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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순절] 피의 복음 보혈의 능력 (히 9: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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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복음 보혈의 능력 (히 9:11-15)


저는 목회자로 우리 교인들이 성경에 대하여, 믿음에 대하여 신앙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바로 알고, 깊이 알고 많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이것도 조금, 저것도 조금, 아는 것도 같고 그렇다고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신앙의 세계는 아주 무궁무진하고 깊고 오묘한 진리의 세계입니다.제대로 알고 성숙한 인격으로 성장하시기를 원합니다. 

사도바울은 참으로 성숙한 인격으로, 주님을 아는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 데까지 성장하였습니다.  엡4:13-15을 보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아야 하고, 그의 형상을 회복하여야 합니다.  

사도베드로도 우리의 영적 수준을 끌어올려 성장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베드로후서3:18에서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성장해야 하고, 예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야 합니다. 

우민정책(愚民政策) 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우민정책이란 어떤 정권을 가진 자들이 체제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피지배자로 하여금 정치적일 일에 관심을 갖지 않게 하거나 비판 정신을 흐리게 하려는 정책입니다. 제국주의자들은 일반 국민으로 하여금 유능한 지도자가 나오지 못하도록 우민정책을 폈습니다.  식민지배에 들어가면 피지배국민들 가운데 유능한 법관이 나오지 못하게 하는 고등교육을 받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믿어 구원받는 도리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야 하고, 바르게 알고 깊이 알고 많이 알아야 됩니다.  모르고 무조건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말하는 것은 무지한 말입니다. 
목회자가 제자훈련을 시키면 교인들이 진리를 알게 되고, 더 깊이 알고 싶어서 많은 신앙서적을 읽게 됩니다. 알고 믿는 이들이 훨씬 잘 믿고, 좋은 봉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우들이 성경이나 교회생활에 있어 많이 알고 깊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엡3:18-19을 보면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 평신도 신학자도 나오고, 위대한 하나님의 종들이 나오고, 좋은 목회자도 계속해서 나오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야 하는데,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있는 입체적으로 알고 하나님의 충만하신 그 충만으로 넘쳐야겠습니다.  

히3:1에서는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여기서 예수님은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입니다. 우리는 그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아는데 제대로 바르게 알고, 예수님을 깊이 알고, 예수님의 장성하신 인격을 본받아 우리의 인격, 우리의 성품이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요즈음에는 좋은 녹즙기들이 나와서 오렌지를 잘라 넣고 돌리기만 하면 신선한 오렌지주스를 즉석에서 짜먹을 수 있습니다.  딸기를 넣고 짜면 즉석에서 딸기 주스가 만들어집니다.  얼마나 좋은 시대가 되었습니까?  

우리는 성경을 우리 머리에 집어넣고, 가장 진수의 말씀, 엑기스를 짤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의 핵심진리가 무엇입니까?  기독교의 진리요 생명은 피의 복음입니다.  

종교개혁자인 마르틴 루터의 탁상담화가 있습니다.식탁에 둘러앉아 제자들과 함께 나눈 말씀들이 아주 많았는데, 탁상담화 중에 “성경을 짜면 피가 나온다. 구약에는 소와 양과 비둘기인  짐승의 피가 흐르고, 신약에는 예수님의 피가 흐른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신구약 66권은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인공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적인 세계는 그렇게 쉽게 짜낼 수가 없습니다.  많은 시간을 성경 연구에 투자해야 합니다.성경 말씀을 우리 마음에 쌓아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가지고 힘써 묵상하고, 연구하여야 합니다.  아주 오랫동안 힘쓰고 애쓰고, 성경을 붙잡고, 연구하고, 성령님을 의지하여 간절히 기도할 때에, 진한 말씀,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을 얻을 수 있습니다.성경도 자기의 성경이어야 하고, 성령의 체험도 자기 체험이어야 하고, 기도의 깊은 맛도 자기가 느껴야 합니다. 간증이나 듣고, 설교만으로 다 해결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성경을 짜보셨습니까?  성경을 우리의 머리에 집어넣고, 양손에 빨래를 잡고 짜듯이 성경을 붙잡고 씨름하면서 엑기스를 짜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흘러나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피로 물들였습니다. 머리에는 가시면류관으로 예수님의 얼굴은 피로 물들였습니다.  양손목과 양 발목에 대못이 박혀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그리고 마침내 옆구리에 창으로 찔려 피와 물을 다 쏟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는 피로 물들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십자가는 로마제국에서 살인죄수와 반항하는 노예를 처형할 때에 사용하는 사형대로, 수치와 치욕과 저주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 그 수치와 치욕과 저주의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오늘은 복음의 진수인, “피의 복음, 보혈의 능력”에 대하여 말씀드리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구약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구속사의 핵심은 피 흘림에 있습니다.  그것이 제사종교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 제사를 드리는데 몇 가지 제사들이 있었습니다.  번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소제가 대표적인 제사입니다.  그런데 소제는 곡물을 드리는 제사이었고, 피와 상관이 없는 서원과 자원의 감사제였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4 종류의 제사들, 번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의 제사는 다 희생제사요 화제요, 피 흘림의 제사였습니다.우리들이 죄를 지었습니다.  이런 저런 죄로 더럽혀졌습니다. 우리의 더럽고 추하고 부끄러운 죄를 용서받으려고 하면 희생 제사를 드리므로 용서받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양이나 소가 우리를 대신하여 제단에 올려지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나 짐승이든지 피를 흘리는데, 많이 흘리면 죽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구약의 유대인들은 피가 곧 생명으로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피를 많이 흘리면 사람이건, 짐승이건 죽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피와 호흡이 사람의 생명인 줄 알았습니다. 

피가 잘 돌고, 숨을 제대로 쉬면, 우리의 모든 기관과 조직이 살아 움직이면서 제 기능을 발휘합니다.  그러면 살아 있는 것이요, 피가 돌지 않아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지 못하고, 숨이 멈추어 산소를 공급해주지 못하면, 피가 탁해지고 기관이 죽어가게 되고, 마침내 뇌의 기능이 중지되면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호흡기와 순환기가 사람을 강건하게 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피를 많이 흘리고 보니, 사람이 죽어갑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다고 본 것은 경험적인 지식이었습니다. 피가 생명이야 하면 그것은 아니지만, 피를 많이 흘리면 죽게 됩니다.  그러니 피가 생명이라고 본 것이 잘못이 아닙니다.  

피가 생명이냐 하면 그것은 아니지만, 피가 생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육체는 피가 돌아다녀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피는 붉은 색이 있는 적혈구와 색이 없는 백혈구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적혈구만 보여서 피는 빨간 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적혈구는 우리 몸 구석구석까지 침투하여 들어가 산소와 영양분을 나누어주고, 필요 없는 노폐물과 우리 몸에서 발생되는 이산화탄소를 가지고 나옵니다.  그러면 그 피는 폐에서 걸러주고, 또 신장에서 걸러주어 항상 신선한 피가 돌아다니게 합니다.  백혈구는 우리 몸에 들어오는 병균을 잡아먹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물리칩니다.  그런데 그 백혈구가 생성되지 않으면 병균의 침투를 막을 수 없어 병에 걸리고 죽게 됩니다.  

구약에서 피를 먹지 말라는 것은 그 피는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요,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피를 먹지 말라는 말은 생명을 파괴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우리 기독교는 피의 종교입니다.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성전에서는 소와 양, 염소, 비둘기를 잡아 제물로 드렸습니다. 제물의 피가 강물과 같이 흘러갔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실 메시아의 구원을 보여주는 그림자였으며, 예표이었습니다. 

레위기17:11에서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창4:9-10절에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아우 아벨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하나님에게로 호소한다고 하셨습니다. 피가 무엇이기에 하나님에게 호소한다는 말입니까?  그런 의미에서 피는 생명이었습니다.  
생명을 대속하고, 구원하기 위해서는 다른 생명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범죄한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피를 흘리고 죽으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대속하기 위하여, 속죄하기 위하여 대신 죽으신 죽음입니다. 

현대인들에게 이런 피를 이야기하면, 신화처럼 들린다고 합니다.  피를 가지고 죄를 용서받고, 피를 흘려 대속하는 것을 무시하려는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죽을 때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들을 들어보면, 십자가의 피의 복음이 얼마나 소중한 것을 알게 됩니다.  임종시에 사람들이 남긴 말을 찾아보면 영적인 세계를 이해하고 하나님의 구속사를 아는데 도움이 됩니다. 

프랑스의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는 “기독교가 생겨나기 까지 수백 년이 걸렸지만 이제 프랑스의 한 사람이 50년 안에 기독교를 다 파괴해 없애 버리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장담했고, 또 “100년 안에 성경은 다 없어지고 만다”고 큰 소리를 쳤습니다.  이 사람에게도 예외 없이 죽음의 날이 다가왔습니다.“아! 나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버림을 당하였구나, 의사 선생님, 나를 6개월만 더 살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내 보물의 절반을 주겠소.” 라고 애원할 때, 의사는 “6주간도 더 못 삽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극도로 고민하다가 “나는 멸망으로 들어간다!”고 하며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의 집은 프랑스 교회가 사들여 성서공회 건물로 사용하였습니다.  100년 안에 성경은 다 없어진다고 공언하던 사람이었는데,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영국의 파워코스트라는 백작 부인이 있었는데 그녀는 대단히 큰 부자로 웅장하고 화려한 성에서 살았습니다.  그런 부자요, 명예가 있는 귀족이라고 안 죽을 것 같았지만, 그에게도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죽음은 만인이 가는 공도입니다.  임종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 때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찾아와서 묻기를 “부인, 얼마나 힘드세요?”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백작 부인은 환히 빛나는 밝은 얼굴로 대답하기를 “예, 괜찮습니다. 저는 이렇게 죽음에 임박해서야 한 가지 분명히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죽을 때 필요한 것은 단 하나인 것을 발견했습니다. 세상의 돈이나 학식이나 재산이나 명예도 죽음 앞에는 아무 소용이 없지만 예수님의 보혈이 우리의 죄를 흰 눈같이 씻어 준다는 말씀이지요. 그 말씀이 내 영혼에 그렇게 은혜로운 말씀이 되고 힘과 위안의 말씀이 되는 줄 이 순간까지 몰랐습니다.”라고 하더랍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피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천국의 문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하늘로서 내려오신 대제사장이 되십니다.  제사장은 성전에 들어가 백성의 죄를 위하여 희생 제사, 피의 제사를 드렸습니다.날마다 아침과 저녁으로 번제를 드렸습니다. 절기가 되면, 절기 제사를 드렸습니다.  초하루가 되면 초하루의 제사를 또 드렸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최대의 명절인 유월절이 사람들이 100만 명 정도 모여들었고 그들이 제물을 가져왔으니, 제단이 다 수용할 수가 없습니다.  수많은 소와 양과 염소가 죽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육신을 입혀 보내시고, 흠도 없고 죄가 없으신 아들,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피흘려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셨습니다. 

12절 말씀에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단번이란 무슨 뜻입니까?  두 번도 아니고, 오직 한번이라는 뜻으로 단번이라는 말을 합니다.  이제는 예전과 같이 반복할 것도 없고, 다른 것으로 대체할 것도 없이 예수님의 보혈로 과거에 지은 죄, 현재에 짓는 죄, 대단히 죄송하지만 앞으로 지을 죄까지 다 용서해주셨습니다.  

옛날에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용서함을 받기 위하여 양과 염소, 송아지의 피를 내어 하나님 앞에 뿌리면서 용서를 빌었습니다.  

13-14절입니다.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최대의 명절은 유월절입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에 대하여 잘 아시고 있습니다.  양의 피가 대문에 뿌려진 집은 장자가 죽은 것으로 간주하고, 양이 그 아들을 대신하여 죽으므로 그 집은 구원받았습니다.피가 뿌려진 집은 넘어갑니다.  건너갑니다.죽은 것으로 간주하고 지나갑니다.  우리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 양과 같습니다.  집이 아무리 견고하게 지어졌어도, 집이 화려하고 값이 나가는 집이어도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그 집이 아주 초라하고 보잘것없어도 상관없습니다.  그 집 대문에 피가 뿌려져 있으면 구원받았습니다.  아무리 대문에 피가 뿌려져 있어도 그 안에 있지 못하고 잘난척 하면서 밖에 돌아다니면 그도 죽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감찰하시고 하감하셨습니다.  누가 의인이며, 죄인인가 보셨습니다.  의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최후최선의 방책으로 아들을 속죄의 제물로 내어주시고 아들이 있는 사람은 구원하여 주시고, 아들이 없는 사람은 멸망에 이르게 하셨습니다.하나님은 지옥으로 떨어지는 낭떠러지에 십자가에 세우고 방어벽을 치셨습니다.  지옥으로 가는 사람들은 이제 가지 말라고 두 팔을 벌리고 가로막으시면서 주님이 대신 그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피를 흘리셨습니다.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우리 안에 아들이 있어야 하나님은 그를 의롭다고 구원하여 주십니다. 요5:12에서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데, 예수님이 나를 살리기 위하여 그 살을 찢으시고 그 피를 흘리셨습니다. 
히9:22에서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 값을 치러야 죄에서 사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았는데, 구원하여 주신 것이 아니라, 아들 예수님이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그 몸을 찢기시고 그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요6:53-54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고 하셨습니다. 

피의 색깔이 무서운 색깔이어서 하나님의 사자가 두려운 나머지 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피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그 안에 하나님의 재앙을 면할 수 있는 어떤 요소가 들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 피는 한 사람의 생명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피와 물을 다 쏟아주셨습니다.  

우리 기독교회는 피의 복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새언약의 중보가 되셨습니다.  새 피로 세우신 언약 안에 들어갔습니다.  십자가에서 그 피를 흘리시고 죽으신 예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여 주십니다.  우리의 더럽고 추한 죄는 예수님의 보혈로만 깨끗이 씻을 수 있습니다.오늘도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받으신 감격을 안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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