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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순절] 우리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 (롬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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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 (롬 5:8)


(롬 5: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결혼을 앞둔 한 아가씨가 유명 의대를 나온 청년과 교회에서 만나서, 함께 봉사하고 주님을 섬기는 가운데 교제하여 결혼 이야기까지 나오게 되었다합니다. 교제할 때는 몰랐는데, 막상 결혼이야기가 나오게 되니까 커다란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아가씨의 집은 부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딸이 장차 의사될 사람과 결혼한다는데 못해도 신혼집을 꾸밀 스물 대여섯 평 정도 되는 아파트 한 채는 사 주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매어도 버겁기만 한 일이어서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자 집에서 노골적으로 아파트도 50평이상의 아파트와 병원 개업할 건물도 요구합니다. 그 아가씨는 그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했다고 합니다. 의사가 될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를 진정으로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병원 개업할 건물과 큰 아파트를 장만하여 결혼시킬 만큼 부잣집 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합니다.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씁쓸함을 느낍니다.

서로 사랑하여 결혼한다고 하지만 돈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사랑이요, 실패하면 헤어질 사랑이요, 병들면 내던져 버릴 그런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사랑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우리에게 나타났는지를 보여줍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로마서 전체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강조한 나머지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이 약화될 것을 염려한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에 그의 논증의 초점을 맞춥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하나님의 사랑의 나타나심의 극치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은 우리를 위하여 그리스도 께서 죽으셨다고 합니다.   

기약대로 죽으신 그리스도이십니다

(롬 5:6)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 위하여 죽으셨도다

기약대로라는 말씀은 정해진 때 혹은 약속된 때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는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예비되고 계획된 것이란 말씀입니다.
   
이는 정한시기를 가르쳐 줍니다.

(갈 4:4-5)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입니다.

(엡 1:9)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나님과 인간의 사랑의 차이를 우리는 여기서 발견합니다. 인간은 아무리 굳은 사랑의 맹세를 해도 상황과 여건에 따라 쉽게 변합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 같은 이는 예수님을 버리지 않겠노라고 굳게 맹세한 지 채 24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세 번이나 저주까지 해가면서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마 26:33, 69-75).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를 범했지만 여전히 사랑이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때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계획을 밝히셨습니다

(창 3:15)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그럼에도 인간은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나 인간 구속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도 조금도 변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끝없는 배반의 역사를 뚫고 자신의 외아들을 보내셨으며 그를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인류를 죄에서 구속하셨습니다. 

아이슈비츠 수용소 하면 소름끼치는 이름이라 합니다. 나치 치하에서 큰 악명을 떨쳤던 살인의 현장이라 합니다. 거기에 폴란드의  프란시스 파에 소속된 신부 한사람이 갇혀 있었습니다. 한번은 유대인들 가운데 몇 사람을 뽑아냈습니다. 아마 그 사람들을 굶겨 죽이기로 작전을 세웠던지 그냥 되는대로 사람을 차출해냈습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걸려들면 사형으로 가는겁니다. 몇 사람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간수들이 벌써 몇 사람을 불러내어 그들을 지하 모처에서  굶겨 죽이려는 잔인한 계획을 실천에  옮기고 있었다합니다.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때 자기들의 생명이 위험에 처한 줄 알고 유대인들 중 한 사람이 이렇게 소리를 쳤다고 합니다. "여보시오. 나는 좀 살려 주시오. 나 에게는 처자가 있습니다. 나에게는 식구가 있습니다." 그러자 그 간수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너 대신 죽어줄 사람이 나오면 고려할 수 있다." 

그때 이 말을 들은 막스밀리안 콜베라고 하는 신부가 선뜻 나섰다합니다. "나에게는 딸린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내가 저 사람을 대신할 수 있습니까?"하자 간수가 “꼭 하고 싶으면 대신 하라”고하자 “저 사람 대신 나를 넣어주시오." 하였습니다. 그래서 콜 베 신부님이 그 사람을 대신해서 그 팀에 끼게 되었고 결국에는 지하 감옥으로 끌려 들어가서 굶어 죽었다합니다. 콜베 신부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 들을 감동시켰다합니다. 바로 이런 죽음을 일컬어서 구속적 죽음,  곧 대속적 죽음이라고 말합니다.

   
때를 초월해 죽으신 그리스도이십니다. 

(롬 5:6)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라는 말씀은 하나님 사랑의 또 다른 면을 보여줍니다.
이 말씀은 인간이 연약한 자로 판명난 때라는 말씀입니다. 즉 긴긴 역사를 통해, 인간이 자력으로는 의를 행할 수 없음이 명백히 드러났을 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는 하나님께서 이미 율법도 주시고 수많은 예언자를 보내셨지만 유대인을 비롯한 온 인류의 종교적, 도덕적 형편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때였습니다.
세상은 타락할 대로 타락해 있었고 의인은 단 한 사람도 찾아 볼 수 없었던 때였습니다.

(롬 3:10)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임박한 심판의 때라고 말할 만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사 인류를 구속하신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셨으며 복음에 이의를 제기하는 모든 입을 다물게 하셨습니다. 
  
약할 때란 선을 행하기에 무력하고 악을 이기기에 무력함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선행자를 위함이 아니요, 정직한자를 위함이 아니요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함이라는 말씀에 우리 기독교의 특색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죄인을 위한 종교입니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네덜란드 화가 반 고흐는 젊은 날 한때 광산에서 일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고흐는 광산의 공사판에서 유리를 메고 계단을 올라가는 인부의 작업복 등판에 적힌 '파손주의'라는 글귀를 우연히 읽었다고 합니다. 유리를 조심하라는 문구였지만 한때 신학을 공부했던 그는 그 글귀를 '깨어지기 쉬운 유리 같은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이처럼 섬세한 영적 감각을 지닌 한 시대의 탁월한 예술가도 그의 삶을 예수 안에 온전히 맡기지 못함으로써 끝내 생의 비참한 최후를 맞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는 깨지기 쉬운 인생을 부둥켜안고 괴로워하다 생의 단안을 내리는 이웃이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고귀한 생명을 이런저런 이유로 헛되이 버리도록 충동질하는 일들이 우리 주위를 엄습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깨어서 이 허무의 시대를 '예수 보혈'로 치유해야 합니다. 

(롬 5: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서 죽어 주심이라고 말씀하시니 지금은 그 지위가 바꾸었졌음을 나냅니다.
이제는 그가 우리 죄를 다 질머지신지라 우리의 죄는 깨끗이 그에게 담당케 하였습니다. 아니 담당해 주셨습니다.

(사 53:6)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기에 인간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믿음으로 받아들임으로 죄인 아닌 의롭다 함을 받은자들이 되었습니다

(롬 3:24)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요 15:13)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벧전 3:18)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요 3: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이로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다는 적절한 말씀이요 무거운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속죄와 같은 사랑의 확증은 없습니다.

(요일 4:9)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의 소재를 이렇게 말씀하기도 합니다.

(요일 4:10)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너무나 분명하게 나타내신 말씀입니다.
   
성경은 반복해서 한 가지 사실을 알려 줍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으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 사랑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신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잘났기 때문에, 내가 많이 배웠기 때문에, 내가 세상 지위가 대단하기 때문에, 부자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고,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서 쓸 만하니까 사랑하신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이 놀라운 사랑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것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라는 말씀입니다.

사랑스러울 때가 아니었습니다.
“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사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도무지 용납 받을 수 없는 추한 사람들로 서 있을 때, 도무지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들로 서 있을 때였습니다.
사랑스러운 사람은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에 든 사람은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낳은 자식, 키운 자식은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죄인으로 있을 때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말씀입니다.

(롬 5:10)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모든 인간은 죄를 지음으로써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죄는 단순히 인간에게만 짓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느 순간에든지 하나님의 면전에 있습니다.

따라서 종교적 죄를 짓든 도덕적 죄를 짓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를 짓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도전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과 원수 관계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 죄를 지었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원수를 원수로 갚지 않으시고 오히려 은혜와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은 원수처럼 행하는 우리를 사랑했습니다. 원수와 같은 우리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그것이 안타까워 자기 아들을 내어 주면서까지 구원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사랑의 본 모습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십니다.

(엡 2:16)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십자가의 사랑은 우리로 화목케 하실 뿐더러 우리에게 화목의 직책을 맡게도 하십니다.

(고후 5:18)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어떤 한 사업가가 사업차 뉴욕에 갔다가 그곳에서 고등학교 2학년생인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것도 아들이 학교 에서 상급생으로부터 폭행을 당해 죽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 분은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급히 귀국을 서둘렀습니다. 귀국행 비행기 안에서 복수심에 이를 갈았습니다. 금지 옥엽으로 키운 아들을 살해한 상급생과 학교 관계자들을 가만 두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이 분이 비행기 안에서 탄식하며 기도하는데 심령 깊은 곳에서 모든 인류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모습이 계시되면서 용서하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 분은 "예수님,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내 아들의 원수를 용서할 수 있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원수를 갚겠다는 복수심이 또 끓어 올랐습니다. 이 분은 15시간 동안 비행기 안에서 마음속으로 원수를 수 없이 살리고 죽였습니다. 그러나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했을 때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리라는 결심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를 통해 얻은 결과였습니다. 이 분이 집에 들어가니 학교 관계자들은 얼굴을 들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 이 분은 부드러운 말로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아들을 데려가셨습니다. 나는 처음 비행기 안에서 복수를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독생자를 인간에게 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 인류를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하고 변화를 받았습니다."라고 말하며 학교 관계자들을 위로했습니다. 그리고 이 분은 검사에게 아들을 죽인 피의자를 관대하게 처리해 달라는 탄원서를 보냈습니다. 또한 그는 3천여만원을 아들의 학교에 장학금으로 기탁했습니다. 이 분은 피가 피를 부를 수 있는 비극적인 사태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아름답게 해결한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역사할 때 극한 의 미움이 사라지고 사랑과 용서, 화평과 희락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미움을 해소하지 않고는 결코 열두 샘이 있고 칠십 주의 종려가 있는 복의 땅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그리스도의 살으심이 이렇게 우리에게 직접 연결됩니다.

(요 14:19)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고후 4:10)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히 7:25)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려 죽으신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깊으신 사랑의 계획과 인내를 가지셨을 뿐만 아니라 최종적으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 주시기까지 인간을 사랑하셨습니다.
원수는 미워하고 아들은 사랑하며, 원수를 희생해서 아들을 유익하게 하는 것이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정반대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그는 원수 된 인간들을 구속하기 위하여 사랑하는 독생자를 죽음의 자리에 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죄책을 예수께 지우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십자가에게 두셨습니다

(갈 3:13)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그리고 십자가 위에 달린 그리스도에게 모든 인류에게 내리셔야 할 진노를 다 쏟으셨습니다.
한마디로 예수께서는 인류를 위한 희생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모습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류를 향한 하나님 사랑의 극에 달한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안으로 감수하시며 하나님은 인류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도무지 죄를 용인하실 수 없으셨고 죄인은 용납하실 수 없으셨습니다. 반드시 심판하셔야 했고, 벌하셔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죄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죄를 미워하시기에 구제 불능의 죄인들을 위해서그 죄 값을 지불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를 내놓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 죄 값을 자신의 독생자에게 지우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롬 5:6)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롬 5: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죽으심으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은“그리스도를 통하여”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계속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말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입니다.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간단하게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한마디 말로만 표현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그 길은 그렇게 쉬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의 고통은 가히 표현을 할 수 없는 아픔이었습니다. 그분이 받으신 채찍은 온몸을 밭고랑과 같이 만들었습니다. 밤새껏 계속된 고문 때문에 한걸음도 용신할 수 없을 만큼 온몸은 지치고 상하셨습니다. 그 지친 몸으로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은 쓰러지고 쓰러지면서 고난의 길을 오르셨습니다.

갈보리로 오르시던 길목에서 쓰러지고, 또 쓰러지셨습니다. 그분이 쓰신 가시관은 조금만 움직여도 온 머리를 찌르며 온 얼굴은 피로 뒤덮여 있습니다. 못이 박히고 십자가가 세워질 때 몸은 밑으로 처지면서 살이 찢어지고, 그 고통과 아픔 때문에 숨도 쉴 수가 없습니다. 옆구리를 찌른 창은 주님의 심장 아랫부분에까지 밀고 들어와 구멍을 내고, 그 상처에서 흐르는 피는 솟구치는 샘물과 같이 터져 나옵니다. 바로 우리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관념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추상적인 진리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현장입니다. 이 사실 바로 알고 내 몫에 태인 십자가 지고 주의 발자취를 따르며 주의 몸 된 교회위해 사명 감당하는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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