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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눅 16: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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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눅 16:19-31)  
 
 
1. 두 가지 길

세상에는 두 가지의 길이 있습니다.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 번영의 길과 파멸의 길, 축복의 길과 저주의 길, 실패의 길과 성공의 길이 있습니다. 같은 일을 하여도, 같은 직장에 다녀도, 같은 동네에 살아도 어떤 사람은 축복을 누리고 어떤 사람은 저주 아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살고 있고, 어떤 사람은 사탄의 지배하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남을 먼저 챙겨주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자신을 챙기기에 급급합니다. 일본 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 누출을 막기 위해 목숨 걸고 뛰어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만 살기 위해 생필품 사재기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온 인류를 살리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신 십자가 길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예수님을 팔아넘긴 배반자의 길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번, 아니 수백번씩 둘 중 하나의 선택을 강요받습니다. 
웃고 그냥 지나갈 것인가, 아니면 화를 낼 것인가? 
이해하고 용서해줄 것인가, 아니면 그의 잘못을 공개할 것인가? 
사람을 세워주는 길에 설 것인가, 아니면 깎아 내리는 길에 설 것인가?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해줄 것인가, 아니면 나 자신부터 챙길 것인가?

따지고 같이 싸울 것인가, 아니면 손해보더라도 참고 지나갈 것인가? 
내 주장을 먼저 쏟아낼 것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먼저 경청할 것인가? 
하나는 살림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죽임의 길입니다. 
하나는 생명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파멸의 길입니다. 

2. 생명의 길은 희생을 요구한다

생명의 길에는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희생으로 아기가 태어납니다. 곡식과 과일을 추수하기까지 햇빛, 비, 바람 뿐 아니라 거름을 부어야 하고, 잡초를 뽑아주어야 하는 농부의 수고와 희생이 있습니다. 위대한 작품의 탄생에는 작가의 엄청난 시간과 재능, 수고가 있었습니다.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리시고 몸을 찢어주셨습니다. 오늘의 우리가 있기까지 우리 부모님들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우리 보기에 그냥 쉽게, 그저 자연스럽게 일이 잘 풀리는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오리가 물 위에 그냥 쉽게 떠 있는 것 같아도 수면 밑에 있는 오리의 발은 한 순간도 가만 있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이 평화로운 것은 보이는 곳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땀 흘러 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오늘도 건강하게 살고 있고, 평안을 누리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를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3. 부자의 문제점

누군가의 수고와 땀방울이 있기에 오늘 내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 자신도 다른 사람을 위해 수고하고 희생할 줄 압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에 등장하는 부자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는 날마다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호화롭게 즐겼습니다. 당시 자색 옷은 1% 상류층이 외출할 때 입는 옷입니다. 고운 베옷은 부자들이 집에서 입는 옷입니다. 열심히 일하여 번 돈으로 입고 싶은 옷 입고, 먹고 싶은 것 먹고, 즐기고 싶은 것 즐기는 것이 뭐가 문제입니까? 그렇다고, 이 부자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도 않았습니다. 자기 집 대문 앞에서 생활하는 거지 나사로를 더럽다고 쫓아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부자는 죽어 음부에 내려가 불구덩이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부자는 지옥에 갈만한 무슨 악행을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행간을 잘 읽어보면 부자가 왜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자와 거지, 지옥과 천국을 극단적으로 대조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적어도 예수님의 말씀의 의도를 파악한다면, 부자와 거지 나사로 두 사람의 비교분석에서 우리는 부자의 문제점 두 가지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문제점은 그에게 하나님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부자가 하나님을 믿었는지, 안 믿었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사로와 비교하여 생각해보면, 적어도 부자에게는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나사로는 천국 갔지만, 부자는 지옥에 갔기 때문입니다. 나사로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나의 도움”입니다. 적어도 나사로는 하나님의 도움을 입으며 살았다는 말입니다. 부자를 나사로와 대조하여 말씀하신 예수님의 의도를 생각해보십시오. 부자는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사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부자에게는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안중에도 없었으므로, 부자는 타인의 삶에 무관심했습니다. 
이것이 부자의 두 번째 문제점입니다. 부자는 오로지 자신의 쾌락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행복, 자신의 즐거움, 자신의 부유한 삶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자기 집 대문 앞에는 거지 나사로가 헌데 투성이로 버려져 있는데도 말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찌꺼기로 간신히 배를 채우고 있는데 말입니다. 부자는 자기 집 대문 앞에 있는 거지에게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더라면, 자기 집 앞에 거지를 그대로 놔두고 자기만 즐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부자라서 지옥에 가고 거지라서 천국에 간 것은 결코 아닙니다. 부자도 천국에 들어갑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부자 아리마대 요셉이 그러하고, 니고데모도 그러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물질로 주님을 섬겼습니다. 

우리는 모두 일본이 처한 아픔에 함께 아파하고 있습니다. 일본을 돕는 일에 우리교회도 동참할 것입니다. 가까운 내 옆집 사람의 아픔, 내 친구의 고통을 함께 아파한다면,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꿈틀거리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우리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일에 지치고 사람에 치여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속으로 울부짖고 있습니다. “너무 힘듭니다. 도와주세요.” 이들의 내면의 고통을 들을 수 있거나,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고통당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심장이 우리 안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오는 4월6일 수요예배에 <하늘의 특별검사>라는 책을 쓴 광주고등검찰청 부장검사인 김인호 장로님의 간증집회가 있습니다. 김장로님을 모신 이유는 그 분 안에 있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정과 이웃을 사랑하는 뜨거운 가슴을 제가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늘의 특별검사>란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지고 동시에 부끄러움을 많이 느꼈습니다. 김 장로님은 검사라는 사회적 지위를 이용하여 만나는 사람들에게 성경책을 선물로 주고 전도한 장로 전도왕입니다. 

그 책에 27년간 불자로 살아왔고 서울 조계사의 여신도 회장 출신인 고향 선배를 전도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김 장로님은 선배 부부를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식사를 마칠 때 쯤되어 딱 한 마디를 했습니다. “선배님, 제 소원 하나만 들어주십시오.” 선배 부부는 “소원이 뭔데 그럽니까?” 라고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강동구 명일동에 명성교회라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 앞을 지키고 있는 김씨 성 가진 교인 한 명이 있는데, 그 사람 좀 만나주십시오! 그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워낙 간곡히 부탁하니까, 조계사 여신도회회장 출신인 이 골수 불교신자가 만나주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약속한 날에 그 선배가 교회에 나타났습니다. 김장로님은 신이 나서 “예배당으로 올라가시죠!” 하며 앞장서려는데, 이분이 거절합니다. “김 검사 얼굴 봤으니 이제 됐지 않습니까? 저는 또 갈 곳이 있습니다.” 뒤돌아서서 가는 선배의 뒷모습을 보는데 얼마나 불쌍한 마음이 드는지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고 합니다. 김장로님은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다리에 힘이 풀려 비틀거렸습니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어쩌면 지금이 저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데... 이제 저 선배는 어떻게 하나. 저 영혼, 불쌍해서 어떡하나!’

이 생각이 들자 눈물이 그치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김장로님의 이런 모습을 차 안에 있던 선배의 남편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선배의 남편이 차로 돌아온 부인의 손을 잡고 도로 김장로님께로 왔습니다. “김 검사, 왜 안쓰럽게 이러고 있습니까?” 그 이야기를 듣자 김장로님의 눈물샘이 터져버렸습니다. 이젠 도리어 이 두 사람이 장로님의 오른팔 왼팔을 부축하여 예배당에 들어갔습니다. 이 부부는 그 예배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실은 다음 날 이 부부는 이혼하기 위해 가정법원에 가기로 되어 있었답니다. 김검사와 약속했기 때문에 주일에 교회에 온 것입니다. 그 이후로 두 사람은 다시는 절에도 못가고 가정법원에도 못 가게 되었답니다. 이 부부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다가 중국 단동에 가서 사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김장로님께서 단동에 가보니까 이분들이 단동의 전도왕으로 소문나 있었답니다. 
‘저 검사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눈물을 흘렸을까? 무엇이 다리의 힘이 풀리도록 그를 상심하게 했을까?’ 이 부부는 김장로님의 눈물과 비틀거림을 늘 기억하고 있다고 합니다. (김인호, 하늘의 특별검사, p.86-88)

김장로님이 흘린 뜨거운 눈물, 영혼을 사랑하는 그 열정이 우리 안에도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4.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가 복이 있다

거지 나사로는 사람들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고 버려진 사람이었습니다. 돌봐줄 가족, 친척, 친구도 없었습니다. 이 정도 되면, 스스로 세상을 떠나든지, 우울증에 걸리든지, 자기 몸을 함부로 방치하여 되는대로 사는 노숙자가 되었을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사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의 이름 나사로, “하나님은 나의 도움”, 그는 하나님의 도움을 기대하며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았습니다. 나사로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사는 사람, 하나님의 은혜만 기다리며 사는 사람,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마태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나사로는 가난했지만, 천국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세상에서는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않고 그를 홀대하기 때문에, 나사로는 더욱 강하게 하나님을 붙잡았습니다. 
이사야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하나님을 바라보십시다. 그러면 새 힘을 얻습니다. 
누가 복 있는 사람입니까? 부자, 지식인, 정치가, 경제인.... 
누구든지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가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가 천국을 누립니다. 

5. 인생대역전

거지 나사로는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안깁니다. 변변한 관 하나도 없이 장사지내줄 사람 아무도 없었지만, 천사들이 그 영혼을 받들어 천국에 데려갔습니다. 부자도 죽었는데 장사를 잘 지내고나니 불구덩이 지옥에 던져진 것입니다. 인생대역전입니다. 부자는 지옥에, 거지 나사로는 천국에. 
무슨 말씀입니까?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죽음 이후의 새로운 삶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 땅에서의 삶과 죽음 이후의 삶은 전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편안하고 행복하게 산다고 자만할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가난하고 고생한다고 불평하거나 원망할 것이 아닙니다. 어떤 형편에 처하더라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 그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스스로 물어봅시다. 
나는 땅에 소망을 두고 있는가, 아니면 하늘에 소망을 두고 있는가?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사는 성도는 손해보고 희생해서라도 사람을 살리는 일에 힘씁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이요, 하나님의 심장이 그 안에서 박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구원하는 길, 그 길은 예수님께서 가신 길, 십자가의 길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타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십자가의 길, 
그 길을 주님과 함께 기쁨으로 걸어가는 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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