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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를 통과해서 이 땅에 (계 3: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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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통과해서 이 땅에 (계 3:14-22)

 
스쳐지나 갈 곳에 머무르면 

상관이 부하에게 전라남도 광주에 가라고 했는데 그 명령을 받은 부하가 천안에서 고속도로 밖으로 진출하여 놀면 되겠습니까? 또는 천안에서 빠지고 싶은 유혹은 간신히 이겼지만 고향인 익산에서 진출하여 놀면 되겠습니까?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서 가라고 명령하신 곳에 가다가 중간 지점에 머물러 있으면서 탈영하는 꼴이 되었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성막에서 만나주셨습니다. 성막(텐트)을 중심으로 광야를 행군할 때는 하나님께서 어디에나, 언제나 계시다는 것을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 도착해서 솔로몬 성전을 건축한 이후 성막처럼 움직이는 하나님이 아니라 성전에만 머물러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의식이 점차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은 모든 곳에 계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성전에만 머물러 계신 하나님으로 믿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어디에나 무슨 일에나 불꽃같은 눈동자로 바라보시고, 통치하시는 분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성전에만 머물러 계신 분으로 믿으므로 하나님을 관절염 환자처럼 만들어 놓고 신앙생활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국 잘못된 신앙을 깨트리기 위해서 성전을 깨트리셨던 것입니다. 


성전을 헐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

때가 차매 예수님께서 팔레스틴에 오셔서 메시야로서의 삶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총독 빌라도의 임기 말에 십자가에 못 박히는 일을 당하신 뒤, 사흘 만에 부활하여 사십일 동안 이 땅에서 머물다가 승천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시기 직전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지켜야 할 최고의 명령인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라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는 명령을 약속과 함께 주셨습니다. 

또 부활하신 이후에 승천하시기 전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주님을 체험한 증인! 주님이 보여주신 것을 가르치고 행동하는 공동체! 그리고 하나하나 구성원!이 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약속대로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여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은 이후 구제에 대한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서 일곱 집사를 세우므로 조직교회가 되었습니다. 그 후 유대교의 신봉자들과 로마의 제왕들과 위정자, 그리스의 철학과 동방의 신비주의 종교 등의 잡다한 반대와 방해를 받으면서도 복음은 여러 나라로 전파되었습니다. 복음을 증거 하는 과정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로 태동되었습니다. 

문제는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들이 가야 할 목적지의 중간지점, 통로인 교회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목적지를 향하여 가지 않으면 구약의 성전처럼 될 수 있다는 위기를 가져야 할 때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교회를 통해서 무엇을 얻을 것인지, 교회가 무엇과 짝해서는 아니 되는지에 대해서 말세교회와 가장 닮은 라오디게아 교회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말세교회의 닮은 꼴

라오디게아는 지역적인 특성상 큰 지진이 많이 일어났고, 후에 그것을 대비하여 도시 계획을 잘 세워서 큰 도시가 되었습니다. 로마의 원조를 거부하고 독자적으로 도시를 발전시킬 만큼 부요한 곳이었습니다. 비옥한 땅과 넓은 초원 그리고 산업과 공장들이 발달했을 뿐만 아니라 은행업이 발달된 도시였습니다. 더욱이 외부의 침입과 핍박이 없었기 때문에 평화롭기까지 한 곳에 교회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교인들은 사람이 노력하면 재앙을 막을 수 있다는 것도 체득했고, 건강이나 돈 문제로 하나님께 절박하게 기도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하고, 비참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자로 보셨습니다. 그럼에도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신들을 부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하나님과 세상을 필요에 따라서 적당하게 혼합하여 섬기므로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미지근한 라오디게아 교인들을 뱉어 내겠다고 하셨습니다. 바로 이러한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신앙상태가 흡사 우리들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하나님께서 주셨고, 하나님께서 불면 날아가 버리는 아주 연약한 것임에도 예수님을 교양수준으로 섬기려는 분들이 많은 실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은 어느 정도 마음의 평화를 얻는 수준의 신앙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교회를 지나서 교회 밖에서 만나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나라를 만들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을 실천하라고 저와 여러분을 위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지금도 주께서는 기도하고 계실뿐만 아니라, 성령님께서 우리를 강력하게 밀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성삼위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머무르고 교회 밖에 나가지 않는 우리에게 교훈 주시기 위해서 화려한 성전을 파괴하셨던 것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통해서 얻을 것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주님을 통해서 생명을 얻은 자녀들이 교회에서 함께 모여서, 

교회를 통해서 주님의 정신을 배우고, 교회에서 주님을 만나서, 교회 밖에 나가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과 예수님 정신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하는 이유는 이 땅에서 신앙을 통해서 마음의 평화를 얻고, 건강을 얻고, 성공을 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도 주님께서는 우리의 핵심가치를 그보다 더 높은 차원에 두라고 명령하십니다. 주님의 절박한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로마는 방대한 제국을 유지하기 위하여 제국 내의 모든 민족들이 신앙생활 할 수 있는 범세계적이면서도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종교가 필요했습니다. 조사해 보니 교회는 개인들에게 희망을 줄 뿐만 아니라 인권을 존중하고 구제함으로 도움을 주면서 건전한 삶을 가르쳤습니다. 또한 귀신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에게 해방을 주었고 영원한 소망을 주었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들이 원인이 되고 원동력이 되어 A.D. 313년 콘스탄틴대제(Constantinus)의 밀라노 칙령으로 정직적인 종교로 인정을 받게 되었고, 380년 테오도시우스(Theodosius)황제 치하에서 로마 제국의 국교로 선포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말세교회가 바로 그 시대 교인들의 행동을 재연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시대에 당신을 기쁘게 하는 성도를 찾고 계십니다. 비록 대단한 능력이 없을 지라도 소박한 자리에서라도 우리 모두 함께 주님을 흡족하게 하는 성도가 되어 보십시다.


터닝 포인트(전환점) 

솔개는 약 70년을 장수할 수 있는 조류이지만 40세 즈음에 결정적인 터닝 포인트를 잘 치러야 한다고 합니다. 사람에게도 오십견이 오듯 솔개도 부리의 한계를 맞이하게 되기 때문에 바위에 자신의 부리를 부딪쳐 깨트려야 새로운 부리가 나온다고 합니다. 반 년 이상 바위에 심하게 부딪치면서 죽을 만큼의 고통을 치루면 40년을 넘어 장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잘못된 신앙 습관을 고치기 위해서는 희생과 고통이 뒤따를 수밖에는 없지만, 구약의 화려한 성전을 깨트리신 하나님께서  징계의 손을 드시기 전에 우리 모두는 넘어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목표를 향하여 갑시다! 

다행히 주님께서는 『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당신은 이 시간 교회 밖에 나가서 무엇을 하겠다고 결단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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