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후쿠시마에서 들려온 영적 음성 (눅 13:1-5)

첨부 1


후쿠시마에서 들려온 영적 음성 (눅 13:1-5)


1시간 만에 3만 명의 사람이 죽었다니 일본이 대재앙을 만난 것입니다.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고 지금 방사선 누출이 더 큰 문제를 가져올 줄 모르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1986년 4월 26일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에 이어 이번 후쿠시마에서 두 번째 지구상의 원전 사고가 크게 일어난 것입니다. 조그맣게는 어느 나라나 부분적으로 있어왔습니다. 이번 일로 저는 아주 크게 깨달은 것이 하나 있는데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일곱 재앙에 대해서 믿음은 가지고 있었지만 체감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체감하게 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말한 지구의 멸망은 간단하다. 1시간에 3만 명이 죽었다니 간단하게 지구가 끝나는구나.’ 이런 체감을 느꼈습니다. 지금 언론의 보도대로 믿는다면 일본 국토의 3분의 1 정도는 방사능 영향권에 있습니다. 제가 일본과 많은 관계가 있기 때문에 전화 통화를 계속합니다. 세계에서 제일 큰 도시가 뉴욕이고 두 번째가 도쿄입니다. 

가장 도시 문화가 잘 되어 있고 질서가 정연하고 정직한 사람들이 사는데 제일 큰 문제가 뭐냐? 물이 없다고 합니다. 수돗물은 지금 누구도 마시기 싫어하는데 물을 구하기가 힘들어서 먹기 싫은 물을 억지로 먹고 있다고 합니다. 어린아이들 우유 구하기가 경쟁이라고 합니다. 이런 소식이 일본에서 계속 전해오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 각국은 일본으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먹을거리를 수입 중단시키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사실 일본의 먹을거리 제품은 세계에서 제일 안전하다는 신뢰를 받아왔고 실제로 그래왔습니다. 

브라질로 이민 간 일본인들은 농업 이민을 가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농사지은 지 5년도 안되어서 일본인들이 생산하는 식료품들이 상파울로 채소시장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길러내는 먹을거리는 안심하고 먹어도 좋다는 소문이 한 나라에 퍼져서 일본인들의 농업을 부흥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실제로 또 그랬습니다. 

지난 주간에도 일본의 후쿠시마 방사선 유출량이 체르노빌 수준을 넘었다고 한국의 5대 신문 톱기사로 뉴스화 했습니다. 세슘과 요오드라는 과학 전문 용어의 수치를 조사해서 발표한 것입니다. 문제는 뭐냐 하면 폐연료봉 저장수조에 있는 핵연료의 양이 체르노빌보다 10배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방출될 때 그 파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이번에 우리 한반도에 임한 하나님의 은혜요 또 자연적인 혜택은 바람이 편서풍이 불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중국의 원전이 사고를 낼 경우 한반도는 피할 수 없는 재앙을 입게 됩니다. 왜냐하면 중국의 원전들은 다 서해바다 근처에 있기 때문입니다. 체르노빌 때 바람이 백러시아 쪽으로 불었습니다. 그래서 백러시아 사람들이 결정적 피해를 입었는데 다른 나라 사람들 중 제일 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바로 임산부들이었습니다. 그때 그 공기를 마시고 임신된 아이들이 1년 후에 다 피복 환자로 출산이 되었습니다. 이 아이들은 지금도 그 나라에서 도저히 고칠 수가 없어서 해마다 미국이 데려다가 샌디에이고 병원에서 치료를 시켜주고 있는 실정입니다. 

저는 오래전에 우크라이나 갔다 오는 길에 키예프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그 아이들 50명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왔던 일이 있습니다. 일본도 앞으로 최소한 1년이 지나야 임산부들의 출산 아기들에게서 그 반응이 파악되어질 것입니다. 지금 세계는 원전 에너지 경쟁입니다. 얼마 전에 이명박 대통령께서 아랍 에미리트 원전 공사 한국의 입찰권을 성공시키고 돌아오셨습니다. 우리 대한민국도 21개의 원전 혜택 때문에 이렇게 편리하게 에너지를 누리고 사는 것입니다. 

현재 전체 발전량의 31.4퍼센트이며 지금 공사하고 있는 이것들이 다 완성이 되면 대한민국에서 쓰는 에너지의 50퍼센트를 감당하게 되고 그것이 국민혜택을 보장하는 공해 없는 에너지라서 각 나라들이 매력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후쿠시마 사고를 통해서 온 세계는 지금 생각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아예 원전 폐쇄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만든 문명의 혜택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유익만큼 손해가 옵니다. 피할 수 없습니다. 

이번에 우리는 원전이라는 것이 도대체 뭐하는 것인지 알지도 못하다가 전문지식까지 생겼습니다. 우리 한반도는 지진이 없는 나라이니까 안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원전은 지진이 아니고도 다른 피해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체르노빌 원전사고는 지진이 아닙니다. 자체 고장 폭발입니다. 그래서 “30년이 지난 우리나라 고리원전도 위험하니까 폐쇄하자.” 정부가 안전지시를 내린 것입니다. 어느 나라나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로 절대 그런 일이 없기 바라지만 최악의 시나리오가 우리 한반도에 있습니다. 북한과 전쟁이 일어날 경우 21발의 미사일로 원전 폭격을 한다면 한반도는 하루 만에 끝납니다. 그렇게 되면 북한도 자유롭지 못해서 다 똑같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못할 것이다.” 이렇게 믿고는 있지만 “너 죽고 나 죽자.” 전쟁은 언제나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게 힘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과학 재앙 때문에 인간이 위험해지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나는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나 안 믿으나 똑같이 하는 신앙고백에 하나에 희망을 겁니다.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이게 아마 그래서 애국가에 들어갔나 보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라크 전쟁 때 미국 언론들이 “만약 후세인이 핵을 소유했다면 그때 터뜨렸을 것이다.” 자기가 죽는데 안 터뜨리겠습니까? 없었기 때문에 못한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리비아 사태에 대해서 북한이 발표한 것이 있습니다. “바보같이 카다피가 미국의 말을 듣고 핵을 포기했기 때문에 저렇게 당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끔 농담같이 쓰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세계 운명은 강대국 대통령이 부부 싸움하는 말이 대단히 위험합니다. 폴 틸리히 목사가 현대 사회를 가리켜 “불확실의 시대이다. 점점 행복하게 사는 세상이 될는지 아니면 재앙적 세상이 될는지 미래 불안이다.” 후쿠시마에서 날아간 그 방사낙진이 캄차카 반도를 거쳐 시베리아를 갔다가 우리나라에 왔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디가 안전합니까? 안전하지 않습니다. 지금 백두산 천지에 지열 상승이 계속되니까 “분화 징후이다. 터질 것이다. 뚜렷해졌으니까 남한과 공동연구하자.” 북한 정부가 자존심을 접고 제안을 했더니 남한 정부도 천안함 사건, 연평도 사건으로 말도 하기 싫은 상대이지만 “이것은 할 수 밖에 없다.” 자존심을 굽히고 지금 응하고 있습니다. 백두산은 그 땅 속이 불덩어리니까 거기에 응해서 물이 펄펄 끓어오르고 있습니다. 흐르는 물에 계란을 삶아서 팔고 있습니다. 가신 분들은 모두 사먹고 오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지역이 점점 더 뜨거워지니까 “이것은 징후이다. 

얼마 안 있으면 이 용암이 폭발할 것이다.” 하고 이런 연구를 하자는 것입니다. 백두산이 폭발할 때 중국 일부와 한반도는 이 천지 못에 있는 20억 톤의 쓰나미가 덮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24만 명의 이재민과 3만 명의 실종 사망자를 낳은 후쿠시마보다 더 큰 규모의 재앙적 사고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거 어떡하나?”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21세기는 천재지변의 세계같이 느껴집니다. 11년 밖에 안 되었는데 해마다 세계적 재앙이 터지고 있습니다. 이제 인류는 시시한 문제로 서로 싸울 거리를 찾을 때가 아닙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를 마음을 열어놓고 피차 고민해야 되는 시대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이데올로기 장벽도 다 넘어야 되고 사실상 인종의 장벽도, 종교의 장벽도, 민족주의, 패권주의 다 없애버리고 어떻게 지구인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같이 연구해야 되고 같이 고민해야 되는 시대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있다면 지구인의 평화와 행복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인간 구원을 위해서 세상에 오셔서 인권이 없어진 사람에게 인권 회복 시켜주시는 사역을 하셨고 질병의 고통자들에게 건강 회복을 시켜주는 사역을 하셨고 영혼이 메마른 자들에게 영생을 주시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을 구원하는 사역의 각 분야에 예수 그리스도가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 인간 고난의 문제는 세 가지로 구분할 수가 있고 마지막에 더 큰 고난 하나가 있습니다. 첫째로 인간의 고난은 죗값으로 온다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부터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죄로 인간은 죄 아래로 떨어져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받을 것이다.” 남자에게 “너는 먹고 살기 위해서 가시덤불 엉겅퀴를 만나게 될 것이다.” 인간의 고난의 시작이 인간 죄로 인해서 왔다는 것을 성경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애매한 고난이 있습니다. 나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큰 피해가 올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창세기 요셉 같은 경우를 보세요. 아무 죄가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죄 없이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 다음에는 천재지변적 고난이 있습니다. 이 부분은 의로운 사람이나 죄 많은 사람이나 다 똑같이 당하는 것입니다.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후쿠시마가 이번에 그렇게 당한 거 아닙니까? 오늘 이 성경 말씀을 보세요. 갈릴리에도 옛날 천재지변적 사고가 있어서 죽은 사람이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질문자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한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죄 값으로 죽은 것이지요?” 궁금해서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니다. 너희도 회개치 아니하면 다 망할 것이다.” 경고적 음성으로 답변을 하셨습니다. “거기 망대가 무너져서 치어죽은 18명의 죗값으로 그렇게 된 줄 아느냐? 의롭다고 자랑하는 예루살렘 주민보다도 더 죄가 많아서 그런 재앙을 만날 줄 아느냐? 아니다. 너희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이 천재지변적 인간 고난을 경종의 의미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 사회에서 이런 일을 수없이 많이 만났는데 이런 고난은 누구에게나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이러한 고난을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기회가 있는 영적 음성으로 들으라는 것입니다. 만약 오늘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이 이 시대에 말씀을 하신다면 “후쿠시마 사람들이 너희보다 죄가 많아서 저렇게 된 줄 아느냐? 너희도 그렇게 될 수 있다. 오히려 후쿠시마 사람들이 너희보다도 더 정직하고 깨끗하게 살았다고 그렇게 나는 생각한다. 너희도 회개치 아니하면 이렇게 망하리라.” 

지금 온 세계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서 적어도 두 가지만은 넉넉하게 깨달았습니다. 하나는 인간 능력의 한계성입니다. 그렇게 과학적이고 그렇게 정직하고 훌륭하게 잘했지만 영화로도 만들 수 없는 현실이 한 시간 만에 3만 명을 죽이고 쓸어 닥쳐 버렸습니다. 또 하나는 인간의 기술로 인한 행복의 불완전성입니다. 과학 발달이 마치 하나님을 대신하는 듯 교만하게 말하던 인간들의 자만심이 이번 사건에서 여지없이 무너진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장난감 같던 배 한척을 만들어놓고 이 배는 하나님도 침몰시킬 수 없다고 견고성을 자랑하고며 떠난 타이타닉이 이틀 만에 인류 역사에 가장 큰 해상사고를 내고 1542명을 바다 속에 가라앉히고 말았지 않습니까? 인간의 교만에 대해서 시편 기자가 뭐라고 합니까?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시며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인류가 지혜스럽다면 후쿠시마에서 들려오는 이 재앙의 소리를 하늘이 주는 영적 음성으로 들어야 합니다. 

어느 나라도 이런 재앙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오늘은 후쿠시마 사람들이 당했지만 내일은 또 어떤 나라 사람들이 당할지 누가 예측합니까? 이제 몰락해가는 서구 문명은 초심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여서 국민 전체가 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주일날이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예배에 전념하던 그 옛날 서구 문명을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주일날이면 음악회다, 뭐다해서 다 빠져나가고 교회는 텅텅 비어있는 서구의 교회가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온갖 잡신의 우상 국가들은 헛된 일을 버리고 영혼의 진리를 찾아 나서야 되는 영적 음성이 후쿠시마에서 퍼진 것입니다. 백두산 폭발이 두렵다면 동양의 예루살렘 소리를 듣던 평양의 영적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불태워버린 2300개 교회를 다시 재건하고 주일 예배 회복이 속히 그 땅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아니라. 너희도 다 망할 수 있느니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 다음에 의로운 고난이 있습니다. 이 고난은 얼마든지 내가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피하지 않고 자원해서 당하는 고난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바로 그런 종류의 고난입니다. 순교자들은 순교 안 당할 수 있습니다. 말 한 마디만 잘하면 됩니다. “나 예수 믿는 거 그만두겠습니다.” “진작 그럴 것이지!” 그 자리에서 자유스러워집니다. 그런데 절대 피하지 아니하고 순교의 고난의 자리를 일부러 자원해서 갑니다. 이게 의로운 고난이라는 것입니다. 동부권 나라에 갔을 때 예수 믿는 사람 잡아다 고문하던 기구들만 모아놓은 박물관이 있었습니다. 

거기 마음 약한 여자들은 그것에 대한 설명 듣고 나오면 며칠 동안 밥을 못 먹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으며 이 잔인함을 그때 크리스천들이 어떻게 이겼나?’ 한 가지만 소개를 하면 사람을 의자에 앉힙니다. 다리를 묶어놓습니다. 팔을 또 묶어놓습니다. 머리를 고정시켜 버립니다. 꼼짝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머리 뒤통수에 나사못을 갖다 대고 돌리면 그 나사못이 눈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안 될 수 있습니다. “나 예수 안 믿겠습니다.” 하면 “진작 그럴 것이지. 나가라.” 그런데 그것을 피하지 아니하고 자원해서 “그렇게 하십시오.” 앉아서 그것을 이겨내는 것입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니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크니라.” 핍박은 예수님이 있을 거라고 미리 예언하셨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죄로 인한 고난 이외에 어떤 고난도 부끄러움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후쿠시마 천재지변은 누구의 죄로 인한 것도, 잘못도 아닙니다. 다만 이런 인간 재앙 속에 하나님의 영적인 경고 음성이 들어 있음을 오늘 예수님이 발표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생각해야 합니다. 이 세상은 일부의 재앙이 전부의 재앙을 막는 견고성이 있습니다. 또, 소수의 희생을 통한 다수의 구원이 들어있는 신학적 원리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당할 일을 저 사람들이 당했다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오래전부터 우리 인간들은 행복한 삶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과 같은 문명과 문화의 혜택을 받고 누리며 살아간다고 보겠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뭐냐? 영적 존재인 인간을 향하여 매우 자신감 있게 성취하려고 했던 세 가지 가장 큰 제목이 실패했습니다. 

첫째가 뭐냐? 합리주의 철학이 인간의 마음 속 깊이에서 요구하는 만족을 해결하는데 실패했습니다. 합리주의와 신앙세계는 차이가 나타납니다. 합리주의에서는 합리성이 없다고 초월적 능력을 거부합니다. 성경에 보십시오. 죽은 사람이 살아났습니다. 합리주의 철학에서는 안 믿습니다. 병든 사람이 치료과정이 없이 그 자리에서 건강을 금방 회복했다든지 사람이 물 위를 걸어갔다든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5천명이 먹고 남았다든지 비합리적인 것을 믿지 않습니다. 합리주의에서 볼 때 성경은 동화집입니다. 하나님은 허구적 존재가 됩니다. 

그런데 이 합리주의가 인간의 희망이라고 이 합리주의 철학만이 인간의 내면의 깊은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갈등만 주었습니다. 아무 해답을 주지 못하고 합리주의에 응할수록 인간의 내면 갈등은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자신의 앞에 다가오는 십자가 사건을 예고하였더니 제자들의 마음이 불안하여졌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떡합니까?” 그 불안해진 마음에 예수님이 선물을 하나 주십니다.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겠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할 것이다.” 절대 세상이 줄 수 없는, 주님으로부터만 얻을 수 있는 영적 능력입니다. 

합리주의 철학에서 절대 배격하는 영적인 힘만이, 초월적 능력만이 인간의 내면적 만족을 시킬 것입니다. 두 번째는 현대 정치 철학은 인간들의 소망인 유토피아 건설에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과학이 더 발전하지 아니해도 될 만큼 발전했습니다. 몇 십 년 전만해도 007 영화 장면에서 제임스본드가 가지고 있던 그 과학적인 신기한 기구는 이제 우리나라도 어린아이들 장난감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모두가 다 제임스본드입니다. 

그러면 유토피아 세상을 소유했는가? 지금은 과학 때문에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사실 농경 문화권에서 이런 불안은 없었습니다. 핵까지만 안 만들었어도 인간은 편안하게 살 수 있었을 겁니다. 지금은 핵불안 때문에 불안전성에 노출되었습니다. 이번에 후쿠시마가 그것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담임선생님에게 꾸중을 들은 고등학생 한명이 디도스 공격을 해버렸더니 사회적 혼란이 와서 얼마 전에 온통 TV 뉴스 방송에 언론 보도를 했습니다. 이제 앞으로 세계 운명은 어린아이들 손끝에서부터 재앙이 시작 됩니다. 그 다음에는 현대 물질문명이 세계 평화 정착에 실패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옛날에 많은 왕들은 영토 확장에 책임을 지고 자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서 그렇게 많은 전쟁을 통해 영토 확장을 했는데 그것은 해결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 땅은 70퍼센트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산입니다. 30퍼센트의 면적에서 농사를 짓고 학교 짓고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농사짓는 면적이 적은 이렇게 조그만 나라에서도 일 년에 100만 톤에서 150만 톤의 쌀이 남아돌아갑니다. 그러면 이 물질 문명이 세계 평화 정착에 성공했는가? 그러면 잘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전쟁 없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닙니다. 

점점 더 위험해 집니다. 먹고 살기 편해졌는데 왜 싸웁니까? 서로 잘 먹으면 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안 됩니다. 여기서 실패합니다. 세계 평화는 먹을 거 경쟁만 안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점점 더 위험합니다. 지금 전쟁이 점점 더 심해집니다. 미국 국회에서 핵무기 제조 찬반 토론이 벌어졌을 때 공개 방송을 했습니다. 애틀랜타의 크린우드 하의원이 나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미국이 할 수 있는 일은 핵무기 제조가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핵무기를 없앨 것인가를 연구해야 합니다. 사람을 죽이는 방법이 아닌 살리는 방법을 미국이 연구해야지 핵무기는 더 만들어서 뭐할 겁니까? 

미국이 정말 인류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세계 최강대국이 할 일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성의 회복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미국이 공헌해야 합니다.” 거기 웨버 교수라는 평화주의자가 나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내가 여러분 앞에 말을 한다고 내 말을 따를 거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를 하나 읽고 말겠습니다. 그 말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잘 가거라. 인간의 역사야! Good bye! 역사의 앞을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우리가 아는 바 인류의 세계사는 이제 그 종착역에 도착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을 것이다. Good bye!” 

그러면 이 현실을 우리가 무엇으로 이길 것인가? 성숙한 21세기 인류라는 희망을 가지고 21세기 아침을 맞이하면서 11년밖에 안되었는데 세상은 재앙의 재앙으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전쟁 없는 지구촌은 누구나 원하지만 절대로 안 됩니다. 모순에 빠져있습니다. 백악관에서 해마다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기업인, 종교인, 예술인, 정치인, 과학인할 거 없이 자기들이 조사를 해서 누구, 누구 오라고 해서 현 정부의 정책을 설명을 하고 국민의 소리를 듣는 순서입니다. 

대통령은 언제나 나와서 인사와 취지 설명만 하고 들어가고 분과별로 나눠서 제목을 줍니다. 프린트해서 자신의 관심 제목을 따라 들어가라고 합니다. 보통 상원 의원들, 국회 분과 의원장들이 스피커로 나옵니다. 자기들의 말을 하고 질문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딕 체니 부통령이 상원 의원의 의장이니까 저는 그 방에 들어갔습니다. 50명 정도 들어왔습니다. 질문자가 부통령에게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왜 공화당은 전쟁을 계속합니까?” 그때 이라크 전쟁을 한창 할 때였습니다. “다른 나라들이 싸우든 말든 내버려두시오. 

우리 미국 본토 평화만 잘 지키고 살면 될 텐데 미국은 뭐하려고 온 세상 집안 다 참견하느라고 우리 아들 수없이 죽고 헤아릴 수 없는 돈이 들어가는데 왜 그러는 겁니까? 그만할 수 없는 겁니까? 우리 아들들이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 전쟁에서 죽은 숫자가 얼마인지 아십니까?” 사실 한국 전쟁에서만도 3만6천명이 죽었습니다. “도대체 왜 하는 겁니까? 우리만 잘 살면 될 거 아닙니까? 좀 다른 나라는 내버려 두시오. 미사일 한방 쏘는데 12억이 드는 것을, 하루에도 수백 발씩 우리의 세금을 가지고 포탄 만들어서 외국에 나가서 쏘아대니 그 경비는 우리가 다 대지 않습니까? 왜 합니까?” 딕 체니가 대답했습니다. 

“밖에 나가서 전쟁을 안 하면 당신 집 마당에 폭탄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여러분의 아내와 행복한 잠을 자고 모닝커피를 마시면서 음악을 듣고 스테이크로 저녁을 먹으면서 재미있는 TV 프로를 보는 이 평화스러움은 미국의 군인들이 밖에 나가서 전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만약 그것을 중단하면 당신 집 앞마당에 로켓이 떨어집니다. 어떡하시겠습니까? 전쟁을 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아들 죽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옛날 맥아더 장군도 국회에서 불렀습니다. “전쟁 그만할 수 없습니까?” “나가서 전쟁 안하면 여러분이 계신 이 자리로 로켓이 떨어집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지 말라면 나는 그만 두겠습니다.” 

그렇다면 인류의 전쟁은 끝없습니다. 전쟁이 없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매한 사람들의 말입니다. 끊임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너희도 망할지 모르니까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 이 처방만이 영혼의 안식일 것이다.” 사순절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이면서도 자신을 찾아오는 이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것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도 이 세상에 오셔서는 33세에 처참한 죽음을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아버지여! 피할 수 없나이까?” 피하지 못했습니다. 죽었습니다. 

“이것은 다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언제 어떤 고난 앞에서도 초월적 영혼의 안식을 얻는 것만이 우리가 가야할 길이다. 너희도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망하리라. 똑같이 될 것이다. 돌아와. 돌아와. 아버지께로 돌아오라.” 인류를 향하여 예수님이 내린 처방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두가 돌아올 때만이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인류여! 회개하고 아버지께로 돌아오라.” 후쿠시마에서 들려온 소리를 21세기 인류가 들어서 처방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메시지를 들을 수 있을 때 해결이 됩니다. 

여러분도 이런 큰 재앙을 이웃집에서 만난 이 사건을 보면서 마음을 바꿔야 합니다.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이 교회 다닌다는 것이 한 문화인의 액세서리 정도로 생각하는 마음에서 변해서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 섬기는 데 두어야 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그동안에 내가 하나님 앞에 인색하고 게을렀던 모든 부분을 개혁시킬 때 “너도 망할 것이다. 너도 회개하지 않으면 똑같이 망할 것이다.” 이 경고의 음성을, 후쿠시마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영적 능력이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후쿠시마에서 들려온 저 재앙의 소리가 인류가 하나님 앞에 돌아오라는 영적 음성으로 들을 수 있게 하옵소서. 갈릴리에서 천재지변적 사고를 만나서 죽은 사람들이 “너희들보다 죄가 많은 줄 아느냐? 너희도 회개치 아니하면 다 망하리라.” 우리를 향해서 주시는 말씀으로 듣게 하여 주시옵소서. 후쿠시마의 회복이 아버지의 뜻 가운데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