자가의 지도자에 의하여 존재하고, 성장하고, 계승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 바로 알고 그의 몸된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는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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