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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순절] 예수 그리스도 왜 오셨는가? (눅 4: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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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왜 오셨는가? (눅 4:16-19)


오늘 봉독한 말씀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처음으로 하신 설교입니다. 설교의 본문은 구약성경 이사야 16:1~2이었습니다. 본문의 내용은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그 예언대로 예수님께서 세상의 구원자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까? 그 이유를 밝히신 말씀이 본문입니다.

1.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오셨습니다. 

본문 18절에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에 대해“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하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가난은 나라도 구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러한 인간의 대 난제인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오셨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있어서 복음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의식주 걱정하지 않고 넉넉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를 위해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말씀을 전하신 나사렛은 이스라엘의 빈민촌이었습니다. 가난하여 헐벗고 굶주린 자, 죄짓고 불의하여 도망쳐온 자, 로마 정부에 대항하기 위해 무장하고 준비하고 있는 자들이 모여 있었던 곳이 나사렛입니다. 그러니 한탄과 한숨과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가난은 언제나 이중적인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물질이 없으므로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고, 거처가 없는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또 다른 고통은 가진 자로부터 당하는 멸시와 천대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들에게 등을 돌렸지만 예수님은 이처럼 가난하고 병들고 문제 있는 사람들을 찾아오셔서 생명의 복음, 사랑의 복음, 치료의 복음, 용서의 복음, 구원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이 귀한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놀라운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 말씀에“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친히 가난을 짊어지시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섬기는 곳에는 놀라운 풍요로움의 축복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흔히 교회를 잘 모르는 분들이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사람들을 향해 비웃는 말로“교회가면 밥을 주나? 떡을 주나?”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떡이나 밥 정도가 아닙니다. 가난자체가 물러가고 부요함의 축복을 주신다는 이 놀라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류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복음이 들어가서 활성화된 나라마다 다 풍요로워졌습니다.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국토가 좋건 나쁘건, 국토가 좁건 넓건 상관없이 하나같이 부요한 나라, 탐스러운 나라,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었습니다. 덴마크나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을 보십시오. 미국을 보십시오. 대한민국을 보십시오. 반면 북한은 어떻습니까? 지구상의 극빈 국이 되어있습니다. 

북한은 지금도 세계에서 기독교를 가장 악하게 탄압하는 국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북한은 기독교인으로 발각되면 모조리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간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북한에 교인수가 적게는 20만 명, 많게는 50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국제선교단체인“오픈 도어스”는 북한에 40만 명의 기독교인이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5만~7만5천 명 정도가 신앙을 이유로 체포되어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한 국제선교단체인“순교자의 소리”는 북한 내 지하교회는 교인 5-6명이 좁은 방에 앉아 희미한 손전등 아래에서 숨을 죽이고 성경책을 읽는 광경을 자유아시아 방송에 공개를 했습니다. 이것은 지난 2월의 일입니다. 북한의 지하교회는 1990년대 중반부터 활발히 생기기 시작하여 지금은 약 1만~2만개 정도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하교회는 북한 전역에 분포되어 있다고 합니다. 

수많은 교회를 불태우고, 수많은 주의 종들과 성도들을 죽이고 세운 나라가 북한공산국가입니다. 어찌 이런 나라가 잘 되겠습니까? 교회 박해는 곧 예수님에 대한 박해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처음으로 세워진 것은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오심으로 세워졌습니다. 이렇게 세워진 초대교회를 박해하는 일에 앞장섰던 사람이 바울이었습니다. 어느 날 바울이 교회를 잔멸하고자 믿는 사람들을 체포하러 가는 도중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리기를“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행 9:4)라고 했습니다. 

사울이 말하기를“주여 뉘시오니이까”하자“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행 9:5) 하셨습니다. 사울은 예수님을 직접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사울은 예수님을 핍박한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후 다만 교회를 박해했을 따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행 9:4)라고 하셨습니다. 즉 교회 핍박은 곧 예수님에 대한 핍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라고 하셨습니다(골로새서 1:18). 이렇게 만복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박해하고서야 어찌 복을 받아 누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잘 섬기면 국가나 개인의 경우도 반드시 복을 받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신명기 28장 1절~6절에 약속하시기를“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하셨습니다. 

이 약속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우리의 죄를 사하심으로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를 가리켜 고린도후서 8장 9절 에 말씀하시기를“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섬기는 나라나 개인이나 반드시 복을 받아 누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3절에 말씀하시기를“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마음이 겸손한 것을 의미합니다. 매주일 교회에 올 때마다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나아오는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시편 107:9)하셨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천국의 축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세상의 온갖 욕망으로 가득한 쓰레기장 같은 마음에는 천국이 주어질 수 없습니다. 세상 것에 파라다이스를 꿈꾼 솔로몬은 훗날 깊이 뉘우치며 말하기를“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도서 1:2)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은 뒤늦게 참된 삶의 지혜를 깨닫고 고백하기를“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도서 12:13)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태복음 5:3)라는 말씀의 의미와 동일합니다. 가난한 심령 즉 세상에 아무것도 의지할 것이 없는 것을 깨닫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에게 천국을 경험하는 은혜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물질적으로 어려움을 당한다 할지라도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먼저 영혼이 잘되면 범사가 잘되는 축복이 뒤따라 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소망과 사람의 소망의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먼저 육신의 필요한 것을 이루어 주시기를 바랍니다.“하나님! 건강하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너무 가난하여 힘이 듭니다. 

물질의 넉넉함을 주십시오.”하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태복음 6장 25절, 32절~33절에 말씀하시기를“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하셨습니다. 육신이 아니라 영혼이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육신의 문제가 우선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영혼의 문제를 우선으로 보십니다. 영혼이 더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육신은 생명은 짧아 100년을 넘기기 어렵지만 영혼은 영원히 죽지 않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면 육신과 영혼이 함께 패망하게 됩니다.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가 그렇습니다. 그들이 왜 에덴동산에서 저주를 받고 쫓겨났습니까? 영혼의 욕망인 하나님의 말씀보다 육신의 욕망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욕망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만 사탄은 언제나 육신의 욕망으로 사람을 미혹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룟유다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사람의 말로에 대해 사도행전 1장 18절에 기록하기를“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고 했습니다. 그가 왜 이처럼 저주받은 처참한 인생 말로를 겪어야 했습니까? 육신의 욕망을 따라 돈이 되는 길이라면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까지 팔아넘긴 결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을 삶의 우선순위에 두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곧 심령이 가난한 자의 삶입니다. 영혼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면 육신이 덤으로 잘되는 축복을 받아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요한3서 1장 2절에“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영혼이 잘되도록 하시고자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영혼이 잘되는 것이 가난한 자가 잘되는 비결 즉 복음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물질의 풍요로움을 축복으로 받았을 때에도 심령이 가난해져야 합니다. 늘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받은 은혜의 축복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자 애써야 하는 것입니다. 

미국 남북전쟁에서 북군이 승리하자 미 의회는 국방장관 스탠튼과 모든 장성들의 이름을 의사당 벽에 조각하여 그 명예를 역사에 길이 남기자고 발의하였습니다. 그러자 스탠튼 장관이 말했습니다.“아니요, 벽에 세길 글자는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시편 118편 23절이어야 하오.”이 시편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이는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그렇습니다. 영광을 받으실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는 전쟁의 승리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이름을 드러내려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려 한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은혜로 축복 받은 성도의 올바른 자세입니다. 

2.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시고자 오셨습니다. 

본문인 누가복음 4장 18절에“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유에 대하여 여러 차례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8장 32절에“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3장 17절에는“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된 자유를 주시고자 오셨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무엇인가에 포로가 되어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물욕의 포로, 어떤 사람은 권력의 포로, 어떤 사람은 명예의 포로, 어떤 사람은 염려와 근심의 포로, 어떤 사람은 음란의 포로, 어떤 사람은 도박의 포로, 어떤 사람은 알콜의 포로, 어떤 사람은 마약의 포로, 어떤 사람은 인터넷게임의 포로, 어떤 사람은 낙심과 좌절의 포로, 어떤 사람은 자살의 포로가 되어있습니다. 젊은이들의 선망의 대상인 그 유명한 대학 카이스트 학생까지 줄을 이어 자살한 사건이 이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심각한 것은 우리가 죄악의 포로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죄에서 자유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바울사도는 죄의 포로에 대해 로마서 7장 19절~20절에 말하기를“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아무리 죄를 짓지 않겠다고 몸부림을 쳐도 갖가지의 포로에서 풀려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탄식하기를“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로마서 7:24)고 했습니다.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죄의 포로에서 놓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우리를 죄악과 절망과 염려와 근심에서 건져줄 자가 누구입니까?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면 참 자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감리교 창설자인 존 웨슬리 목사는 말하기를“예수님은 더 이상 인간을 죄의 노예로 남겨두지 아니하고 죄로부터 해방시키시는 분이시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모든 죄에서 해방시키실 수가 있습니다. 

한국교회 초대역사 가운데 연동교회 고찬익 장로님이 계십니다. 이분은 초대 장로로 봉사하신 분인데 본래 노름꾼, 술주정꾼, 사기꾼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래서 관가에 끌려가 매를 맞고 풀려났는데 얼마나 맞았는지 그만 후유증으로 말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빚 독촉까지 받게 되자 그는 어느 날 독약을 먹었는데 죽지 않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습니다. 그 때 연동교회에 사역하고 계시던 게일선교사님을 만났는데, 선교사님이 그분에게 전도지를 주었습니다. 

야곱의 이야기를 담은 “네 이름이 무엇이냐?”하는 전도지였습니다. 무심코 전도지를 받아 주머니에 구겨 넣고 집으로 와서 잠을 잤습니다. 그날 밤 꿈에 하얀 옷을 입은 분이 나타나서 물었습니다.“네 이름이 무엇이냐?”그래서 벌벌 떨면서“고, 고, 고”라며 간신히“제 성이 고씨구요, 싸움꾼이고, 술꾼이고, 망나니입니다. 당신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저를 좀 구원해 주세요. 저를 좀 용서해 주세요.”그러자 그 하얀 옷을 입은 분이 말씀하시기를“너는 오늘부터 내 아들이니라.”그때 번뜩 잠에서 깨어나 선교사님에게 받은 전도지를 읽고 또 읽는 가운데 “아,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구나.”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님을 찾아가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훗날 그 교회의 장로님이 되어 아주 충성된 하나님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그분은 신발을 만드는 제주가 있었는데 신발을 만들어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전도를 했습니다. “내가 전에는 도적놈에다 싸움꾼, 사기꾼이었는데 예수 믿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제가 이 신발을 선물로 드리니 이 신발을 신고, 제가 다니는 교회에 좀 오세요.”라고 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분이 변화된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한때 술의 노예였고, 노름의 포로였고, 사기와 거짓말의 포로였으나 예수를 믿은 후 완전한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권세만이 우리를 모든 결박에서 자유케 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시간관계상 본문의 내용을 다 말씀드리지 못하고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가난한 자에게 부요함을 주시고자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가난의 저주가 물러가고 풍요로움이 물결치고 있습니다.

또한 참 자유를 주시고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믿고 영접하여 주님의 가르치심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곳에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6장 44절에 말씀하시기를“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하셨습니다. 

참 자유를 위해 이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 부지런히 나아와 예수님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배워 삶에 적용할 때 우리들의 무거운 짐은 벗겨지고 풍성한 자유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죄로부터 자유롭게 합니다. 질병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십니다. 가난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십니다. 죽음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십니다. 이 귀한 은총을 기대하며,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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