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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브라함의 자손과 알곡 (마 3: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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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자손과 알곡 (마 3:7-12) 


(마3:7-12)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  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1.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다! 회개하라!’하고 외치자 많은 사람들이 나와 죄를 고백하고 요단강에서 세례받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오는 것을 보고 요한이 이렇게 호되게 책망합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  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회개하고 세례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당시 주목받고 있는 요한의 세례를 감시하기 위해 온 것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칭 율법을 가장 엄격하게 지키는 최고의 경건한 사람,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사람이라고 자부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는 먹고 입는 것을 판이하게 구별해서 삽니다. 그러나 실상은 가장 추악하고 위선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지적하시며 화를 선포하셨습니다. 

“위선자 바리새인들아, 너희에게 화가 임할 것이니라. 너희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하게 하지만 그 속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 차 있도다. 눈먼 바리새인들아, 너희는 먼저 잔과 접시의 속을 깨끗이 하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질 것이니라. 너희는 회칠한 무덤과 같은 자들이니라. 회칠한 무덤이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해골과 더러운 것으로 가득차 있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들에게 의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속에는 위선과 죄로 가득 차 있도다.”(마23:25-28) 

사두개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세례 요한이 이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두고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간교한 ‘뱀의 자식들’이라는 말로 그들의 사악한 실체를 여지없이 드러낸 것입니다. 스스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여기고 있지만 실상은 사탄의 자식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이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고 질책한 것입니다. 

요한은 누구를 막론하고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자손,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도록 하고자 물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비록 ‘독사의 자식들’일지라도 회개하고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 참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려는 목적으로 그들을 질책했던 것입니다. 세례의 궁극적인 목적은 단지 임박한 진노를 당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악을 깨닫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 쭉정이가 아니라 알곡들이 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믿고 회개하여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알곡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2.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는 것은 마음 중심으로 회개한 것이 실제 눈으로 볼 수 있는 행동으로 나타내라는 뜻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행위는 극히 거룩한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 그럴듯하게 꾸민 것뿐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경건을 위장(僞裝)한 위선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말하고 가르치는 의는 전혀 하나님 나라 기준에 합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20-37입니다. 

(마5:20-3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의(義)는 아무리 형제를 향하여 멸시 천대하는 욕을 하거나 심지어 죽이고 싶은 마음을 가졌다 해도, 실제 죽이지 아니하면 살인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자를 보고 아무리 음흉한 생각을 품었다 해도 실제 간음하거나 강간하지 아니하면, 간음죄나 강간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법, 세상의 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준, 하나님의 의의 기준은 그렇지 않습니다. 형제에 대하여 마음에 미움이나 화를 품고 있으면, 이미 형제를 죽인 살인죄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 즉 속사람, 내면에서부터 의로워야만 천국에 들어가는 알곡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죽이면 분명 살인죄를 범한 것이고 여인을 범하면 분명 간음죄를 범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살인죄와 간음죄 등을 마음에서부터 적용하시는 것입니다. 마음에 품은 미움, 마음에 품은 음욕은 이미 살인죄나 간음죄를 범한 것으로 간주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의보다 더 나은 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의의 수준입니다. 때문에 회개는 사람을 죽이지 아니했을지라도 이미 마음에 품었던 미움이나 증오를 진심으로 회개하여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꾸고, 그 사랑하는 마음이 생활로 나타나게 되었을 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활만이 알곡이 되는 것이며 알곡만이 곡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알곡들만이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여리고에 삭개오라는 세리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상당한 부자였는데, 이는 그가 세금을 징수하는 수장으로 결코 청렴결백하게 살았다고 할 수 없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당시 세리들은 유대 사회에서 더러운 창녀와 마찬가지로 죄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다시 말해 그는 분명 유대인으로 태어났을지라도 아브라함의 자손에서 제외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께서 여리고에 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께서 지나가시는 길목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유난히 키가 작은 사람이라 나무에 올라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기만이라도 해야, 소외되었던 고독하고 허전한 마음을 채울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에 둘러싸여 가시는 예수께서 나무 위를 쳐다보시며,
“(눅19:5)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묵어야겠다.” 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삭개오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아시고 부르셨을까,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극진히 모셨습니다. 

그리고 예수께 이렇게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눅19:8-10)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그러자 예수께서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진실로 회개하고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삭개오가 참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믿고 회개하여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아니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알곡이 될 수 없습니다. 삭개오를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선언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직 예수만이 아브라함의 자손됨을 선언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 믿고 회개해야만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오직 예수 믿음으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성공이라는 열매를 맺었다 해도, 예수 없이는 장차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알곡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열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볼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열매가 아닌 것은 가라지, 쭉정이에 불과한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 믿지 않고서도 세상에서 잘 되고 성공하여 상당한 열매를 맺었다고 해도 그 열매들이 영원하지 않습니다. 장차 추수 심판 때에 불에 타서 없어질 ‘헛된 열매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빛 좋은 개살구같은 것입니다. 솔로몬이 고백한대로 헛되고 헛될 뿐입니다.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던 예수 믿고 회개하여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면 알곡이 되어 천국에 들어가고, 그렇지 아니하면 가라지처럼 불태워지는 불행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가졌다 해도 예수 없으면 다 잃은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잃었다 해도 예수 안에만 있으면 모든 것을 얻은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만 인생의 좋은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예수 없는 사람들의 출세와 성공, 번영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인생의 추수 때에 보면 빈 껍데기일 뿐입니다. 

시편1:3에,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고 했습니다. “시냇가”는 생수의 강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안에 뿌리를 내릴 때 가장 좋은 열매를 맺으며 그 행사가 다 형통하는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골2:7)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생으로 하여금 좋은 열매를 맺게 하는 “참 포도나무”이십니다. 예수 믿고 회개하여 그에 합당한 열매를 풍성히 맺는 삶으로, 그리고 끝까지 참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가 되어 좋은 열매를 맺어 넉넉히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알곡같은 인생,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늘나라에 살고 있는 천사 세 명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한 천사가 말하기를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사는지 모르겠어?” 그러자 또 한 천사가 말하기를 “사람은 그렇다치더라도 하나님은 무슨 재미로 사시는지 모르겠어?” 나머지 한 천사가 “나는 하나님과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재미있게 지내는지 모르겠어?” 이들의 이야기를 들은 하나님은 세 명의 천사들을 불러 다음과 같은 과제를 주었다고 합니다. 세상에 내려가서 가장 행복한 사람의 얼굴을 카메라로 찍어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천사들은 세상에 내려와서 가장 행복한 사람의 얼굴을 찾아 그 사람의 모습을 찍어 하나님 앞에 각 천사가 한 장씩 내 놓았습니다. 

첫 번째 천사는 오곡백과가 무르익은 들판을 바라보며 만족해하는 농부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내놓았습니다. 두 번째 천사는 10년 만에 얻은 아기를 품에 안고 기뻐하는 어떤 여인의 얼굴을 찍은 사진이었습니다. 세 번째 천사는 큰 작품을 완성하고 자신의 그림을 흐믓하게 바라보고 있는 화가의 미소를 찍어왔습니다. 

하나님은 천사들에게 수고했다고 칭찬하시면서 “사람은 그가 맺은 열매로 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두 번째 천사가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슨 재미로 사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은 곡식과 자식과 예술작품을 생산해냈지만 나는 그들을 지었고 그들에게 생명을 주었다. 사람은 나의 작품 중 최고의 걸작품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천사들은 하나님도 꽤 재미가 있으실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천사가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그러면 누가 더 재미있을까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네 생각에는 농산물을 먹는 사람들이 더 즐겁겠느냐? 아니면 생산한 농부가 더 즐겁겠느냐? 또 세상에 태어난 아기가 더 기쁘겠느냐 아니면 아기 엄마가 더 기쁘겠느냐? 그리고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과 화가 중 누구의 기쁨이 더 크겠느냐?” 세 명의 천사들은 마땅히 농부와 엄마와 화가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천사들에게 다시 물으셨습니다. “내가 다시 말하겠는데 나는 그들을 지었고 그들은 나의 작품들이다. 그들과 나 둘 중에 어느 쪽이 더 기쁘고 즐겁겠느냐?” 이번에도 천사들은 “당연히 하나님이시죠!”라고 하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선한 열매를 맺을 때마다 그들보다 더 크게 기뻐하느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어야 알곡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가 없는 것은 가라지, 쭉정이 같은 인생으로 영원히 불행한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유대인으로 태어나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 할례받은 백성이라고 지옥에 가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세례받았다고 해서 무조건 이 시대에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 아닙니다. 회개하고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만 합니다. 세례 요한이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여기 “돌들”이란 아브라함의 자손과는 무관한 ‘이방인들’을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이 돌처럼 하찮게 여기는 이방인들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그 은혜로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만드실 수 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로 시작된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큰 박해로 인해, 사마리아 등 여러 이방 지역으로 사도들과 성도들이 흩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박해와 순교를 통해 성도들을 이방 지역으로 흩어지게 하여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전파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 때 사도 빌립이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는데, 주의 천사가 빌립에게 ‘너는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광야길을 향하여 남쪽으로 가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빌립은 즉시 출발하여 가다가 이디오피아 여왕의 모든 재정을 관리하는 고관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내시였습니다. 그 사람은 예배드리러 예루살렘에 갔다가 돌아가는 길에 마차에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때 성령께서 빌립에게 “마차로 가까이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빌립은 달려가서 그 사람이 글 읽는 소리를 듣고 ‘읽는 것이 이해가 됩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빌립에게 마차에 올라 곁에 앉으라고 권합니다. 

그가 읽던 성경 구절은 이것이었습니다. “그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처럼 끌려갔고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어린 양처럼 그의 입을 열지 않았다. 그가 굴욕을 당하고 억울한 판결을 받아 세상에서 그의 생명을 빼앗겼으니 누가 그 세대의 악함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사53:7-12) 

고난받으시는 메시야, 즉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예언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 내시가 빌립에게 ‘이 말은 이사야 자신을 두고 한 말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을 두고 한 말입니까?’ 하고 묻자 빌립은 그 성경 말씀에서부터 시작하여 예수님에 대한 복음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들이 길을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렀을 때 그 내시가 ‘여기 물이 있는데 나도 세례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빌립이 그에게 ‘당신이 진심으로 믿는다면 받을 수 있습니다.’ 고 하자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내가 믿습니다.’ 며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그는 마차를 멈추게 하고 빌립과 함께 물로 내려가 빌립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신명기23:1에 보면, 구약의 율법은 내시같은 부류는 성전 출입을 금지시켰습니다.(신23:1) 하나님께서는 사람, 즉 남녀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인위적으로 그 성을 인위적으로 바꾼다든가 제거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로운 모습을 더럽히는 죄악인 것입니다. 이렇게 인위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자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모든 예배에 참석할 수 없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의 자손에서 제외됨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디오피아 내시는 예배드리려 성전에 들어갔었고, 신앙고백을 하고 세례받기를 원했을 때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는 그야말로 “돌같은 이방인”일지라도 예수 믿고 회개하면 얼마든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내시같은 이방인이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되리라는 것을 예언하셨고 그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성전은 유대인들, 아브라함의 자손들만의 것이 아니라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는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이사야 56:3-7을 보겠습니다. 

(사56:3-7) 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은 여호와께서 나를 그 백성 중에서 반드시 갈라 내시리라 말하지 말며 고자도 나는 마른 나무라 말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나를 기뻐하는 일을 선택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잡는 고자들에게는 내가 내 집에서, 내 성안에서 자녀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주며 영영한 이름을 주어 끊치지 않게 할 것이며 또 나 여호와에게 연합하여 섬기며 나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나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셨을 때, 한 백부장이 찾아와 간구합니다.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예수께서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고 말씀하시자 백부장은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예수께서 크게 놀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자랐지만 믿음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백부장같이 비록 이방인일지라도 믿음을 가진 사람이 진정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 천국 잔치에 참여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마8:5-13)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은 믿음으로 이스라엘 정탐군을 평안히 영접하고 순종하여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습니다.(히 11:31) 

그러나 아간은 비록 유대인으로 태어났지만 범죄하고 회개치 아니하여 결국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지 못하고 멸망당했습니다. 실로 하나님은 태초에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듯이(창 2:7) 원하시기만 하면 아무 돌이라도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재창조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롬 4:17) 예수 믿고 그에 합당한 신앙생활의 열매를 풍성히 맺어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시고, 아브라함의 축복을 더불어 누리시기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과 쭉정이를 구별하시는 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한은 회개케 하기 위해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알곡이 되게 하기 위해,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기 위해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십니다.” 

이 말씀 역시 말라기서를 통해 예언하신 것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어 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직 더러운 옷을 깨끗하게 표백하는 잿물처럼, 오직 금과 은을 단련하는 용광로의 불처럼, “성령과 불”로 성결케 되고 단련된 알곡들만이 심판을 능히 이겨내고, 알곡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3:2-3) 하나님께서 깨끗하다고 하실 때 심판을 이길 수 있는 성화(聖化)을 이룩한 것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나는 깨끗하다.’고 해서 심판을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죄악을 깨끗하게 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죄인을 구하러 세상에 오셨다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사람을 깨끗하게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만 죄 사함을 받아 깨끗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여 예수 믿고 죄 사함을 받고, “성령과 불”로 세례를 받아 성화의 열매, 곧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아브라함의 진정한 자손, 알곡들이 되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7을 보겠습니다.

(벧전1: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

연단받은 믿음, 열매를 맺기 위해 단련된 믿음이 금보다 더 귀하다는 것입니다. 용광로의 불로 금을 연단하듯이 믿음도 연단받게 되는데, 그 목적은 금보다 더 귀한 믿음, 믿음의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참된 믿음은 변하거나 소멸되지 않는 금처럼 단련받을 뿐인 것입니다. 믿음을 단련하시는 목적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금이 불에 의해 제련되어 순수해지듯이, 그리스도인 역시 시련을 통해 참되고 순수한 신앙을 소유하게 되고, 그 시련과 단련을 통해 심판을 능히 이기는 알곡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의 날은 이 참된 신앙이 온전히 밝혀지는 날이며, 순수하고 참된 신앙을 소유한 자가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되는 축복의 날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성도 여러분을 위해 이렇게 기도합니다. 빌립보서1:9-11입니다.

(빌1:9-11)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의로운 열매, 성령의 열매를 맺으려면 오직 성령에 따라 살아야만 합니다. 성령의 열매, 곧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등의 하나님 성품의 열매는 얼마나 맺었습니까?(갈5:22-223) 

마음에 미움이 사랑으로 변하고, 어떠한 형편과 처지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하며, 그 누구와도 화목하게 지낼 뿐만 아니라 화목케 하는 삶을 살았으며, 급한 성격이 오래 기다리며 자제할 줄 아는 모습으로 변화되었으며, 어려운 이웃들에게 작은 것 하나라도 서로 나누며 살았으며, 맡은 일이 아무리 작아도 성실하게 행하여 가정과 교회, 그리고 이웃들을 변화시키는 삶을 살았는가를 묻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좋은 말씀이라도 자신이 그 말씀대로 살지 아니하면 그림의 떡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2:24입니다.

(요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신의 옛 성품과 뜻을 죽이고, 예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 때,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목사님이 설교를 하면서 “여러분들 중에 미워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으신 분, 손들어보세요.” 아무 반응이 없자, 다시 물었습니다. “아무도 없으십니까? 손들어보세요” 그때, 뒤에서 한 할아버지가 손을 들었습니다. 목사님은 너무 감격스러워서 “할아버님,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는 지 우리에게 말씀해 주세요!”라고 부탁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힘없는 목소리로 할아버지는 말씀하셨습니다. “응… 있었는데… 다… 죽었어.” 

예수 믿기 전의 옛 성격과 옛 습관을 그대로 가지고서는 전도의 열매, 봉사의 열매, 선한 열매 등을 맺을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의 “나는 날마다 죽노라.”는 고백처럼 날마다 자신의 옛 사람이 죽고 하나님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성령의 열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때로 죽는 것만큼 힘들어도, 그대로 순종할 때 좋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 믿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셨습니까? 아브라함의 자손이시면 아브라함을 본받아 사시기 바랍니다.(요 8:39)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바대로 하나님 나라 유업을 이을 자로 축복하실 것입니다.(갈 3:29, 롬 4:12)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사는 신앙생활에 풍성한 열매를 맺어, ‘칭찬과 영광과 존귀’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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