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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시는 일에 불의가 없으신 하나님 (롬 9: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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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는 일에 불의가 없으신 하나님 (롬 9:6-18)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을 특별히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사명을 받은 사도로 여겼지만 자기의 동족 유대인에 대한 애착 또한 대단히 강했음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나서 유대 민족이라는 것은 구원받는 데 아무런 특권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한 것이고 그 믿음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달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그를 믿는 믿음에 의해서 받는 구원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유대 민족은 그것을 이해하기에 가장 유리한 역사적 특권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 또한 그는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옛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민족입니다. 하나님께서 양자로 삼으신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출4:22) 하신 민족입니다. 하나님께서 더불어 언약을 맺으신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율법을 주신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른 예배의 모범을 세워주신 민족입니다(롬9:4). 그 모든 언약과 율법과 예배모범을 그들의 조상들이 받았고 또 그들의 육신의 자손 가운데서 그리스도 즉 메시야가 오시게 되어 있었으며 실제로 오셨습니다. 이 모든 특권을 물려받은 민족이 바로 바울의 동족인 유대 민족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면 유대인들보다 더 잘 알 수 있는 이들이 누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이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갑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발자취를, 또는 성경의 역사를 현지에서 조금이라도 더 생생하게 느껴보려고 가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이해하려고만 하면 자기네 땅에서 자기네 삶의 자리에서 자기네 역사와 문화 속에서 자기네 말과 글로 알 수 있으니 우리보다 얼마나 더 잘 쉽게 금방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게 그들이 받은 특권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세종대왕을 이해하고 이순신 장군을 배우는 데 우리가 가장 유리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는데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유대인들 또는 옛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특별한 은혜를 받은 언약의 백성인데 약속된 메시야가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믿지 않으니 사도 바울은 그의 마음속에서 큰 근심과 그치지 않은 고통 가운데 “나의 동족은 하나님나라의 구원받은 무리에서 몽땅 탈락되는 것인가? 내 민족을 향했던 하나님의 계획은 그럼 다 수포로 돌아간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인가? 내 조상들에게 주어졌던 하나님의 그 많은 약속의 말씀들은 다 폐하여졌다고 보아야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놓고는 “그런 것 같지는 않다”는 말로써 오늘의 본문의 논지를 펼치기 시작합니다. 

그가 오늘 본문에서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자유로운 사랑의 선택”입니다. 먼저 본문 6절부터 13절까지를 내리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니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심이라.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여기서 사도 바울은 우선 외형상의 이스라엘과 참 이스라엘을 구별합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다 약속의 백성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삭에게서 난 자녀라야 약속의 자녀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삭 이전에 이스마엘이 먼저 아브라함의 자식으로 태어났지만 그는 약속의 자녀가 아니었습니다. 또 이삭에게서 태어난 쌍둥이 아들들 중에서도 먼저 태어난 형 에서는 아버지 이삭의 사랑을 독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약속의 자녀가 되지 못하고 작은 아들 야곱이 약속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오직 그렇게 하고자 하신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설명을 통해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로의 선택이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성이나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혈통성에 의해서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원이 사람들의 행하는 선악간의 행위에 달린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에 달린 것이라는 사실을 또한 확실히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는 말은 “야곱은 더 사랑하시고 에서는 덜 사랑하셨다,” “야곱은 택하시고 에서는 택하지 않으셨다.”는 말의 히브리식 표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 가운데서도 원하시는 이를 얼마든지 당신의 백성으로 택하실 수 있고 유대인 가운데서도 택하지 않으실 자가 얼마든지 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유대인 동족 가운데서도 자기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셨다.” 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에 사람의 의지나 결단이나 노력 등 인간적인 요소가 조금도 개입되지 않았음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님나라 백성으로의 선택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그랬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때부터 그랬고 이삭 때도 그랬으며 야곱 때도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말씀이 폐하여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참 백성 이스라엘이 되는 것은 혈통을 따라 되고 행위를 따라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되고 그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따라 되는 것이라는 사도 바울의 설명입니다. 

이러한 설명 앞에는 한 가지 질문이나 반론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아직 태어나지도 않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으로 누구는 택하시고 누구는 택하시지 않는 것은 불공평하고 부당한 일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것을 예상하지 못했을 리가 없습니다. 본문 14절 이후부터 그의 대답을 듣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사도 바울의 논리는 간단명료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불의한 일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누구를 들어가게 하시든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누구나 들어가기를 원한다고 해서 들어갈 수 있고 열심히 달려가기만 한다고 해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인의 마음에 달린 것입니다, 주인이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겨서 들여보내기를 원하면 들어갈 수 있는 것이고 아니면 아닌 것이지 거기에 무슨 불의가 있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우리 사람의 잣대로 생각하고 판단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는 우리 인간을 무한히 초월해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과 판단이 우리의 생각이나 판단과 얼마나 다른지 너무나 모릅니다. 예언자 이사야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55:8-9)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그 신묘막측한 일들을 우리가 이루 다 헤아려 알 수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능력으로는 이해할 수도 없고 우리의 구원과 신앙에 유익하지 않은 많은 부분을 우리에게 감추어두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고 우리에게 유익하며 한 것들만을 계시하시며 깨달아 알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계시하시고 성령의 빛 아래서 믿음의 눈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깨닫게 하시는 진리를 “아멘!”으로 받아들이며 만족하고 감사하며 기뻐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말씀은 그저 감사할 것밖에 없는 은혜의 말씀입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다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나도 죄인입니다. 나도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셨습니다.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나에게 긍휼을 베푸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불의를 행하신 것입니까? 구원하시려면 다 구원하셔야지 왜 나와 여기 있는 사람들과 예수 믿는 사람들만 구원하시느냐고 하나님을 비난하는 것이 정의로운 것입니까? 하나님이 무슨 불의를 행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단지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의 눈에 하나님이 구원을 안 하시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은 왜 안하시는 것처럼 보이는지 설명을 하지 않으셨을 뿐입니다. 그 설명을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해주셔야 할 이유도 없고, 그 설명을 그 사람이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며, 그 설명을 그 사람이 차라리 안 듣는 것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감추시는 데는 다 그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언제나 사랑의 이유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은 언제나 옳으신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언제나 선하신 하나님이시라는 전제와 확신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대부분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옳고 선하고 늘 사랑으로 가득하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늘 기쁨과 감사와 평안에 찬 삶을 살게 해주는 것이며 우리로 하여금 언제 어디서나 승리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혼기가 찬 한 여성 앞에 어떤 청년이 찾아 왔습니다. 

너무나 미남입니다. 학벌도 최고입입니다. 젊고 유능합니다. 교양 있고 인품 하며 매너도 끝내줍니다. 게다가 알고 보니 국내 최고 재벌의 아들입니다. 그런데도 바람기 같은 것 전혀 없다고 합니다. 신앙생활 잘 하고 틈틈이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며 얼마나 겸손하고 소탈한지 모릅니다. 그런 사람이 오직 그 여자만 맘에 든다고 청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가 회답은 주지 않고 세상에 그 많은 여자들 중에 왜 하필 자기냐고 삼년을 따져 묻는다면 사람들이 그 여자보고 뭐라고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존귀하고 존귀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미천하고 죄 많은 우리를, 나를, 여러분을, 구원하셨습니다. 이 구원의 은혜를 우리는 그저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 것이냐고 이론적으로 따지고 있는 것처럼 바보스러운 것은 없습니다. 더더군다나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왜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지 않느냐고 따지고 있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사도 바울의 이 말이 오늘 우리 모두의 신앙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하나님의 아무 조건 없는 이 사랑, 이 놀라운 은혜에 딴 소리 하지 말고 두 팔 벌리고 “아멘!” 하며 기쁨과 감사로 응답하는 우리가 됩시다. 하나님은 당신이 하시는 모든 일에 불의가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모르는 일은 많이 있겠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일이고 의로운 일입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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