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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태]성경을 바로 이해하기 위한 서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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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바로 이해하기 위한 서언◆


● 하나님에 대하여


우리 기독자들이 성경을 자세하게 바로 깨닫기 위해서는 먼저 성도의 기본적인 신앙사상적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주 여호와 하나님은 창조의 주시요, 영원 자존자요, 독존자요, 주권자요, 만능의 능력자요, 영광의 충만자요, 섭리자요, 보존자요, 역사의 진행자요, 상벌의 보응자요, 무형적 인격자이시요, 인간의 원형이시요, 어디든지 계시는 분이시요, 비 공유적 속성과 공유적 속성을 가지신 분이시요, 우리의 구원을 영원 전서부터 계획 설계하신 분이시요, 그 일을 완성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이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서 무엇이든지 잡고 쓰시는데 구원사역에 호응 협조 동참을 하되 적극적으로 하면 하느니 만큼 그 자에게는 영원히 존영이 되게 하시고, 구원사역에 비 협조하고 대적하느니 만큼 그에게 앙화가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대국적인 구원사역에 그 어떤 존재가 가로막는다고 해도 중단이나 변경됨이 없이 예정 계획 설계대로 그대로 진행되고 마쳐집니다. 


● 성경에 대하여


성경 66권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살아서 역사하시는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인격과 속성에서 나온, 하나님의 의중에서 나온 하나님의 의사요, 하나님의 권고 권면이요, 하나님의 명령이십니다.  성령의 기록영감의 감화를 입은 선지사도들과 신실한 하나님의 종들이 쓰신 것인데 성경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창세 이후로 인간 세상에서 되어진 일들이고, 또 진행이 되고 있고, 또 앞으로 이루어질 일들입니다. 


개인적인 생활과 경험도 있고, 오각과 오감성에서 나오는 희로애락의 느낌과 표현도 있고, 가족적인 생활, 부모공경, 이웃사랑, 이사가는 것, 가족적인 비극, 행복, 사회적 국가적 희로애락의 사건, 전쟁의 포로, 환경적으로 시대적으로 지도자들의 교체, 왕들의 교체, 신령계의 영물들, 천군 천사들의 움직임과 인간세계, 자연 생태계의 움직임과 활동, 세상이 끝이 나고 그 이후에 될 일, 이런 것을 왜 하는지 하나님 당신이 우리에게 알리시고자 하신 뜻이 다 나타나 있습니다.  그 뜻은 전부는 다 인간 자기와 관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 자기에게 주시는 특별계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 자기와 관계된 그 뜻이 무엇이냐?  디모데 후서 3장 14절부터 17절을 보면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성경은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라고 했듯이 우리 인간 자기의 온전입니다.  즉 닮는 것.  마태복음 5장 48에 ‘내가 온전한즉 너희도 온전하라’ 하는 말씀 역시 하나님을 닮는 것입니다. 


또 에베소서 4장 13절에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15절에 ‘그에게까지 자라라’ 했는데 이 온전성은 일반 도덕적 기준적 온전이 아닌 성경말씀 진리이치에서 나온 하나님의 지혜 지식적 온전, 하나님의 도덕적 온전, 하나님의 능력적 온전으로 입혀지고 닮아지고 성장되고 자람을 말함입니다.  이것은 신령천국에서 누릴 나의 영인의 실력이 되고, 나의 영적 기능과 지능 면이 되고, 영원한 나의 영광과 존영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궁극적 구원입니다.


세상물질로 된 물질성의 것은 다 불에 타서 없어져도 세상에서 나그네로 사는 동안에 진리의 본질성으로 만들어진 것만큼은 나의 능력성이요, 나의 부요성이요, 나의 소유성이요, 나의 희락이요, 나의 쾌락이요, 기쁨이요 즐거움입니다.  이것 전부는 불타지 않고, 썩지 않고, 요동치 않고, 진동치 않고, 변질되지 않고, 영원히 변색되지 않는 것입니다.  신령천국도 그런 세계이고, 진리로 만들어진 실력도 그렇고, 주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은혜로 주시려고 하는 것도 질적으로 그런 것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세상에서 물질성적인 사상과 정신을 목적적으로 불어넣거나 불타질 것을 갖고 와서 자랑하면서 ‘성경은 이런 것을 구하게 한다, 그러니 이뤄라’ 하거나 가지라고 가르친다면 그것은 절대로 성경 하나님 말씀의 뜻은 아닙니다.  또 그 목적을 가지고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큰 업적을 이루었어도 그것은 기독교의 본질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아닌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도, 진리의 역사도, 복음의 역사도, 구원역사도, 생명역사도 아닌 것입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게 됩니다.  육신의 저주는, 앙화는 시간문제고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일이지만 현재의 저주는 이룰 구원이 없다는 것입니다. 


● 성경의 특수성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성경이 일반 역사책이나 도덕책이나 철학책이나 다른 일반책은 이미 일어났던 사건들 중에 흩어져 있던 것 중에 인간들이 교훈될 만한 것을 골라서 기록해 놓은 책들이지만 그러나 성경책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알리시기 위해 사건을 미리 만들어 일으켜서, 그리고 또 그것을 사람들로 성령의 기록영감의 감화를 입혀서 기록케 해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에 특별계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건 자체를 알려주기 위함이 목적이 아니고 그 사건 속에 구원도리가 들어 있습니다.  이방종교인들의 경전은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특수요, 예수 그리스도는 특수요, 기독교 신앙은 특수요, 사람 만들어짐이 특수요, 일반 보편이 아닙니다.  하나의 종교가 아닙니다.  이처럼 특수한 기독교를 만일 일반종교와 똑 같은 보편으로 만들어 놓는다면 그것은 다른 복음이니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인격의 온전, 성품의 온전의 본질로 질적으로 영인 성장이 잘 되라고, 특수한 자로 자라라고 예수 믿는 그 즉시로 천국으로 데려가지 않고 하나님 말씀도 주셨고, 부요와 가난도 주셨고, 크고 작은 사건도 주셨고, 건강도 병도 주셨고, 행․불행도 주셨고, 심지어 사단 마귀까지 동원시켰습니다.  믿음이 있던 없던, 잘 했던 못 했던 사단 마귀의 시험과 시련과 연단과 징계가 있는 것은 모두 우리 인간 자기를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선이시라!  선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 마귀에 대하여


마귀에 대해 말이 나왔으니 마귀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영물인 마귀를 왜 동원시키느냐?  계시록에 보면 하나님께서 마귀를 무저갱에 잡아넣었다, 내어놓았다 하시는 것을 보니 인간들에게 고통을 주지 말도록 하나님께서 만능의 능력으로 없이 할 수도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은 영과 육의 결합체인데 육은 물질인고로 육의 실력은 물질계에서 만들어지고, 영은 신령세계의 것인고로 신령세계의 실력을 만들어 주려고 영물인 마귀도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들이 갈 곳은 부활체로 신령체로 사는 세계이기 때문에 그 곳을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영적인 기능과 지능 면에서 민감하고 민첩하고 민활하게 만들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사단 마귀가 활동을 하도록 허용을 해 두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단 마귀의 활동의 범위가 엄청나게 넓고 높고 깊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신 것은 그 마귀 이상으로 우리를 민감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여러 가지 측면으로 사람에 따라서, 시간에 따라서, 환경에 따라서, 장소에 따라서, 연령에 따라서, 계절에 따라서, 시대에 따라서 생활 전반에 다 들어 있습니다. 


사단 마귀는 영물이요 천사 중 하나인데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람을 잡고 역사를 하듯이 하나님의 허락 하에 사단 마귀도 악한 사람을 잡고 역사를 합니다.  기독교인이라도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옛 사람이 주격이 되어서 일반 세상사람들과 똑 같은 소원 목적을 가지고 산다면 사단 마귀가 얼마든지 잡고 이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기꾼이 사기를 치려면 아주 친한 것처럼 제일 잘 해 주고 자기 속이라도 빼주는 것처럼 하다가 모두 다 빼앗아 가듯이!


사단 마귀가 때로는 억압과 강압을 쓰다가, 때로는 충돌과 마찰과 대립적으로 오다가, 또 때로는 갑자기 호응적으로 나타나기도 하면서 유혹도 미혹도 하기도 하고, 또 예수를 잘 믿으라고 해 놓고는 가는 사람 뒤에서 왈칵 밀어버리기도 하고, 발을 살짝 걸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면 넘어지고 다치게 됩니다.  웅덩이를 파서 그 위를 살짝 가려 놓아 함정에 빠지게도 합니다. 


또 더 고차원적인 방법은 양의 가죽을 쓰고 성경을 들고 교회직분의 이름표를 달고 자기의 이력과 업적을 자랑을 하고, 종교적인 명예 영광을 가지고 세상이 알아주는 종교적 제도를 합리화 시켜서 하나님 앞에 옳은 것처럼 나타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직분을 가졌다고 해서 천국에 들어가서도 그 직분을 가지고 행세하느냐? 


더 고차원적인 것은 성경을 들고 사명감을 갖고 희생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이고, 또 때로는 성령인 것처럼 한다는 것입니다.  진리이치를 모르고 영관, 교회관에 눈이 어두우면 모두 다 속는 것입니다. 


계시록에 나타난 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에 특히 버가모 교회 안에 충성된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했고, 또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부르고 종교의식이 전통이고 거창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반대하고 자기들의 구원을 죽인 바리새파 지도자들처럼 기독교 교리는 얼마든지 입으로 외우고 있고, 성경 문자는 시인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사상을, 정신을, 우리의 영을 위한 것을 부정하고, 죽이고 기독교를 이방종교와 똑같은 하나의 종교적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세상 종교적 영웅성으로 나가는 교회가 부지기수입니다.


‘나는 너희들을 모른다’고 하신 것은 문자적 교리적 이단들보고 하신 말씀은 아닙니다.  문자적 성경적으로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더 잘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계시사상이 없고 영적인 이치가 없습니다.  그들을 이단이라고 하는 오늘날 교회는 어떤가?  진리이치도 없고 영적 계시사상도 없고 신비주의 아니면 현세주의, 세상주의로 나가고 있고, 입으로만 예수를 믿었지 사람의 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 그대로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이스라엘 위에 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교회 위에 떨어집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당신의 자식들이 잘못을 하면 두들겨 패지 지옥 갈 자식들을 뭘 고치라고 두들겨 패겠습니까? 


사단 마귀는 예수 믿는 성도를 지옥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영인 실력성장을 죽이고, 자기가 지옥 불에 떨어지기 전에 성도를 실컨 이용해 먹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예수를 잘 믿던 못 믿던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이 입혀졌기 때문에 지옥엔 가려고 해도 못 갑니다.  사단 마귀가 지옥으로 끌고 갈 능력도 없고 주권도 없습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피로 사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단 마귀에게 이용을 당해 죄를 지었으면, 세상을 소원하고 살았으면, 남 보기에는 예수를 잘 믿었어도 세상으로 향한 믿음을 가졌으면 세상에서 지옥 맛을 톡톡하게 보게 됩니다.  사실 이용당한 것도 원통하고, 얻어맞는 것도 원통하지만 그보다도 더 원통한 것은 영인 성장 면에 영원히 바보 둔팅이가 된 것입니다. 


우리 기독자들은 일반 사회적 도덕적 개념에서 악한 것을 찾는다거나, 또 그 기준에서 선을 찾는다거나, 또 그 기준에서 성경을 보고 가르친다거나 하게 되면 사단 마귀의 깊은 속셈을 모르는 사람이요, 영의 눈이 어두워 우리가 이루고 갈 구원 곧, 영인 성장과 성화구원 면에서 완전히 쪼그라지게 만들어 놓고 가는 불쌍하고 처절한 사람이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죄악의 삶입니다. 


인간 제 보기에, 자기 생각에, 자기 판단에 먹음직 보암직 탐스럽게 보여서 먹고 영은 즉시 죽었고, 이성과 몸은 점차 죽어가고 있듯이 세상 소원 목적의 그 가르침을 먹으면 영인 성장 면에서는 즉시 죽는 것입니다.  믿음성장, 신앙성장은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진리와 생명의 말씀이 아니기 때문에 영인은 그 교훈을 먹는 것입니다.  그 교훈은 옛 사람이 좋아하고 세상이 좋아하는고로 자기 속에 세상만 심판을 향해서 커지는 것입니다.


교회의 인도자는 진리이치에 밝아야 하고, 영의 눈이 밝아야 하고, 소원 목적의 방향성과 감화성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사죄 칭의 새 생명으로 영이 중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개인마다의 성도에게는 영이 중생된 새 사람이 있고 옛 사람이 있는데 이 새 사람 주격의 신앙사상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깨닫고 싶은 마음,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픈 마음, 주님의 인격을 닮고 싶은 욕심이 대단해지고, 주어진 현실을 불평불만 없이 감사함으로 잘 깨닫고 이겨나갑니다.  또 한편 옛 사람이 주격이 된 신앙사상은 세상을 은근히 쳐다보고 부러워하고 소원을 하고 남만보고 원망 불평을 하고 먹고 마실 것을 구하고 ‘어떻게 하면 덩어리를, 부피를 크게 만드나’ 늘 그 욕심만 차립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떤 면으로는 활동적 희생이 불붙은 것처럼 굉장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예수 믿는 우리가 진리이치를 붙잡았을 때에는 새 사람이 주격이 되고, 세상을 붙잡았을 때에는 옛 사람이 주격이 됩니다.  새 사람이 주격인지 옛 사람이 주격인지, 자기가 어느 주격으로 신앙하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모르면 666의 주범노릇을 하고 갑니다.


46년간 성전을 짓는 헤롯을 보고 성령에 불붙었다고 했겠지!  업적은 종교적인 업적이요, 종별은 악적이 아니고 선적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지었으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부숴 버린 것입니다.  영의 눈으로 보면 정치목적으로 지은 것이고, 하나님의 의사와 반대적으로 팽팽한 대적노릇을 한 것이고, 사망성공만 이루어 놓은 것이고, 심판성만 장만한 것입니다.  이룰 구원, 성화구원 면에서는 당시의 종교인들, 헤롯의 지도를 받은 그들 완전히 망한 것입니다. 


종교활동의 이력과 업적 명예 영광과, 주님 앞에 인격적 온전으로 닮은 것하고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나는 너희들을 모른다’고 하는 선언을 듣게 됩니다.  안 믿어지면 시험적으로 그렇게 살아봐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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