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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마시자 (요 4: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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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마시자 (요 4:5-30)


우리 예수님을 만났던 어떤 사람도 다 변화되었고, 새로워졌고, 구원받았습니다. 팔레스틴의 태양은 이름 모를 수가성 여인이나, 온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주님에게도 똑같이 공평하게 내리 쬐고 그 태양은 대지 위에 작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겨울 지독한 한파에 시달리면서 따뜻한 태양이 그리웠습니다.  그러나 30도를 넘는 찜통더위가 며칠만 계속되면, 서늘한 가을, 그리고 추운 겨울도 동경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갈릴리를 떠나 예루살렘에 오실 때면, 요단강 동편 지역을 돌아오는 베뢰아 코스를 따라 오고 가셨는데, 이번에는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돌아가시면서 사마리아로 질러가는 길을 선택하셨습니다.그러나 사실은 조심스러운 길이었습니다.  

사마리아를 통과하다가 잘못하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봉변을 당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코스가 아무리 빠른 길이라고 해도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땅을 밟고 지나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사람으로 여기지도 아니하고 구원은 유대인만 받게 되어 있다고 하며, 사마리아인들은 버림받아야 하고, 사랑할 사람들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려고할 때에, 사마리아 사람들이 와서 함께 성전을 짓자고 할 때에 거절하였는데, 그들이 이방 사람들과 혼혈이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같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을 거절하였습니다.그랬더니 사마리아 사람들이 바사의 황제에게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게 민원을 제기하여 한 때는 성전 건축이 중단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개나 돼지 같이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상종하는 것을 꺼려하였습니다.  그래서 갈릴리 지역에서 예루살렘을 오고 갈 때에는 멀리 베뢰아 지방이나 해변 길로 돌아다녔습니다.  유대인의 기도 가운데, 어떤 랍비의 책에 기도문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이 세상 사람들을 부활시킬 때에 사마리아 사람들은 하나도 일어나지 못하게 하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사마리아 사람들을 증오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영혼을 구원하시고 그를 통하여 당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메시아이심을 드러내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 수가성에서 나온 한 여인을 구원하시고, 그녀를 통하여 많은 사람을 구원하시고, 그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려고 사마리아로 가는 직선로를 선택하셨습니다.우리 주님은 모든 사람들이 멸시하고 천대하는 여성을 만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사마리아로 지나가시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이 사마리아 땅으로 가시려고 하신 이유였으며,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시고 그를 구원하려고 사마리아로 가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길 가에 우물이 하나 있었는데, 조상 야곱이 사용하였던 우물이었기에 야곱의 우물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 주님 예수님은 길을 가시다가 피곤하였고, 제자들에게 먹을 조금 사오라고 사마리아 성읍에 들여보내고, 야곱의 우물 곁에 그대로 앉아 계셨습니다.  이때의 시간이 낮 정오, 낮 12시가 넘어가고 있었습니다.예수님이 행로에 피곤하셔서 우물가에서 쉬고 있던 시간이 6시- 낮 12시였습니다.  

때마침 이때에 수가성에서 한 여인이 물을 길러 우물에 오고 있었습니다.  이 우물은 야곱이 사용하였던 우물이요, 수가성에서 약 2Km나 떨어진 곳에 있으며, 지난 2000년 이상 많은 사람들이 길어 마신 우물이었습니다. 여자의 몸으로 무거운 물통을 머리에 이고, 두레박을 가지고 왕복 도합 4Km 정도를 걸어서 그것도 더운 한 낮에 물을 길어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나와 두레박을 한 사람만 가지고 오고, 물통만 가지고 오면 아주 편하였습니다.  

태양이 작열하는 한낮, 정오가 되는데, 한 여인이 물을 길러 오고 있습니다.행로에 피곤하여 우물가에 앉아 쉬고 계시던 예수님은 물을 긷고 있는 이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셨습니다. 

이 때 사마리아 여자가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9)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여자와 만나고 말하면 자신이 더러워진다고 보았습니다.유대인이라고 하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않는 것으로 아는데, 유대인으로 자존심도 없느냐, 하찮은 여자요, 사람으로 보지도 않는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달라고 하느냐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퉁명스럽게 말하는 것은 민족적인 감정이 들어 있는 가시 돋친 말입니다.  유대 랍비들이 물려준 미쉬나에 보면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과 같은 그릇을 사용해도 안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마실 물이 있다는 것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생수가 많이 나고, 아주 좋은 물이 많이 나고 있습니다.  수돗물도 정말 좋습니다.  삼천리금수강산에 살고 있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감사할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물을 달라고 하신 후에 다른 주제로 대화를 이끌어 가시고 있습니다.여인의 호기심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10)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여인에게 어떤 호기심을 가지게 하였고, 세상적인 물질에서 드디어 하나님을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다양한 설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로 이루실 하나님의 구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잘 모르면 성경의 마스터키인 십자가로 열어보면 열리지 않는 비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실 하나님의 구원, 십자가의 복음으로 주시는 은혜였습니다.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고 하셨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두레박도 없고, 물통도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나님의 선물을 주시고, 여자에게 생수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생수’라는 말은 살아 있는 물을 가리키는 것으로 지하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신선하고 맛이 좋고, 생명을 주고 갈한 목을 축여줄 수 있는 샘물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생수는 곧 십자가의 복음으로 인류의 갈한 목을 축이고 살리는 말씀의 생수였습니다.  성경을 주경하는 신학자들은 생수를 영생으로, 그리스도로, 성령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요7:37-39에 보면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생수는 예수 믿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영생이요, 구원받은 성도들이 받을 성령이었습니다.  

여인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말투가 달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예수님은 한낮 유대인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존경하는 말로 호칭이 “주여”로 바뀌고 있습니다.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11-12)  “주여”라는 말은 교회가 사용하는 그리스도라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남자를 높이고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사람에게 존경의 의미로 사용하였습니다.  여인이 말한 주라는 말은 ‘선생님’ 정도로 보아야 합니다. 

여인은 아직도 생수라는 말은 우물물을 생수라고 보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 길을 두레박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떻게 생수를 얻을 수 있느냐, 아니면 새로운 우물이라고 팔 수 있는 힘이 있느냐고 옛날 야곱이 판 우물이요, 후손들에게 주었다고 고사를 들어 말하였습니다.  

우리 주님은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13-14)

야곱의 우물에서 솟아나는 샘물을 마시면 잠시 갈한 목을 축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목마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주시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합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물을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됩니다.  

예수님이 이 여인의 관심사인 오직 우물물이나 길어가려는 데서 영원한 진리로 이끌어내시고 있습니다.세상적인 관심사에서 하나님을 생각하게 이끌어가시고 있습니다.  세상에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그런 샘물이 있다면, 그런 물을 마시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여자가 말합니다.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이 여인은 지금 그렇게 오랫동안 목마르지 않는 물이 있다는 말에 솔깃하였습니다.  물 길러 오는 것이 힘들고 부끄러운 일이기에 할 수 있으면 그만 나오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은 선선한 아침저녁으로 물을 길러 나오는데, 함께 어울려 나왔으면 좋겠지만, 부끄러운 사람이기에 다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으려고 한낮에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피곤하지요, 날은 덥지요, 한낮에 물을 길어야 하니 참으로 곤혹스러웠습니다.  

우리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여인의 가장 깊은 상처를 끄집어 내셨습니다.여인이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요 상처인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셨습니다. 

여인은 상처가 많은 사람입니다.  한 여성으로 부푼 꿈을 가지고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그와 더불어 평생을 해로하며, 하나님의 가정을 이루고, 하나님의 일꾼을 낳고 기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은 한 영혼을 살리시려고 물질적인 주제에서 영적인 주제로 옮겨가면서 그의 영혼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셨는데, 여자는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 여자의 모든 형편,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17-18)

이 사마리아 여자는 도대체 어떤 여성이었습니까?  결혼을 다섯 번이나 치렀고, 지금 동거하는 사람이 있으나, 아직 결혼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여섯 번이나 남편을 갈아치웠는지, 그의 속마음을 알 수가 없는 여성입니다. 한 배우는 여덟 번이나 결혼하였다고 합니다. 정말 알 수 없습니다. 

아마 이 여자는 당시 사마리아의 풍속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으며, 그는 사회적인 약자이며, 피해자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남자에게 버림 받고, 또 겨우 남자를 만나 살만해지니, 그도 아내를 버리므로 상처를 받은 사회적인 약자로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나중에 보니 자기의 나쁜 과거를 다 알고 있는 그 분 예수님은 메시아라고, 자기는 그리스도를 만났노라고 하는 것을 보고는 정말 여자는 보통 여성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의 여성들은 남편이 죽거나 남편이 이혼증서를 써주면서 나가라고 하면 나가서 재혼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보통은 재혼으로 그치고, 세 번이상 결혼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가 다섯 번이나 결혼하였습니다.  

다섯 번째 결혼한 남자라고 하면, 그 남자는 동리 사람들에게 욕을 먹어도 많은 욕을 먹을 사람이었습니다.아니, 어디에 결혼할 여자가 없어 네 번씩이나 이혼한 여자와 결혼하려고 하느냐고 욕하여, 얼굴 들고 다닐 수 없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이 여자의 성화에 못 이겨 정식으로 결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섯 번째 남자도 얼마 지나면 여자의 성화에 못 이겨 결혼식을 거행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 사마리아 여자는 창기와 다름이 없는 하류의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동리 여성들이 수군거립니다.  이 여자를 보는데, 사람으로 보지도 않습니다.  당시의 마을이라고 해야 몇 십 가구에 불과할 터인데, 동리 아이들마저 그냥 지나가지 않고, 돌아보면 여전히 쳐다보고 한 마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처럼 혀를 차고 있습니다.  집 밖에 나오는 것이 끔찍합니다.  물을 길어와야 하는데, 마치 몰래 도둑질 하는 것처럼 한낮에 가서 물을 길어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약한 여성으로 살길이 막막하였기에 조금이라도 잘 사는 남자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다 보니, 인내심이 부족하여 여러 남자를 바꾸었습니다. 남자가 이혼장을 써주는 것이 아니라, 남편에게 이혼장을 써달라고 졸라대니 가정불화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아주 많은 것을 상상하게 만드는 여자입니다. 

그런데, 이 여자에게도 세상 정욕으로 채워지지 않는 영혼의 갈급함이 있었습니다.  아주 부족하지만 영성이 있었습니다.  정말 남편으로는 채울 수 없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참된 예배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여자가 예수님에게 고백합니다.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한낮 ‘유대인’이었는데, ‘주여’로, 이제는 ‘선지자’로 격상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이 여자도 아브라함의 자손이었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 두려운 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예배의 참된 의미를 잘 설명해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21-24)

이 여인은 죄 많은 여자로 혼자 마음 아파하면서 울었습니다.  나 같은 여자도 과연 하나님 앞에 나아가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나 같은 죄인이라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가?유대인들의 말처럼 예루살렘 성전이 진정한 성전이라고 하면 그곳에라도 가서 죄를 회개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조상들은 그리심산에서 예배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예배드리고, 유대인들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알고 예배드렸습니다.  구원은 사마리아 사람을 통하지 않고, 유대인에게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리심산 성전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이 맞는 답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어느 한 장소에 국한시키지 않고, 영적으로 드리는 예배를 말씀하셨습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할 것이며, 하나님이 기뻐받으시는 예배는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오늘 진정한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우리의 죄는 주님의 은혜로 용서받았다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 앞에 서기를 소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 영생을 소유하고 누리면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마음껏 예배하고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편63:1에 보면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의 육체가 주님을 앙모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갈하지 않는 생수가 되셔서 우리의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예수님이라는 생수가 솟아오르게 하십니다. 

여자는 자기의 가장 깊은 영성을 끌어내어 물었습니다.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25)  이 때에 주님은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고 하셨습니다.  여자는 더 이상 고민할 것이 없었습니다.  자기의 죄를 아시는 그 분이 그리스도요, 그리스도를 만났으니 자기의 죄는 다 사함을 받았습니다.  우리 주님이 자기를 살려주시고 고쳐주시려고 찾아오신 것을 알았습니다. 

이런 놀라운 소식을 자기만 알고 있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여자는 물동이를 우물가에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고 외쳤습니다.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리로 달려가는 여인을 보면서, 작은 지면에 이 사건의 담긴 생생한 진리의 말씀을 다 기록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이 여인이 가진 영혼이 치유 받는 과정을 다 담아낼 수 없습니다.  생략된 부분도 많고, 사건을 하나같이 자세히 기록할 수 없습니다.그러나 아주 다른 사건에 비하면 아부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메시아를 만났고, 구원의 주님이 자기를 구원하려고 찾아오신 것을 알았습니다.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에 주님은 사랑하는 여러분을 찾아가셨습니다.  

지금도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아 만나고,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려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찾아 만나기를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만나주시고, 우리의 가진 문제를 주님이 가져가시고 우리의 솟아나는 샘물을 마시게 하십니다. 

사마리아 여성에게 예수님은 한 낯선 사람,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존경하는 주로, 선지자로, 마침내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외쳤습니다. 여자는 자기가 만난 그리스도, 자기가 경험한 주님을 전하기 위하여, 자신을 버린 동리로 달려갔습니다.  하루 마셔야 하는 물동이는 우물곁에 버려둔 채 이 여성의 앞에는 이젠 전혀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여자는 가슴에 넘쳐흐르는 생수를 안고 달려갔습니다.그동안 이 여인은 사랑과 행복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려고 결혼이라는 우물을 찾았습니다.그리고 매번 실망하면서 그 우물을 떠났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모든 아픔을 싸매어주시고 그의 영혼으로 하나님을 찾아갈 수 있는 길을 말씀해주셨습니다.  평생 육적인 삶을 살아오면서 상처를 가지고 있는데, 영이 하나님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무슨 죄를 그렇게 지었으냐고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질서정연한 구원의 도리를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이 불쌍한 여성에게 네가 기다리는 메시아, 그리스도가 바로 나라고 하셨습니다.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고 확답하셨습니다.내가 메시아를 만났으면 되었지만, 눈물 흘리며 통회 자복할 것도 아닙니다.  내 모습 그대로 만나주시는 주님, 그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선물, 구원이 되어주셨고, 날마다 우리의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생수가 되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갈하지 않는 생수이십니다.이 예수님으로 만족하고, 기뻐하시고, 예수님으로 충분하다고 고백하셔야 합니다.오늘도 예수님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나아가시고, 주님은 내 안에, 나는 주님 안에 있음을 고백하면서 영원한 기쁨, 생수가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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