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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벧엘로 올라가라 (창 3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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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미국 오클라호마 주 Broken Arrow 고등학교에서 웃지 못할 희극이 벌어졌다. 경찰이 마약사범 색출을 위해서 훈련된 개 두 마리를 데리고 학생들의 사물함을 조사했다. 개들은 15세의 한 여학생의 사물함 앞에 멈추어서 코를 킁킁거리며 짖어댔다. 경찰은 즉시 그 여학생을 불러서 자물쇠를 열게 했다. 여학생은 어리둥절했고 개들은 신이 났고 경찰은 의기양양한 기세였다. 그러나 문이 열리고 나온 것은 과자 세 개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날 개들이 아침밥을 먹지 못하고 학교로 파견되었다고 한다. 배가 고팠던 개들이 마약이 아닌 과자냄새를 맡고 마구 짖어댄 것이다. 기본적인 필요가 채워지지 않으니까 해야 할 일 대신에 엉뚱한 일을 한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필요가 채워져야만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간다. 기본적인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히 살아보아야 일은 잘 되지 않고 엉뚱한 일이 벌어지게 마련이다.

야곱은 하란에서 가나안땅으로 돌아와서 평안하게 살고 있었다. 염려했던 형 에서와의 관계도 하나님의 은혜로 잘 해결되었다. 그런데 생각지 않게 집안에 큰 문제가 생겼다. 외동딸 디나가 가나안족속 중 하나인 세겜족의 축제를 구경하러 나갔다가 세겜 추장의 아들에게 욕을 당한 것이다. 충격에 빠져 있는데 세겜 추장이 아들과 함께 와서 디나와 결혼하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러자 야곱과 아들들은 세겜 족이 할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허락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이에 세겜 추장이 돌아가서 부족의 모든 남자들이 다 할례를 받게 했고 그들이 통증으로 힘들어 하고 있는 사이에 야곱의 아들들이 갑자기 쳐들어가서 그들을 다 죽이고 피의 복수를 했다.

이것이 오늘 본문 바로 앞의 34장의 내용이다. 33장에 야곱이 에서와 만나서 극적으로 화해하는 감격스런 장면이 나오고 이어서 34장에 이 디나의 사건이 나온다. 그리고 오늘 본문 35장에서 하나님은 야곱에서 “벧엘로 올라가라”고 명하신다. 그리고 야곱이 순종해서 벧엘로 올라가서 하나님께 단을 쌓고 돌아오자 하나님이 비로소 그를 인정하신다. 그제야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불러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한 대로 가나안땅을 그와 그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해 하신다. 

무엇을 말하는가? 하나님은 야곱이 벧엘로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계셨다는 것이다. 야곱이 20년 전에 그렇게 하나님께 약속했기 때문이다. 28:20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21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야곱이 올라오지 않자 하나님이 먼저 그를 부르셨다.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신앙이 확립되지 않고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이 유보되었고 삶에는 큰 문제가 생겼다.

야곱의 삶에서 예배가 회복되자 모든 것이 회복되었듯이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께 예배하는 신앙이 회복되어야 모든 것이 회복되고 하나님의 약속도 성취된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고 우리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이 예배이기 때문이다.

오늘 헌신하는 예배위원회의 모든 일군들과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성도들이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바란다. “벧엘로 올라오라.” 하나님 집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단을 쌓는 예배신앙이 회복되어서 삶의 모든 것이 회복되고 복을 받으라.

예배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즉각적인 응답이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벧엘로 올라오라고 부르실 때에 즉시 일어나 올라갔다. 1절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예배는 하나님이 나를 부르실 때 그 부르심에 응답해서 하나님께 나가는 것이다. 예배란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인데 하나님이 부르시지 않으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고, 하나님의 부르심이 없이 나가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 뵙고 경배하고 예배할 자격이 없는 죄인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만나주시는 것은 큰 영광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를 만나주시겠다고 부르실 때에,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할 수 있도록 불러 주실 때에 그 부르심에 즉시 응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오늘 본문에서도 야곱은 하나님께서 벧엘로 올라오라고 부르시자 즉시 응답해서 올라갔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실 때는 내게 주실 은혜와 복이 있어서 부르시는 것이다. 요한복음 21장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던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그들을 부르셨다. 제자들이 배에서 내려서 와보니 예수님께서 그들을 위해 숯불을 피워놓으시고 떡과 생선을 구워서 그들을 배불리 먹여주셨다. 이처럼 예배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해서 나가는 것이요 하나님이 차려놓으신 은혜의 상에 앉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실 때 주저하지 말고 즉시 응답해서 나가서 예배하라.

예배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단을 쌓으라”는 것은 하나님께 경배하라는 것이다. 예배란 하나님께 경배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목적이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대상은 우리 자신도 아니고 어떤 사람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할 때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유일한 존재이신 하나님만 의식해야 한다. 예배의 모든 목적과 방향이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데 집중되어야 한다. 예배의 모든 순서가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는 것이 목적이다.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도 모든 순서를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하나님만 높이기를 힘써야 한다. 기도하는 사람도 모인 회중들에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회중들이 들으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임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사람을 의식하지 말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의식하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기도여야 한다. 

찬양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유일한 분이신 하나님께 드리는 것임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사람이 들으라고 사람에게 부르는 것이 아니다. 나 좋으라고 내 만족을 위해서 부르는 것도 아니다. 다른 노래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듣는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부른다. 또 자신이 즐겁기 위해서 부른다. 그러나 찬양은 오직 하나님께만 드리는 것이고 하나님을 높이고 경배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최선을 다해 잘 준비해서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최고의 찬양을 드리라. 

그러므로 회중기도를 할 때 “예배를 돕는 성가대”란 표현은 잘못된 것이다. 성가대의 찬양은 예배를 돕기 위한 것이 아니라 찬양 그 자체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독립적인 중요한 예배의 한 부분이다. 예배의 모든 순서가 다 하나님을 높이고 경배하는 순서이다. 예배의 분명한 목적을 알고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하는 예배를 드리라.

예배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드리는 것이다.
1절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3절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나님은 야곱에게 그가 어렵고 힘들 때 그를 도우신 하나님께 예배하라고 하셨다. 야곱도 자신의 환난의 때에 도우시고 함께 하신 하나님께 예배하러 가자고 했다. 예배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실제로 야곱은 20년 전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켜주시고 무사히 돌아오게 하시면 하나님께 단을 쌓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의 은혜로 무사히 돌아오고 풍성한 복을 받았는데도 야곱이 감사의 단을 쌓지 않고 있으니까, 하나님께 감사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으니까 하나님이 그를 부르신 것이다. 

이처럼 예배란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께 무엇을 얻기 위해서 예배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받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해서 하나님께 단을 쌓고 예배하는 것이다. 시편 50: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95:2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로 그를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100:4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고 중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라.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의 감사를 받으시고 계속해서 복과 은혜를 베푸신다.

예배는 준비해서 드려야 한다.
야곱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가족들에게 함께 가자고 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갈 준비를 하라고 요구했다. 2절 “야곱이 이에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예배는 준비해서 드리는 것이다. 준비된 예배가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참된 예배이다. 어른을 만나러 가거나 중요한 사람을 만나러 갈 때도 준비하고 가는데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러 오는데 아무 준비도 없이 오면 되겠는가? 윌리암 바클레이목사는 “그리스도인의 365일”이란 묵상집에서 “예배는 집에서 예배하러 오기 위해 화장할 때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정성껏 최선을 다해 준비해서 예배하라.
“이방신상을 버리고.” 야곱의 가족들 중에 아직도 하나님 아닌 다른 신을 섬기는 신앙이 남아 있었다. 야곱의 아내 라헬에 고향을 떠날 때 가족의 수호신인 드라빔을 몰래 감추어 가지고 나왔었다. 라헬을 따라온 하인들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고 야곱도 그것을 알고 있었으나 지금까지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께 예배하러 올라가려고 하니까 그것이 마음에 걸려서 이방신상들을 버리라고 했다.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만 섬기는 신앙이 분명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있거나 마음이 나뉘어 있으면 안 된다. 세상을 사랑하는 삶을 돌이켜야 한다. 하나님과 세상을 함께 섬기는 잘못된 신앙,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을 더 사랑하고 세상 것을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생각을 고쳐야 한다.

“자신을 정결케 하고.”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서 예배하기 위해 자신을 깨끗하게 하라고 했다. 이것은 회개와 돌이킴을 의미한다. 하나님께 예배하러 나올 때에 지난날의 죄와 허물을 하나님께 회개하고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 나의 삶에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것들이 있으면 다 버리고 정리해야 한다. 내 마음과 생각에 잘못된 생각, 욕심과 정욕, 좋지 않은 감정들을 버리고 예배해야 하나님이 받으신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 제사할 때 드리는 제물은 반드시 흠이 없고 깨끗한 것이어야 했다. 신명기 17:1 “무릇 흠이나 악질이 있는 우양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지 말찌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이 됨이니라.” 말라기 선지자 때는 이스라엘의 신앙이 식어져서 하나님께 병들고 흠이 있는 양과 소를 제물로 드렸다가 하나님께 책망을 받았다. 나 자신을 깨끗케 하고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하라.

“의복을 바꾸라.” 이것은 옷을 갈아입으라는 것이다. 귀한 사람을 만나러 나갈 때는 평소에 집에서 입던 옷이나 일할 때 입던 옷을 벗고 새 옷을 입거나 가장 좋은 옷을 입고 나간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예배하러 나올 때는 가장 깨끗한 옷을 입고 나와야 한다. 옷을 갈아입는 것 자체보다 그렇게 할 때 마음자세가 달라진다.

그러나 이 말씀의 본래 의미는 삶을 바꾸라는 뜻이다. 즉 옷을 갈아입듯이, 더러운 옷을 벗고 깨끗한 옷을 입듯이, 헌 옷을 벗고 새 옷을 입듯이 우리의 삶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에베소서 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변화된 모습으로, 달라진 모습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 예배하러 나아가라.

하나님께 예배할 때 준비된 예배를 드리라. 토요일이면 모든 일을 미리 다 마무리하고 주일을 기다리라. 토요일에는 일찍 잠을 자고 피곤하지 않게 하라. 일주일 동안의 삶을 돌아보고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준비된 마음으로 나오라.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 위해서, 예배를 통해 은혜 받게 해주시기를 미리 기도하라. 예배시간 전에 나와서 준비된 심령으로 예배를 기다리고 예배로 나아가라.

예배는 삶을 드리는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께 나와서 단을 쌓고 예배하는 한 번의 행위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예배를 드리고 나면 우리의 삶이 달라져야 한다. 우리의 삶 자체가 예배가 되어야 한다. 로마서 12:1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우리의 삶을 드리는 것이 진정한 예배라는 뜻이다.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족의 축제를 구경하러 갔다는 것은 야곱의 가족의 생활상을 보여준다. 세겜 족의 축제는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자기들의 신에게 제사를 드리고 그 앞에서 먹고 마시는 종교의식이었다. 야곱의 가족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이 온전하지 못했고 아직 라헬이 가지고 온 드라빔과 이방신상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이방족속의 축제를 보러 가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들의 삶이 아직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의 삶이 못되었기에 이런 비극이 일어났던 것이다.

영화배우 찰튼 헤스튼이 “십계”(The Ten Commandment)에서 모세 역을 연기했는데 영화를 촬영하고 난 뒤에 기자가 물었다. “모세와 같은 성인의 역할을 하면 배우 자신도 영적 생활에 변화가 옵니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시내산 흙을 밟고 올라갔던 사람이 어떻게 같은 사람으로 내려올 수 있겠습니까?” 한 사람의 연기자가 신앙의 위인의 배역을 연기하다가도 변화를 받는다면, 실제로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라면 어떻게 변화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하고 예배를 통해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났다면 삶이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다. 예배가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매일 매일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정에서 일할 때도 하나님께 예배하러 나가는 심정으로, 일터에 일하러 갈 때도 하나님께 예배하러 나가는 자세로 나가서 일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삶이 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는 것이 참된 예배이다.

야곱이 즉시 예배하러 올라가자 하나님께서 주위 족속들이 야곱의 가족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지켜주셨다. 5절 “그들이 발행하였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신고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하나님께서 예배하러 올라오라고 부르실 때에 즉시 올라가면 하나님이 내 삶을 지켜주신다.

그리고 야곱이 하나님께 예배하고 예배를 회복하고 돌아오니 하나님이 만나주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9절) 비로소 그의 새 이름을 불러주셨다. 이제야 새 사람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해주신 것이다.(10절) 그리고 그의 선조에게 약속하신 복을 주겠다고 하셨다.(11,12절) 예배를 잘 드리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회복된다.

예배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의미 있는 내용이 있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절기를 지키는 것은 의미 없는 시간과 계절들을 의미 있는 시간으로 바꾸어 주는 것이라고 했다. 일주일을 살다가 주일에 나와서 예배하면서 우리의 삶이 한 번 매듭을 짓고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게 된다. 매주 같은 예배를 드리지만 교회력에 따른 절기를 지키면서 우리의 시간들이 의미 있게 된다는 것이다. 대강절, 성탄절, 사순절, 부활절, 성령강림절, 맥추감사절, 추수감사절 등을 지키면서 평범한 우리의 일상생활이 하나님 앞에서 의미 있는 시간들이 된다는 것이다.

예배는 우리의 신앙생활의 가장 기본이 된다. 야곱의 생활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신앙이 회복되기 전에는 삶에 생각지 않은 문제들이 생겨났다. 가정생활에서도 자녀들에게 문제가 생겼다. 이웃 족속들과도 좋지 않은 관계가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서원을 지키고 예배생활이 회복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고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이 회복되고 성취되기 시작했다.

예배신앙을 회복하자. 예배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의 첫 번째에 예배를 두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 미리 준비된 예배를 드려서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은혜와 복이 회복되는 믿음의 삶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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