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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사람들 (사 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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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사람들 (사 6:1-13)


오늘은 진정한 예배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예배는 먼저 주일예배가 있습니다.이 예배는 회중예배이며 공동체의 예배입니다.우리 모든 성도들이 모여들어 정해놓은 순서에 따라 드리는 예배입니다.그러나 예배는 회중예배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예배 전능하신 하나님과 만나는 일대일의 예배가 있어야 합니다. 주일예배, 즉 회중예배-공동체의 예배도 중요하지만, 개인예배, 일대일의 예배도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예배하는 교회들을 찾고 계시지만 예배하는 개인들을 찾으시고 있습니다. 예배는 주일에 드리는 1시간의 감격이 아니라, 한 주간 계속하여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이어가는 개인예배의 감격에 빠져야 합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웃시야’라는 왕은 남왕국 유다의 전성기를 살았던 왕으로 무려 52년 간 왕위에 있었던 사람입니다.이때는 솔로몬왕의 시대와 같이 평화를 누렸고,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살았습니다.그러나 웃시야 왕이 죽던 해부터 국제정세는 이스라엘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게 되었고, 계속되는 전쟁으로 유다 왕국은 약소국으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웃시야의 시작은 아주 좋았던 왕이었습니다.

유다 왕 아마샤가 죽고 나서 아들 아사랴가 왕위에 오르면서 이름을 웃시야라고 명명하였습니다.웃시야도 처음에는 아버지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며, 무려 52년 동안 나라를 견고하게 다스렸습니다.웃시야는 하나님의 묵시를 잘 아는 선지자 스가랴의 사시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는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여주셨습니다.

웃시야는 아카바 만으로 나아가는 항구 엘롯을 건축하였습니다.블레셋과 전쟁하여 승리하였고 아라비아와 마온 사람들과 전쟁하여 승리하였습니다.그렇게연전연승하며 강대국이 되니, 주변 여러 나라가 웃시아에게 조공을 바쳤습니다.그는 건축도 잘 하고, 국경도 아주 튼튼하게 하여 곳곳에 성을 쌓고 국방에 힘썼습니다.웃시야는 농사를 좋아하였습니다.물웅덩이를 많이 파고 물을 가두었고, 고원과 평지에서 가축을 많이 기르게 하였고, 여러 산과 좋은 밭에 농사를 짓게 하고 포도원을 두었습니다. 재위 52년 동안 나라가 견고해졌고, 국민들이 잘 살게 되었습니다.

웃시야가 강성하여 지니 그의 마음이 교만하게 되었고, 악을 행하였습니다.그는 여호와 하나님께 범죄하였는데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고 하였습니다. 어느 날에 성전에 들어와서 자기가 나라의 왕으로 성소에 들어가서 분향을 하겠다고 나섰습니다.그 때에 대제사장 아사랴가 여호와의 용맹한 제사장 80명을 데리고 그의 뒤를 따라가면서 왕에게 직언합니다.

“웃시야 여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은 왕이 할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할 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대하26:18)라고 하였습니다.그래도 웃시야는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고 합니다.그리고 제사장들에게 화를 냅니다.그런데 제사장들이 막는데도 불구하고 분향하려는데,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기고 있었습니다.이마가 일그러지고 염증이 나고 고름이 나고 누가 보아도 나병이었습니다.이것은 하나님의 징계로, 천의 형벌로서 나타난 난치병입니다. 대제사장 아사랴와 모든 제사장들이 왕의 이마에 나병이 생겼음을 보고 성전에서 왕을 급히 쫓아내었습니다. 이때부터 왕은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어 여호와의 전에 들어오지 못하고 별궁에서 살았으므로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면서 백성을 다스렸습니다.

이때에 이사야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이사야가 소명을 받을 무렵, 웃시야 왕의 통치로 인하여 물질적으로는 번영의 시대를 만났습니다.백성들이 경제적으로 잘 살게 되니, 영성이 땅에 떨어졌습니다.신앙적인 성숙과 물질적인 안정은 함께 가지 못합니다.성전에서 드리는 제사는 형식적인 제사에 불과하였습니다. 이사야는 외칩니다.“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이사야1:2-3)하나님 앞에 돌아오지 아니하는 백성들을 보면서 안타까워 외쳤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외칠 수밖에 없었던 선지자는 돌아오지 않는 백성들을 보면서 탄식하였습니다.선지자 이사야는 포도원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였습니다.하나님은 아주 기름진 산에 이스라엘과 유대라는 포도원을 두셨습니다.땅을 파고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습니다.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습니다.“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됨인고”하면서 탄식하였습니다.

이사야는 그 이름의 뜻이 “여호와의 구원”이라고 합니다.사1:1에 보면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라고 하셨습니다.그의 아버지는 아모스였습니다.소선지서에 나오는 아모스는 아니고 같은 이름의 다른 사람입니다. 이사야은 왕족이었다고 전해내려오고 있습니다. 아모스가 웃시야의 아버지 아마샤와 형제간이었다고 합니다.이사야는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친교를 맺고 있었습니다. 히스기야 왕과는 친밀한 친구와 같이 지냈으며, 유다 왕실에 대해 많은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이사야는 왕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가 유다를 다스릴 때에 선지자로 오랫동안 활동하였습니다.

이사야는 웃시야왕이 죽던 해에 성전에 나아갔습니다. 이사야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보았습니다.여호와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습니다.

1-3절입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이사야는 눈을 들었습니다.그런데 그의 앞에는 놀라운 광경에 펼쳐지고 있었습니다.그는 성전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의 눈에는 하나님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주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습니다.지금 초자연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으며, 영적인 세계가 현실로 들어온 것이 어떻게 보았느냐고 말하지 말고,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어야 마땅한 법입니다. 지금 선지자는 지상의 성전에 있는데, 천상의 성전으로 이끌려 올라갔습니다. 하나님은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계십니다.

고대의 왕들은 위엄이 있었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차고 있었습니다. 옷자락이 길어서 흘러내리고 있으며, 넓게 펼쳐져 있었습니다.왕의 위엄이 성전에 가득차고 있습니다.하나님의 장엄하신 모습을 인간의 언어로 구사하려니 여호와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으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이러한 표현은 이사야가 말하는 최상의 표현이었습니다.보좌 주위로 스랍들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모셔 서 있었습니다.그들은 각기 여섯 날개가 있었습니다.

스랍들은 여섯 날개 중에 위의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아래의 둘로는 자기 발을 가리었고, 가운데 둘로는 날면서, 그들은 큰 소리로 노래하며 화답하였습니다.“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라고 외쳤습니다.이들이 서로 창화합니다. 노래하고 화답하고 있습니다.스랍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교송하고 있었습니다.서로 노래하고 화답하였습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면 주로 하는 일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고 하나님께 예배합니다.사도요한이 기도하던 중에 환상을 보게 되었고, 그 환상과 함께 천국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보좌를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네 생물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크게 찬송하고 있었습니다.“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하였습니다.(계4:8)

하나님의 보좌 주변에는 24장로들의 자리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들의 머리에서 금관을 벗어 하나님의 보좌에 돌려드리면서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계4:11)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에는 많은 천상의 예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모든 찬송이 할렐루야요, 아멘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렇게 예배드리고 있지만, 우리의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 보좌 앞에서 드리는 감격스러운 예배임을 알아야 합니다.우리가 부르는 찬송은 우리가 기분이 좋아 부르는 단순한 노래가 아닙니다.하나님 앞에서 부르는 감격의 찬양입니다.우리의 드리는 기도가 우리의 넋두리가 아니요 독백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예수전도단에서 나온 복음성가 중에 오늘 이사야 6장의 사건을 그대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높은 보좌에 앉으셨는데,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도다. 천사들이 모여서 서로 창화하여 외치니,그 소리는 성전에 가득하도다. 거룩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시도다.”

“거룩하다”는 말씀은 “카도쉬”라고 합니다. 거룩하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신성을 말합니다.인간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신비를 거룩이라고 합니다.“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고 세 번을 반복한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최고로, 최상급으로 완전한 거룩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찬송

여기서 삼성송(三聖頌)이라고 하는 상투스(Santus)라는 말이 나왔습니다.초대교회는 상투스를 불러 삼위일체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초대교회로부터 ‘거룩’이라는 말을 세 번 반복한 것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증거한다고 해석했습니다.그러나 칼빈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최고로 강조한 것이라고 하면서 삼위일체 교의를 주장하는 성경으로 인용하는 것에 찬성하지 않았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위대하심을 경험하였습니다. 스랍들이 모여서서 서로 창화하여 외치는 음성을 들었습니다.화답하는 천사들의 찬송에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영광의 연기가 충만하였습니다.이때에 이사야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그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었습니다.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옵고 있었습니다. 이사야는 한없이 부끄럽고 부족하고 추한 입을 가지고 있는 자신의 모습,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고 위선과 외식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 지금 하나님의 성전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뵈옵고 있었습니다.

5절입니다.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이사야는 심히 부끄러웠습니다.부족한 모습, 추하고 더러운 모습에 어쩔 줄 모르고 하나님 앞에 탄식합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그는 부정한 입술을 가지고 있으면서, 스랍들과 함께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라고 하나님을 높이 찬양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주님을 찬양하는 합창단원이 되어 그들과 함께 찬송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유대인들이 입술이 부정한 백성이었습니다.입으로는 하나님을 말하면서도 사실은 자기를 자랑하였습니다.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말도 실은 자신을 찬양하는 말이었습니다. 사랑을 말하고, 자비를 말하는 것조차도 입술로만 봉사하는 립-서비스에 불과하였습니다.가장 거룩한 척하였는데, 위선으로 가득하였습니다. 남을 쉽게 정죄하고, 손가락질하였지만, 사실은 가장 비난받아야 할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습니다.다른 사람들에게는 화해하라, 손을 내밀라고 말해주었지만, 나는 미안하다는 말조차 꺼내기를 두려워하였습니다.참 옹졸한 사람이요, 부족한 사람입니다. 회개와 뉘우침이 있어야 회복될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통회 자복해야 합니다.한 주간 우리의 더럽고 누추한 행동들을 회개하지 않고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뵈올 수 없습니다.우리의 생각하는 것이 이기적이었고, 욕심 많고, 더럽고 추하였습니다.하나님이 기뻐하는 일들이 아니었습니다.그동안 하나님을 믿는다고 한 것도 사실은 이기적인 우리의 욕심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저는 지난 주간에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라는 책을 보았습니다.이 책은 옥성호라는 분이 쓰신 것인데, 아버지 옥한흠 목사님이 정말 칭찬해주신 책이었습니다.우리 한국교회는 ‘자기 성공’, ‘긍정적인 시각’, ‘자기 사랑’에 오염되었습니다.많은 사람들이 자기 사랑, 자기 연민에 빠져서 신앙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성공과 자기 자랑에 빠져 있습니다.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도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복을 받기 위함이었습니다.우리 한국교회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는 성화의 신앙은 찾아볼 수가 없고, 오로지 나와 내 가정이 잘 되기 위한 기도만이 신앙입니다.

영국의 설교가 로이드존스 목사님은 “성경을 읽을 때에 이기적인 의도를 가지고 성경을 읽지 말라”고 했습니다.우리는 로이드존스 목사님이 지적한 것처럼, 이기적인 자기 욕심으로 성경을 읽지 말아야 합니다.올해 잘 되게 하는 말씀을 찾아 줄을 치면서 읽으려고 합니다.헌신과 의를 위한 박해나순교 같은 말은 초대교회의 용어요, 목사들이나 쓰는 말로 여깁니다.

이사야는 한없이 부끄러운 모습으로 회개하고 있을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벌겋게 핀 숯을 손에 가지고 이사야에게 날아와서 그것을 입술에 대면서, 사죄의 확신, 용서의 선언의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고 하였습니다.불에 뜨거운 숯이 입술에 닿았습니다.우리 입술은 성령의 불로 태워지고 고침 받아야 합니다.

제단에서 벌겋게 타는 숯은 우리 주님의 구속의 한 단면을 보여주셨습니다.예수님이 흘리신 보혈은 우리의 더러운 죄를 태우는 불이 되셨습니다.뜨거운 성령의 불이 우리 입에 닿아야 합니다. 성령의 불이 지나가는 것으로는 안 됩니다. 우리 입에 닿아야 하고, 뜨거운 성령의 불을 체험해야 합니다.닿는다는 말은 터치를 말합니다.성령의 뜨거운 역사요, 만져주심이요, 부어주심입니다.여기 벌겋게 핀 숯은 신성한 불입니다.제단에서 가져왔습니다.제단에는 우리 주님의 희생의 보혈의 피가 흐리고 있습니다.제단에서 가져온 핀 숯은 우리 주님의 보혈을 상징합니다.주님의 뜨거운 대속의 사랑만이 우리를 구원하고 새롭게 하고 고칠 수 있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8절입니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도 주님의 음성을 듣고 응답해야 합니다.“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고 하실 때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나를 보내소서”라고 결단하실 때에, 진정한 예배자가 될 수 있습니다.이사야는 멸망당할 민족의 아픔을 보고 들었지만, 남은 자를 두시는 하나님, 멸망시키시는 중에라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전파하였습니다.

릭워렌 목사는 “우리는 무엇인가에 기여하기 위해서 지음받은 존재다”라는 말을 했습니다.자원이나 소비하기 위하여 지음 받은 것이 아닙니다.먹고 숨 쉬고 자리를 차지하라고 지어지지 않았습니다.우리는 모든 성도들은 다 사명을 받았습니다.사명이 없이 이 세상에서 보내지 않았습니다. 

13절입니다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오늘 우리 시대에도 택하신 백성,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사람들이 많습니다.우리 하나님은 남은 자를 두시고 있습니다.

“나를 보내소서”라는 말은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말하는 관용적인 표현입니다.“나를 보내소서”라는 말씀은 “나는 준비되어 있습니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와 같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예배하며, 통회자복하는 사람, 죄사함의 확신을 가진 사람, 성령충만한 사람을 부르시고 있습니다.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불러주시고 죄사함을 주시고 불러 복음의 사역자로 세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현존을 체험하셨습니까? 지금 이 시간 하나님이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있습니까?“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라고 응답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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