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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교만과 겸손

  • 이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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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과 겸손


 한 선비가 나룻배를 타고 건너는데 갑자기 폭풍이 불어 닥쳤다. 배가 심하게 흔들리자 겁에 질린 선비의 얼굴이 새하얗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본 사공이 무서우냐고 묻자 선비는 그만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선비는 사공을 향해 허세를 부리기 시작했다. "사공 총각! 당신 혹시 논어를 읽었소?" "아니오. 들어보지도 못했는데요." "참, 한심하군! 남자로 태어나 논어를 모른다면 1/4은 죽은 생명이요. 그렇다면 맹자는 읽었소?" "아니오 그것도 처음 듣는 소린걸요." "허허 큰일이군! 그렇다면 당신은 반(半)은 죽은 목숨이요. 어떻소? 혹시 시경은 알고 있소?" "미안합니다. 그것도 처음 들었습니다." "이거 정말 큰일이군! 그렇다면 당신은 3/4이나 죽은 생명이요." 폭풍은 계속 불었고 배는 더욱 흔들렸다. 잠시 후 이번에는 사공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선비님, 혹시 헤엄칠 줄 아십니까?" "아니오, 난 공부하느라 헤엄 같은 것은 배우지도 않았소?" "그렇다면 당신 목숨은 완전히 죽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이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사공은 강물 속으로 뛰어 들었다.
그 배에는 물이 새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이 아무리 가진 것이 많고 아는 것이 많다 할지라도 생명의 진리를 아직까지 만나지 못했다면 당신은 이미 죽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내가 저 사람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라고 하겠다. 이 사람은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인간 관계와 사회도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내가 으뜸이라고 생각하거나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 교만이 생활 속에 나타나면 아주 유치한 인간이 된다. 교만이 지식적인 면에 드러나면 퇴보하기 시작한다. 교만이 물질로 나타나면 고립되기 시작한다. 교만은 친구와 헤어지게하고 가족을 멀리하게 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자기를 떼어놓는다. 교만은 하나님께 대한 피조물의 반역이다.
옛날 지구에는 메가케로스란 학명이 붙은 거대한 사슴이 살았는데, 이 사슴이 멸종된 이유는 뿔이 지나치게 커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기 뿔의 무게에 눌려 번식하지 못하고 자연 도태된 것이다. 감투에 눌려 자멸한 메카케로스의 비극이었다. 교만은 '나 자신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므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게 만든다. 교만은 '내가 중심에 있다.'는 생각이므로 하나님을 외곽으로 밀어내게 된다. 교만은 '내가 첫째다' 하는 생각이므로 하나님을 자기 뒤에 두게 된다. 교만한 사람은 한 마디로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가 가슴에 달고 있는 손수건을 자랑하는 것과 같다.
저는 얼마전에 들은 아주 소중한 얘기 한 구절을 지금도 비망록 속에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지식은 반지름이다.'하는 말이다. 지식이 원의 반지름이라면 그 반지름 만한 원둘레가 우리의 지식이 닿지 않는 무지의 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1cm의 지식을 가진 사람은 그 지식의 분량만큼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다는 것이다.
만약 그의 지식이 1m 정도라면 그는 자신의 지식이 1cm 때보다 더욱더 큰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다는 것이다. 결국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야말로 자신이 가장 무지하다는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지식이나 교육은 자랑의 도구가 아니다. 지식이나 교육은 도리어 자신의 앎보다도 무지를 더욱 깨닫는 겸손의 도구가 되어야만 한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생각한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 장점을 먼저 생각한다. 십계명을 대할 때에도 교만한자는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 명하신 것을 지켰으므로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겸손한 사람은 하라고 명하신 것, 곧 "안식일을 지키라 네 이웃을 사랑하라 부모를 공경하라"를 충실히 지켰는가를 생각하면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한다. 겸손한 사람은 나보다 상대방을 먼저 생각한다.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은 언제나 자기 뒤로 밀어내고, 자기 위주다. 내가 있기 때문에 나라도 있고 이웃도 있다고 생각한다.
교만한 사람은 우선 당장 코 앞의 것, 보이는 것만 생각한다. 겸손한 사람은 얼굴을 들어 하늘을 볼 줄 아는 사람이다. 우유를 마시는 사람보다 배달하는 사람이 더 건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를 돌아보아 체질이 진토임을 시인하는 사람이다. 교만한 자는 빵을 먹을 때마다 더 고급스러운 맛있는 빵을 먹을 수 있는 위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겸손한 자는 빵을 대할 때마다 배고픈 자의 눈동자를 떠올리고 그러므로 늘 감사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교만한 자가 지도자가 되면 주어진 권력이 얼마만큼 휘둘러지나 얼마나 강한가를 꼭 시험하고 만다. 겸손한 자가 지도자가 되면 자신을 녹여서 한 시대의 어두운 길을 밝히는 촛불과 같은 인도자가 되고자 할 것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끝은 있다. 그러나 그 날이 숨겨져 있으므로 삶에 대해 만용하게도 하고 여유있게도 하는 게 아닐까? 우리가 인생의 끝에 서 있다고 생각하면 삶의 여정을 뒤돌아 볼 때 무엇을 가장 후회하게 될까요?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이 세상을 꼭 한 번 지나간다. 그러므로 만일 내가 베풀어야 할 친절이 있다면,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지금 당장 그렇게 하겠다. 그것을 게을리하거나 연기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 세상을 두 번 다시 지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삶의 길목에 잠시 머물러서 음미해 볼 만한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꼭 한 번 지나가는 인생길이라면 삶 앞에 좀더 겸허해져야 하지 않을까요?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잠13:10)
예화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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