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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마 8: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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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마 8:23-27)  


들어가는 말

국민일보 ‘이웃’이라는 섹션에서 ‘이미선 약사의 미아리 서신’이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이미선 약사는 미아리 집창촌 입구에서 ‘건강한 약국’을 운영하는 교회 집사입니다.

그 내용을 일부를 소개하겠습니다.
“점심때를 훌쩍 넘긴 한가로운 오후 시간에 영미씨가 약국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영미씨.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아, 약사 이모........집에 좀 다녀왔어요.’ 대답하는 그녀는 온 몸의 진액이 다 빠져버린 빈껍데기만 남은 사람 같습니다. 

간암에 결려 간 절제수술을 받은 아버지....... 당뇨와 고지혈증으로 인해 다발성 신경염을 앓고 있는 어머니.......그녀는 오랫동안 품었던 이야기를 끄집어냈습니다. 마치 누에고치가 자신의 몸속에서 한 올 한 올 실타래를 뽑아내듯이 그렇게 풀어내는 그녀의 모습이 제 가슴 깊은 곳까지 들어왔습니다. 잦은 병치레를 하시는 부모의 병원비와 생활비는 오롯이 그녀의 몫이었습니다. 영미씨가 이곳에서 일한 지는 5년이 넘었습니다. 별 말이 없고 다소곳한 그녀의 인상이 저는 참 좋았습니다. ‘이제는 정말 이곳에서 나가고 싶었는데.......그것마저 내게는 욕심이었나 봐요........’

그녀를 위로하고, 달래면서 하나님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살다가 보면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그런 때가 있다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가는 그런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너무도 암담한 상황이 억울하여 분노가 솟구치고, 눈물만 흐르는 그런 때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시련을 통해서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신다고 말했습니다.
조금은 어렵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함께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자는 약속을 하고 그녀와 손을 잡고 기도하였습니다.”

오늘 ‘들어가는 말’로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살다보면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너무도 암담한 상황에 억울하여 분노가 솟구칠 때가 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본문에 나오는 갈릴리 호수는 깊은 분지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갈릴리호수는 바다 수면보다 훨씬 아래에 있습니다. 
그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벼랑과 산언덕에는 골짜기들과 깊은 계곡들이 있어서 깔때기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산에서 불어오는 찬 공기가 깔때기를 통과하여 호수에 내리 덮치면 갑작스런 돌풍을 일으킵니다. 
그러면 호수는 찢어지고, 바닥에서부터 물결이 치솟아 올라오곤 합니다. 
배를 타고 가는 사람은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고, 어디로 불어 가는지 그 방향조차 알 수 없습니다. 
작은 배는 파도에 밀려 물결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도 하고, 금세 공중으로 치솟기도 합니다. 
그런 바다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제는 영락없이 죽었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 호수에 불어 닥친 폭풍 이야기는 예수님과 함께 하는 성도들의 영적 항해를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우리 인생의 항해는 비단물결처럼 잔잔한 호수를 지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항해가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 어디에도 “예수님을 믿으면 인생의 항해는 잔잔한 호수를 지나는 것과 같을 것이다.”라고 말한 곳이 없습니다. 
성도의 삶에도 폭풍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한 것이 있어요.
그것은 그 순간에도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에 봐도 예수님이 함께 계셨잖아요? 
바로 이 약속을 믿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은 평안한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때론 주님께서 잠들어 계신 것처럼 보입니다. 
주님의 음성은 한 마디도 들려지지 않습니다.
주님의 얼굴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찬양할 것은 주님은 한 번도 우리를 혼자 버려두지 아니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본문을 읽으면서 두 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하나는, 제자들이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였는데 왜 폭풍을 만나게 되었느냐 하는 점입니다. 
본문과 병행구절인 막4:35절에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지금 제자들은 이 예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들이 휴가철을 맞아 여행을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고기 잡으러 가자”라고 말하는 어떤 형제의 제안을 따라 간 것도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명령을 따라서 항해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다른 하나는, 주님께서 배에 계실 때 풍랑이 엄습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거기 계시지 않았다면 이해를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함께 거기 배 안에 계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과의 교제에서 벗어나 있을 때 징계를 받는다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과 가까이 하며 교제를 하고 있는데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이런 질문들을 하면서 본문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25절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사실 제자들은 풍랑을 맞아 일찍이 주님을 깨웠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배의 줄을 묶느라고 바빴고, 돛을 세우느라 여념이 없었으며, 항해하는 데만 정신이 팔여 있었습니다. 
정작 그들은 모든 일 가운데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을 제쳐두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을 찾아 그들의 위험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의 말로 하면, 삶의 위기를 겪으면서도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납니다.
이런, 저런 시도를 해봅니다.
그러나 기도를 하지 않아요.

배가 가라앉고 있습니다. 
이제야 주님을 찾았습니다.
제자들 중 많은 이들이 울부짖었습니다. 
이 사람은 이 말을 하고 저 사람은 저 말을 하면서 말입니다. 
본문, 마8:25에서 제자들은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막4:38절에서 제자들은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라고 원망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가리켜 ‘선생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태도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느낍니까?
그 단어에 주님에 대한 원망, 불신이 가득 묻어있지 않습니까?

주님께서 냉담하실 때가 있습니다.
때때로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과 슬픔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우리에 대하여 무한한 사랑과 지혜를 가지신 주님의 판단에 따라 되는 일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사55:8-9절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주님의 시간이 가장 적합한 시간이며, 주님의 방법이 가장 적합한 방법임을 믿으십시오.
모든 일 속에 주님의 사랑하시는 손길이 있음을 믿고, 찬양하길 바랍니다. 

지난 2011년 3월 24일 국민일보 ‘미션’ 란의 “‘무대뽀 신앙’ 방송 잃고 신부 얻다.”라는 제목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스피드스케이트 스타 제갈성렬’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주여!” “주님의 뜻입니다!”

지난해 2월 24일 아침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1만 미터에서 이승훈 선수가 금메달을 따는 순간 당시 SBS해설위원인 제갈성렬은 “주여!” “주님의 뜻입니다!”라고 소리쳤습니다.
전파를 타고 전국으로 퍼진 두 마디는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이 말을 한 제갈성렬 해설위원은 종교편향이란 부정적인 여론의 뭇매를 맞아 자진하여 방송에 하차했습니다.

그러고는 악플과 비난에 시달리며 상당기간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건 덕분에 평생의 반려자를 만났고, 41살의 노총각 딱지를 떼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의 반려자가 될 사람은 치과의사입니다.
그를 만나게 된 사연을 이렇습니다.
방송사고로 두문불출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러던 중 김장환 목사가 진행하는 극동방송 ‘만나고 싶은 사람 듣고 싶은 이야기’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사연에 크게 감동받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런 믿음이라면 내 딸을 맡겨도 되겠다.......’
이래서 제갈 성렬의 연락처를 물색하여 딸과 엮어준 것이었습니다.
그는 고백했습니다.
"주여! 주님의 뜻입니다! 라는 발언 때문에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소중한 아내를 만났습니다. 최악의 순간에 최고의 선물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냉담하다고 여겨질 때에도 주님의 시간이 가장 적합한 시간이요, 주님의 방법이 가장 적절한 방법임을 믿으시길 축원합니다.

2. 26절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제자들의 불신앙이 주님께는 서글프게 했습니다.
‘믿음이 작은 자들아.’ 
제자들은 마땅히 주님을 믿어야 했습니다. 
그들이 탄 배가 풍랑에 아무리 밀려 요동친다 할지라도, 주님께서 함께 계시는 한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사41:10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지체인 그들이 고난을 받으면 머리되신 주님이 고난을 받습니다. 
그들이 잘되는 것이 주님이 잘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잘못되면 주님도 잘못됩니다. 
할렐루야.

어떻게 주님을 이렇게 대우할 수 있습니까?
제자들은 주님께서 병자를 치료하시며, 수천 명의 사람들을 먹이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 앞에서 주님께서 얼마나 많은 이적을 이미 행하셨는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의심할 수 있었습니까? 
그들의 불안은 주님을 아주 작게 본 데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우리가 주님을 제대로 믿어드리면 그분 안에서 안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제대로 믿어드리면 걱정, 불안, 염려를 떨쳐 버릴 수가 있습니다. 
주님을 크게 믿으십시오. 
만일 주님을 더 크게 믿는다면 여러분의 삶은 훨씬 더 커질 것입니다.

복음성가-주님여, 내 손을 꼭 잡아주소서.

3. 27절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하더라.”

이 말은 제자들의 반응입니다.

1) “놀랍게 여겨”

제자들은 주님께서 하신 일에 놀라운 반응을 보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주님의 자녀가 된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발 앞에 꿇어 엎드려 예배드리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보배로운 피를 의지하여 용서를 비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믿고 신뢰하던 모든 태도를 버리고, 주님을 바라보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좋아하던 세상의 쾌락을 버리고, 이 자리에 나와 주의 말씀을 듣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하여 풀잎에 맺혀있는 이슬방울을 전에 본 적이 없는 것처럼 느끼고, 흘러가는 구름을 전에 본 적이 없는 것처럼 느끼고, 길가의 플라타너스의 잎을 전에 본적이 없는 것처럼 느끼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거듭난 이후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2) “심히 두려워하여”

본문과 병행구절인 막4:41절에는,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라고 제자들의 반응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마가는 제자들이 심히 두려워했다고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께 가까이 나아감으로 거룩한 친밀함을 느끼는 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우리가 조심해야 될 것은 예수님에 대하여 경건한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우습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모든 참된 자녀는 자기 아버지에 대하여 경외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모든 참된 자녀는 자기 어머니에 대하여 존경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3) “이 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주님의 인격에 대한 감탄입니다.
이것이 본문의 주제입니다.
“이 사람이 뉘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바람과 바다’는 인생살이에서 가장 변덕이 많은 요소를 상징합니다. 

그렇습니다. 
가장 변덕이 심한 요소들, 가장 다스려지지 않는 세력들, 그 모든 것들이 예수님의 능력과 권세 아래 있습니다. 
이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주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죽게 된 것을 안 돌아봅니까?’ 라는 제자들의 원망에 오히려 주님은‘어찌하여 무서워 하느냐?’ 라고 되묻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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